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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사고 폐지·정시 확대…"그림자 없애자고 빛도 없애는 격"

교육의 공정성이란 평가 획일성과는 무관한 것
정답 고르기 훈련인 수능에 허송세월 안타까워
대입은 대학이 자율적으로 정하는 것이 바람직

 

유네스코 ‘미래교육위원회’에 한국 대표로 참석
IT 기술 나누고 전세계 문해교육 방안 나눌 것
새해에는 2050년 보고 긴 호흡으로 변화했으면

 

 

[한국교육신문 김예람 기자] “새해에는 2050년을 보고 일했으면 좋겠습니다. 올해 태어난 아이가 서른이 됐을 때는 지금과는 완전히 다른 세상이 되기를 희망합니다.”
 

3일 서울 광화문 모처에서 만난 김도연 전 포스텍 총장은 “적어도 교육만큼은 혁명적인 변화보다 정권을 넘어서는 차원의 긴 호흡을 가져야 한다”고 새해를 맞는 소감을 밝혔다. 2008년 교육과학기술부 장관을 지내고 포스텍 총장을 역임하는 등 교육계 원로이기도 한 그는 “지난해 8월 퇴임 이후 특별한 일 없이 지내고 있다”며 겸손을 보였지만 사실 그 어떤 교육계 인사보다도 교육 발전을 위해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그는 다음 날인 4일 유네스코 ‘미래교육 위원회(Commission on Futures of Education)’에 한국 대표로 참석하기 위해 한 달여 일정으로 프랑스 파리로 출국했다. 
 

-미래교육 위원회에서는 어떤 내용을 논의하나.
 

“사흘레 워크 쥬드 에티오피아 대통령이 위원장을 맡고 18명의 각국 교육 대표들이 모여 말 그대로 미래교육에 대해 논의한다. 첫 시작이라 구체적인 대화를 나누지는 않았지만 이제는 책이 필요 없이 도처에 지식이 널린 세상인 만큼 빠르게 변화하는 세상에 발맞춘 교육의 변화와 방향성에 대해 이야기할 것이다. 전 세계에 아직도 글을 못 읽는 사람이 20억 명 정도라고 한다. 엄마가 문맹인 경우와 문해인 경우, 유아 생존율이 2배 넘게 차이 난다. 미래 교육을 논함과 동시에 개발도상국가에 우리의 발전된 IT 기술 등을 활용해 문해교육을 할 수 있는 방안도 나눴으면 좋겠다.”
 

-지난해 조국 사태로 우리 교육에 ‘공정성’이 화두가 됐다. 학생, 학부모, 나아가 국민들이 이야기하는 ‘공정’이란 무엇이라고 보는지.
 

“관련된 당사자들이 모두 수긍할 수 있도록 주어진 일을 공정하게 처리하는 것은 교육만이 아니라 매사에서 가장 중요한 일임에 틀림없다. 교육의 근본 목표는 미래세대 각자의 개성과 소질을 극대화 시켜, 궁극적으로는 한 사람 한 사람 모두가 행복한 삶을 영위할 수 있는 기초를 마련해 주는 것이라 믿는다. 그런 측면에서 교육에서 공정성이란 개념은 평가에서 획일화된 잣대를 동원하는 일과는 전혀 상관이 없다. 그런 평가는 오히려 공정성을 해치는 일이다. 예전에는 달리기, 높이 뛰기, 공던지기 같은 서너 종목만으로 체력을 측정해 입학시험에 반영하던 시절도 있었다. 이는 달리기만 잘 하거나 혹은 던지기만 잘하는 학생의 개성은 살려주지 못하는 것이고, 그런 측면에서 바르지 않은 평가방법이다. 평가뿐만이 아니라 교육의 모든 측면에서 획일성은 좋지 않다. 이 점은 21세기 지식산업시대를 살아갈 미래세대 교육에 있어 특히 중요하다고 확신한다.”    
 

-정부는 서울 주요 대학이 최소 40% 이상으로 정시 비율을 확대하도록 하는 등 ‘대학입시 공정성 강화 방안’을 마련하고 있다. 국회에서도 여야를 막론하고 정시 비율 확대에 동의하는 분위기인데, 정시 확대 및 현 수능체제에 대한 생각은.
 

