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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人4色 재외한국학교 도전기] 짜이찌엔(再见) 한국! 니하오(你好) 중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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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듀인뉴스] 교육부가 전 세계 16개국에 설립한 34개의 재외한국학교는 세계 각국에 체류하는 재외동포 자녀의 교육을 담당하며 매년 한국 교사들을 선발해 초빙교사나 파견교사 형태로 지원한다. 해당 교사들은 학생들에게 한국인의 정체성 확립을 위한 교육뿐만 아니라 글로벌 인재로의 성장을 돕고 있다. 재외한국학교 근무에 꿈이 있지만 망설이는 누군가가 있다면 그 도전에 마중물이 될 수 있길 바라는 마음을 담아 ‘대한민국 교사 4人4色 재외한국학교 도전기’를 보건, 초등, 중등교사 순으로 소개한다. 첫 순서는 10년 간호장교 임상경험을 바탕으로 교직 생활 4년 차에 재외한국학교에 도전한 최미숙 보건교사의 이야기다.


再见(헤어질 때 사용하는 중국어 인사말)


你好(만날 때 사용하는 중국어 인사말)


최미숙 전 대련한국국제학교 보건교사
최미숙 전 대련한국국제학교 보건교사

'짜이찌엔' 한국



깜깜하고 바람이 매서운 새벽 아침, 인천공항으로 가는 콜밴이 도착했다.


온 가족이 각자의 항공 수화물과 기내 수화물 그리고 백 팩을 들고 매고 끙끙거리며 엘리베이터에 오른다. 어린 남매는 도움 요청 없이 각자의 몫의 짐을 스스로 책임지며 콜밴에 짐을 실었다.


그 많은 짐이 9인승 뒷좌석 화물칸에 들어갈까 싶은 걱정이 밀려왔지만 기사님은 무거운 이민가방 짐부터 백 팩까지 차곡차곡 빈틈없이 짐을 쌓아 올린다.


친정 부모님은 걱정 가득한 모습으로 우리를 바라보시며 연신 조심하라고 당부하신다. 주한 미군 사드 배치 문제로 연신 뉴스에 한중 관계에 대한 안 좋은 이야기들이 나오는 상황이니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신 모습이다.


나 역시 주변 사람들로부터 중국 초빙교사로 간다는 소식을 전할 때마다 조심하라는 인사말과 걱정스러운 표정을 보았기에 마음이 가볍지만은 않았다. 국가 체제도 다르고 언론이나 영화에서 그려지는 중국은 늘 좋은 면으로 그려지지는 않았기 때문이리라.


드디어 작별의 인사를 나누고 9인승 콜밴은 새벽어둠을 가르며 공항으로 출발한다. 차가 멀리 사라질 때까지 노부부는 떠나는 자식의 뒷모습을 끝까지 지켜주셨다.


그때 문득 논어 속 공자의 말씀이 떠올랐다.


"부모가 생존해 계실 때는 먼 곳으로 가서는 안 되며, 떠나갈 때는 반드시 갈 곳을 정해 두어야 한다."


불효도 이런 불효가 없었다.


인천공항행 콜밴은 새벽 자동차 전용도로를 빠른 속도로 내달렸다. 어젯밤부터 잠을 설치고 출발했지만 모두 긴장이 가지지 않는지 눈을 멀뚱거리며 각자의 생각에 잠겨있다. 인천공항에 내려 공항으로 들어가자 꼭두새벽부터 전 세계로 떠나려는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아…. 정말 떠나는구나.‘


탑승권을 받은 다음, 전날부터 초과하지 않도록 단단히 준비한 위탁 수화물을 특별한 문제없이 부치고 출국장 보안검색대로 향했다.


이런 경험이 처음인 남매들과 잔뜩 가져온 기내 수화물 때문에 보안검색대 통과는 한 참이 걸렸다. 보안검색대도 무사통과하고 드디어 탑승구로 이동한다. 그제야 이동하는 중 펼쳐진 인천공항의 규모와 시설에 연신 감탄을 했다.


탑승구 쪽에 다다르자 합동 연수에서 만났던 반가운 얼굴들이 보인다. 초빙교사로 합격하면 가족을 제외한 본인의 출국 당일 비행기 표를 학교에서 일괄 지원해 주기에 모두 같은 항공편으로 출발하게 된다. 동기들과 함께할 수 있어 떠나는 마음이 조금은 가벼워졌다.


"대련행 아시아나 비행기에 탑승하실 승객분들을 탑승을 시작해 주시기 바랍니다."


