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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인의 서재 20> 좋은지 나쁜지 누가 아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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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년의 벗을 찾아

 

옛 사람들은 책을 ‘천고상우 千古尙友’ 라 했다. 천년을 사귄 벗이라는 뜻이다. 한 생애 동안 단 한 명의 벗을 갖기도 쉽지 않은데 천년을 사귄 벗이라니! 나의 좁은 인식과 지식의 범위 안에서는 짐직조차 못할 비유다. 내게 그런 벗이 있는가. 자문하면 참 서글퍼진다. 마음이 통하는 벗이야 있지만 같은 하늘 아래 살아 있음만으로 그냥 위안을 삼는 정도이니.

 

그가 읽은 책과 그가 쓴 글이 곧 그 사람이다.” 러시아의 문호인 도스토예프스키가 인간 존재의 가치와 평가에 대해 한 말이다. 인간에 대한 그의 평가에 따르면 책을 읽지 않고 글을 쓰지 않은 자는 인간으로서 가치가 없다는 뜻이니 참으로 엄혹한 평가다.

 

 

처한 상황에 따라 책을 읽을 수 없는 사람, 글을 쓰지 못하는 사람이 더 많다. 그의 표현대로라면 나는 인간으로서 최하등급에 속할 것 같다. 책을 좋아하고 읽기 위해 노력하지만 그 범위가 매우 좁은 탓이다. 글을 쓰기 좋아하지만 작가라고 불리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상태이니 더욱 그렇다.다만 책을 읽거나 서툰 글쓰기에 희망의 등불을 걸고 애쓰는 이유는 살아 남기 위한 방편이기 때문이다.

 

이 책을 고른 이유는 제목 때문이었다. 도서관 반납코너에서 고른 대어였다. 책의 제목은 사람의 얼굴에 해당한다. 순수하고 아름다운 영혼의 소유자라 할지라도 얼굴이 따라주지 못하거나 왜소한 체구를 가졌다면 일단 첫 인상부터 호감을 얻는 것은 쉽지 않다. 대부분의 인간관계에서 그렇다. 영혼이 아름다운 사람을 알아보는 좋은 눈을 가지지 못해 평생의 친구를 수십 년 후에야 발견했으니 인생의 시간을 허비한 셈이다.

 

읽어 보지 않고도 첫눈에 들어오는 책은 대부분 제목이 잘 생긴 경우였다. 외모가 번듯한 사람에게 끌리듯. 도서관의 책을 샅샅이 훑으며 책을 읽는 분에게 고마움을 느끼며 얼른 집어든 책이다. 그분의 문제점은 책마다 연필로 밑줄을 긋는 나쁜 습관이 문제이긴 하지만. 얼굴은 모르지만 같은 굵기로 반듯하게 선을 그은 모습이 일정한 패턴을 지녔다. 자신의 책도 아니면서 그런 행동을 일삼는 사람이라면 책에 대한 에의가 없음을 한탄하지만 고칠 방법이 없으니 난감하다.

 

 좋은지 나쁜지 누가 아는가?

좋은지 나쁜지 누가 아는가? 삶의 여정에서 막힌 길은 하나의 계시이다. 길이 막히는 것은 내면에서 그 길을 진정으로 원하지 않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우리의 존재는 그런 식으로 자신을 드러내곤 한다. 삶이 때로 우리의 계획과는 다른 길로 우리를 데려가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길이 우리 가슴이 원하는 길이다. 파도는 그냥 치치지 않는다.. 어떤 파도는 축복이다. 머리로는 이 방식을 이해할 수 없으나 가슴은 안다.  59 쪽

 

한 번뿐인 인생에 ‘그때 만약 ~했더라면, 내게도 공부할 기회가 주어졌다면, 정상적인 가정에서 자랐더라면’ 과 같은 가정은 의미 없는 일이다. 어둠 속에 있을 때마다 짧고 깊은 울음을 뒤로 하고 다시 일어설 용기를 낸 덕분에 지금의 나는 존재할 수 있었다. 그때는 나쁜 운명이었지만 그 나쁨 덕분에 지금의 나는 좋은 시간을, 잘 여물어가는 노년의 언덕을 걷고 있으니 인생은 새옹지마가 분명하다.

 

그러니 좋은 환경이 나쁜 결과를 가져오기도 하고, 나쁜 환경 때문에 좋은 열매를 맺는 일은 얼마든지 있다. 최고의 바이얼린을 만드는 재목은 가장 험난한 환경을 이겨낸 나무로 만든다고 하니 인생도 마찬가지리라. 그 세월 이겨낸 피눈물 나는 노력이 만들어낸 사리를 품었으니. 사람도 나무도 주어진 운명을 어떻게 이겨내는가는 그가 선택한 순간의 의지에 달렸다.

 

매장과 파종

생의 한때에 자신이 캄캄한 암흑 속에 매장되었다고 느끼는 순간이 있다. 어둠 속을 전력질주해도 빛이 보이지 않을 때가. 그러나 사실 그때 우리는 어둠의 충에 매장된 것이 아니라 파종된 것이다. 청각과 후각을 키우고 저 밑바닥으로 뿌리를 내려 계절이 되었을 때 꽃을 피우고 삶이 열릴 수 있도록. 세상이 자신을 매장시킨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그것을 파종으로 바꾸는 것은 우리 자신이다. 매장이 아닌 파종을 받아들인다면 불행은 이야기의 끝이 아니다.  97쪽

 

이제와 돌아보니 내 인생에서 가장 암흑기라고 여겼던 절망 밖에 보이지 않던 시기는 잘 견디고 나면 반드시 어떤 열매를 안겨주곤 했다. 삶의 여정에서 돌부리에 넘어져 다치고 울 때마다 나 자신을 일으켜 세운 책이 있었다. 사람에게 받은 상처를 치유해 준 것은 책이라는 도반이었다. 그는 언제나 그 자리에 있었다. 결코 배신하지 않는 믿어도 좋은 최상의 벗이었다. 매장되었다고 여기지 않고 파종되었다고 믿고 어둠 속에서도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버티게 한 빛은 책이었다.

