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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권재원 칼럼] 우리나라는 언제까지 '안전한 나라'로 유지될까?

(출처=에펨코리아)

[에듀인뉴스]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로 온 세계가 불안에 떨고 있다. 이럴 때 마다 한국인들은 고개를 높이 들고 “역시 한국은 안전한 나라”라는 자부심을 느낀다.


조국을 ‘지옥’이라고 부르는 일에 거리낌 없던 한국인들이 안전에 대해 가지고 있는 자뻑에 가까운 자긍심을 가지는 것이다. 카페 좌석에 가방을 올려두고 화장실을 다녀와도 아무 문제가 없는 나라, 사람 많은 곳에서 배낭을 앞으로 얼싸안고 다니지 않아도 되는 나라 등등.


이른바 선진 지역이라고 생각했던 미국이나 유럽에서조차 어이없는 경험을 한 한국인들이 늘어나면서 “역시 한국은 안전한 나라”이라는 믿음이 점점 강화되고 있다. 만약 이 믿음이 근거가 있다면 ‘신뢰’일 것이고, 근거가 없다면 다만 ‘신화’에 불과할 것이다.


일단은 신뢰에 가깝다. 글로벌 크라우드 데이터베이스인 넘비오에 따르면 2016년 기준, 서울의 범죄율은 14.28로 베이징(36.58),하노이(49.50), 방콕(45.27)은 말할것 도 없고, 싱가포르(15.81), 타이페이(19.75), 도쿄(20.30) 보다 낮았다.


세계 여러나라의 관광 안내서에 서울은 타이페이, 도쿄, 싱가포르 등과 더불어 여성들이 안전하게 여행할 수 있는 도시로 손꼽힌다. 범죄율이 낮을 뿐 아니라 보건(Health Care) 지수도 높다.


우리나라의 보건지수는 2019년 기준 84.51로 타이완(86.22)에 이어 세계 2위다. 그나마 2018년에 역전당한 것으로 2017년만 해도 우리가 1위였다. 의료 강국의 대명사로 알려진 일본(3위), 사회 보장 제도의 대명사 덴마크(4위) 보다 앞선다.


우리나라는 예기치 않은 범죄를 당하거나 질병에 걸릴 위험이 낮으며, 설사 걸리더라도 훌륭한 치료를 받을 수 있는 나라다.


(사진=유튜브 캡처)

이쯤 되면 도대체 무슨 근거로 ‘헬’이라고 부르는지 고개가 갸우뚱해진다. 그럼 우리나라의 안전을 책임지는 휼륭한 치안과 보건의 원천은 무엇일까? 물론 경찰관과 의료진의 능력과 헌신일 것이다. 하지만 안전은 그것만으로 이루어지지는 않는다.


우선 치안의 경우 경찰력이 강함에도 불구하고 범죄율이 높은 나라들이 비일비재하다. 베트남이나 필리핀 같은 나라의 경찰력은 막강하지만 범죄율은 우리나라나 타이완에 비해 현저히 높다. 심지어 경찰이 먼저 부패하여 범죄를 저지르거나 범죄자와 결탁하기도 한다.


시민들의 준법의식도 낮다. 경찰을 두려워하기 때문에 보는 앞에서는 법과 질서를 잘 지키는 척 할 뿐, 조금이라도 시야에서 벗어나면 갖가지 불법이 횡행한다. 범죄가 일어난 다음 단속하고 처벌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애초에 범죄를 저지르겠다고 마음 먹는 사람을 줄이는 것, 즉 시민의 도덕성이 관건인 것이다.


우리나라, 타이완, 일본 같은 나라의 범죄율이 베트남 필리핀 보다 현저히 낮은 까닭은 경찰력이 더 강해서가 아니라 범죄를 저지르려 마음먹는 사람 자체가 더 적기 때문이다.


준법정신, 동정심, 이타심, 공공의식, 예절 등. 시민의 도덕성 차이가 관광 안내서에 “대로변으로만 여행하고 혼자 골목길에 들어가지 말라”는 주의사항이 나오는 나라와 골목길 탐방이 “여행의 참맛을 주는 특별한 경험”으로 소개되는 나라의 차이를 가른다.


이는 보건도 마찬가지다. 병에 걸렸을때 치료를 잘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보다 중요한 것은 발병 가능성 자체를 줄이는 것이다. 그래서 의료(Medical)보다 폭넓은 보건(Health Care)이라는 말이 사용되는 것이다.


발병 자체를 줄이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이 각종 공공위생과 개인위생, 그리고 식습관과 생활습관 등의 개인 보건 활동이다. 물론 발병 했을 경우 정확한 의사의 지시를 정확하게 따르는 태도 또한 중요하다.


그런데 각종 개인 위생이나 식습관, 생활습관 등은 철저한 자기관리 능력 없이 유지되기 어렵다.  잠깐의 편안함이나 즐거움을 억제하고 장기적인 건강을 위해 불편을 감수하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공공위생도 마찬가지다. 아무리 정부가 나서서 공공위생을 강화하더라도 “내 한 몸 불편하더라도 전체를 위해 불편함을 감수하는” 시민들의 마음가짐 없이는 성과를 이룰 수 없다. 결국 이 역시 도덕성이다. 도덕이 치안과 보건의 바탕이다.


