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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민호 칼럼] 아픔이 길이 되려면...의학(醫學), '치료' 문제에서 '지식' 문제로

[의학계열 Classic 4] 아픔이 길이 되려면


김승섭 지음
동아시아


[에듀인뉴스=송민호 기자] 우리는 어떤 것을 알게 되면 그것을 실천하려는 경향이 생긴다.


대표적으로 세탁기가 발명되기 전에 위생개념이 나타나게 된다. 즉 얼룩이 진 옷을 입거나, 옷으로 음식물을 닦으면 세균이 생길 수 있으므로 빨아야 한다. 


이런 ‘위생지식’이 생겨난 뒤 세탁기가 등장하는데, 이 둘의 콜라보는 무섭다. 


원래는 여성들의 가사노동 시간을 줄인다는 미명 아래 나온 기계지만 위생지식과 결합되면 ‘매일’ 빨래는 하게 되고, 가사 노동 시간은 점점 늘어나게 된다. 왜냐하면 위생개념은 옷에서부터 식기 세척, 그리고 침대 등 모든 일상생활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반대로 어떤 지식을 알지 못하게 하면 그 부분에 대해 사람들은 반응할 수 없다. 


청소할 때 쓰는 메케한 냄새의 세제를 몇 분 동안 흡입하면 건강에 어느 정도 해롭다는 지식을 알게 된다면? 그리고 월급을 받는 과정에서 성별이나 직급 등 이유로 월급지급이 밀릴 때 받는 스트레스를 의학적 결과로 제공한다면? 교실 내에서 학교 폭력을 경험하고 그 일에 대해 침묵한 경험이 있는 학생을 겪을 트라우마 연구결과가 나온다면? 


이렇게 되면 일단 보험회사가 바빠진다. 그리고 여기저기에서 소송이 벌어질 수 있다.


<아픔이 길이 되려면>의 저자 김승섭 교수는 일상생활에서 나타날 수 있는 차별과 억압 등을 의학적 관점에서 살펴보고 이를 의학적 지식으로 만들려는 노력을 경주하고 있는 학자다. 현재 고려대학교 보건과학대학 보건정책관리학부에 재직 중이며 관심사는 우리 사회에서 소수자와 차별받는 사람들에 대한 연구로, 이는 계속 확장되어 가고 있다. 


저자가 쓴 책 중에 <오롯한 당신>에서는 트렌스젠더가 겪는 어려움을 풀어내고 있으며 이는 최근 숙명여대 트렌스젠더 사태와 연관해 읽어본다면 의미 있는 독서가 될 것이다.


이 책은 총 4개의 장으로 구성되었다. 제1장은 말하지 못한 상처, 기억하는 몸, 제2장은 질병 권하는 일터, 함께 수선하려면, 제3장은 끝과 시작, 슬픔이 길이 되려면, 그리고 제4장 우리는 연결될수록 건강한 존재들이다. 


이 제목들과 세부목차를 연결해보면, 인간의 개체(몸)에서 시작하며 사회(일터), 그리고 재난이라는 연구대상으로 구분이 되고 마지막 장에서는 해법을 찾아서 제시하는 것으로 해석된다. 


이 모든 내용들은 사회(의료)역학이라는 학문과 연관된다. 즉 건강한 사회는 개인의 건강도 중요하지만 건강한 ‘사회’가 되어야 한다는 논리다.


이 책에서 의대를 준비하는 수험생들이 주요하게 봐야할 것은 사회통계의 해석이다. 즉 사회역학이란 관점을 가지고 자료를 해석할 때와 그렇지 않을 때는 통계자료의 해석이 달라진다. 굳이 사회통계라고 말한 것은 의료내용을 담지 않은 통계도 여기에 포함되기 때문이다. 


이 중 제1장에 등장하는 절약형질 가설과 제2장에 등장하는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의 건강연구를 살펴보려고 한다. 


첫 번째 사례는 역사적으로 중요한 것이고 두 번째 사례는 우리 사회에서 주요한 의미를 가지는 연구이기 때문에 선정하게 되었다.


절약형질 가설은 쉽게 말해 굶주림을 경험해 본 사람이나 또는 그런 일을 겪은 산모의 태아는 건강에 나쁜 영향을 받는다는 것이다.


인간을 대상으로 한 실험은 금지되어 있으므로 역사적인 대기근이나 재난을 겪은 사람들의 건강상태를 연구해 봄으로써 절약형질 가설이 타당함을 증명할 수 있다. 


대표적인 연구가 아프리카 감비아에서 진행된 것이다. 열대 사바나 기후에 속하는 감비아의 시골 지역에 거주하는 사람들에게 우기(7월~10월)는 과거 한국의 보릿고개처럼 매우 고통스러운 시기가 된다.


수확된 곡식이 모두 없어진 상태에서 어른들은 굶주린 채 다음 농작물 수확을 위해 일하고 자녀들은 계속내리는 비 때문에 설사병과 말라리아에 노출된다. 이러한 열악한 상황을 반복적으로 겪게 되면 그들의 건강에도 문제가 생길 수밖에 없다. 


아래 <표>를 보면 출생시기에 따른 생존율의 차이를 담은 것이다. 20세를 전후해 하락곡선을 그린 그래프는 우기(7~12월)에 태어난 사람이고, 다른 것은 건기(1월~6월)에 태어난 사람들의 생존율을 나타낸 곡선이다. 


즉 태어난 시점에 따라서 생존율의 차이가 나타나고 이것을 절약형질 가설 중 하나의 형태다.



