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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4.25
매거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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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단군신화와 홍익인간,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지니는가?

 


대한민국의 「교육법」 제1조에 교육의 목적을 이렇게 진술해 놓고 있다. 즉, 


“교육은 홍익인간(弘益人間)의 이념 아래 모든 국민으로 하여금 인격을 완성하고 자주적 생활능력과 공민으로서의 자질을 구유하게 하여 민주국가 발전에 봉사하며 인류공영의 이상실현에 기여하게 함을 목적으로 한다.” 


이 교육법은 1948년에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된 그 다음 해에 공포된 이래, 교육에 관한 한, 헌법 다음가는 법률로서의 권위를 지니는 것이며, 제1조는 제도적 교육의 포괄적 목적을 공식적으로 천명한 것이다. 이 법조문에 나타난 “홍익인간”이라는 말은 한국교육의 이념을 표현하는 것으로서 적어도 상징적 의미를 지닐 뿐만 아니라, 한국인이 하나의 민족국가를 형성하고 수호해 온 정신적 응집의 바탕을 함축한 이념적 표상으로 그 의미를 지니고 있다. 


그러나 이 말의 의미론적 타당성, 그리고 수사학적 적절성의 문제를 두고 교육계에서는 가끔 논란이 있어 왔다. 그것은 대개 두 가지의 이유 때문이었다. 하나는, 그 말이 제도적 교육의 이념을 표현하는 데 충분한 포괄성을 지니는 것 같기는 하지만, 교육의 제도와 활동을 명시적으로 주도하거나 지배할 만큼의 명확한 방향과 의미를 시사해 주지 않는 한갓 추상적 표현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그 말이 하나의 신화에서 나온 고사적(故事的) 표현으로서 현대적 사고와 상황에 적절치 않다는 것이다. 그러나 지금까지 「교육법」에 수차례의 부분적인 손질이 있었지만, 교육의 이념과 목적을 표현한 제1조는 조금도 수정되지 않고 그것의 공식성을 유지해 왔다.


“홍익인간”이라는 말은 자구적(字句的)으로 해석하면 “세상에 널리 이로움을 가져다 주는 인간” 혹은 “널리 인간세계를 이롭게 한다” 는 의미를 지닌다. 그런데 이 말은 한민족의 시조로 숭앙받고 있는 단군(檀君)--혹은 단군왕검(檀君王儉)--에 관한 신화에서 유래한 것이다. 일연(一然)의 「삼국유사(三國遺事)」, 이승휴(李承休)의 「제왕운기(帝王韻紀)」 등의 역사서는 한국의 고기(古記)와 중국의 위서(魏書) 등을 인용하여 고조선의 건국에 관한 기사를 싣고 있고, 그 내용의 서술 가운데 “홍익인간”이라는 표현이 있다. 그러나 이 말과 더불어 한국의 고대사회에서 이어져 오는 체계적이고 이론적인 신념체제가 형성되어 있었던 것은 아니다. 이 말은 단군신화를 역사서에서 언급한 시기부터 비로소 다소 의미 있게 사용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교육이념의 공식적 표현으로 사용된 것은 상해에 있었던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건국강령」 (1935) 속에 이 말을 담은 이후의 일이다. 그 강령의 제1장 총강 2항에 이런 표현이 있다.


우리나라의 건국정신은 삼균제도(三均制度)에 역사적 근거를 두었으니 선민(先民)이 명명(明命)한 바 수미균평위(首尾均平位)하면 흥방태평(興邦泰平)하리라 하였다. 이는 사회 각 계급의 지력과 권력과 부력의 향유를 균평하게 하며 국가를 진흥하며 태평을 보유(保維)하라 함이니 홍익인간과 이화세계(理化世界)하자는 우리 민족이 지킬 바 최고공리(最高公理)이다. 


그 후 1949년에 교육법이 제정될 때 다소 논란이 있었으나, 임시정부의 「건국강령」에서 언급한 “홍익인간”이라는 말을 교육이념의 공식적 표현으로 정하였다.


단군신화를 그대로 왕조사인 것처럼 해석할 수는 없다. 그러나 단군신화는 한민족이 외세의 작용으로 수난을 당하고 위기에 처할 때마다 한 민족으로서의 결속을 요구하는 구심체의 역할을 하였다. 적어도 민족의 근원에 대한 공동의 의식을 소유하게 하는 근거를 제공하였으며, 민족공동체의 정조(情操)를 형성하는 정신적 배경으로 작용한 만큼의 의미와 가치를 지니는 것만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이 신화로 말미암아 한국인은 한 민족으로서의 역사적 발전을 이루어 온 좌표상의 원점을 확보한 셈이다. 신화란 한 개인의 창작이 아니라 그 신화를 소유한 민족의 집단적 유산이다. 그것은 또한 그 민족이 무의식적 경지에서 지닌 혼(魂) 혹은 정신세계의 구현이기도 하다. 신화를 통하여 그 민족은 그들의 삶에 대한 독특한 통찰력과 사유의 형식을 드러내며 자의식의 기반을 구축한다. 그런 점에서 단군신화는 고대의 한민족이 지녔던 사회적-문화적 경험의 묵시적 심층을 보여주며, 민족적 특성과 이념적 바탕을 그 원점의 위치에서 파악할 수 있게 하는 소박하지만 유의미한 자료를 제공한다.