그럼 도덕성은 어디에서 비롯될까? 당연히 타고난 것이 아니다. 원래부터 더 도덕적인 민족이 있다는 생각은 인종주의로 돌 맞아 마땅한 생각이다. 그렇다면 도덕성은 결국 태어난 뒤에 받은 교육의 결과다.


어떤 교육? 가정교육, 공교육, 아니면 사교육 셋 중 하나다. 수능은 자학자습으로 준비할 수 있어도 도덕성은 자습으로 길러지지 않는다.


삼지선다형이니 하나씩 지워나가보자. 먼저 가정교육. 우리나라에서 가정교육이 무너지고 있다는 개탄은 벌써 반세기 넘도록 잦아들지 않고 있다. 중상층 학부모는 입시압박 하느라 중하층은 생계를 위해 일하느라 가정교육 할 여유가 없다고 한다.


그럼, 사교육? 사교육이 어떤 방식으로 이루어지고 있는지 조금이라도 안다면 사교육이 도덕성을 키운다는 건 삶은 소대가리가 웃을 일임에 동의할 것이다. 결국 남는 것은 공교육이다. 아무리 마음에 들지 않아도 나머지 가능성을 다 제거하고 나면 남은 것이 원인이다.


다른 나라의 경우도 비슷하다. 우리나라와 더불어 치안 및 보건의료에 관한한 세계 4강권을 이루는 일본, 타이완, 싱가포르는 공교육 성과 지표인 PISA에서도 강세를 보이는 나라들이다. 역시 PISA에서 강세를 보이는 핀란드, 덴마크도 유럽의 다른 나라보다 치안과 보건의료에서 높은 수준을 자랑한다.


이들 나라들은 일정 수준 이상의 공교육의 혜택이 모든 계층에게 골고루 주어진다는 공통점이 있다. 우리나라 공교육에 만족하지 않는 사람들은 교육이 무상으로 제공되는 공립학교에 상위 5% 이내에서 선발된 교사들을 골고루 배치하는 나라는 세계적으로 매우 드물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사진=SBS 캡처)
 우리나라는 대통령이 나서서 “공교육에 대한 불신이 높아 교육개혁을 할 수 밖에 없다”고 말하는 나라가 되었다.(사진=SBS 캡처)

그러나 박수 치기에는 이르다. 앞으로도 계속 공교육이 이런 중요한 역할을 해낼 것이라는 믿음이 무너지고 있기 때문이다.


교권은 추락하고, 교사들의 사기는 떨어지고 있으며, 국민들은 공교육에 대한 막연한 불신을 키워가고 있다. 물론 공교육을 믿지 않는 것은 자유다. 다만 그 이유가 공교육의 목적인 민주시민의 덕성을 키우지 못해서가 아니라 입시 점수를 올려주지 못해서라는 것이 문제다.


심지어 정부가 나서서 공교육 교사와 국민 사이를 이간질하고 있다. 설사 일부 몰지각한 교사가 큰 사고를 저지르더라도 상식적으로 생각해도 정부가 “잘못한 교사들은 철저히 처단하겠지만, 대다수의 교사들은 성실하게 책무를 다하고 있으니 국민 여러분은 믿어달라”고 말하는 게 정상이다.


그런데 최근 우리나라는 대통령이 나서서 “공교육에 대한 불신이 높아 교육개혁을 할 수 밖에 없다”고 말하는 나라가 되었다.


공교육의 최고 책임자부터 믿지 못하겠다는데 도대체 어떤 국민이 공교육을 선뜻 믿을 것이며, 믿음을 받지 못하는 교사가 어떻게 도덕성을 갖춘 시민을 양성할 수 있을까?


이렇게 그 토대가 무너지고 있지만 치안에 대한 한국인의 자부심은 여전히 높다. 근거 있는 믿음은 신뢰지만, 그 근거가 과거의 영광에 불과할 경우에는 신화가 된다.


안전한 대한민국에 대한 믿음은 신뢰일까 신화일까?


2016년만 해도 타이페이, 도쿄, 싱가포르 보다 낮은 범죄율을 자랑하며 아시아 2위를 자랑했던 서울의 치안이 2019년에는 20위권 밖으로 떨어지고 말았다. 반면 같은 기간 타이베이, 도쿄, 싱가포르의 범죄율은 계속 떨어지고 있다.


이들 나라에서 정부의 책임있는 자리에 있는 사람이 “우리나라 공교육은 믿을 수 없다”는 따위의 말을 했다는 사례는 들어 본 적 없다.


명심하자. 길가다 마주치는 낯선 사람이 당신을 공격하거나 당신의 돈이나 물건을 훔쳐가지 않을 것이라는 걱정을 하지 않는 까닭은 그 사람의 자비심 때문도, 무서운 경찰력 때문도 아닌, 다름아닌 그 사람이 어느 정도 받았으리라 기대하는 공교육 때문이라는 것을. 낯선 사람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것이 이미 공교육에 대한 신뢰라는 것을. 


권재원 실천교육교사모임 고문
권재원 실천교육교사모임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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