 

인생의 겨울나무로 서 있는 지금, 인간관계의 가지치기를 단행하는 중이다. 겨울나무는 그래야 한다고 말없이 가르쳐주었으니. 노년을 향해 가는 내 나무는 이제 더 깊게 뿌리 내릴 여력이 없음을 몸은 알고 있다. 예전처럼 자유롭게 책을 볼 수 없게 된 눈. 정년 뒤에 찾아온 외손녀를 돌보는 일로 몸은 더 무거워졌으니.

 

그럼에도 내가 살아 있음을 확인하는 작업이 책을 읽는 일이고 몇 문장이라도 글을 쓰는 일이다. 무엇보다 1년 가까이 쉬어 버린 글쓰기는 자존감마저 끌어내려서 다시 자판 앞에 앉으려고 몸부림치는 중이다. 혼자만 읽고 써도 되는 일을 굳이 지면에 드러내는 것이 다소 부끄러운 일이다.  탁월한 글솜씨가 아님을 스스로 인정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누군가에게 보여지는 글을 써야 좀더 매끄럽게 문맥을 다듬게 되고 더 긴장하게 된다. 더 생각하여 여러 번 퇴고를 하다보면 더 좋은 문장이 튀어나오는 행운이 찾아오기도 한다. 이것은 자판이 주는 선물이다. 어깨가 아프고 등이 당기는 고통의 댓가라서 수고한 만큼 얻는 셈이다.

뿐만 아니라 내가 책에서 얻은 열매를 누군가와 나누는 선순환이 이루어지니 그 또한 행복한 나눔이 아닐까.

 

임어당은 “책을 읽지 않는 사람은 시간적 공간적으로 자기 세계에 감금되어 있다. 일정한 틀에 박혀 있는 그가 일상에서 접촉하는 것은 소수의 知己일뿐이므로 보고 듣는 것이 한정되어 있다.”고 했다. 참으로 맞는 말이다. 요즈음처럼 코로나 19 상황에서는 더욱 그렇다. 책마저 읽지 않는다면 앞뒤가 꽉 막힌 사람이 되는 데는 채 1년도 걸리지 않으리라. 서점이나 도서관을 자유롭게 갈 수 없었던 지난 해는 그야말로 암흑기였다.

 

여전히 책은 내 인생의 도반이자 가장 훌륭한 선생님이다. 언제든 기대어도 좋은 최상의 벗이다. 책을 읽을 수 없다면 얼마나 슬픈 노년일까 생각하면 두렵다. 내게 죽음은 바로 책을 읽을 수 없는 날이 될 것이다. 진심을 담은 한 문장을 쓸 수 없는 날을 생각하면 두렵다. 외손녀를 돌본다는 것도 변명일 뿐이다. 하루 단 10분이라도 짬을 내어 책을 읽고 글을 쓰는 습관을 들이면 되는 것을.

 

오늘, 그대의 진실한 한 문장은 무엇인가

 

진실한 한 문장

글이 써지지 않거나 미래가 불안할 때마다 헤밍웨이는 옥탑방 창가에 서서 파리의 지붕들을 내려다보며 자신에게 말하곤 했다.

“걱정하지마. 넌 지금까지도 늘 글을 써 왔고 앞으로도 쓸 거야. 네가 할 일은 오직 진실한 한 문장을 딱 한 줄만 쓰는 거야. 네가 알고 있는 가장 진실한 한 문장을 써 봐.” 222쪽

 

누군가의 책을 읽는 것은 내 삶을 긍정의 힘으로 무장하기 위함이다. 나는 찾아내지 못한 책의 산맥을 오르내리며 작가가 수확한 알곡을 큰 힘 들이지 않고 얻을 수 있으니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진실한 한 문장’이 그랬다. 그것은 1년 가까이 책을 놓고 글도 쉬어버린 나에게 희망의 빛이 되기에 충분했다.

 

결정적인 것은 인터넷언론사에서 걸려온 전화였다. 중단하고 있던 기사를 계속해 주기를 바라고 있었다. 나이도 있고 현직에서 떠났으며 외손녀를 돌보느라 지쳐 있었기에 글쓰기는 포기 상태였다. 그 시간들이 얼마나 무료했던가. 좋아하는 일을 할 수 없는 육신의 고단함을 핑계로 나는 정신적으로 늙어가고 있었으니.

 

작가 류시화는 헤밍웨이의 '진실한 한 문장' 이 행운의 부적이라고 썼다. 나 또한 이 책에서 수확한 최고의 열매다. 이제는 잠 자기 전에 오늘의 진실한 한 문장이 무엇인지 스스로에게 물으며 잠드는 습관을 들이는 중이다. 진실한 한 문장을 쓰기 위해서는 진실한 하루를 살아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가면을 쓰고 거짓으로 하루를 살고서 어떻게 진실한 문장이 나오겠는가! 글이 곧 그 사람이 되는 마법의 한 문장 덕분에 새벽 잠에서 깨어나 행복한 글쓰기 중이다. 그리고 오늘 나는 진실한 하루를 살아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