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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뉴스

[그림책 에세이] 조금 일찍 어른이 된 너에게 '오빠와 손잡고'

[에듀인뉴스] 그림책에 녹아 든 인간의 삶을 어떤 모습일까. 교사 등 교육자의 교육활동뿐만 아니라 삶에 있어 그림책은 어떤 통찰을 전해줄까. <에듀인뉴스>는 그림책으로 삶을 탐구하는 교사들의 모임 <좋아서 하는 그림책 연구회>와 함께 그림책과 삶에 대한 이야기를 전한다.


김미주 서울 홍릉초 교사/ '좋아서하는그림책연구회' 운영진
김미주 서울 홍릉초 교사/ '좋아서하는그림책연구회' 운영진

2020년, 코로나 19는 우리의 생활을 송두리째 바꿔놓았다. 학교에 가는 대신 비대면 온라인 수업이 시작되었고, 아이들끼리 집을 지키고 있는 시간이 늘어났다.


아이들만 남겨두고 일터로 출근하는 부모님들의 발걸음이 얼마나 무거웠을까. 아이가 밥은 잘 챙겨 먹는지, 온종일 핸드폰 게임만 하는 건 아닌지, 제시간에 온라인 수업은 잘 듣고 있는지. 집에 남긴 자녀들 걱정으로 어른들의 이마에는 주름이 더욱더 깊어졌던 한 해였다.


온라인 수업 기간에 2학년 선생님에게서 전화가 왔다. 내가 맡은 학생 중 한 명인 우석이의 얘기를 꺼냈다.


"선생님 반 학생 중 우석이라는 학생 정말 기특하더라고요. 우석이 동생이 저희 반 학생인데요, 동생이 온라인 수업을 제대로 하지 않아서 집에 전화 해보니 우석이가 부모님처럼 동생을 돌봐주고 있더라고요."


맞벌이하는 부모님이 아침 일찍 출근하면, 우석이는 동생을 깨워 컴퓨터 앞에 앉히고 수업을 듣게 했다. 돌봐줄 어른이 없어서 우석이가 고사리 같은 손으로 끼니를 준비해 동생과 함께 해결하고 있었다.


'덜컹.' 분명 우석이를 칭찬하고 있는데 내 마음은 내려앉았다. 조그마한 덩치의 우석이는 교실에선 여느 아이와 다를 것이 없는 아이다운 아이였기 때문이다.


아이들과는 핸드폰 게임 얘기를 주로 했고, 깜빡했다며 배시시 웃으며 숙제를 제출하지 않을 때도 있었다.


웃을 땐 교실이 떠나갈 정도로 크게 웃었고, 친구와 말다툼을 하면 또르르 닭똥 같은 눈물을 흘리던 여린 아이였다.


등교 날엔 어린 동생 손을 꼭 잡고 학교에 오는 우석이를 보며 기특하다고 생각했는데, 집에서 부모님의 역할을 대신하고 있을 줄은 몰랐다.


우연히 펼친 그림책에서 우석이의 모습이 오버랩 되어 눈시울이 붉어졌던 기억이 있다. 그 그림책은 『오빠와 손잡고』이다.


그림책 '오빠와 손잡고'(전미화 글그림, 웅진주니어, 2020)
그림책 '오빠와 손잡고'(전미화 글그림, 웅진주니어, 2020) 표지.

'컴컴한 아침에 엄마와 아빠는 일하러 가. 오빠와 나는 해가 뜨면 일어나.'


오빠는 어린 동생의 보호자 역할을 한다. 고등어 반찬을 준비해 밥을 먹이고, 양치도 시킨다. 오빠는 동생이 힘들어할 때는 업어줄 만큼 힘이 세다.


노란 원피스를 입은 어린 동생은 때 묻지 않은 말괄량이이다. 길거리에 핀 꽃도, 나무도, 구름도 모두 반갑다며 인사를 한다. 동생과는 다르게 파란 모자를 푹 눌러쓴 오빠는 눌린 머리에 얼굴이 가려져 코와 입 밖에 보이지 않는다.


"오빠 학교 안 가?"


"난 학교 가기 싫어. 빨리 어른이 될 거야."


종일 동생을 돌봐야 하는 오빠가 바라보는 세상은 어떨까?


동생과 오빠가 손잡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 표현된 장면에서 오빠의 표정을 살펴보고 싶지만, 그림책에서는 오빠의 상체는 잘린 채 그려져 있다. 동생의 손을 꼭 잡고 집으로 향하는 오빠가 기특하고 고마웠으나 한편으로는 안쓰러웠다.


오빠와 손잡고 돌아온 집의 분위기가 이상하다. 재개발하는 사람들이 와서 집을 쑥대밭으로 만들었다. 동생과 오빠는 숨어서 부모님이 오기만을 기다린다. 도착한 부모님은 아이들을 찾아서 번쩍 들어 올려 안는다.


한장 한장 넘기며 읽을 때는 마음이 쓰라렸지만, 부모님의 넓은 등에 업힌 동생과 오빠를 보는 순간 조금은 안도했다.


동생을 업은 오빠의 등도 든든하게 보였었지만, 오빠를 업은 아빠의 등은 더 넓고 든든해 보였다.


마지막 장면을 보니 이 가족은 서로를 업어줄 널찍한 등이 있기에 어려운 상황을 잘 이겨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교실에선 우석이 외에도 어쩔 수 없는 상황으로 조금 빠르게 어른이 되어가는 아이들을 만나게 된다.


씩씩하게 어른의 역할을 대신하며 동생을 돌보는 우석이에게 기특하다는 말 외에도 어떤 말을 해줄 수 있을까? 조금 빠르게 어른이 되어가는 아이들에게 교사로서 어떻게 해줄 수 있을까? 쉽지 않은 고민을 한다.


『오빠와 손잡고』의 마지막 장면에서 엄마 등에 업힌 동생과 아빠 등에 업힌 오빠를 다시 한번 펼쳐보며 생각한다.


내가 교사로서 아이에게 해줄 수 있는 게 있다면 아이를 넓은 가슴으로 안아주고, 넓은 등으로 업어주는 일이 아닐까 생각한다. 아이의 앞으로의 세상은 외롭고 차가울지라도 교실 안에서는 아이처럼 순수한 마음 가득 품을 수 있도록, 아이는 조금 아이답게 지낼 수 있도록 하고 싶다.


조금은 여유롭고 편안한 마음으로 교실에서 마음껏 떠들고 웃고, 가끔은 때도 쓰고, 소리 내어 울 수 있길.


'좋아서 하는 그림책 연구회' 운영진. ‘좋아서 하는 그림책 연구회’는 그림책으로 삶을 탐구하는 교사 모임이다. '아이들 곁에서 교사도 창작하는 삶을 살자'는 철학으로 9명의 교사 운영진이 매주 모여 그림책을 연구한다. 한 달에 한 번 오픈 강연을 통해 새로운 삶의 화두를 던지고, 학교 안팎의 다양한 사람이 한 자리에 모여 교류하는 장을 마련하고 있다.
'좋아서 하는 그림책 연구회' 운영진. ‘좋아서 하는 그림책 연구회’는 그림책으로 삶을 탐구하는 교사 모임이다. '아이들 곁에서 교사도 창작하는 삶을 살자'는 철학으로 9명의 교사 운영진이 매주 모여 그림책을 연구한다. 한 달에 한 번 오픈 강연을 통해 새로운 삶의 화두를 던지고, 학교 안팎의 다양한 사람이 한 자리에 모여 교류하는 장을 마련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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