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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의 엄마 강제 동원을 멈춰 주세요!”

청와대 국민청원에 올라온 워킹맘의 외침



"올해 첫아이가 초등학교 입학하면서 녹색어머니회, 어머니폴리스, 어머니 도서위원, 책읽어주는 북맘 등 엄마의 참여로 이루어지는 활동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취지가 좋은 활동들이지만, 알고 보니 반별 할당인원이 있는 반강제적인 것들이더군요.

필요한 일들은 대가를 지불하고 전문가를 고용해야 하지 않을까요? 엄마들은 전문가도 아니고 무급노동력으로 취급해서도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더군다나 이름에 '어머니', '맘'이 들어가는 것도 문제입니다. 아버지의 참여가 힘든 환경을 조성하고, 돌봄·교육은 엄마의 역할이라는 고정관념을 심어주며, 엄마가 참여할 수 없는 가정의 아이들은 상처까지 받게 됩니다.

초등학교에서의 어머니 동원을 금지하고, 그동안 어머니 동원으로 했던 일들을 전문가를 고용하도록 바꿔주세요. 비용은 의무교육이니 국가에서 부담하되, 예산이 부족하면 가정과 학교에서 분담하고, 이 과정에서 저소득 가정이 피해를 당하지 않게 해주세요. 또한 불가피하게 가정의 참여가 필요하다면, 어머니에게 전가하지 않고 학부모 모두 참여하도록 바꾸어주세요."

3월 8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눈길을 끄는 청원글 하나가 올라왔다. 바로 '초등학교의 어머니 동원'을 금지해 달라는 것이었다.

청원을 올린 이는 세 아이의 엄마이자 워킹맘인 예비 학부모 A씨였다. A씨는 지역 학부모 카페에 해당 청원을 소개하는 글을 올리고 “학교가 어머니들을 무임으로 동원해 쓰면서 노동의 가치를 모르고 있으며, 학부모를 어머니로 한정해 성차별을 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A씨는 “세상은 달라지고 있는데 학교 현장의 인식 수준은 처참한 수준”이라고 꼬집고 “초등학교부터 바뀌어야 아이들도 바뀔 것”이라며 국민청원을 올리게 된 이유를 설명했다.



말만 자율봉사인 ‘어머니 강제 동원’ 

A씨의 글이 올라오기가 무섭게 동의하는 댓글들이 꼬리를 물고 달리기 시작했다. B씨는 “봉사 차원으로 하고 싶은 부모님들의 지원 정도는 괜찮은데 한부모가정, 맞벌이 가정의 아이들이 소외될 수도 있을 것 같다”며 우려를 나타냈다. 

C씨는 “오늘 클래스팅에 담임선생님이 총회 못 오는 엄마들에게 문자로 어떤 활동을 할지 정해서 보내라고 하더라”며 “강제적인 부분이 있는 건 맞다”고 꼬집었다.  

D씨 역시 “저희 아이 학교는 학급별로 할당량이 있어서 학부모총회 날 학부모들끼리 서로 눈치를 보고, 학부모가 참가 신청서를 다 적어낼 때까지 선생님은 기다리고 있었다”며 초등학교의 학부모활동이 사실상 강제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고 밝혔다.

심지어는 학급별 할당량을 빨리 채운 교사가 능력 있는 교사로 인정받고, 교사 스스로도 이를 자랑으로 여기는 학교도 있었다. 이런 분위기 때문에 다른 교사들까지 어머니들에게 전화를 돌려 사실상 반강제적으로 참여를 요구해야 해야 했다는 것이다.

E씨는 “말은 봉사라고 해도 반별 할당 인원이 분명히 있고 아예 의무인 학교도 있다”면서 “우리 아이 학교는 몇몇 오래된 선생님들이 엄마들에게 일일이 전화를 돌려서 이틀 만에 모집인원을 달성한 것을 자랑스럽게 말씀하신다”고 증언했다. 그러면서 “학부모를 빠른 시간에 얼마나 많이 동원했는가가 교사의 능력이 되는 이런 병폐는 사라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반면 F씨는 “초등학교 교사들 대부분은 이번 청원글을 보고 거의가 대찬성하는 분위기더라”라고 전하며 “학기 초에 화장실 가기도 힘들 정도로 바쁜 와중에 학부모에게 전화해 활동에 참여해 달라고 사정사정해야 하는 것은 불합리한 일”이라고 주장했다.

성차별적 용어, 아이 따돌림…“한두 문제가 아냐” 

학부모 참여 활동의 이름을 ‘어머니’나 ‘맘’을 붙여 학부모 참여를 여성으로만 한정하는 것도 잘못이라는 의견 역시 강하게 제기됐다. 

G씨는 “저희 남편은 아이 일이라면 회사 반차, 월차까지 써가며 참여하는 정도인데, 녹색어머니회만은 도저히 못하겠다고 하더라”며 이름에서부터 참여할 수 있는 성별에 사실상 제한을 두고 있는 성차별 문화는 사라져야 한다는 의견을 피력했다.

