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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뉴스

[서민수 경찰관의 요즘 자녀學] 자녀 삶의 전부, ‘셀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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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아이들은 ‘세배’도 셀카로 한다는 걸 알고 계시나요? 얼마 전 ‘설날’을 맞은 한 학생이 저에게 세배하는 사진을 찍어 보냈는데 너무 재미져서 들고 있던 커피를 쏟을 뻔한 적이 있습니다. 사진 속 장소는 학생의 집이었고, 배경에는 하트를 손수 그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라는 문구까지 적어넣은 정성을 보여주었습니다. 물론 세배 또한 나무랄 데가 없었습니다. 늘 아이들의 상상력에 놀라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습니다. 어찌 됐건, 아이에게 ‘세배’를 받았으니 저도 가만히 있을 수 없어 ‘세뱃돈’을 넉넉하게 찍어서 보냈습니다.

주제와 관련된 가벼운 퀴즈를 하나 내 보겠습니다. 자녀의 스마트폰에는 대부분 이 애플리케이션(앱, App)이 깔려 있습니다. 특히 여학생들 사이에서는 이 앱이 없으면 스마트폰을 소유할 이유조차 없을 정도입니다. 이 앱은 아이의 삶을 의미 있게 해주기도 하고, 또래 집단이나 소셜 커뮤니티에서 자신의 입체성을 과시하는 데 유용하게 쓰입니다. 이 앱은 아이의 삶 그 자체이며, 하루를 이 앱으로 시작해서 이 앱으로 끝낸다고 해도 틀리지 않습니다. 무엇보다 이 앱은 부모와 자녀 간 공감대를 이끌어 준다는 측면에서 환상적인 마법과 다를 바 없습니다. 과연 이 ‘앱’은 무엇일까요?

정답은 ‘스노우 카메라’ 앱입니다. 최근에는 가상현실 기분을 느낄 수 있는 ‘스노우 AR 카메라’까지 등장해서 더 큰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세계적으로도 2억 명 이상이 사용하고 있으니 그야말로 자녀가 가장 사랑하는 앱이라 할 만하지요. 여기에 ‘B612’, ‘LOOKS’, ‘SODA’와 같은 카메라 앱들도 아이들에게 인기가 높습니다.

아이들은 자신이 누구인지 알고 싶어서 남들에게 비친 자기 모습에 신경을 많이 씁니다. 예전에는 길을 걸으면서 또는 책상 의자에 앉아 손거울을 보며 “이 세상에서 누가 제일 이쁘니?”라고 물었다면, 지금은 손거울 대신 스마트폰을 들고서 앞머리를 만지작거리며 “이 세상에서 내가 제일 이뻐!” 하고 흐뭇하게 바라봅니다.

사회성 발달이론으로 유명한 정신분석학자 에릭 에릭슨은 『자아의 발달이론』에서 얼굴과 신체가 급격하게 변화는 과정을 통해 자신의 외모에 빠지는 11세부터 18세까지의 발달 단계를 ‘정체성 대 역할 혼란’이라는 시기로 보았습니다. 이 단계를 통해 자녀는 사춘기 시절 자신의 정체성을 찾는 데 투쟁하며, ‘자아 정체성’에서 ‘성 정체성’으로까지 발달하는 단계를 거치게 됩니다.

이러한 발달 단계가 지나고 자아가 다시 통합되면 자녀는 ‘미성숙 자아’에서 벗어나 ‘사회적 자아’로 성장하게 되고, 자기 외모에 대한 불만 또한 점차 사라지게 됩니다. 보통 10대 후반이 되면 자녀들이 이전보다 자신을 받아들이는 데 순응하는 이유도 이 때문입니다. 결국, 자녀가 스마트폰으로 셀카를 찍는 ‘자기애적 행동’은 자신의 자아 정체성과 성 정체성을 확인하려는 일련의 탐색 과정으로 이해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

‘자기애’를 보통 그리스 신화를 빌어 ‘나르시시즘 – Narcissism’이라고 합니다. 아름다운 미소년이었던 나르키소스가 우연히 연못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고 자신과 사랑에 빠지면서 결국 연못에 비친 자신의 모습만 들여다보다 탈진하여 죽고 마는 비련의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그래서 현대 사회에서는 자기애가 강한 사람을 ‘나르시시스트’라 부르고, 요즘 자녀 세대를 가리켜 ‘나르시시스트 세대’라고도 합니다.