단군신화는 한민족의 기원을 설명하고 민족국가 창건의 정신을 표현하고 있다. 고기 에 따라서 다소 차이는 있으나, 그 내용은 대개 이러하다. 본래 상제인 환인(桓因)의 서자인 환웅(桓雄)이 자주 지상에서 살고 싶다고 간청하자 환인이 마침내 이를 허락하였다. 환웅은 태백산(지금의 백두산)에 내려와 360 여종의 세상일들을 맡아 홍익인간의 정신으로 세상의 사람들을 다스리고 교화하였다. 어느 날 곰과 호랑이가 나타나 환웅에게 다가와 사람으로 만들어 줄 것은 요청하였다. 환웅은 그들에게 신령스런 쑥 한줌과 마늘 스무 쪽을 주면서 그것만을 먹으면서 100일 동안 햇빛을 보지 않고 지내면 사람이 된다고 일러 주었다. 곰은 그것을 받아서 먹고 근신하여 21일만에 한 여자로 되었으나, 호랑이는 참지 못하여 사람으로 되지 못하였다. 웅녀(熊女)는 환웅에게 아이를 가지게 해 달라고 기원하자, 그가 스스로 잠시 거짓 변신하여 그녀와 혼인하였다. 그리하여 낳은 아이가 바로 단군왕검이다. 그는 왕이 되어 평양성에 도읍을 정하고 나라를 「조선」이라고 하였다.


천상에 살던 환웅이 인간 세상에 살기를 원했고, 곰과 호랑이가 인간으로 되기를 원했다는 것에서, 인간이 이미 지상에 살고 있었음을 암시하고 있다. 그런 점에서 우리는 단군신화가 일종의 창조 신화는 아니라고 보게 된다. 그리고 천상의 신이나 지상의 동물들도 인간적 삶의 형태를 부러워하였다는 점에서 인간의 존재적 가치를 자랑스러운 것으로 묘사하였다. 또한 신화의 전수자는 민족의 기원과 나라의 질서가 하늘로부터 왔다고 함으로써 고조선의 신성함과 한민족의 도덕적 탁월성을 자랑하였다. 단군은 천상의 신격적(神格的) 생명과 웅녀의 속세적 성품을 겸비하고, 초인적 능력과 인간적 근신의 덕을 상속받은 지도자로 묘사되었다. 그리고 그는 지상의 지배적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해서가 아니라, 홍익의 의지를 실현코자 하는 도덕적 동기와 개척적 정신을 소유한 존재로 인식되었다. 단군신화는 천상의 생명과 지상의 생명이 결합하여 새로운 인간 생명을 탄생시킨 것이다.


단군신화가 「삼국유사」나 「제왕운기」 등의 사가들에 의해서 다시 기록될 때까지 몇몇의 고기를 통하여 전해진 것을 보면, 우리는 그것이 고대 한국인의 정신사적 내용을 이루어왔다는 것을 짐작하기가 어렵지 않다. 단군신화는 학문적 내용도 아니고 사상적 체계도 아니지만 고대 한국인의 원초적 사상과 관념을 담고 있다. 이남영 교수는 이렇게 말하였다. 즉, 신화가 신에 관한 이야기라고 해서 인간적 사고와 고립된 영역으로 간주할 수는 없다. 사고내용의 표현방식이 자각을 바탕으로 한 반성적, 추상적 계기가 없을 뿐, 그 이전의 심층적 소재로서 바탕을 이루고 있다. (이남영, 사상사에서 본 단군신화, 한국사상의 심층연구, 도서출판 우석, 1982, p. 64)


홍익인간의 이념은 단군신화에서나 건국강령에서나 교육이념이면서 동시에 정치이념이었다. 고대 중국의 경우에도 그렇듯이 동양의 고대사회에서 정치이념과 교육이념은 구별되지 않는다. 홍익인간의 원초적 사상은 한민족이 후에 토속적인 무속신앙을 지키거나, 인도의 불교, 중국의 유교와 도교 등을 수용하여 그들의 일상적 삶을 영위하는 과정에서, 그리고 나라를 세우고 지키는 정치적 제도의 운영에서 사상적 통합의 핵을 제공하였다. 그 이념과 더불어 한민족은 민족적 일체감을 지니고자 하였으며, 그 이념과 더불어 외침(外侵)과 위기(危機)를 이기고자 하였다. 그리고 그 이념과 더불어 나라를 이루고 평화로운 삶을 추구하고 후세를 교육하고자 하였다. “홍익인간”이라는 말은 한국인의 원초적인 정신적 유산을 함축한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언급하였듯이, 하나의 국가적 공동체가 만들어질 때, 두 가지 조건이 있다. 즉 (1) 하나는 구성원들이 복종하는 규칙과 질서의 체제 자체가 어떤 가치를 지향하느냐는 것이고, (ii) 다른 하나는 그들이 그 체제에 실질적으로 복종하느냐는 것이다. 이러한 요건에 비추어 보면, 홍익인간의 이념은 바로 그 자체로서 나라를 세운 하나의 포괄적인 가치체제를 함의한 것이다. 그리고 그 이념은 한 민족의 역사 속에서 같은 언어와 습속을 지키고, 함께 생존하고 염원을 추구하면서 살아온 민족공동체의 중핵적 가치로서 지켜야만 했던 전통적 과업이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원천적으로 서구적 언어인 민주주의를 익혀 오늘의 국가를 만들었다기보다는, 이미 유구히 존속해 온 민족적 공동체가 지녀 온 홍익인간의 이념을 오늘의 근대적-현대적 민주주의의 맥락에서 어떻게 해석하고 이해하고 발전시킬 것인가의 과제가 하나의 정신적 유업으로 주어져 있을 뿐이다. 홍익인간의 이념은 단순히 오늘의 교육제도라는 조경물의 전면에 부착하는 “장식적 간판”이 아니다. 뜯어내고 다른 것으로 붙이고 할 성질의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그 이념은 우리의 민족적-교육적 전통의 표상이며 현재와 미래의 삶에 영구히 새롭게 반추하면서 익히고 가르치고 더욱 세련된 담론으로 이어야 할 주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