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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듀팡 교육환경]‘리얼돌 체험방’보다 더 무례한 유해환경 - 서민수 경찰관의 요즘 자녀


아이의 성장에 있어서 환경은 매우 중요합니다. 부모라면 누구나 자녀가 좋은 환경에서 성장하기 원하지만, 적합한 환경을 선택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직장을 고려해야 하고, 돌봄도 신경 써야 합니다. 더구나 아이 교육에 최적화된 환경을 선택하고 싶어도 녹록지 않죠. 어쩌면 부모는 최적화된 교육환경을 선택하지 못해 최적화된 부모라도 되려고 노력하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디지털 환경에만 최적화되어 가는 자녀를 보고 있으면 한숨만 나오니 어쩌면 좋을까요? 자녀의 디지털 기술력을 따라갈 수 없을 뿐 아니라 스마트폰으로 학습하는 데이터 수량 또한 어마어마해서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닙니다. 환경이 아이에게 미치는 영향을 모르는 건 아니지만 딱히 뾰족한 방법이 없어 그냥 자녀를 믿어볼 수밖에 없다는 부모도 많습니다.

저는 부모님들에게 “부모님 중에 자녀를 심야 시간에 유흥가가 밀집한 골목길에 홀로 둘 수 있는 분이 계십니까?”라고 묻곤 합니다. 그럼 부모님들은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나?’라는 표정으로 손사래를 치죠. 그럼 저는 다시 부모님들에게 “그런데 어째서 부모님들은 자녀가 심야 시간에 유흥가보다 더 위험한 사이버 공간을 마음대로 활보하도록 내버려 두시나요?”라고 묻습니다. 클릭 한 번이면 사이버 도박을 할 수 있고, 클릭 한 번이면 성 착취물과 그릇된 정보들을 편리하게 마주할 수 있는 곳이 바로 사이버 공간인데 말입니다. 최근에는 아이들에게 무엇이든 대신 구매해주는 소셜미디어와 사이트까지 등장해 아이들이 부족함 없이 지내고 있습니다. 부모가 이해하지 못할 상황들이 아이 주변에서 버젓이 일어나고 있던 셈입니다.

최근 ‘리얼돌 체험방’ 논란이 뜨겁습니다. 돈 4만 원이면 한 평 남짓한 방 침대에서 여성의 모습을 본뜬 인형과 뒹굴 수 있는 곳입니다. 우리 동네에 이런 곳이 생긴다고 하니 부모는 기가 찰 노릇이지요. “아이들이 뭘 보고 배우겠나?”라는 소리가 나오는 것도 당연합니다. 그동안 우리는 ‘방’의 변천 과정을 똑똑히 목격한 장본인입니다. 오래전부터 사랑방과 다락방 그리고 공부방과 만화방은 우리에게 휴식과 위로는 물론 가족과 사람을 연결하는 꽤 끈끈한 정이 가득했던 공간이었죠. 하지만 몇 년 전부터 방의 이미지는 다른 모습으로 바뀌었습니다. 오히려 부모와 자녀를 위협하는 방이 되었죠. 십수 년 동안 방의 이미지는 사랑방과 다락방에서 안마방과 전화방으로 바뀌었고, 다시 키스방에서 지난해에는 ‘N번방’으로 바뀌었습니다. 그리고 다시 우리 앞에 ‘리얼돌 체험방’이 등장했죠. 부모가 ‘리얼돌 체험방’을 거부하는 이유는 당연합니다. 우리가 안마방을 막지 못했기 때문에 키스방이 등장했고, 키스방을 막지 못했기 때문에 결국 N번방이 등장한 걸 모를 리 없기 때문이죠. 또 ‘리얼돌 체험방’을 허락하면 그다음 방은 또 어떤 모습으로 등장할지 두려울 수밖에 없습니다. 결국, 부모가 걱정하는 건, 이 모든 방을 고스란히 우리 자녀가 감당해야 한다는 사실이죠.

한때 대한민국에서 ‘○○사회’ 열풍이 불은 적이 있습니다. 한병철 교수가 저술한 ‘투명 사회’에서 시작해 ‘피로 사회’를 거쳐 최근에는 중앙대 김누리 교수가 ‘무례 사회’라는 용어를 들고나왔습니다. 김누리 교수는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무례한 사회에 둔감한 대중을 꼬집으며 “대중들 또한 무례에 둔감한 것 같다. 그렇지 않다면 수많은 대중이 이용하는 지하철에 저런 파렴치한 광고가 버젓이 걸릴 수 있겠는가”라고도 했죠. 어쩌면 저 또한 김누리 교수의 독설에 동의할 수밖에 없습니다. 지금 우리 자녀를 둘러싼 환경을 보면 무례하기 짝이 없죠. 아이들이 좋아하는 축구선수 손흥민 뉴스를 보고 있으면 그 옆에 성인만화 배너 광고가 함께 등장합니다. 유명 택배회사 피싱 문자가 이제는 아이들에게까지 접근했고, 심지어 아이들이 담배나 술을 구매하고 싶으면 돈 몇천 원에 친절한 택배까지 해주는 어른들이 줄을 서고 있습니다. 게다가 최근에는 처방기록을 공유할 수 없다는 걸 알고서 약국을 전전하며 암 투병에 사용되는 마약류 약품까지 소비하고 있습니다. 그야말로 우리 사회가 이토록 무례한 적이 있었나 싶습니다.