출처 : 네이처 논문 - Scientific Correspondence Published : 31 July 1997 - Season of birth predicts mortality in rural Gambia Sophie E. Moore, Timothy J. Cole, Elizabeth M. E. Poskitt, Bakary J. Sonko, Roger G. Whitehead, Ian A. McGregor & Andrew M. Prentice  - Nature volume 388, page434(1997)Cite this article
출처 : 네이처 논문 - Scientific Correspondence Published : 31 July 1997 - Season of birth predicts mortality in rural Gambia Sophie E. Moore, Timothy J. Cole, Elizabeth M. E. Poskitt, Bakary J. Sonko, Roger G. Whitehead, Ian A. McGregor & Andrew M. Prentice - Nature volume 388, page434(1997)Cite this article


구체적으로 해석하면, 식량이 상대적으로 넉넉한 건기에 태어난 사람들이 우기에 태어난 사람들에 비해 더 오래 살아남는 다는 것을 알 수 있다. 40세부터 두 그래프에 나타난 생존율은 1.5배가량 차이가 났고, 40세에 살아 있을 확률은 30%가량 차이가 나게 된다. 


이 실험 외에 네덜란드 기근실험으로 불리는 것도 유사한 결과를 가져왔다. 제2차 세계대전 중인 상황에서 네덜란드에 강추위가 와서 사람들이 기근에 시달렸다. 1944년 10월부터 6개월 동안 하루 평균 800kcal 미만으로 살아가야 했고 이 때 임산부들에게는 치명타였다. 
 
1945년 초 ‘네덜란드 기근’ 시에게 산모의 배 속에 있던 태아를 추적 연구한 결과 심장병에 걸릴 위험이 일반적인 시기에 태어난 사람보다 3배 높았고, 조현증(정신분열증)에 걸릴 위험이 2.6배 높았으며 당뇨병 발병율도 높았다는 결과가 나왔다. 


이러한 연구를 토대로 태아기의 영양결핍이 성인 만성병의 원인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을 ‘절약형질 가설(Thrifty Phenotype Hypothesis)’라고 부르게 되었다. 또는 이 연구에 중추적인 역할을 한 데이비드 바커(David Barker) 박사의 이름을 따서 ‘바커 가설’이라고도 부른다.


한편 저자는 “건강 연구자인 제가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에 대해 처음 관심을 가졌던 것은 계속해서 발생한 자살 때문이었다”고 말한다. ‘무엇이 그토록 해고노동자와 그 가족을 삶과 죽음의 경계에 놓이게 했을까’에서 ‘한국이라는 나라에서 어떤 경로로 실업이 자실의 원인이 되는 것일까’를 넘어 이후에는 ‘한국은 해고된 노동자들을 어떻게 대하고 있는가’라는 질문으로 바뀌었다는 것. 


그래서 이화여대 이승윤 교수와 함께 「쌍용자동차 정리해고와 미끄럼틀 한국사회」라는 논문을 쓰게 된다. 


(사진=sbs 캡처)


논문에서는 쌍용자동차 해고 노동자들 중에서 정리해고 이후 구직활동을 했던 이들만을 대상으로, 그들의 6년 간 활동을 관찰한 내용을 담았다. 


정리해고 직후인 2009년부터 2015년까지 매주 수입원이었던 일이 무엇인지 물어보니 2010년에는 무직이 가장 많았고, 일용직과 사내하청 및 외부 파견기관에서 근무하는 아웃소싱 근무자가 다수였다. 그리고 해고된 이후 도움을 받은 사람들은 친구 및 지인(42%, 37명), 동료해고자(19.3%, 17명) 그리고 가족 및 친인척(18.2%, 16명)로 나타났고 정부고용센터의 도움을 받는 이는 9.1%, 8명에 불과했다.


아래 그래프에서 보듯이 실직 이후에 많은 이들이 극단적 선택이나 심한 질병을 앓게 된 것이 나타난다. 이러한 자료를 통해 실직이나 실업이 가져다주는 고통이 개인에게는 엄청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이러한 사회적 충격이 개인에게 끼치는 영향력을 이해한다면 또는 지식으로 이것을 받아들인다면 한국사회의 정책방향이나 또는 개인들 간 상호부조와 같은 협력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 수 있을 것이다.


예비 의료인이 되려는 학생들은 청소년 시절에 이러한 자료들을 접하면서 사회적 배려와 공감의식을 키워나가야 할 것이다.



만약 위 <표>에서 사망당시 고용지위 부분을 빈 칸으로 두고 이 <표>를 해석하라고 하면 어떨까? 또는 희망퇴직자의 가족이 사망한 원인을 유추하거나 또는 사망 원인을 보고 어떤 일을 겪었을지 해석해 보라는 문제가 나오면 어떨까? 


평소 사회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사회역학적 관점을 가진 학생이라면 도표 속에 숨겨진 개인들의 고통을 충분히 공감하면서 답변을 할 것으로 예상된다. 아마도 냉철한 이성과 따뜻한 가슴이라는 경구는 평소 이러한 독서를 통해 나타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최근 의료인문학이나 의료사회학과 같은 수강과목에서는 의대생들에게 인문학적 상상력이나 공감능력 등 다양한 사회적 역량을 키워주고 있다. 이것이 필요한 이유는 현행 입시체제에서는 수학과 과학 중심의 심화된 학습이 합격의 지름길이기 때문에 사회활동을 등한시 하는 경우가 종종 있기 때문이다. 


필자가 참석한 한 의료세미나에서 들은 얘기 중 하나는 물대포 사건으로 사망한 백남기씨를  예술가 백남준과 혼동해 적은 테스트 답안이 꽤 많았다고 한다. 결국 사회적 공감능력이야 말로 예비 의료인에게 가장 필요한 것 중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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