H씨는 “애는 엄마 혼자 키우나? 여성도 남성처럼 사회생활을 하는데 왜 자꾸 여자한테만 보육 의무를 지우는지 알 수 없다”고 주장했다.

아이의 따돌림 문제도 도마에 올랐다. I씨는 “저희 회사 과장님은 대전에 학군 좋다는 동네에 살면서 학부모 활동에 자주 참여하지 못했더니 아이도 엄마도 같이 따돌림을 당했다고 하더라”고 전했다. 그러면서 “결국 학부모 활동을 하려고 몇 개월 휴직까지 하더라”라며 “이런 걸 보면 예비 학부모이자 워킹맘으로서 고민을 안 할 수가 없다”고 지적했다.

J씨는 “내년에 학부모가 되는데, 휴직을 마음대로 못 쓰는 직업이라 걱정에 잠이 안 올 지경”이라며 “워킹맘들은 모임이나 단톡방에서도 제외된다는 말이 그냥 떠도는 말이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가정과 학교, 사회가 보육에 함께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반면, 학교 학부모 활동을 지지하는 학부모들도 있었다. K씨는 “학부모 활동을 노동 착취로만 볼 문제는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최근 교육과정이 학교와 가정, 지역사회가 연계해 아이를 보육하고 교육하는 형태로 바뀌고 있다는 것이다. “아이를 가정과 학교, 사회가 함께 키운다고 생각하면 취지를 이해할 수 있다”고 말했다.

L씨도 “학부모가 아이를 학교에 맡겨놓고 ‘알아서 해라’는 식으로 나오는 것은 잘못된 일”이라며 “나 역시 워킹맘이라 시간을 조율해 학부모 활동을 하는 것이 쉽지는 않지만, 내 아이의 교육활동에 참여하는 것은 의미 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M씨는 “나도 워킹맘이지만 이번에도 녹색어머니회를 신청했고 급식 모니터링도 할 생각”이라며 “요즘은 예전처럼 엄마들을 학교에 수시로 부르거나 기부를 요구하는 일이 없어, 이런 활동이라도 열심히 참여해서 내 아이를 맡겨둔 학교에 도움을 주고 싶다”라고 말했다.

또한 학부모 활동을 온전히 자율에 맡기고 있는 학교도 있다는 학부모의 증언도 있었다. N씨는 “저희 아이 학교는 강제적으로 시키지 않아서 전업맘이어도 전혀 참여하지 않는 사람도 많고 워킹맘이어도 시간을 조율해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사람도 많다”고 설명했다.

이에 대해 O씨는 "애를 맡겼으니 끝이라는 뜻이 아니라, 엄마들이 사실상 강제로 이용당하고 있는 게 문제라는 것이다. 엄마들은 학교에 불려가 녹색어머니회, 사서 보조, 학교 폴리스, 심지어 수업자료도우미에 화단정리까지 하고 있다. 말은 강제가 아니라고 하면서도 매일매일 동의서를 들이대는 것 자체가 강제성이 있는 것이다. 게다가 내가 참여하지 않음으로 인해 아이가 선생님에게 밉보일 수도 있다고 생각하면 어쩔 수 없이 강제 동원에 끌려가야 한다“고 지적했다.

제도 뒷받침과 의식 개선 함께 가야 

초등학교의 어머니 동원에 대해 학부모들 사이에서도 찬반의견이 분분하다. 하지만 분명한 사실은 학부모 활동이 학부모의 자발적인 참여가 아닌 강제성을 띠는 ‘동원’식이 되면 분명 고통을 받는 이들이 나올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거기에 어머니가 없는 아이들이 소외당하고, 학부모 활동에 참여하지 못하는 학부모와 자녀가 따돌림을 당하며, 참가자를 어머니만으로 한정해 보육을 여성의 영역으로 국한하는 성차별이 공공연하게 이루어지고 있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이런 점에서 학부모 P씨의 말은 우리에게 깊이 생각할 거리를 남긴다.

“얼마 전 한 TV 프로그램에서 추신수 가족이 나오는데, 미국은 아이들이 어릴 때부터 운동을 특별활동식으로 시키는 걸 봤어요. 그런데 놀라운 것은 운동 코치들이 전문 인력이 아니라 자원한 학부모들이라는 사실이었습니다. 그 학부모들도 어릴 때 학교에서 학부모 코치들과 운동을 했기 때문에, 자신이 학부모가 됐을 때 자연스럽게 코치로 자원해 활동하고 있다고 해요. 부모 모두가 아이의 양육과 교육에 함께 참여하는 것이 인상 깊었어요. 아이 교육에 관해서는 모든 것들이 엄마의 의무가 되는 우리 현실이 안타까울 뿐입니다.”

아이의 보육과 교육에 학부모가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학부모 활동 시간을 법적으로 보장해 주는 등의 제도적인 뒷받침이 전혀 없는 상황에서 일방적으로 엄마들의 희생과 헌신만을 요구하는 것은 대단히 잘못된 일이다. 이번 국민청원을 계기로 학교 학부모 활동과 관련한 과감한 제도 개선이 이루어지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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