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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사활동, 시작은 ‘고민’에서부터 끝은 ‘탐구활동’으로

양혜성 생각의좌표학원 원장이 말하는 봉사활동 ‘제대로’ 하는 법


매혈봉사. 그런 단어가 있다. 매혈(買血)이란 피를 사고판다는 말이다. 이 단어를 들으면 한평생 피를 팔아 가족을 먹여 살린 애잔한 아버지의 이야기를 그린 소설 ‘허삼관 매혈기’가 떠오르기도 하고, 1970년대 한국사회의 그림자가 연상되기도 한다. 그런데 이 단어가 어울리지 않게 ‘봉사’라는 단어와 만난 이유는 무엇일까. 

사정은 그렇다. 2010년 이후 ‘헌혈’을 하면 학생들에게 봉사시간 4시간이 인정되면서, 실제 16세 이상의 중고생 헌혈이 급증했다. 중고생이 군인을 제치고 헌혈 기여 1위 집단이 된 현상에 대해 여러 언론사는 앞 다투어 비판했다. 헌혈의 필요와 가치에 대해 공감하며 동참하는 학생도 분명 적지 않지만 대다수 학생은 아주 현실적인 동기로 헌혈에 참여하는 것으로 분석됐기 때문이다. 

현재 학교생활기록부 하위항목인 중 하나인 ‘창의적체험활동’에서는 중학생에게 15시간 이상, 고교생에게 20시간 이상의 봉사활동을 권장하고 있다. 이에 대학들도 학생을 선발할 때 봉사시간을 적극적으로 반영한다. 이 경우 대체로 고교 3년 동안 봉사시간 20시간을 넘으면 만점을 받는다. 결국 속성으로 봉사활동 시간을 채우려는 학생들의 주된 경로 중 하나가 ‘헌혈’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학생부종합전형을 중심으로 하는 현행 대입제도 하에서는 이 같은 ‘시간 채우기형’ 봉사는 무의미하다. 최소한의 봉사시간을 채우는 것이 의미를 갖는 것은 평가에서 배제되는 상황을 면할 수 있다는 사실 정도다. 봉사활동의 양이 아닌 ‘질’이 중요해진 것이다. 

○ 무작정 시작하지 말고 ‘왜’ 하는지부터 고민하라

그렇다면 봉사활동,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까. 최근 학생들에게 봉사활동과 관련해 몇 가지 질문을 던졌다. 그리고 꼭 답변을 적어서 가져오도록 했다. 첫 번째 질문은 봉사활동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지, 그렇다면 그 이유는 무엇인지였다. 두 번째 질문은 만일 봉사활동을 시작한다면 어디서 할 것인지, 그리고 왜 하필이면 그곳에서 할 것인지를 설명해보라는 것이었다. 지금 현재 봉사활동을 하고 있는 학생들에게는 올해 활동 목표를 세워보라고 요구했다. 마지막으로는 가까운 곳(국내)에 있는 사람과 먼 곳(국외)에 있는 사람 가운데 누구를 먼저 도와야 하는지에 대해 물었다. 처음에는 크게 어렵지 않은 질문이라고 생각했던 학생들이 한 주만 답을 미룰 수 없겠냐고 물었다. 막상 자신의 생각 속에서 그 답을 찾아내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었다. 

이 질문은 지금 봉사활동을 계획하고 있거나, 이미 하고 있는 학생들 모두에게 유효하다. ‘의미’를 발견해야 자기소개서에서도 자신의 활동을 정확하게 설명할 수 있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학생들이 고3이 되면 자기소개서를 작성하는데, 그 경우 가장 어려워하는 것이 ‘배우고 느낀 점’을 쓰는 일이다. 학업활동이건, 봉사활동이건 실제 계획을 세우고 활동한 내용은 풍부함에도, 막상 이 활동에서 배우고 느낀 점에 대해 이야기하지 못하는 것이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모든 활동은 ‘계기-목적(목표)-계획-실행-평가’의 과정으로 이어져야 하는데 해당 활동을 최초 목적이나 목표가 없는 상태로 시작했기 때문이다. 목적과 목표를 고민하는 것은 서류평가 뿐만 아니라 면접평가에서도 중요하다. 면접에서도 지원자에게 바로 이 지점을 질문하기 때문이다. 활동을 시작하기 전 위에서 언급한 질문에 자신만의 답변을 내려봐야 하는 이유다. 

