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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민수 경찰관의 요즘 자녀學] ‘가짜 뉴스’와 자녀의 ‘안전 불감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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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은 지금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이라는 예상치 못한 불청객 때문에 그 어느 때보다 잔뜩 긴장하고 웅크린 모습입니다. 갑자기 불어닥친 이 매서운 중국발 한파(漢波)가 솔직히 녹록해 보이지는 않지만 그래도 우리는 이보다 더한 위기에서도 잘 헤쳐나왔던 숱한 경험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이번에도 거뜬하게 이겨낼 것이라고 희망합니다.

하지만 온 국민이 보이지 않는 '적'을 마주하고 '블라인드 전쟁'을 치르고 있는 상황인데도 불구하고 얼마 전, 철없는 10대 아이들이 ‘가짜 뉴스’를 유포해 우리를 언짢게 만든 사건이 있었습니다. 더 황당한 건 ‘가짜 뉴스’를 제작한 이유가 단순한 ‘장난’이었다고 하니 한숨은 더 깊어지고, 사회적 거리감은 더 멀어졌습니다.

아이는 어려서 그렇다 하더라도 어른들의 비상식적인 행동은 더더욱 이해하기 힘듭니다. 일부 소셜 미디어가 돈벌이로 전락하면서 조회 수와 구독 수를 늘릴 목적으로 방진복을 입고서 추격전을 벌이는 삼류 감독과 배우가 있는가 하면, 관공서 공문을 모사하여 자신의 블로그와 사이트를 홍보하는 인터넷 장사치도 있었습니다. ‘먹고살기 위해서’라고 하지만 정도를 지키지 못한 것은 매우 아쉽습니다.

좀처럼 화를 내는 성격이 아니지만, 이번 주제는 좀 다릅니다. 국가 재난을 한낱 돈벌이에 이용했다는 '비도덕성'을 차치하고라도 무엇보다 우리 자녀가 이러한 ‘가짜 뉴스’를 공유랍시고 생각 없이 퍼 날랐다가 더 큰 문제가 생기지는 않을지 마음이 조마조마하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 ‘가짜 뉴스’의 유포자가 의도치 않게 우리 자녀가 될 수도 있다는 뜻입니다.

기술의 발전과 더불어 ‘가짜 뉴스’ 또한 함께 발전해왔다는 것에 대해, 역사적으로 보나 사회·정치적으로 보나 그리 놀라운 사실은 아닙니다. 조선 시대에도 ‘주초위왕(走肖爲王)’이라는 ‘가짜 나뭇잎’이 있었고, ‘독립신문’ 지면에도 동네 양복점 광고를 위해 ‘~하더라’ 체로 풍문을 실었던 적이 있었습니다. 또 현대에 들어서는 '유신정권'을 거쳐 ‘5.18광주민주화운동’과 ‘세월호 사건’에 이르기까지 온 국민의 관심이 집중되는 나랏일에는 빈틈을 놓치지 않고 출몰했던 것이 바로 ‘가짜 뉴스’였으니까요.

하지만 문제는 우리 '자녀'입니다. 미국 스탠퍼드대학교 샘 와인버그 교수 연구팀은 미국 12개 주의 중학생부터 대학생까지 10대 청소년 7천804명을 상대로 조사한 결과 “약 82%의 중학생들이 '광고 콘텐츠'와 실제 뉴스를 구별하지 못했다”라고 밝혔고, 또 "많은 사람은 젊은이들이 소셜 미디어에 익숙하므로 자신들이 본 것에 관한 인지능력도 훌륭할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지만, 연구 결과는 정반대였다.”라고 발표했습니다. 이 조사 결과는 우리 자녀 세대가 ‘가짜 뉴스’에 가장 취약한 계층이라는 것을 말해줍니다.

또, 미국의 저명한 도덕 철학자인 해리 프랭크퍼트 교수는 자신의 저서 『개소리에 대하여 - On Bullshit』에서 ‘가짜 뉴스’를 ‘개소리’에 비유하며 “개소리의 본질은 그것이 거짓이라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가짜라는 데 있다”라고 주장했습니다. 거짓말쟁이와 정직한 사람은 게임에서 서로 반대편에 있긴 해도 모두 ‘진실’에 관심을 둔다는 공통점이 있지만, 개소리를 늘어놓는 개소리쟁이에게는 그런 제약이 없다는 뜻입니다. 다시 말해, ‘가짜 뉴스’의 본질은 사태의 진상이 실제로 어떠한지에 관해서는 관심이 없고, 오로지 자신의 ‘허튼소리’에 반응하는 광경을 즐기는 것뿐이라고 힐난했습니다.

