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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뉴스

[서민수 경찰관의 요즘 자녀學] 누구 편을 들어야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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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가족이든 비밀이 없는 가족은 없습니다. 또, 가족 비밀이라고 하면 창피스러운 내용이기 마련이라 가족끼리만 알고 가족 구성원이 아닌 사람에게는 절대 알려주지 않죠. 달리 말하면, 가족 비밀을 알고 있는 사람은 가족 구성원밖에 없습니다. 어쩌면 그래서 ‘가족’인지도 모릅니다. 그러니까 남들이 모르는 비밀을 가족이기 때문에 공유할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죠. 우리는 보통 눈에 보이는 가족의 모습으로 그 가족을 판단하지만 사실 온전히 그 가족을 알기에는 꽤 많은 시간이 걸립니다. 이 또한 남들도 마찬가지지요. 그들도 말 못 할 비밀을 가지지만 남들에게 들통나지 않으려고 감추고 쉬쉬합니다.

특히, 가족 비밀에는 ‘가정불화’가 늘 한 자리를 차지합니다. ‘가정불화’라고 하면 대개 부부 간 갈등이나 형제자매 간 갈등을 말합니다. 그러나 최근에는 부모와 자녀 간 갈등 때문에 힘들다는 이야기도 많습니다. 미국에 있는 가족 정보조사 사이트인 ‘유니뷰’가 조사한 통계를 보면, 가정 3천 곳을 설문한 결과 어머니와 아버지, 자녀는 하루에 3번 말다툼을 벌이며, 각 싸움은 최대 5분까지 이어진다고 합니다. 다시 말해, 한 가족이 말싸움을 1년에 1,095번 벌이고, 평균 3일 하고도 19시간 동안이나 싸운다고 합니다. 꽤 놀라운 결과죠. 중요한 것은 국내 통계는 없지만, 우리나라도 별반 차이가 없다는 것입니다. 굳이 통계를 들이대지 않아도 우리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지요.

얼마 전 한 어머니로부터 상담 전화를 받았습니다. 상담을 요청한 어머니의 질문은 단순하면서도 묘한 뉘앙스를 가지고 있었죠. 남편이 평소에는 아이들에게 잘하는 편인데 술을 마시고 집에 오면 아이의 태도에 자주 화를 낸다는 것입니다. 마침 아이도 공부를 마치고 모처럼 게임을 하며 스트레스를 풀고 있었던 탓에 게임에 몰입한 나머지 아버지의 인기척을 듣지 못했고, 아버지는 아이의 태도가 못마땅해 참지 못하고 화를 낸 것입니다. 결국, 아버지와 아들 중 누가 승자라고 할 것 없이 패자만 남은 싸움으로 끝났고, 덕분에 집안 분위기는 엉망이 되고 말았지요. 그런데 어머니는 다음 날 풀이 죽은 남편의 모습이 종일 마음에 걸렸던 모양입니다. 그러면서 전날 부자간 싸움에 아이의 편을 들어준 것이 옳았는지 헷갈린다고 하더군요. 그러면서 대뜸 제게 이런 상황에서 아내이자 엄마인 본인은 누구 편을 들어야 하는지를 물었습니다.

쉽지 않은 답변이었습니다. 양쪽 편을 상황에 맞게 적용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단편적으로 일방적인 ‘편들기’는 반대작용에서 자칫 후유증을 가져올 수 있습니다. 그래서 편을 든다는 건 그만큼 신중해야 합니다. 어머니 입장에서는 차라리 장소를 벗어나 모르쇠로 일관하는 게 낫다고 생각할지 모릅니다. 하지만 정작 당시 상황을 피했던 대가는 다음 날 남편과 아들 모두에게 받죠. 어쩌면 이 상황이 대부분 가정에서 벌어지는 줄거리일 겁니다. 가족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누구의 편을 든다는 건, 수학 문제를 풀 때 필요한 방정식을 도입하는 것과 비슷합니다. 쉽게 말해, 양쪽 상황에 대입해보면 해답은 생각보다 쉽게 나오죠. 하지만 전제 조건이 있습니다. 아버지와 아이 중 한쪽이 일방적으로 잘못이 있다면 잘못이 있는 사람을 마주하고 설명해주는 것이 타당합니다. 하지만 양쪽 모두 잘못을 했다면 아버지의 편을 들어주는 것이 타당합니다. 대신, 편을 들어주는 데 있어서 중요한 건 ‘도덕적 센스’가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상담사례와 같은 상황이 벌어졌다면 저는 엄마로서 아들에게 이렇게 말하겠습니다.

