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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게 주인인데, 가게 주인이 아니다

편의점 5만 개의 나라

구멍가게(조그맣게 차린 가게)가 많던 예전과 달리 지금은 전국 어딜 가더라도 같은 가게를 만나요. 동네 외관이 싹 달라졌. 아니, 싹 같아졌습니다. 구멍가게나 슈퍼마켓이 있던 곳엔 편의점이 자리 잡았어요. 그런데 정말 이상하게도 그 편의점 옆에 같은 물건을 파는 다른 편의점이 있죠. 그 옆에는 또 다른 편의점이 생기고요. 예전 골목에서는 쉽게 볼 수 없던 풍경입니다. 1989처음 문을 연 편의점은 2020년 말 기준으로 전국에 5만 개가 넘었어요. 이 가운데 48,000여 개가 5개 브랜드죠. 단순하게 말하면, 수만 명이던 구멍가게 사장님은 사라지고 5개 기업이 동네 사람들의 생필품을 책임지는 셈입니다.



편의점에는 구멍가게에서 팔지 않는 것이 가득해요. 도시락에 과일에 와인에 없는 게 없죠. 11, 21 등 서비스도 다양합니다. 택배 업무도 가능하며, 세탁 서비스가 되는 곳도 있어요. 경쟁력이 떨어지는 기존 가게들은 문을 닫을 수밖에 없죠. 대한민국에서 편의점이 1개에서 1만 개가 되기까지 18년이 걸렸는데(1989~2007), 11년 만에 1만 개에서 4만 개가 되었습니다(2007~2018).

동네 빵집은 기업이 운영하는 베이커리 프랜차이즈 브랜드(쉽게 말해 빵집 가맹점)바뀌었어요. 파리바게뜨 1호점이 1989년에, 뚜레쥬르 1호점이 1997년에 생겼으니 1990년대 초중반까지도 프랜차이즈 빵집이라는 말은 낯설었죠. 그런데 파리바게뜨와 뚜레쥬르 가맹점이 2018년 기준으로 전국에 4,684개나 퍼졌습니다.

골목 곳곳에서 보이는 프랜차이즈 매장은 얼핏 자영업자가 체계적으로 사업을 하는 것처럼 비쳐요. 과연 그럴까요? 현대사회에서 과거 형태의 자영업자는 점점 사라지고 있습니다. 자영업자로 분류되는 경제활동인구가 통계적으로 확연히 감소했다는 의미가 아니라, ‘혼자 힘으로 경영하는 사업자라는 본래 뜻에 들어맞는 자영업자를 이제는 찾아보기 힘들다는 말이죠. 이게 무슨 의미냐고요?


주인이 아무것도 결정할 수 없다

장사가 체질이든 아니든 시작하려면 일단 돈이 있어야 합니다. 편의점이든 치킨집이든 커피전문점이든, 그것이 프랜차이즈라면 가맹비·교육비 등 여러 비용이 발생해. 창업에 들어가는 비용을 주인 스스로 조절하는 건 불가능하죠.

분명 자영업자라는데,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습니다. 테이블 개수부터 메뉴까지, 장사하는 당사자의 의견은 전혀 반영되지 않아요. 주인은 본사의 방침을 수행하는 사람에 불과합니다.

돈을 벌지 못하면 빨리 사업을 정리해야 하건만, 계약 해지 위약금을 걱정해야 하는 프랜차이즈 가맹점주들에겐 그것마저 쉽지 않습니다. 주인이 가게를 마음대로 정리할 수 없다? 20~30년 전이라면 상상하기조차 힘든 일이었죠.


문제는 이렇게라도 먹고살아야 하는 사람들이 끊임없이 등장한다는 데 있어요. 국의 경제활동인구 대비 자영업자 비율은 무급가족종사자까지 포함해서 25.1%,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7위로 높은 수준입니다(2018년 기준). 물론 이 수치는 40.8%였던 1989년에 비해 낮아진 것이지만, 여전히 경제활동을 하는 4명 가운1명이 자영업으로 생계를 꾸려 나간다는 점은 심히 걱정스러워요.

한국은 자영업자가 많이 등장할 수밖에 없는 나쁜 구조를 지녔습니다. 취업이 어렵고, 취업한들 정년 보장이 거의 불가능하죠. 취업이 어려우니 이른 나이에 창업을 생각하게 되고, 아직 부양가족이 있는데 퇴직을 해야 하니 계획에도 없던 가게 주인이 됩니다. 이들은 경험이 없으니 막막하고, 또 경쟁자가 많으니 불안해요. 바로 그때 프랜차이즈브랜드는 위험 부담을 줄이는 지름길로 여겨지죠. 그래서 어떤 것도 마음대로 할 수 없는 가게 주인의 삶을 살아가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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