흔히들 사회 환경의 중요성을 두고 ‘깨진 유리창의 법칙(Broken Windows Theory)’을 예로 들곤 합니다. 도로변에 세워진 차량의 깨진 유리창 하나를 방치하는 것만으로도 사람들에게 다른 유리창을 깨게 만든다는 이론이죠. 자녀에게 적용한다면 해로운 환경은 곧 자녀를 무감각하게 만들고 이를 정당화시켜 범죄나 비행 같은 행동으로 이어지게 만든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이렇게 되면 부모는 아이를 둘러싼 환경, 즉 ‘리얼돌 체험방’ 같은 오프라인 환경뿐만 아니라 오프라인이 온라인과 맞닿아 있다는 공식에 대해서도 주목해야 합니다. 그래서 부모는 자녀를 둘러싼 환경을 오프라인으로만 단정해선 안 되고 사이버 공간으로 뻗칠 영향까지 예측할 필요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사이버 도박과 성 착취·성매매가 그랬던 것처럼 ‘리얼돌 체험방’ 또한 자녀를 끌어들이기 위해 아이들이 활동하는 사이버 공간에서 수없이 전단지를 뿌려 댈 게 뻔하기 때문입니다.

이제 유해환경에서 아이를 지키는 방법을 고민해보죠. 일단, 부모가 자녀를 둘러싼 유해환경을 직접 목격하는 건 쉽지 않습니다. 아이의 스마트폰을 샅샅이 뒤지기 전에는 불가능하죠. 그렇다고 아이와의 관계 때문에 마음대로 할 수도 없습니다. 결국, 아이가 사이버 공간에서 유해환경을 식별할 수 있는 변별력을 갖출 수 있도록 돕는 게 최선으로 보입니다. 우선 다음 내용을 아이에게 공유해주세요. 현재 범죄자들이 사이버 공간에서 유해환경을 만들어 놓고 아이에게 어떻게 접근하는지를 모아봤습니다.
첫 번째로 사이버 공간에서 범죄자들이 접근하는 방식 중 하나는 철저한 ‘언어 게임’입니다. 범죄자들은 자녀에게 친숙한 언어로 접근합니다. 범죄자들이 아이들을 쉽게 끌어들이려면 아이들이 쓰는 언어를 사용해야 한다는 걸 너무 잘 알고 있습니다. 대표적인 게, 대리 구매를 ‘댈구’, 대출을 ‘대리 입금’, 포커, 바카라 대신 ‘사다리, 달팽이’ 같은 언어를 사용하죠. 두 번째 접근방법은 ‘약자 게임’입니다. 소셜미디어를 통해 또래 관계가 힘들거나 친구가 별로 없는 아이를 선택합니다. 그러면서 아이의 의견과 생각에 무조건 동조해주며 호감을 얻죠. 이렇게 신뢰가 만들어지면 나중에 본색이 드러나고 아이는 빠져나오기 쉽지 않습니다. 세 번째는 ‘공범 게임’입니다. 쉽게 말해, 아이를 범죄자로 만드는 게 목적입니다. 도박이나 범죄자에게 돈을 빌리고 성 착취물을 사는 행위를 통해 아이를 범죄자로 만들게 됩니다. 결국 아이들은 자신이 범죄자라는 이유로 피해를 보고도 신고하지 못하고 범죄자의 요구대로 따를 수밖에 없는 상황에 놓이게 되죠. 마지막으로 ‘협박 게임’입니다. 아이들은 범죄자들이 만들어 놓은 유해환경에서 마음껏 소비하고 더 이용할 게 없으면 아이들의 개인정보를 이용해 인격과 성을 착취하는 대상으로 삼습니다. 여기에 사용되는 게 바로 ‘협박’입니다.

얼마 전, 한 언론에서 한국 청소년들의 ‘디지털 정보 문해력’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제 학업성취도평가(PISA)’에서 바닥권을 기록했다고 보도했습니다. 예상했던 일이지만 평가 보고서를 들여다보니 매우 심각한 수준이더군요. 범죄자들이 유해환경을 만들어 놓고도 당당한 이유는 어쩌면 아이들의 디지털 문해력 수준과 관련성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아이가 사이버 공간에 출입하는 것을 막을 수 없다면 아이가 사이버 공간에서 어떻게 유해환경을 식별할 수 있을지 그 변별력을 갖게 만드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것은 반드시 부모의 관심과 노력이 전제되어야 한다는 걸 잊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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