결국, 이러한 연구 이론은 우리 자녀에게 ‘가짜 뉴스’의 ‘심각성’을 ‘재미’와 ‘장난’으로 받아들이도록 ‘인지 부조화’를 만들어낸다는 데 더 큰 위험이 있습니다.

제목으로 뉴스를 소비하고, 그마저도 보기 싫다면 자동으로 콘텐츠를 걸러내는 자녀 세대에게 지금 우리를 위협하고 있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에 대한 설명은 친절하지도 충분하지도 않아 보입니다. 더구나 아이들이 출입하는 소셜 미디어에서는 진짜 뉴스는 눈길을 받지 못하고 있고, 가짜 뉴스는 퍼 나르기 바쁠 지경이니 말입니다. 결국, 자녀의 이러한 ‘인지 부조화’는 아이들에게 ‘안전 불감증’이라는 잘못된 사고를 만들어 ‘예방수칙’을 외면하거나 등한시하는 태도를 가질 수 있다는데 우리는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외모를 중시하는 핫한 나이를 고려하면, 멋없는 ‘KF94 마스크’를 애지중지 착용하고 다닐지는 의문입니다. 특히, 또래끼리 어울릴 때는 ‘동조압력’이라는 심리적 동조 현상 때문에 부모의 잔소리보다는 친구의 말을 따를 수밖에 없는 것이 지금의 아이들입니다. 그래서 거리에는 마스크를 착용한 아이들은 없고, 있더라도 마스크가 턱밑에 걸쳐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이렇게 되면 학교에서 보내는 예방 문자가 효과가 있는지를 묻지 않을 수 없고, 부모 또한 자녀가 마스크를 착용하지 않은 것에 대해 너무 부드럽게 야단치지는 않았는지 따지지 않을 수 없습니다.

사안이 중요하다 보니 ‘부탁’으로는 안 될 것 같습니다. 오히려 귀가 따갑도록 아이들에게 ‘예방수칙’을 교육해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자녀의 안전과 관련한 '잔소리 교육'은 자녀에게 거부감을 주지 않는 의외의 장점이 있습니다. 또 무엇보다 가장 좋은 교육은 부모가 선보이는 ‘시뮬레이션 교육’이라는 것도 기억해주었으면 좋겠습니다. 가정에서 ‘예방수칙’을 실천하는 부모의 모습보다 더 좋은 학습자료는 없기 때문입니다.

아울러,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에 대한 눈높이 교육도 필요합니다. 그러면서 동시에 ‘가짜 뉴스’에 대한 위험성도 빠뜨려서는 안 되겠죠. ‘장난’이 ‘범죄’가 될 수 있다는 표어식 설명보다 ‘가짜 뉴스’는 개인의 인격을 침해하고 우리 사회를 위험에 빠뜨리는 ‘공동체 파괴범’이라는 입체식 설명과 함께 ‘명예훼손죄’’와 ‘업무방해죄’ 그리고 ‘공무집행방해죄’로도 처벌을 받을 수 있는 무서운 범죄라는 사실도 이번 기회를 통해 알려주었으면 좋겠습니다.

사회 질병을 연구하는 김승섭 교수는 『아픔이 길이 되려면』이라는 자신의 저서에서 “질병은 개개인이 무장해서 스스로를 지키는 방식은 결코 해결책이 될 수 없다.”라고 했습니다. 결국, 우리의 몸과 건강을 어떻게 바라보고, 개개인의 삶에 대한 공동체의 책임 또한 어디까지라고 생각하는지에 대한 ‘관점’의 변화가 중요하다는 뜻으로 보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지금도 좁은 병실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과 힘겹게 싸우고 있는 분들을 위해 우리 가족의 힘을 모아 빠른 쾌유를 빌어드리는 건 어떨까요? 어찌 보면,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건 마스크, 손 세정제 못지않게 그들을 내 가족처럼 생각하는 ‘따뜻한 마음’이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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