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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가만 있고 가르침 없는 교육, 아이의 우물에서 생각 길어 올려야”

유영호 사단법인 슬로독서문화 대표 “각각의 아이에게 맞는 교육 필요해”



요즘 학생들은 교과서를 읽으면서 공부하지 않고 문제풀이에 대부분의 공부시간을 투자합니다. 원래는 고3 때나 하던 방식인데, 지금은 초등학생 때부터 이렇게 공부하지요. 부모나 아이나 문제집 풀이를 진짜 공부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문제풀이 공부의 맹점, 무엇일까요? 

○ 모두가 ‘같은’ 가르침 받아 

이렇게 문제풀이에만 신경을 쓰다 보니 교사들은 아이 수준이나 노력에 따라 다르게 가르치는 방법에 대해 고민하지 않습니다. 성적에 따라 난이도를 고려해 문제를 풀게 하고 어떻게 설명할지의 방법만을 강구할 뿐입니다. 성적이 올라가고 있는지, 떨어지고 있는지, 또는 주도적으로 공부하는지 수동적으로 문제를 푸는지 하는 저마다의 차이는 참고사항일 뿐입니다.  

예를 들어 수능 수학 3등급에서 2등급으로 올라간 아이와 1등급에서 2등급으로 떨어진 아이의 학습능력이 같다고 간주합니다. 그리고 혼자 공부하는 아이와 사교육을 통해 공부한 아이의 성적이 같다면, 문제집이나 공부 방법도 같을 것이라고 전제합니다.  
 
아이들의 성향이나 기질 차이에 대해서는 심리검사 등으로 대응합니다. 아이들의 능력이나 특기 등을 파악하긴 하지요. 사교육에서는 이런 검사를 통해 맞춤형 또는 일대일 방식으로 가르친다고 선전합니다. 그렇지만 가르치는 내용이나 수준은 검사를 받기 전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교사가 여유가 있다면 개인적으로 아이 특성을 고려해서 대응할 순 있어도 문제 선정이나 풀이 방식에서는 크게 달라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 진짜 ‘기초’가 뭔데? 

더욱이 학년을 낮춰서 가르치는 것은 절대 허용하지 않습니다. 현재 고등학생인데 기초가 부족하다고 하면 ‘고1’ 쉬운 문제를 풀라고 합니다. 중학교 과정을 다시 반복하는 것을 시간 낭비라고 배척합니다. 

독서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학년에 비해 독해력이 부족하다면 그 수준에 맞는 책을 읽혀야 하는데 그냥 그 학년이 읽어야 하는 책을 읽히면서 자세하게 설명하려 합니다. 예를 들어 고등학생이라고 카프카의 ‘변신’이나 하퍼 리의 ‘앵무새 죽이기’를 읽으라고 하는 것이지요. 그 아이는 200쪽이 넘는 동화도 내용을 파악하지 못하는데 말입니다.

그래서 우리 교육제도에서 한 번 뒤쳐진 아이들은 따라가기 힘듭니다. 사교육에서 선행학습을 하니 더욱 그러하지요. 그래서 어릴 때부터 기초를 잡고, 공부를 강하게 시켜야 한다는 분위기가 자리 잡았습니다. 이런 모습은 한 번 실패한 사람에게 다시 도전할 수 있는 기회를 주지 않는 우리 사회와 많이 닮아있네요. 

○ 교사의 가르침은 정답이 아니어야 한다 

그럼 우리 교육계는 가르치는 일에 신경을 쓰지 않고 무엇을 할까요? 바로 평가를 공정하게 하는 데 주력합니다. 한 문제로 인해 합격 당락이 바뀌고 서열화 된 대학에서 한 단계 떨어진다고 생각하면 그럴 수밖에 없겠지요. 그래서 평가의 공정성이 가장 중요한 문제로 간주됩니다.   

평가가 공정하려면 객관적 기준이 있어야 합니다. 그런 기준을 만드는 것은 매우 어렵지요. 가장 편한 방법은 정답을 기준으로 삼는 것입니다. 그러면 교사는 정답을 설명하면 되고 이것이 가장 잘 가르치는 것입니다. 우리나라는 교과서가 이를 대변하고 있습니다. 또 교사용 지도서가 이를 뒷받침하지요. 그래서 교과서를 포기하지도 못하는 것입니다. 결국 평가의 공정성을 위해 가르침을 희생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정답에는 아이들의 수준이 고려되지 않습니다. 아이들이 알건 모르건, 어떤 형태로 관련 지식을 갖고 있건 기본적인 설명만이 예시되어 있습니다. 아무리 문제 푸는 과정이 중요하다고 해도, 몇 가지 다양한 풀이과정이 존재한다고 해도, 아이들은 이를 암기하고 이해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책 ‘서울대에서는 누가 A+를 받는가’(이혜정 저)에는 서울대생이 교수가 설명한 내용을 필기하고 녹음하고, 집에 가서 녹음을 들으면서 필기를 보완한다는 얘기가 나옵니다. 시험 때 교수가 한 말을 그대로 적는 아이가 A+를 받습니다. 대학교에서, 심지어 서울대학교에서 A+를 받는 아이들이 이렇게 공부를 할 것이라고는 정말 상상도 못했습니다.   