“앞서 언급한 것처럼 입시평가에서의 정시비율 확대는 공정성과는 전혀 무관한 일이다. 그런 맥락이라면 모든 대학들이 정시 100%를 택하는 것이 가장 공정할 것이다. 최근 보도에 따르면 지난 3년 동안, 전국 시군구 71곳은 서울대 입시에서 정시전형 합격자는 단 한 명도 못 냈지만, 수시전형으로는 입학생을 배출했다고 한다. 정시를 늘리면 서울 강남지역의 학생들 그리고 재수생이 훨씬 더 많이 합격할 것이다. 그것이 공정한 일인가. 서울대가 정시로만 학생을 선발하던 시절, 재수생 비율이 60%에 근접한 적도 있다. 아무 의미도 없는 수능의 정답 고르기 훈련에 많은 젊은이들이 꽃 같은 세월을 허송해야 하는 것이 너무 안타깝다. 그리고 정시 확대를 주장하는 분들께 수능의 한 과목, 예를 들어 국어문제를 실제로 수험생과 똑같이 80분간의 시간을 들여 한 번 직접 풀어보시라 말씀드리고 싶다. 그런 식의 시험이 21세기를 살아갈 우리 학생들에게 적합한 것인지를 직접 체험해 보면 누구나 고개를 흔들 것이다. 정시 확대가 추진되는 배경은 최근 일련의 사태에서 수시전형의 어두운 점이 드러났기 때문이라 믿는다. 정말 있어서는 안 될 일이다. 그런 행위는 확실하게 처벌하면 된다. 그런데 이런 일 때문에 수시를 축소하는 것은 마치 어두운 때에 범죄가 더 많이 일어난다고 야간에 통행을 금지 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입시제도의 변경은 충분한 시간적 여유를 갖고 많은 사람들의 의견을 모아가면서 점진적으로 추진해야 한다.”
 

-포스텍의 경우 학종 100%로 신입생을 선발하고 있다. 그 이유와 만일 정시를 확대할 경우 어떤 보완이 필요하다고 보는지.
 

“사실 학생선발 업무만을 고려하면 어느 대학이든 정시가 가장 간단하고 경비도 적게 드는 방법이다. 한 학생에 대해 자기소개서와 학생부 등을 검토하고 면접을 시행한 후 당락을 결정하는 일은 전혀 쉬운 일이 아니다. 학생의 운명을 바꾸는 일이니 부담스런 일이기도 하다. 그래도 한 학생을 단순한 수능 점수로 평가하는 일은 너무나 잘못된 일이다. 모든 수험생들은 개성이 있는 인간이며 점수가 아니다. 미국의 이공계 명문대학 칼텍(California Inst. of Technology)의 입학처 홈페이지에 나와 있는 “입학사정은 과학이 아닌 예술입니다”라는 문구에 동의한다. 포스텍은 정원 300명의 작은 대학이기에 오히려 100% 학종이 가능하다. 그간 10년 넘게 시행하면서 노하우를 많이 축적했고, 공정성을 위해서도 많은 노력을 했다. 한 대학의 입시는 그 대학이 자율적으로 정하는 것이 올바른 길이다.”
 

-고교체제 개편도 함께 도마에 올랐다. 가장 이슈가 되는 자사고 폐지에 대한 생각은.
 

“자사고는 사실 성과를 논하기도 어려운 짧은 역사를 지니고 있는데, 대한민국 교육철학과 체제가 이렇게 쉽게 수월성과 형평성을 오가는 것은 아쉽고도 아쉬운 일이다. 전체 학생의 2~3% 정도가 진학하는 자사고를 폐지하면 과연 우리 학생들은 입시경쟁에 매몰되지 않고 그래서 대부분이 행복한 인재로 성장할까. 자사고를 포함한 모든 교육정책에는 빛과 그림자가 있게 마련이다. 그림자를 옅게 만들기 위한 노력은 물론 필요하지만 이를 없애기 위해 송두리째 정책을 바꾸는 것은 결국 빛도 없애는 일이다.”     
 

-자사고가 고교 서열화와 입시경쟁을 부추기고 교육불평등을 야기한다는 주장도 있다. 정부는 고교학점제로 고교 혁신을 준비하겠다고 밝혔는데, 고교 혁신, 어떤 방향으로 이뤄져야 한다고 보는지.
 

