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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뉴스

[서민수 경찰관의 요즘 자녀學] 신년기획 자녀 세대論(3), 아무튼 ‘탈권위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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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대 간 소통’을 주제로 다큐멘터리가 방영된 적이 있었습니다. 방송에서 제 눈과 귀를 의심하게 했던 건 한 교사의 ‘특별한 대화법’이었습니다. 방송에 등장한 교사는 동아리 학생들과 천연덕스럽게 ‘반말’로 대화를 주고받고 있었고, 분위기 또한 너무 익숙한 듯 보여서 눈을 감고 음성만 들었다면 교사를 찾아내기란 쉽지 않아 보였습니다.

이 광경을 지켜본 취재 기자는 교사에게 ‘반말’을 사용하는 이유에 관해 물었고, 교사는 학생들이 나이 많은 자신에게 ‘대화의 벽’을 느끼는 것을 보고 어떻게 하면 자신이 권위적인 사람이 아니라는 사실을 전달할 수 있을지를 고민하다 ‘반말의 대화법’을 떠올렸다고 했습니다. 게다가 ‘반말’은 방과 후 소셜 미디어 창에서도 다르지 않았습니다.

분명하지는 않지만 ‘반 토막 말’의 줄임말인 ‘반말’이 우리를 불편하게 하는 건, ‘권위’와 ‘존중’이라는 전통적인 관념과 충돌하기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행동을 바꾸는 것보다 인식을 바꾸는 것이 더 어렵고, 인식보다 관념을 바꾸기가 말도 안 되게 어렵다고 철학에서 배웠습니다. 그런데 ‘반말의 대화법’을 선택한 교사의 용기는 ‘동종 선호’를 따르는 요즘 자녀 세대에게 관념 자체를 돌려세우게 만드는 ‘신의 한 수’로 보입니다.

‘권위’를 싫어하는 요즘 자녀 세대는 온·오프라인을 통틀어 ‘동종 선호(同種選好, homophily)’를  행동으로 보여주는 세대이기도 합니다. ‘동종 선호’는 비슷한 성향의 사람들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내려고 하는 인간의 오래된 특징이며, 인간은 일정 수준까지는 인종, 나이, 성별, 계층, 심지어 정치적 견해까지 자신과 유사한 사람들과 교류하도록 설계되어 있습니다. 특히, 사회학자 맥퍼슨 연구팀은 공동 연구를 통해 『동종 선호 원리』가 결과적으로 개인의 네트워크를 강화하는 것은 물론, “그들에게서 얻은 정보, 그들의 태도나 경험 등이 수용자에게 강력한 함의를 띄는 방식으로 나타난다”라고 주장하기도 했습니다.

결국, 맥퍼슨이 주장한 ‘동종 선호’가 함축하고 있는 단어에는 자녀가 기피하는 ‘권위’도 포함됩니다. 다시 말해, 자녀 세대는 ‘동종 선호’를 통해 권위의 유무에 따라 대상을 교체하거나 제외하는 ‘구별 짓기’를 하는 세대라고 볼 수 있습니다. 특히, 자녀가 활동하는 소셜 미디어는 알고리즘의 지시에 따라 유사한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들이 점점 더 많이 상호작용할 수 있게 해 주고, 반대 의견은 단번에 차단해버립니다. 이러한 알고리즘 때문에 부모는 더더욱 자녀의 ‘동종 선호’에 낄 수 없고, 그들의 소셜 미디어조차 접근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대한민국 사회에서 ‘탈권위주의’ 현상이 등장한 것이 새로운 현상은 아닙니다. 이 같은 현상은 압축근대화의 과정과 더불어 진행되어온 강력한 국가명령 사회에서 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주장하는 사회로 이동해온 역사적 과정과 절대 무관하지 않습니다. 특히, 디지털 기술의 등장으로 정의와 평등주의가 몰려드는 과정에서 전통적 권위가 계속해서 도전받고 있는 현상으로 보입니다.

