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 NIE

“책을 읽고도 내 생각이 없다면 책을 안 읽은 것이나 같다”

강원국의 <대통령의 글쓰기>로 엿보는 글 쓰는 방법


 본 기사는 청소년 진로 학습 인문 시사 매거진 <나침반36.5도> 3월호에 수록됐습니다.


이 글은 김대중 대통령 3년, 노무현 대통령 5년을 함께한 사람이자, <대통령의 글쓰기>로 일약 베스트셀러 작가로 등극한 강원국 전 대통령 연설비서관의 강연 중 일부를 발췌한 것이다. 두 대통령은 책 읽기를 좋아한다는 점 외에도 독서를 통해 자신만의 생각을 만들어간 사람들이라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강 전 비서관은, 독서란 책을 읽고 내용을 이해하는 것에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라, 그 과정을 거쳐 나만의 생각을 정립할 수 있어야 비로소 의미가 있는 것임을 두 대통령의 생생한 일화를 통해 일깨워주고 있다. -편집자 주


‘말’하고 싶어 책 읽는 대통령


김대중 대통령과 노무현 대통령은 두 분 다 책을 좋아했다. 김 대통령은 감옥에 있을 때처럼 책을 원 없이 읽었던 적은 없노라고 했다. 그래서 책 읽기만 생각하면 다시 감옥에 가고 싶다고 말할 정도였다.


노무현 대통령은 독서를 대신해주는 리더십 비서관이 따로 있었다. 하루에 한 권씩 책을 읽고 요약해 대통령에 보고하는 자리로, 외교부에서 파견한 직원이었다. 하루에 한 권씩 책을 읽는데, 심지어는 영어나 불어로 된 원서를 읽고 요약해서 대통령에 보고하기도 했다. 그 직원은 1년이 지나자 더 이상 지쳐서 하지 못했지만, 있는 동안에는 대통령이 의사결정을 하는데 많은 도움을 주었다. 그만큼 노 대통령은 독서와 학습을 좋아했다.


심지어는 밥을 먹으면서 현안 얘기를 듣고 싶다고 해 전문가를 식사시간에 초청하는 일도 잦았다. 노 대통령은 그 현안에 대해 끊임없이 공부하고 고민했다. 그래서 막상 전문가가 온 날에는 그에게 질문할 게 없을 정도로 이미 전문적인 식견을 갖춘 상태가 됐다. 그만큼 독서와 생각의 힘은 크다.


두 분 모두 상고 출신이기 때문에 대학을 가지 못한 콤플렉스가 독서에 대한 갈증으로 나타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있다. 그렇지만 다시 생각해 보니 아닌 것 같다. 대통령이라는 자리는 어떤 주제에 대해서도 자신의 관점, 자신의 시각이 있어야 한다.


“이걸 어떻게 할까요?”라고 물어보는데 “생각해 본 적이 없어 모르겠다.”라고 하면 좋은 대통령이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두 분은 대통령이라면 어떤 사안이든 역사나 사회에 도움이 되는 방향을 가리킬 줄 알아야 한다고 생각해서 맹렬하게 책을 읽었는지도 모르겠다. 이처럼 두 대통령은 말하고 싶어서 책을 읽었다. 자기 생각은 독서하고 생각할 때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책을 읽고 학습하지 않으면 자기 생각이 없으니 말을 못하는 것이 당연하다.


두 대통령은 호기심이 많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지만, 독서 습관은 두 분이 아주 다르다. 김 대통령은 여러 권을 동시에 읽는 습관이 있다. 읽다 보면 다른 게 생각이 나고 그 책을 다시 읽다 보면 또 다른 생각이 나서 다른 책을 찾아본다. 김 대통령은 책을 읽고 나서도 내 생각이 안 만들어지면 책을 읽은 의미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계속 내 생각을 만들려고 노력했다. 작가의 생각을 그냥 주워 담으면 아무 의미 없는 것 아니냐고 반문했다.


노무현 대통령의 독서 습관은 가장 재미있고 흥미로워 보이는 부분부터 읽는 것이다. 책을 읽다 내 생각과 다른 것 부분이 있으면 다시 앞이나 뒤로 가서 읽고, 다 읽고 나서 자기생각이 떠오르면 기뻐서 방을 뛰어다닐 정도로 내 생각을 중요하게 생각했다.