복지관 한 곳에서만 2년 넘게 봉사활동을 학생에게 대학 면접관은 물었다. 오랜 시간 한 공간에서 봉사활동을 했는데, 만일 본인이 그 기관의 장이 된다면 내년에 꼭 변화시키고 싶은 것이 무엇이냐고. 한 학생은 피상적으로 눈에 보이는 무언가를 개선하겠다고 답했다. 또 다른 학생은 구성원들이 처한 상황과 희망사항을 고려하여 가능한 목표와 경로를 제시했다. 만일 이 질문만으로 한 학생을 선택해야 하는 면접관이라면 두 학생 중 누구를 선택하겠는가? 

○ 반드시 ‘진로’에 끼워 맞출 필요는 없다 

봉사를 꼭 진로에 맞춰서 해야 한다고 생각할 필요는 없다. 인터넷 포털 사이트에는 의대나 간호대에 지원하려면 꼭 의료기관이나 재활, 또는 요양기관에서 봉사를 해야 유리하냐고 묻는 질문이 많이 올라온다. 이밖에 교대나 사범대 진학을 꿈꾸는 학생들의 경우 대부분 교육과 관련된 봉사활동을 한다. 그렇다면 원자핵공학과를 꿈꾸는 학생은 어디에서 봉사활동을 해야 하는 것인가. 

이런 고민을 하는 학생이 많아진 이유는 최근 범람하듯 쏟아지는 교육 관련 글에서 모든 활동을 ‘진로’에 맞춰 하라고 조언하기 때문인데, 때론 이런 선택이 훨씬 작위적으로 보일 수 있다는 것을 기억하자. 중요한 것은 그 봉사활동을 시작한 ‘계기’다. 자신이 합당한 이유를 가지고 시작한 봉사활동이면 무엇이든 좋다. 

○ 탐구활동으로 이어가야 효과 200% 

봉사활동을 단순히 봉사활동으로만 보지 말고, 탐구활동으로 이어지는 발판으로 바라보는 것도 필요하다. 앞서 ‘매혈’로 매도됐던 헌혈 봉사활동의 사례를 들어 이야기 해보자. 정기적으로 헌혈을 하면서 우리나라 혈액 수급 현황에 대한 문제의식을 가져볼 수도 있다. 그러면 혈액 부족 문제 개선에 대한 아이디어를 내거나 헌혈 기피 요인을 분석하고 그 대안을 내놓는 활동도 가능하다. 중고생의 헌혈 지식이 헌혈에 미치는 영향, 인구지형 변화에 따른 헌혈 가능 인구 감소에 관한 통계적 전망을 해보는 것도 좋다. 

봉사가 단순히 인성을 드러내는 지표라고만 이해해서는 안 된다. 봉사활동에서도 얼마든지 문제가 무엇인지 발견하고, 그 문제 해결을 위한 가설을 세워보고, 그에 대한 자료를 수집하고 분석하여 스스로 해결의 실마리를 찾아가는 능동적인 모습을 통해 자신의 탐구력을 보여줄 수 있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현실의 문제에 대해 그런 치열한 고민을 가져본 학생들이 사회적 공감능력 역시 높다. 그리고 평가자의 눈은 그것을 놓치지 않는다.



▶에듀동아 김지연 기자 jiyeon01@donga.com 
위 기사의 법적인 책임과 권한은 에듀동아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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