지금껏 이렇게 많은 ‘셀카’를 찍는 세대가 있었을까요? 아이들은 셀카를 마치 ‘자신을 원하는 대로 그릴 수 있는 디지털 도화지와 물감’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셀카를 찍는 데 있어서 대상과 장소를 차별하지 않으며, 자신을 은유할 수 있는 아이템이라면 그것은 곧 자신과 동일시하기에 충분하다고 생각하니 말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자녀의 순수한 은유에도 불구하고 걱정되는 것이 있다면, 아이가 무심코 올린 셀카 사진 한 장이 누군가에게는 편집과 도용의 재료로 사용되기 쉽다는 데 있습니다. 통계적으로 보면 ‘사진도용’이나 ‘지인 합성’ 같은 범죄가 높은 그래프를 보여주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소소하게 학생들을 통해 상담이 들어오는 걸 보면, 우리 자녀가 찍는 ‘셀카’를 그냥 재미로 받아들이기에 부담스러운 게 사실이고, 무엇보다 사진도용의 치명적 손상이 자녀가 감당하기에는 꽤 깊은 상처가 된다는 것을 무시할 수 없습니다.

특히, ‘사진도용’이나 ‘지인 합성’ 같은 악마의 편집이 자녀의 무분별한 ‘친구추가’에서 시작된다는 사실도 주목해야 합니다. 자녀가 무심코 눌러주는 ‘좋아요’와 ‘친구추가’를 통해 얼굴도 모르는 사람에게 노출이 되고 결국, 자녀의 셀카는 누구든지 내려받고 편집해서 이를 도용할 수 있는 최적의 환경을 만들어 준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될 것 같습니다. 하지만 아이들은 극명한 문제점이 드러나야 그 심각성을 인식하기 때문에 구체적인 피해사례가 많지 않은 상황에서 아이들을 교육하기란 쉽지 않은 실정입니다.

그래서 저의 교육 방식은 ‘부탁’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셀카를 찍어 소셜 미디어에 올리더라도 가급적 정면 사진보다는 측면 사진을 올리고, 전신사진보다는 반신 사진을 찍으라고 아이들에게 부탁합니다. 여기에 자극적인 표정이나 모습은 조금만 참아주고, 기왕이면 도용하지 못하도록 ‘도용 안 돼!’라는 문구나 이모티콘을 적절히 활용해 달라고 덧붙입니다. 왜냐하면 도박 사이트나 불법 동영상 사이트 같은 찌라시에 이용되는 대부분의 합성 사진들이 이런 모습을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생각해 보면, 아이가 셀카를 찍는 행위에는 자녀 세대의 ‘철학’을 담고 있는 듯 보입니다. 그래서 재미와 자극을 추구하는 자녀 세대의 신드롬만으로는 설명이 부족합니다. 자녀의 셀카 문화는 자녀가 부모로부터 받고 싶은 인정과 사랑의 결핍을 다른 사람들을 통해 충족하고 싶어 하는 간절함으로 비치기 때문입니다. 결국, 자녀가 즐거움을 넘어 셀카에 집착한다는 것 또한 부모의 인정과 사랑에 대한 오랜 갈증을 보여주는 건 아닌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무엇보다 부모로부터 ‘최고!’라는 칭찬 한 번 들어보지 못한 아이들과 반에서 10등인데도 자존감이 없는 아이들이 자신의 가치를 수직 상승시키고, 심지어 단번에 자아실현까지 이뤄주는 해리포터의 마법 지팡이로 선택한 도구가 ‘셀카’ 말고는 이 지구상에 없다는 것을 우리는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런 뜻에서, 오늘 하루는 먼저 자녀에게 ‘손 하트’를 만들어 셀카를 보내보는 건 어떨까요? 최소한 당황하거나 재밌어하거나 둘 중의 하나이겠지만, 분명한 건 최소한 전보다 관계가 좋아지면 좋아졌지 더 나빠지지는 않을 거라고 저는 확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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