노 대통령은 회의를 소집하기 며칠 전에 “OO에 대해서 얘기해 봅시다.”라고 미리 말한다. 그런데 막상 그날이 되면 대통령은 이미 답을 찾은 상태다. 그래서 그 사안에 대해 더 이상 흥미와 호기심을 느끼지 못해, 정작 회의 때는 “그 얘기는 됐고요. 다른 얘기 해봅시다.”라고 한다.


내 생각을 만드는 것이 독서다. ‘책 읽기는 거들 뿐’


이처럼 독서는 책을 읽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 거기서 자기의 생각을 만들어 내야 진짜 독서라고 할 수 있다. 두 대통령은 호기심에서 출발해 독서를 하고, 책을 통해 자기 것을 만드는 습관을 갖고 있다. 자기 것을 만들기 위해서 책을 읽기 때문에, 거의 다 읽어 가는데도 내 것이 안 만들어지면 “이렇게 책 읽다가 끝나는 거 아냐? 시간 들여서 뭐하는 거야.”라며 초조해 했다.


하지만 불행히도 한국 학생들은 읽고 듣기만 한다. 교과서를 열심히 읽고 선생님의 얘기를 열심히 들어서 기억했다가, 남이 낸 시험지에 남의 지식을 떠올려 잘 찍으면 우등생이 된다. 그래서 그런지 사람들은 사회에 나와서 눈치를 본다. 자기 생각이 없는 것이다. 이들이 청와대로 오면 눈치를 잘 보고 말귀를 빨리 알아듣는다. 남의 글 읽기, 남의 말 듣기만 잘하기 때문이다. 문제는 자기 생각은 없다는 것이다.


수년 전 미국 오바마 대통령이 한국을 방문해 한국 기자들에게 질문을 요청한 적이 있다. 아무도 질문하겠다고 손을 안 들어서 영어 때문에 그런 줄 알고 한국말로 질문해도 된다는 설명까지 해주었다. 하지만 질문하겠다고 손 든 사람은 끝내 한 명도 없었다. 옆 사람 눈치를 보면서 누군가 해줬으면 하지만, 정작 자기는 못하는 것이다.


나중에 보다 못한 중국 기자가 손을 들어 말했다. “내가 해도 되는지 한국 기자들에게 물어 봐라. 왜 질문을 안 하겠다는 사람들에게 기회를 주느냐. 내가 하겠다.”라고. 중국 기자의 조롱에도 한국 기자들은 바보같이 웃고만 있었다.


이들은 대부분 뛰어난 성적으로 최상위 대학에 들어간 엘리트들이다. 읽고 듣기는 잘해서 요점 정리와 정답 찾기는 잘하지만, 자기 생각이 없고 그래서 궁금한 것도 없다. 그동안 한국 교육은 이런 이들을 엘리트라고 말해왔다. 한국 교육이 달라져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말하기 위해 메모하는 대통령, 생각하기 위해 말하는 대통령


또한 두 분 다 메모광이다. 메모하지 않으면 자기 것이 안 되고, 내 것이 되게 하려면 메모를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김대중 대통령은 메모 책이 28권이나 있다. 책을 읽으면서 자신의 생각을 정리해 메모해 둔 것이다.


노무현 대통령은 메모장에 정리해 놓았다가 연설비서관을 만나면 어느 연설문에 이 생각을 밝혀야겠다면서 전해준다. 그러면서 “자네는 이런 문장 만들 수 있나? 그렇지. 정말 좋지.”라며 굉장히 좋아한다. 예를 들면 “시장개혁은 시장을 개혁한다고 개혁되지 않는다.”라는 말이 있었는데, 그렇게 대단한 문장은 아니었지만 노 대통령은 정말 좋다고 하면서 자기 생각에 빠져있는 것이다. 노 대통령은 어떤 말에서 특별한 포인트를 발견했을 때 좋은 문장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김대중 대통령은 자기 자랑이 많았다. 여기에 중요한 의미가 있다, 우리가 독서하고 생각하는 것은 써먹으려고 하는 것이다. 그래서 자기 말을 하고 자기 글을 쓰기 위해서 메모를 한다. 공자, 예수, 석가도 제자들에게 말하려고 공부했다. 공부를 하고 학습을 하는 이유는 내 안에 들어있는 내 생각을 잘 표현할 때 자기 존재를 인정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것이 사람의 본성이고 이런 기회를 자주 만날수록 더 공부하고 싶어진다.


