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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마음의 언어’를 되찾을 때 〈미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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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달 개봉하는 수많은 영화들 속에서
더 재밌게, 더 뜻깊게 볼 수 있는 영화를 찾는 우리.

교양도 쌓고 인문학적 소양도 쌓을 수 있는
영화 어디 없을까?

그래서 준비했다!
고교독평이 소개하는 이달의 영화!


미나리는 자신들의 언어로 말하는 법을 배우는 어느 가족에 대한 영화입니다. 그 언어는 영어나 어떤 외국어보다도 깊습니다. 이것은 마음의 언어입니다.” 지난 228일 온라인으로 열린 제78회 골든글로브상 시상식에서 외국어영화상을 받은 정이삭 감독의 수상소감이이에요.

미나리는 한국계 미국인 감독이 연출하고 미국 회사가 제작·배급한 영화임에도, 영화 속 대사의 50% 이상이 영어가 아니라는 이유 때문에 외국어영화로 분류돼 작품상 후보에 오를 수 없었어요. 작품상 트로피 대신 딸을 품에 껴안은 정이삭 감독은, 다 함께 마음의 언어를 배워 가자는 우아한 응답으로 성난 관중에게 위로를 건넸죠.

미국으로 건너간 한국인 이민자 2세대인 정이삭 감독이 자신의 유년 시절과 부모님, 할머니를 회상하며 만든 자전적 작품 미나리는 지난해 미국 최대 독립영화제인 선댄스영화제에서 관객상을 수상하며 북미 관객의 뜨거운 호응을 받은 바 있습니다. 타국인의 이민 정착기에서 미국 관객들은 무엇을 발견했기에 아낌없는 눈물과 웃음, 박수를 보냈을까요?
<미나리> 스틸컷
광활한 땅과 아늑한 유년의 집

1980년대 아메리칸드림을 꿈꾸며 미국으로 떠난 한국인들이 있었어요. 미나리의 젊은 부부 제이콥(스티븐 연 분)과 모니카(한예리 분) 역시 모종의 이유를 안고 미국에 정착했으나, 대도시에서 적응하지 못하고 아칸소주의 시골로 이주합니다. 미시시피강 부근 평야에서 농업에 도전하는 제이콥은 어떻게든 자기만의 성공신화를 일구겠다며 투지를 불태워요. 하지만 인적 드문 산자락 아래 덩그러니 서 있는 바퀴 달린 집은, 모니카를 매일 근심하게 만들죠.

이국에서 피로를 느끼며 마음이 닳아 버린 부부가 자주 다투는 사이, 의젓한 큰딸 앤(노엘 조 분)과 심장병을 앓는 막내 데이빗(앨런 김 분)의 마음도 심란해져요. 남매는 폭풍우라도 몰아치면 집이 통째로 날아갈까 걱정되는 삶에 적응해야만 하죠. 이주민에게 주어진 과제가 가족의 행복을 집어삼킬 것 같던 어느 날 구원자처럼 데이빗의 할머니 순자(윤여정 분)가 맛있는 고춧가루와 멸치, 미나리 씨앗을 한 움큼 들고 아칸소에 도착합니다.

<미나리> 스틸컷

정이삭 감독은 데이빗과 비슷한 유년 시절을 보낸 뒤 대학에서 생물학을 전공했어요. 그는 미나리에서 한국계 미국인 손자의 마음과 농사꾼의 눈으로 세상을 묘사하죠. 미나리에서 미학적으로 가장 도드라지는 스타일은 광각렌즈와 애너모픽렌즈를 통해 펼쳐지는 탁 트인 경치입니다. 미나리의 화면은 드넓은 털사의 초원과 강렬한 낮의 햇살, 넉넉한 밤의 어둠을 온몸으로 맞아들이는 듯해요.

반면에 살림살이가 어떤 모양새일지 도무지 가늠하기 힘든 트레일러하우스 안으로 들어가면 1970·1980년대 한국 주택 같은 아기자기한 면면이 펼쳐집니다. “미국 애들은 다른 사람하고 방 쓰는 거 싫어할 텐데.”라며 손자와 같이 자는 걸 걱정하는 순자에게 모니카가 쟤는 한국 애야.”라고 답하듯, 미나리에서 데이빗의 눈높이로 묘사되는 좁은 집 안은 친숙하고 정겹기 그지없어요. 이처럼 미나리가 보여 주는 집 안팎의 과감한 대비는, 영화와 관객을 잇는 비밀스러운 끈으로 기능해요.

<미나리> 스틸컷

미나리의 풍요로운 감각은 트레일러하우스와 아칸소의 평야를 경험해 본 적 없는 이에게도 보편적인 향수를 불러일으킵니다. 유년의 기억 속 서랍장은 얼마나 육중해 보였으며 풀들은 얼마나 높고 무성했던가요. 부서지는 햇살과 귀를 찌르는 풀벌레 소리는 얼마나 강렬했던가요. 장엄한 서사시의 리듬으로 세계를 비추는 미나리를 본 관객들은 저마다 사소하고 개인적인 감각의 파편을 모아 영화에 감응하게 됩니다.

<미나리> 스틸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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