“아들, 아빠한테 함부로 하지 마. 너한테는 아빠지만 엄마한테는 내 남자야. 그리고 내 남자 덕분에 네가 공부하는 거고, 내 남자 덕분에 맛있는 밥 먹고, 좋은 옷 입는 거야. 그러니까 내 남자한테 함부로 하지 마. 그러면 엄마도 화나.”

만일 이렇게 말한다면 아버지와 아들의 반응은 어떨까요? 아버지는 자신이 화낸 사실을 돌아보고 아내로부터 예상치 못한 위로를 느낄 겁니다. 또 아들은 어떨까요? 당시 엄마의 행동이 서운할 수도 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가족에서 지켜야 할 규범을 생각해보는 기회가 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여기서 끝내서도 안 됩니다. 상황이 어느 정도 진전되면 남편과 아이를 향해 ‘조언과 위로’를 해줘야 합니다. 남편에게는 아이의 스트레스와 최근 근황을 설명해주며 이해를 도와주는 노력이 필요하고, 아이에게는 아들을 향한 아빠의 속마음을 알려주며 아빠를 이해하고 존경할 수 있도록 위로해주는 것이 필요합니다. 이 절차가 빠지면 지금까지의 편들기는 사실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어머니와 아이 또는 형제자매 간 싸움에서도 이 공식은 똑같이 적용됩니다. 주목할 건, 도덕적 기술을 사용하여 부모가 센스를 가지고 싸움을 멈추는 데 있습니다. 결국, 부모와 자녀 간 싸움은 서로가 모르는 체력과 사연 때문에 벌어지는 게 대부분이니까요.

지난 1월부터 6월까지 경찰청에서 분석한 지역별 ‘112 신고’ 접수 현황을 확인해 보니, 코로나 이전보다 가정 내 문제와 관련한 112 신고가 많이 증가했습니다. 특히, 가정폭력과 아동학대 등 가정 내 폭력 신고가 증가했습니다. 그만큼 가정불화가 심해졌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예상했던 일이지만, 우리는 코로나 덕분에 단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새로운 가족의 일상을 누리고 있습니다. 지금껏 이토록 오랜 시간 가족이 마주하던 시절이 없었지요. 우리는 가족을 잘 안다고 생각했지만, 막상 마주하니 모르는 게 너무 많아 당황스럽습니다. 같이 있는 시간이 많다 보니 충돌이 많은 것도 당연하고요.

하지만 문제는 “아이들이 집보다 학교가 더 재밌다”라고 생각한다는 사실입니다. 이렇게 되면, 앞으로 코로나 상황이 길어져서 점점 아이들이 집을 더 싫어하지는 않을지 걱정이 됩니다. 집이 아이에게 주는 감수성이 있죠. 지금껏 아무리 학교가 재밌고, 친구가 좋아도 결국 아이들은 집을 놓지는 않았거든요. 그런데 이런 상황이 지속한다면 아이가 ‘집’의 감수성을 잃지 않을지 걱정이 앞설 수밖에 없습니다. 집은 아이를 지키고 보호해주는 가장 기본적인 단위니까요. 결국, 저는 부모님에게 ‘도덕적 센스’를 요구합니다. 코로나 상황에서 가정 불화를 이겨내고 우리 가족을 행복하게 지킬 수 있는 건 결국, 센스있는 부모의 도덕적 기술이라는 것을 잊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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