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가상화폐가 야기한 ‘진짜 욕망’의 본질

투자에 대해 유통되는 것 중 가장 흔한 착각은 ‘누군가 돈을 벌면 누군가는 그만큼 잃어야 한다’는 말이다. 사실이 아니다. 주식으로 예를 들어보자. 어떤 회사의 주식이 100 원에서 한 달 만에 200원으로 올랐다고 가정하자. 투자자 A는 100원에 사서 130원에 팔았다. B는 130원에 사서 160원에 팔았다. C는 160원에 사서 200원에 팔았다. A, B, C 모두 돈을 벌었고 ‘누군가 돈을 번 만큼 잃은’ 사람은 없다. 반대로 주가가 떨어지면 투자자 모두가 돈을 잃는 상황도 가능하다(물론 주가가 올라도 누군가 돈을 잃는 상황이 발생할 수는 있다. 그러나 그것 역시 ‘누군가 돈을 번 만큼’ 잃는 건 아니다).

욕망의 역사
‘누군가 돈을 벌면 누군가는 그만큼 잃어야 한다’는 말은 전체 시장의 크기가 고정돼 있다는 가정 하에서만 참이다. 예를 들어 ‘돈 놓고 돈 먹기’ 식의 노름판이라면 누군가 돈을 벌면 그만큼 잃는 구조가 나타날 수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자본시장은 그렇지 않다. 시가총액이라는 이름의 전체 ‘판’이 실시간으로 그 크기를 바꾸기 때문이다. 한국 사회에는 비정기적으로 투자 광풍이 불어 닥치곤 한다. 예를 들어 2000년대 초반의 닷컴 열풍이 있다. 2000년 3월 코스닥 지수는 무려 2,952.50까지 올라갔다. 18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코스닥 지수는 이때 기록의 근처까지도 못 가고 있다(2018년 1월 초 현재 800 안팎). 당시 의 투자 열풍이 얼마나 대단했는지를 알 수 있는 부분이다.

그러다 한국인들은 돌연 ‘로또’에 꽂혔다. 2003년 출시된 로또는 구매자가 번호를 스스로 정해 운명의 주인이 될 수 있다는 매력과 어마어마한 당첨금의 유혹에 힘입어 판매 첫 해에만 3조 8,031억 원어치가 팔려 나갔다. 다음에 당첨될 번호를 알려 주겠다는 선지자가 전국 곳곳에서 출현했고, 1등·2등 당첨자가 나온 판매처는 ‘명당’으로 이름을 날렸다. 투자 열풍이 너무 심해 SBS ‘그것이 알고 싶다’에서 심층취재를 하기도 했다. 그렇게 한동 안 잠잠해졌나 싶더니만 이제는 비트코인이라는 이름의 가상화폐가 나타나 새로운 광풍 을 만들고 있다.

‘비트코인’이라는 이름의 아사리판
비트코인의 원리는 일반 사람들이 이해하기에는 너무나 어려운 구조로 돼 있다. 일단 암호화폐·가상화폐라는 말부터가 그렇다. 화폐라면 그야말로 ‘돈’이라는 말인데 비트 코인으로 지금 뭘 살 수 있지? 도대체 이 안에 무슨 내재적인 가치가 들어있는 거지? 사실 알고 보면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동전과 지폐에도 내재적인 가치는 없다. 그냥 자석에 안 붙는 금속과 ‘한국은행’이라는 말이 적혀 있는 종이일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그 비철금속과 종이를 얻기 위해 고군분투하며 살아간다. 이는 우리가 살고 있는 대한민국 정부가 화폐의 가치를 보증해 준다는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 비트코인이 처음 출현했을 때 많은 사람은 이 가상화폐가 ‘믿음’을 획득할 수 없을 거라고 봤다.

아직까지도 누군가 비트코인의 가치를 보증해 줄 수 있는 주체는 없다. 그럼에도 우연과 필연이 덧입혀진 수년의 시간이 지나 비트코인은 어마어마한 욕망이 넘실거리는 투자의 대상이 됐다. 이 정도로 판이 커지면 기존 화폐를 비트코인이 대신할 수 있지 않겠느냐는 전망까지 나오는 형편이다. 만약 각국의 화폐를 비트코인이 대체한다면 그때 부터는 전대미문의 상황이 펼쳐지게 될 것이다. 더 이상 해외여행을 할 때 환전을 할 필요도 없어지겠지만, 통화정책을 누가 어떻게 주도해야 하는지는 의문으로 남는다.

한 푼 두 푼 모으다 보면 부자가 될까?
이미 시작된 비트코인 광풍이 정말 화폐혁명으로까지 이어질지는 모르겠다. 얼떨결에 전 세계 가상화폐 투자시장을 주도하고 있는 한국의 분위기는 그야말로 아사리판 그 자체 이기 때문이다. 가상화폐와 통화정책의 미래에 관심있는 사람은 사실 별로 없다. 그저 이 가상화폐에 ‘진짜 화폐’를 투자했다가 크게 한몫 벌어보고자 하는 욕망이 넘실댈 뿐이다.

인터넷의 보급에 포르노가 큰 역할을 담당했던 것처럼 ‘가상화폐 아사리판’이 비트코인의 확산과 정착을 앞당기는 보루가 될지 어떨지는 아직 아무도 모른다. 권위를 도전받은 정부로서는 예민해질 수밖에 없는 부분이겠지만, 비트코인 투자에 대해 지나친 규제 일변도의 입장으로 응답한다면 언젠가 혹독한 대가를 치러야 할 것이다. 분명한 건 우리 중 누구도 ‘한 푼 두 푼 모으다 보면 부자가 된다’는 말을 믿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다시 로또 얘기로 돌아가면, 모든 사람이 비트코인에 주목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로또 역시 은근한 저력을 이어가고 있다. 2017년 로또 판매금액은 2003년 광풍 시기의 판매금액을 넘어설 확률이 매우 높다. 물가가 상승한 탓도 있겠지만 15년 전 ‘광풍’ 당시의 판매금액에 아무렇지도 않게 도달해 있다는 사실은 의미심장하다.

사람들은 더 이상 성실함의 가치를 믿지 않는다. 부자가 되는 방법은 부자 부모를 만나 상속을 받거나, 그게 아니면 어떤 계기로 크게 ‘한 방’을 터뜨리는 방법밖에 없다는 게 이제 일반인의 상식이다. 비트코인 투자에 상당수의 고등학생이 뛰어들었다는 사실은 미래세대의 가치관 역시 비슷한 전철을 밟을 확률을 높여 놓는다. 화폐는 가상이지만 그 안에 깃든 우리의 욕망은 진짜다. 소처럼 일만 하는 ‘스튜핏’이 되기보다는 노력없이 큰 돈을 버는 ‘그뤠잇’한 상황 속에서 ‘욜로’하고 싶은 우리들 앞에 2018년의 시간은 비로소 시작된 것이다. 

김원장 KBS경제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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