“그렇다. 일반고의 교육역량 강화는 끊임없이 추구돼야 할 일이다. 어떤 조직이라도 거기에 속해 있는 구성원들이 중요하게 여기는 일은 평가를 잘 받는 것이며, 당연히 학생들에게도 가장 중요한 일은 학교시험에서 좋은 성적을 얻는 것이다. 즉, 시험은 교육을 지배하는 절대적 존재다. 그런 측면에서 수능시험은 우리 교육에 가장 큰 걸림돌이다. 평가결과에 모두 수긍한다는 이유로 이를 공정하다고 믿지만 그러나 잃는 것이 훨씬 더 많다. 찍은 것 몇 개가 정답이면 ‘수능대박’이고 그렇지 않으면 ‘수능쪽박’인 교육에서 과연 어떤 인재가 길러질까. 21세기 인재의 핵심은 창의성이며 이는 주어진 문제에서 정답을 고르는 것이 아니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객관식 수능은 필히 보완해야 한다. 그런 측면에서 최근 대구교육청과 제주교육청이 인터내셔날 바칼로레아(IB)를 도입하면서 고교교육에서 논술형 혹은 서술형 평가를 추구하는 것은 좋은 방향이라 생각한다. 새로운 교육방법이 정착되기까지는 시간이 걸리겠지만 우리의 미래를 위해 많은 고등학교로 확산되고 또 꼭 가야 할 길이다.”
 

-포항공대 총장으로 재직하면서 블록체인 캠퍼스, 인공지능(AI) 교육 등 실험적인 정책을 많이 도입했다. 대학교육의 미래를 어떻게 그리고 있는지.
 

“오늘의 대학캠퍼스에서 민족의 내일을 짊어질 인재가 육성되고 있음을 생각하면, 우리 대학들의 경쟁력 강화는 절실하다. 특히 저성장의 늪에서 고통 받고 있는 젊은이들을 위해서는 대학이 새로운 성장 동력을 만들어야 하는데, 우리 대학들은 어떠한 혁신도 이루지 못하고 그저 각자도생에 허덕이고 있는 상황이다. 이제 대학들은 ‘교육’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인재와 ‘연구’의 성과물인 새로운 지식을 연계하면서 창업(創業), 창직(創職)에 적극 나서야 한다. 즉, 인재가치, 지식가치 그리고 사회·경제적 가치를 모두 아우르는 ‘가치창출(價値創出) 대학’으로 진화해야 한다. 이를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경쟁력 있는 연구성과를 얻어서 이를 사업화까지 추진하는 도전정신, 즉 기업가 정신이 가득한 대학문화 정착이다. 블록체인이나 AI교육 등 실험적 정책 도입도 그런 맥락에서 이뤄졌다. 대학은 교육과 연구에서 도전의 마당이 돼야 할 것이다. 포스텍같은 이공계대가 여기에 앞장서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대학교육의 혁신도 중요하지만 초·중·고 교육현장에서부터 안착 돼 대학까지 연결될 수 있도록 준비가 필요한 것 같다.
 

“교육에서 어떤 단계가 더 중요한가를 이야기하는 것은 의미가 없지만, 그러나 대학교육은 중등교육의 연장이고 이는 다시 초등교육을 이어받는 것이니 굳이 따지면 초등교육이 가장 중요하겠다. 실제로는 가정교육이 가장 기초를 이룬다고 믿는다. 지금 우리가 가르치는 학생들이 살아갈 미래는 우리가 살아온 과거와는 현격히 다를 것이다. 미래사회는 지식과 더불어 지혜를 함께 갖춘 인재를 요구한다. 사회에서 다른 사람들과 섞여 살면서 협력하고 남들을 배려하는 인재로 키워야 한다.”  
 

-기억에 남는 스승이 있다면….
 

“누구나 그렇겠지만 초중등학교 시절 따뜻한 사랑으로 학생들을 대해주신 선생님을 존경한다. 초등학교 4학년 시절의 담임선생님께서는 학급의 모든 학생들이 참여하는 합창을 참으로 열심히 연습시키셨는데, 그렇게 모두가 노래 부르는 시간이 참 좋았다. 대학원에 들어가 연구하고 그 후 학자의 길을 걷는 과정에서는 지도교수이셨던 KAIST의 윤덕용 교수님을 학문적으로 가장 존경한다. 빼어난 재료과학자로 세계적인 명성을 지닌 교수님으로부터 많은 가르침을 받았다.”

 

김도연 전 총장은…
△1952년 출생 △서울대 재료공학과 학사 △카이스트 석사 △블레즈파스칼대 공학 박사 △서울대 재료공학부 교수 △서울대 공대학장 △제1대 교육과학기술부 장관 △울산대 총장 △국가과학기술위원장 △제7대 포항공대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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