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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뉴스

[서민수 경찰관의 요즘 자녀學] 부모의 ‘허락’이 아이의 ‘품행’을 만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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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들이 털어놓는 고충 중에는 “아이가 초등학생 고학년이 되거나 중학생이 되면서 전혀 다른 아이가 된 것처럼 느껴진다.”는 점이 있습니다. 특히, 초등학교 때까지만 해도 부모 말을 거스르는 경우가 있기는 했어도 학교생활에는 큰 문제가 없었는데, 중학교에 진학한 뒤부터는 주변 환경도 변하고 학교 규율도 더 엄격해지면서 부모가 받아들이기 쉽지 않은 결과들이 벌어져 걱정이라는 분들이 많습니다.

최근 ‘코로나 19’로 인해 개학이 다시 연기되어 아이의 칩거 기간은 더 길어졌습니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황에 따분해진 아이들이 마스크도 제대로 착용하지 않는 채 PC방이나 노래방에 보내 달라는 요청까지 해오니 부모들의 고민은 이만저만이 아닙니다. 그래서 이번 글에서는 아이의 ‘품행’과 부모의 ‘허락’에 관한 이야기를 해보고자 합니다.

먼저, ‘허락’은 우리가 일생을 살아가는 데 있어서 피할 수 없는 ‘통과의례’이자, 때로는 인생의 방향을 결정하는 중요한 ‘선택지’처럼 보입니다. 또 ‘허락’은 언제나 ‘제안’이라는 단짝을 동반하지요. 돌이켜보면, 부모 또한 수많은 ‘허락’과 ‘거절’이라는 통과의례를 거치며 부모가 되었다는 사실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부모는 아이들이 성장해가는 아동기와 청소년기에서 ‘허락’이라는 상황을 자주 마주하게 됩니다. 아이는 아동기가 되면서 본격적으로 표현하는 방법을 터득하게 되고, 청소년기로 거듭 성장하면서 표현에만 그치지 않고 ‘한번 해보고 싶다’라는 생각에 구체적인 제안을 해오기 시작합니다. 동의할지 모르겠습니다만, 초등학교 고학년 이상의 자녀를 둔 부모라면 지금까지 아이가 제안했던 것들에 대해 수많은 ‘허락’을 해왔다는 사실을 느끼실 겁니다. 더구나 암묵적으로 동의해준 사소한 ‘허락’도 꽤 많았을 테고요.

하지만, 과연 우리는 아이의 ‘제안’을 두고 얼마나 많이 고민하고, 또 고민하는 모습을 보이며 허락과 거절을 반복했을까요? 예컨대, 아이가 무엇을 원할 때 부모는 아이에게 ‘허락’하는 이유를 얼마나 잘 설명해 주었는지 또는 거절을 했다면 왜 거절할 수밖에 없는지를 아이의 수준에서 얼마나 잘 설명을 해주었는지 한 번쯤 생각해 보신 적이 있으신지요.

지금의 질문, 그러니까 ‘허락’이 부모에게 중요한 이유는 바로 아이의 ‘품행’과 깊은 관련이 있기 때문입니다. ‘품행(品行)’은 품성과 행실을 아우르는 말이고, 아이가 갖춰야 할 성질과 실제로 드러나는 행동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부모의 ‘허락’은 아이의 품행에 필요한 자양분과도 같습니다.