노무현 대통령은 말하면서 다듬어가는 스타일이다. 그래서 노 대통령은 자신이 말을 할 때 다 녹음해 달라고 요청한다. 말을 하다 보면 더 좋은 생각이 나기 때문이다. 노 대통령은 처음에는 말을 받아 적지 말라고 하다가, 어느 순간 “지금부터 잘 받아 써.”라고 말한다. 말을 하면서 생각을 다 정리한 것이다. 그분은 어떤 주제에 꽂히면 아침부터 상대를 달리해 가면서 반복해 말을 한다. 그리고 저녁이 되면 벌써 생각이 정리돼 있다.


글쓰기, 말하기부터 출발하라


내 생각을 만들었다면 글쓰기를 해보자. 글을 쓰는 쉬운 방법이 있다. 2시간씩 5번을 말해보는 것이다. 그리고 말한 것을 녹음해 글로 풀어 쓰면 그것이 곧 책이 된다. 내 경우를 생각해보면 머릿속 생각을 바로 글로 쓰려고 하면 잘 안 됐다. 하지만 여러 번 말을 하다 보면 글쓰기가 쉬워진다. 사람들과 말하며 여러 번 검증을 하게 되고 더 다듬어지는 것이다. 이렇게 하면 그 글은 독자와 함께 쓴 것이 되고 훨씬 잘 먹히는 글이 된다.


내가 살아온 길을 글로 쓰고 싶다면 여러 번 말을 해보자. 그러면 생각이 다듬어지고 글이 술술 나오게 될 것이다. 이렇게 반복하다 보면 자기가 성장하는 것을 느낄 것이다. 어젯밤에 써놓은 글이 하찮아 보인다면, 당신은 이미 성장한 것이다.


미리 잡아둘 것인가, 닥쳐서 잡으러 갈 것인가


두 요리사가 있다. 한 요리사는 미리 고기를 잡아 놓고, 요리할 때 그 중 어떤 고기를 쓸까를 여유 있게 생각한다. 다른 요리사는 요리할 시간이 닥쳤을 때 비로소 고기를 잡으러 나간다. 고기가 잡히지 않으면 어떡하나 싶어 불안하고 초조하다. 두 요리사가 평생 잡아야 할 고기의 양은 똑같다. 평소에 미리 잡아 놨다가 요리할 때 쓰든, 요리할 때 잡으러 가든 똑같다. 두 요리사에게는 언젠가 잡아야 할 고기다.


김대중 대통령은 그동안 쓴 책도 많고 워낙 많은 말을 했기에 평소에 고기를 잡으면 됐다. 노무현 대통령 때는 내가 잡을 수 있는 고기가 없었다. 노 대통령의 연설문을 써야 하는 나는 방법을 찾다가 김대중 대통령이 쓴 책을 보고 연설문을 썼다. 김 대통령의 책에는 연설문에 꼭 들어가는 800여 개 단어가 잘 정리돼 있어서, 그 단어라는 실마리에 살을 붙이면 됐다.


그래서 요즘 나는 평소 고기를 잡듯 하루에 3개씩 글을 쓰기로 결심하고 블로그에 글을 쓰고 있다. 손으로 내 얼굴을 아무리 만져 봐도 내 얼굴이 어떻게 생겼는지 모른다. 거울에 비춰봐야 안다. 마찬가지로, 내가 안다고 생각하는 것도 막상 글로 쓰려고 하면 안 써진다. 그것은 내가 모르는 것이다. 글로 써보고서야 그것을 안다.


이렇게 블로그에 100개 정도 글을 쓰면 쓸 말이 없어질 줄 알았다. 그런데 막상 100개를 쓰고 나니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글이 써진다. 100개의 생각이 쌓이니 글이 거침없이 막 나간다. 시시때때로 쓰고 싶은 글이 떠오른다.


여러분도 글을 쓸 수 있다. 나는 할 수 없다고 생각했지만 노무현 대통령 덕분에 책도 쓰고 새로운 인생을 맞고 있다. 하지만 그 전에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책을 읽을 때는 내 생각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김대중 대통령과 노무현 대통령은 두 분 다 자신의 생각을 만들기 위해서 책을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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