이제 출발이다. 짜이찌엔(再见) 한국!


출국 당일 비행기에 탑승한 남매.(사진=최미숙 보건교사)
출국 당일 비행기에 탑승한 남매.(사진=최미숙 보건교사)

'니하오' 중국



드디어 대련행 비행기가 굉음을 내며 이륙한다. 그날따라 유난히도 바람이 많이 불어 기체는 쉴 새 없이 흔들렸다. 남매는 아랑곳하지 않고 마냥 신기해하며 비행을 즐기는 모습이었다.


난 그렇게 갈망하던 해외 근무를 위해 떠나는 비행기에 몸을 맡기고 있는 내 모습이 신기하고 대견하기까지 했다. 한참을 긴장과 상념 속에 온몸이 경직되어 있다가 음료 서비스 시간이 지나고 몸과 마음이 노곤해질 때쯤 어느새 기장의 착륙 안내 방송이 시작된다.


"잠시 후 대련 공항에 도착합니다. 안전벨트를 하시고 자리에 앉아 주시기 바랍니다."


'벌써 도착이라고?'


대련이 한국과 가까운 곳임은 알고 있었지만 1시간 남짓의 비행시간이 정말 짧게 느껴졌다. 딱 제주도 가는 정도의 시간이었다. 막연히 해외라는 느낌만 있다가 제주도처럼 가까운 곳이라고 생각하니 마음이 한결 편해졌다.


거세게 몰아치는 바람에 비행기는 큰 기체를 뒤뚱거리다 마침내 대련 공항에 무사히 착륙했다. 공항으로 들어가는 입구에 카키색 옷을 입은 투박한 모습의 직원의 모습이 무척이나 낯설었다. 내 귀에 닿고 튕겨 나가는 중국어들과 복잡한 입국 절차에 긴장감이 극도로 상승했다.


공항 내부 역시 화려하고 웅장한 인천공항과는 달리 작고 삭막하기 그지없었다. 신기한 건 4년 가까이 지난 지금 그 공항이 그립다는 사실이다.


코로나19로 가고 싶어도 가기 어려운 곳이어서 일까? 추억이란 것이 그런 것 같다. ‘시간이 흐르면 삭막함도 따뜻함으로 기억되는 변환장치 같은 것.’


까다로운 입국 심사를 무사히 마치고 한참을 기다려 위탁 수화물을 받고 드디어 출구로 나갔다.


‘이젠 어디로 가면 되는 걸까?’라며 놀란 토끼처럼 큰 눈을 두리번거리며 출구로 나간 우리는 순간 긴장과 걱정이 사르르 녹아내렸다. 마중 나온 학교 선생님들이 환한 미소로 환영 피켓을 들고 맞이해 주셨다.


'대련 한국국제학교 신임교사의 입국을 환영합니다.‘


한국 연수에서 뵈었던 교무부장님의 반가운 얼굴이다. 우린 양손 가득 짐을 끌고 학교에서 준비해준 단체 버스에 올라탔다. 드디어 버스가 출발한다. 그제야 대련의 풍경에 눈에 들어온다.


대련은 중국 랴오닝성[遼寧省] 랴오둥[遼東]반도 남단부에 있는 아름다운 해변의 도시로 알려져 있다.


대련(다롄) 위치.(사진=네이버 지도 캡처)
대련(다롄) 위치.(사진=네이버 지도 캡처)

청일전쟁 후 러시아가 다롄의 해안가를 조차(租借: 영토를 일정 기간 빌려서 사용함)하였고 러일전쟁 후 일본이 50여 년 동안 조차하고 제2차 세계대전 후 중국에 반환되었다. 또한 고구려의 옛땅이라는 우리에게 역사적으로도 의미있는 곳이다.


그래서인지 버스 창가로 보이는 러시아 건축 양식의 건물들이 멋스럽게 들어서 있고 깨끗한 도시의 모습은 중국에 대한 나의 편견을 순식간에 바꾸어 놓았다.


그런데 창가를 통해 대련 풍경을 한참 바라보다 의문이 생겨 함께 마중 나오신 중등 체육 선생님에게 질문했다.


“그런데 거리에 왜 사람들이 보이지 않나요?”


선생님은 껄껄 웃으시며 답하셨다.


“대련 바람이 아주 매서워요. 오늘 바람이 많이 불고 추워서 사람들이 별로 안 보이는 거예요.”