얼마 전, 한 어머니와 상담한 사례를 들어 ‘허락’이라는 것에 대해 한번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아이는 또래 친구들과 축구 시합을 하고 싶은 마음에 엄마에게 “오늘 하루만 학원 숙제 안 하고 학원에 가면 안 되요?”라고 물었다고 합니다. 아이는 시무룩한 표정을 지으며 매달리다시피 부탁했지만, 엄마가 시큰둥한 반응을 보이자 재차 또래 친구들 사이에서 왕따가 될지 모른다며 흔한 시나리오를 늘어놓습니다. ‘정말 그럴지도 모른다’는 불안함에 결국 어머니는 어쩔 수 없이 못 이긴 척 ‘딱 한 번!’이라는 전제를 달고 흔쾌히 ‘허락’해주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저는 그 어머니에게 “부모의 흔쾌한 ‘허락’이 아이가 가지고 있는 규범을 흔들어 놓을 수 있다”는 사실을 꼬집어 말씀드렸습니다. 쉽게 말해, ‘숙제는 절대 무너뜨릴 수 없는 철옹성이라고 생각했는데, 자신의 딱한 표정만으로도 충분히 무너뜨릴 수 있다’는 확신을 아이에게 심어주는 계기가 되었을 수도 있다고요. 더구나 ‘허락’으로 받은 자유시간이 달콤하면 달콤할수록 아이는 잘못된 확신을 점점 내면화합니다. 게다가 자신의 제안이 받아들여지지 않게 되면 지나친 욕구로 인해 ‘거짓말’과 ‘속임수’가 동원될 수 있다는 위험성도 덧붙였습니다.

만일 허락을 해야 한다면, 부모는 아이의 숙제가 어느 정도의 분량인지를 확인하고, 숙제를 안 하는 것이 아니라 축구를 하는 대신 학원에 다녀와서라도 못했던 숙제까지 완성할 수 있도록 약속을 이끌어 내야 합니다. 또 만일 허락하지 않겠다면, 아이가 공감할 수 있는 타당한 설명이 뒤따라야 합니다. 특히, 아이의 간곡한 부탁일수록 어머니 혼자 결정하기보다는 아버지와 함께 상의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필요합니다. 맞습니다. 저는 ‘허락하느냐 마느냐’의 결론보다는 ‘아이의 제안을 대하는 부모의 태도’에 대해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아이는 부모가 ‘허락’하는 절차와 태도를 보면서 자신의 ‘품행’을 다듬어 갑니다. 다시 말해, 부모가 아이의 제안을 어떻게 대하느냐에 따라 ‘허락’으로 얻게 된 혜택을 보다 가치 있고, 책임감 있게 사용할 수 있는 방법을 학습하게 되죠.

미국의 저명한 발달심리학자이자 정신분석학자인 ‘에릭 에릭슨’ 교수는 심리 사회적 발달이론에서 “아동기와 청소년기를 ‘근면성’과 ‘열등감’을 경험하는 시기이자 또래 집단 사이에서 자신의 정체성과 역할에 대해 고민하고 제안들을 제시하는 시기”라고 보았습니다. 그래서일까요? 아이들이 부모에게 노는 시간과 귀가 시간을 늘려달라고 제안하거나 어느 순간 친구 집에서 자고 오겠다고 제안하는 것은 아이의 발달과정에서 보자면 당연한 과정입니다.

하지만 몇 년 전, 저는 학교에서 품행이 바르지 못해 징계를 받거나 비행을 저지른 학생들을 대상으로 과연 아이들의 비행이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를 추적한 적이 있습니다. 그 결과, 아이들은 대부분 중학교에 들어가면서 새로 어울리게 된 또래 친구들을 지목하는 경향이 많았습니다. 특히, 또래 집단에서 살아남기 위해 귀가 시간이 늦어지고, 부모의 통제가 없는 허술한 친구 집을 오가며 경험하게 된 행동들을 비행의 시작점으로 봐도 무방하다는 점을 관찰하게 되었습니다. 물론, 부모의 무관심에 따라 삐뚤어진 품행과 비행의 속도는 급속도로 빨라졌던 것이 사실입니다.

그래서 해법은 아이의 제안을 붙잡고 고민하는 부모의 관심과 태도에서 찾을 수밖에 없습니다. 아이가 제안하는 것에서 ‘시간’과 ‘장소’에 대한 요소는 더욱 끈질기게 붙잡고 놓지 말아야 할 고민 대상입니다.

결국, 아이는 ‘부모의 태도’라는 렌즈를 통해 품행을 쌓고, 인성을 다듬으며, 윤리를 만들어 간다는 사실을 잊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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