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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뉴스

[인문 다이제스트 | 미술산책 ] 몽상가로 위장한 지독한 현실주의자 '마르크 샤갈'

-3가지 키워드로 살펴보는 샤갈의 작품 세계

피카소와 함께 20세기 최고의 화가로 불리는 마르크 샤갈(1887~1985). 샤갈은 온갖 유파의 영향을 받으면서도 그만의 독창적인 작품 세계를 구축해 나갔다. 그의 작품은 보는 이로 하여금 꿈을 꾸는 듯 환상적이고 비논리적이며, 동화 나라에 온 듯한 착각을 하게 만든다.

김춘수 시인의 <샤갈의 마을에 내리는 눈>에서도 샤갈의 세상은 신비로움 가득한 감각적이고 회화적인 이미지로 각인된다. 대중들은 그를 두고 상상 속에서 허우적대는 ‘몽상가’라 부른다. 하지만 그는 사실 몽상가가 아닌 지독한 ‘현실주의자’에 더 가깝다고 볼 수 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이 기사는 <나침반> 1월호 '인문 다이제스트'에 8p분량으로 실린 내용의 일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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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체주의' 영향 받은 몽환적 색채의 작품들


<브러시를 든 자화상>(1909)

마르크 샤갈(Marc Chagall)은 벨라루스공화국의 시골마을 비텝스크의 유대인 거주 지역에서 태어났다. 샤갈의 집안은 가난했고 이 지역은 예술과 전혀 관련이 없었지만 그는 미술을 공부하며 비교적 행복한 유년기를 보냈다.

23세가 된 샤갈은 당시 피카소, 모딜리아니, 몬드리안 등 많은 예술가들이 모여 있는 파리로 가서 본격적인 그림 공부를 시작한다.

그는 야수주의(Fauvism), 입체주의(Cubism), 오르피즘(Orphism) 등의 영향을 받아 환상적이고 공상적인 요소가 지배적인 그만의 독창적 예술세계를 만들어냈다.



인생과 예술을 나타내는 유일한 색 '사랑' 


샤갈은 “인생과 예술을 나타내는 유일한 색은 사랑이라는 색밖에 없다”라고 할 정도로 평생을 ‘사랑’을 그리는 데 몰두했다. 특히 그에게 가장 큰 영감의 원천이 된 건 연인이자 뮤즈였던 ‘벨라 로젠펠트(1895~1944)’다.

<에펠탑의 신랑 신부>(1938)

서로에게 첫눈에 반해 운명적인 사랑을 했던 그들의 모습은 거의 대부분의 샤갈 작품에서 찾아볼 수 있다. 약간 긴장하거나 무표정에 가까운 얼굴과는 상반되게, 따뜻하고 부드러운 색채로 칠해진 연인은 서로를 늘 꼭 껴안고 있다.

기쁨과 행복으로 어쩔 줄을 몰라 모든 사물은 무중력 상태로 둥둥 떠 있지만, 그러면서도 묘하게 느껴지는 중력의 느낌이 둘의 사랑을 더욱 견고하게 만들어 주는 듯하다.

그러나 이 생에 영원할 것만 같았던 그들의 사랑은 유한했다. 1944년 벨라가 바이러스 감염으로 인해 세상을 떠난 것이다. 샤갈은 약 1년간 작업을 하지 못할 정도로 큰 충격과 상실감에 빠졌다. 사랑과 희망으로 가득 차 있던 샤갈의 세상은 산산이 부서져 버렸고, 이후 겨우 붓을 들어 작업한 그의 작업물은 어두운 색조와 우울한 효과로 가득 찼다.


'의도치 않은 상징'으로 구현되는 샤갈의 내면세계와 자연


샤갈의 작품에는 암소, 수탉, 염소, 말, 양, 물고기, 연인, 바이올린, 꽃 등의 상징물이 자주 등장한다. 이러한 요소들은 때로는 다채로운 사랑을 표현하는가 하면, 그의 고향 비텝스크, 제2의 고향 파리 등을 의미하기도 한다.

<곡예사>(1943)

특히, 샤갈의 작품에서 단골 소재로 등장하는 ‘동물’은 그의 신앙 하시디즘(Hasidism) 유대교와 깊은 관련이 있다. 이 종교는 사람의 영혼이 수탉이나 암소 같은 동물의 육체와도 하나가 될 수 있다고 믿는 범신론적 성향을 가졌다. 때문에 그의 작품에서는 사람이 동물과 평등하게 배치돼 있거나, 특별한 주인공이 누구인지 찾아내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재미있게도 샤갈은 자신의 작품에는 환상도, 상징도 없으며, 만약 자신의 그림에서 상징이 발견된다면 그것은 본인의 의도가 아님을 밝혔다. 또한 사물을 비논리적이고, 환상적이며, 동화 같거나, 키메라라고 부르는 것은 사실상 그 스스로가 자연을 이해하지 못함을 인정하는 것과 같다고 말했다.

샤갈은 허무맹랑한 상상이나 하는 ‘몽상가’도 ‘초현실주의자’도 아니었다. 그는 겉으로 보이는 세계보다 우리 내면의 정신세계가 훨씬 진실할 것으로 보고, 이것이 곧 현실 세계라고 인식했다.

결국, 환상과 상징은 그저 장치였을 뿐이다. 그는 철저히 스스로의 내면이 이끄는 대로 자연과 현실 세계를 있는 그대로 묘사하려고 했으니, 세상 어디에도 없는 지독한 ‘현실주의자’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 <나침반> 1월호 해당 페이지 안내  


*사진 설명: <나와 마을>(1911), 마르크 샤갈
*에듀진 기사 원문: http://www.edujin.co.kr/news/articleView.html?idxno=322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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