‘권위(Authority)’란 본래 ‘원작자’의 권위라는 라틴어 ‘auctoritas’에 바탕을 두고 있습니다. 사실, 우리는 최초로 무언가를 이루어낸 사람에게 권위를 부여하곤 하는 데 이 점에서 권위는 일방적으로 명령하고 지배하는 ‘권력’과는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부모의 권위는 자녀의 인정과 수용이 없이는 성립하기 어렵고, 진정한 권위는 자녀와의 소통과 이해를 요구한다는 데 동의할 수밖에 없습니다. 다르게 말하면, 부모의 일방적인 주장이나 지시는 결코 권위를 만들 수 없다는 뜻입니다.

이렇게 보면 자녀 세대가 ‘권위’를 거부하고 불편해하는 이유는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학교나 가정에서 교사와 부모는 권위를 어떻게 만들고 내세우고 있는지에 대해 질문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권위’라는 관념어에는 ‘정당성’과 ‘동의’가 동시에 전제해야 한다는 것을 고려한다면 우리는 그렇게 하는지를 스스로 묻지 않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자녀가 ‘권위’에 대해 저항하는 이유를 굳이 찾는다면. 자녀의 거주지가 되어버린 디지털 공간의 과도한 수평 문화를 빼놓을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여기에 디지털 공간에서 학습하는 데이터의 총량도 마찬가지입니다. 게다가 디지털 공간은 그 어느 곳보다 민주적이고 합리적인 관계 지향을 다루는 것처럼 보여서 자녀가 오프라인에서까지 정의와 평등 그리고 탈권위주의를 부추기도록 체득화 시키고 있다는 느낌마저 듭니다.

여기에 달라진 ‘가족 문화’도 이야기를 좀 해야겠습니다. N포 세대가 다수인 부모 세대에게 자녀는 다른 세대보다 더 소중할 수밖에 없는 존재였고, 교육과 경제적인 혜택 면에서도 최고의 양육 서비스를 제공받은 세대였습니다. 그러면서도 사회에서 자녀가 무시당하고 권위에 순종하는 모습을 달가워하지 않았던 부모의 세대주의도 눈여겨볼 필요가 있습니다. 쉽게 말해, 하고 싶은 말은 해야 한다고 가르쳤던 사람이 바로 우리 부모라는 것을 부정할 수 없고, 부모의 과도하고 또 미안한 애착은 결국 내 자식이 우선이라는 새로운 개념의 이기주의를 만들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렇게 되면 부모와 교사는 자녀를 대할 때 더 어려워진 게 사실입니다. 교육과 양육에 있어서 ‘권위’가 차지하는 영역은 반드시 존재하게 마련입니다. 권위가 없는 양육구조는 효과성을 기대하기 어렵고, 오히려 자녀와 부모 간 다툼만 유발하는 잘못된 만남만을 불러올지 모릅니다. 특히, 걱정되는 것은 이러한 ‘권위’를 무시하는 자녀의 행동이 요즘 증가하고 있는 청소년 비행의 첫 단추가 된다는 사실은 우리가 왜 탈권위주의를 이해해야 하는지를 말해줍니다.

해법은 권위의 대항마인 ‘민주’와 ‘소통’에서 찾아야 하는 게 맞을 것 같습니다. 자녀 세대는 그 어느 세대보다 ‘정의’와 ‘평등’이라는 민주적인 연관검색어와 친밀해져 있는 세대입니다. 자녀의 디지털 공간은 이미 과도한 수평 문화를 만들었고, 그곳에서 무자격 강사들에게서 들었던 정의와 평등에 대한 인강은 수없이 들었을 겁니다. 대체로 마이클 샌델의 ‘정의란 무엇인가?’라는 책을 다양한 각도로 수없이 읽은 학습량이라고 해도 틀리지 않을 것 같습니다. 그래서 사실 지금 교사와 부모가 힘든 건 당연할 수밖에 없습니다.

쉽지 않겠지만, 민주적인 소통 방식에서 해답을 찾아주세요. 부모와 자녀 간 주고 받는 일상적인 대화부터 더 합리적이고 이해 타당한 방식으로 노력해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타당하지 못해 이의제기하는 자녀를 나무란다면 부모의 권위는 신뢰받지 못하게 된다는 사실을 우리는 이제 잊으면 안 될 것 같습니다.

죄송하지만, 이제 “부모의 권위는 자녀의 신뢰와 동의에서 시작된다”라는 명제는 부모 세대가 반드시 알고 있어야 할 ‘잠언’이 되었다는 것을 꼭 기억해 주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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