그랬다. 대련 공항에서 정신없어 느끼지 못했지만, 대련은 평양의 위도와 비슷한 곳에 자리한 바람이 많이 부는 겨울이 몹시 추운 곳이었다.



구해줘~ 홈즈



학교에 도착하니 선생님들과 교사 자녀들이 우리를 환대해 주셨다.


학교는 생각보다 크고 넓었으며 푸른 잔디 운동장이 한눈에 들어왔다. 짐을 풀고 학교에서 제공해 준 점심을 먹은 후 우린 바로 집을 구하러 가야 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나의 멘토 선생님이 우리보다 한 시간 늦은 비행기를 타고 올 예정이었는데 바람 때문에 청도공항에 불시착했다는 것이다. 제일 먼저 집을 구해야 핸드폰 개통과 인터넷 설치 등 다음 절차로 진행이 가능한 상황이었다.


난감해하던 차에 다른 선생님의 멘토 선생님이 우리와 함께 부동산을 돌아보며 중국어 통역을 해주셨다. 하지만 불행히도 우리 가족과 다른 한 가족이 당일 적당한 집을 찾지 못해 호텔에서 묵어야 했다.


중국은 모든 가구와 집기들이 있는 상태로 월세를 놓는다. 그 가구와 집기들의 상태에 따라 월세 가격이 정해진다.


4인 가족생활을 고려한 마음에 드는 집은 학교에서 지원하는 주택수당보다 훨씬 비쌌다. 저렴하고 좋은 집을 찾으려니 쉽게 구할 수가 없었다. 집 때문에 여러 절차가 미뤄지고 마음은 조급하기 짝이 없었다.


다음날 좋은 집은 포기하고 일단 짐을 풀고 휴식을 할 수 있는 우리 집이 절실했다.


넓지는 않았지만 중국 생활을 오래 하신 선생님이 거주하다가 바로 앞집으로 이사하고 비어있는 복층에 방 2개 화장실 2개 거실 1개의 집으로 결정했다. 남매를 위한 방이 하나 부족했지만 어떻게든 공간을 만들어 보자고 생각하고 그 집으로 결정했다.


하지만 우린 보금자리에서의 첫 날 밤을 뜬눈으로 보냈다. 밤새 창가로 새어 들어오는 거센 바람 소리, 춘절(설날)이 지나고도 계속되는 폭죽 소리 때문이었다.


중국인들은 춘절이 포함된 2월은 거의 한 달 내내 시도 때도 없이 액땜의 의미로 폭죽을 터뜨리는데 그 문화에 대한 이해가 없었던 탓이다.


가뜩이나 주한미군 사드 배치로 한·중·미 관계가 경색된 시기라 폭죽 소리가 폭탄 터지는 소리가 아닐까 하며 불안에 떨어야 했다.


우리가 원했던 중국 생활의 시작은 안락함과는 거리가 한참 멀었다. 당연했지만 예상보다 훨씬 심각하게 나빴다. 하지만 곧 우린 주변 분들의 도움으로 중국 생활에 빨리 적응해갔다.


책상이 없어 식탁에서 공부하던 모습.(사진=최미숙 보건교사)
책상이 없어 식탁에서 공부하던 모습.(사진=최미숙 보건교사)

그때의 시절을 떠올리면 물질적으로는 부족했지만, 마음의 충만함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네 식구가 한국에서보다 더 긴밀하고 끈끈해졌던 시간이었다.


만난 지 몇 시간밖에 되지 않은 선생님들이 너도나도 물건을 빌려주시고 밥을 사주셨던 처음 느껴보는 이유 없는 도움과 배품이 있었다.


심지어 우리 남매의 나이를 미리 알고 문제집을 한가득 싸 들고 집을 방문해주신 선생님도 계셨다. 우린 직장동료지만 그곳에선 서로에게 가족이고 친척이었다.


낯선 중국 생활의 시작은 순탄하지는 않았다. 아니 3년 동안 순조롭게 진행되지 않은 일은 늘 일어났다.


하지만 도와주고 나눠주고 보듬어 주는 따뜻한 사람들 때문에 나의 3년은 추억이라는 이름 속에 늘 따뜻했고 감사한 기억으로 가득하다.


초등부 선생님들과 함께한 포틀럭 파티(potluck party).(사진=최미숙 보건교사)
초등부 선생님들과 함께한 포틀럭 파티(potluck party).(사진=최미숙 보건교사)

기쁜 일은 서로의 나눔을 통해 두 배로 늘어나고/


힘든 일은 함께 주고받음으로써 반으로 줄어든다.


ㅡ 존 포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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