이렇게 정답이 목표라면 여기엔 창의력 있는 아이보다 연습벌레 아이가 더 적합합니다. 영재로 ‘발굴’된 아이들 중에도 그런 아이들이 있습니다. 이미 정해진 기준을 목표로 하루 몇 시간씩 한 가지에만 몰두하는 것입니다. 이런 아이들이 크면 어떻게 될까, 이런 방법이 오히려 잠재능력을 고갈시키는 것이 아닐까 염려가 됩니다. 

우리 교육은 잠재능력에 별 관심이 없습니다. 정답을 기준으로 ‘지식’을 평가하니까 ‘능력’을 평가하거나 가르치는 일은 거의 시도조차 하지 않습니다. 시중에는 사고력 공부 책이나 영재학원도 있지만 대부분은 아이의 학년보다 상위 학년의 문제를 풀고 정답을 찾아가는 형식입니다. 

실제로 문제풀이 형태로 공부하는 것이나 기출문제로 가르치는 것은 모두 학생들의 학습능력이 부족한 것과 밀접한 관계가 있습니다. 응용문제에서 실수하는 경우를 예로 들면서 부모들은 비슷한 문제를 많이 풀라고 합니다. 교사들은 내용을 설명만 해주면 아이들이 문제를 풀지 못한다고 말하면서 비슷한 문제집을 또 사라고 합니다. 심지어 문제 자체를 이해하지 못해서 못 푸는 경우도 많은데 독해력을 높이기보다 문제를 많이 풀면 해결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비교 경쟁이 심한 상태이다 보니 장기적으로 능력을 높이는 공부보다는 최소한의 성적을 유지하기 위한 방법을 선택합니다. 그래서 일단 기출 문제를 풀 수밖에 없습니다.  

○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보다 ‘어떻게 가르칠 것인가?’가 중요

학습능력이 좋다면 혼자서 공부할 수 있고, 교과서를 읽고 관련 문제를 응용해서 풀 수 있습니다. 실제로 중학생들의 경우 성적이 높은 아이들은 시험을 준비할 때 교과서를 읽기도 합니다. 이에 비해 성적이 낮은 아이들은 문제집만 풀거나 교사의 유인물을 봅니다. 이들은 교과서를 읽어도 내용을 소화하지 못해서 그럴 것입니다.  

학습능력을 높이는 가르침은 지식을 암기하는 공부와 다를 것입니다. 교사 또는 참고서가 잘 정리해서 재구성한 지식을 많이 암기하고 있다면 그 당시 아이의 성적이 높을 수 있어도 학습능력은 높아지지 않습니다. 스스로 지식을 재구성하고 왜 틀렸는지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탐구할 때 능력이 높아집니다. 

평가가 아닌 가르침은 목표가 아니라 시작입니다. 만약 교사의 가르침만이 정답이면 아이들은 교사의 가르침에 근접해야 합니다. 그래서 교사의 가르침을 흉내 내고, 다르게 생각하는 아이들에게 애쓰지 않았다고 하게 됩니다. 자기 방식대로 생각하라고 요구하게 됩니다.   

○ 아이의 우물에서 길어 올려라 

그렇다면 어떤 교육법이 학생의 지식이 아닌 능력을 높여줄 수 있을까요.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사고력을 연습하는 한 방법이 있습니다. 아이들에게 의문을 쓰고 그에 대한 답을 쓰고, 그 답에 질문을 다시 만들어보면서 의문과 답이 꼬리를 물게 해보라고 하는 것이지요. 단, 이때 의문-답-의문-답으로 쓰는 아이에게 잘 썼다고 하지 않습니다. “의문에 답이 둘일 수도 있고, 답에 의문이 둘일 수도 있고, 답이 의문 형태일 수도 있고, 중간에 자기 생각이 길게 들어갈 수도 있다”라고 말합니다. 요즘 아이들의 입장에서는 당황스러울 것입니다. 교사가 가르친 대로 썼는데, 다르게 쓰라고 하니까 말입니다.  

하지만 이렇게 짧게 설명한 다음 그 아이가 쓴 예전의 의문 형식의 문장을 보면서 잘 된 것을 짚어줍니다. 다른 아이의 사례, 특히 잘 쓴 사례는 별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역시 교사가 제시하는 모범 사례도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그보다는 본인이 쓴 것 중에서 어쩌다 나온, 좋은 의문 문장을 뽑아줘서 그것을 참고하라고 말합니다. 여기에는 그 아이의 경험이나 성향이 녹아있을 것입니다.  

교사가 문제를 설명하는 것은 가르침이 아닙니다. 아이 스스로 문제를 푼다고 해서 학습능력이 향상되지 않습니다. 교사는 지식이 아니라 아이의 학습능력을 높이는 쪽으로 가르쳐야 합니다. 당연히 정답을 알려주지 않고, 정답이 있는 문제를 제시하지 않습니다.  

국가 입장에서 평가의 공정성이 중요하다고 해도 한 개인에게는 정확한 등수보다 학습능력 향상이 중요합니다. 스스로 공부하고 사고할 수 있으려면 학습능력이 높아야 합니다. 가르침은 현재 문제풀이 100점이 목표가 아니라, 미래에 자립할 수 있는 능력을 준비하는 쪽으로 바뀌어야 할 것입니다.  

▶유영호 사단법인 슬로독서문화 대표  
▶에듀동아 김지연 기자 jiyeon01@donga.com

위 기사의 법적인 책임과 권한은 에듀동아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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