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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 조기교육, 꼭 필요한 걸까?

한국에 맞는 영어교육, 조기교육 아닌 ‘적기교육’이다!



얼마 전 네 살 된 자녀를 둔 학부모로부터 이런 요청을 받은 적이 있습니다. “선생님, 저희 아이에게는 백 프로 영어로만 수업해 주시면 좋겠어요. 어떤 전문가 말이 영어는 그런 환경에서 받아들이는 것이 효과적이라고 하더라고요.”

순간 말문이 막혔습니다. 사실 영어 조기교육에 대한 논란은 끊임없이 이어져 왔습니다. 혹자는 조기교육이 불필요하다고 말하고, 혹자는 조기교육의 시기를 놓치면 큰일이라도 날 것처럼 호들갑을 떱니다. 게다가 유아교육은 사교육계가 절대로 놓치고 싶지 않은 거대한 수익 시장입니다. 아직 육아에 경험이 없는 학부모들에게 내 아이는 뭔가 대단한 것을 해낼 수 있을 것만 같은 무한한 미지의 세계이기 때문입니다.

최근 교육부는 영어 조기교육 폐지 운운하다가 학부모들의 거센 반발에 부딪히고 말았습니다. 학부모들은 방과 후 영어교육금지가 교육의 기회를 박탈당하는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비싼 영어유치원이나 학원에서는 영어를 가르치게 하면서 왜 저렴한 방과 후 수업의 기회조차 박탈당해야 하는지 의문을 제기하면서 말이지요.

그러나 여기서 잠시 교육의 자유와 평등을 위한 반발인지, 비교의식에서 오는 불안감에 의한 반발인지 생각을 정리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다른 사람은 되고 왜 나는 안 되냐는 식의 비교의식은 접어 두고, 영어 조기교육이 우리 아이에게 정말로 필요한 것인지 아닌지를 냉철하게 판단하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영어가 제2외국어인 한국, 조기교육 아닌 ‘적기교육’이 맞아

언어학자들에 의하면 언어중추는 1세에서 5세 사이에 활성화된다고 합니다. 그리고 언어를 늦어도 사춘기 이전에 습득해야지, 사춘기 이후에 습득하면 속도도 느릴뿐더러 높은 언어의 수준에 도달할 수 없다고 합니다.

그러고 보면 애써 배우지 않아도 저절로 모국어를 터득하는 결정적 시기가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렇다면 외국어의 경우도 배우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터득할 수 있는 결정적 시기가 존재하는 걸까요?

수년 전 3~39세의 한국인과 중국인을 대상으로 한 흥미로운 연구결과가 발표되었습니다. 그들에게 본격적으로 영어를 접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하고 어떤 연령대가 영어를 가장 잘 할 수 있게 되는지를 연구했는데요.

결과는 3~7세 사이의 아이들이 원어민 수준의 영어를 구사할 수 있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이 사실이 과연 영어 조기교육의 결정적 시기를 증명하는 것일까요? 그런데 이 연구에서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전제 조건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이들 모두가 미국으로 이주했고, 모국어 사용비중보다 영어 사용 비중이 압도적인 환경에서 생활하는 사람들이었다는 사실입니다.

따라서 영어가 제2외국어로 사용되는 우리나라와 같은 환경에서는 조기교육이 아닌 적기교육이 중요합니다. 개인차가 있겠지만 우리말의 체계가 잘 잡힌 9~10세의 나이가 적기일 수도 있고, 지적인 호기심을 느낄 때, 또는 간절히 영어를 배울 필요성을 느낄 때가 적기일 수도 있습니다.

저에게 영어공부의 적기는 38세였습니다. 가족과 함께 외국에서 지내면서 어쩔 수 없이 생존을 위해 영어를 말해야 하는 상황에 부딪혔습니다. 집 계약을 하고, 생필품을 사고, 아이들 선생님을 만나고, 병원에 가서 아픈 증상을 설명해야 하는 일상의 스트레스들이 저로 하여금 영어를 배울 수 있는 최적의 시기를 제공해 준 것입니다.

우리가 어려서 우리말을 쉽게 배웠다고 생각하는 것은 큰 착각입니다. 단지 너무 어려서 기억하지 못할 뿐이지, 우리는 생존을 위해 죽을힘을 다해 모국어를 터득하고 흡수한 것입니다. ‘엄마’라는 단어 하나를 말하기 위해서도 아기는 1만 번 이상의 반복을 해야 한다고 하는데, 모국어가 아닌 외국어를 배운다는 것은 얼마나 힘겨운 과정이겠습니까?

섣불리 모국어가 제대로 형성되지 않은 유아에게 다른 언어를 동시에 가르치는 것은 자칫 한 가지 언어도 제대로 할 수 없는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습니다.

제대로 된 ‘영어 적기교육법’, 조급해 하지 말고 멀리 보라!

그럼 어떻게 하면 우리 아이들에게 제대로 된 ‘영어 적기교육’을 시킬 수 있을까요? 간단합니다. 지금까지 해 온 것들과 반대로만 하면 됩니다. 우선 너무 조급해 하지 마세요. 아이에겐 모국어를 좀 더 체계화시킬 시간이 필요합니다.

단어를 하루에 수십 개씩 암기시키지 마세요. 그렇게 쑤셔 넣은 단어는 꺼내어 쓸 수 없습니다. 문법을 단기 완성시키지 마세요. 언어에서 단기완성이란 가능하지도 그럴 필요도 없습니다. 옆집 아이와 비교하면서 이 학원 저 학원으로 레벨 테스트 다니는 일은 그만 두세요.

대신 아이의 생각이 자라는 속도에 맞춰서 영어를 재미있게 접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 주세요. 아이 수준에 맞는 책이나 수준보다 쉬운 책을 골라서 꾸준히 재미있게 읽고 즐길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해 주는 것이 중요합니다.

‘왜 영어를 배워야 하는가?’의 이유도 분명히 인식시켜 줄 필요가 있습니다. 고대 로마의 철학자 세네카는 ‘우리는 학교를 위해서가 아니라, 인생을 위해서 공부한다’고 말했습니다. 시험을 위해 달려가는 우리 사회의 교육방향에 대해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는 말입니다.

아이들에게 ‘왜 영어를 배우느냐’고 물으면 대부분 ‘엄마가 하라고 해서요, 좋은 직업을 갖기 위해서요.’라고 대답합니다. 이 이유가 틀리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우리 아이들이 영어를 공부하는 이유가 좀 더 크고 넓은 차원의 것이었으면 좋겠습니다.

자신의 지식을 나와 내 가족만을 위해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좀 더 많은 사람, 보다 넓은 세상을 위해 나누고 실천하는 지성인이 되도록 가르치는 것이야말로 우리 아이들을 살만한 세상에서 살아갈 수 있게 하는 길이 아닐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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