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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듀팡 매거진] "교실 창가에서 - 아름다운 인연"


반가운 목소리는 옛적으로 기억을 되돌리기에 충분했다. 선생님이 되었나 싶었는데 영양사가 되었단다. 명랑한 성격도 예전과 다름없는 것 같다. 결코 기억에서 지워지지 않는 삼십여 년 만의 스승과 제자의 만남은 비록 온라인이었지만 진한 그리움의 발산이었다.

 

고마운 나의 제자, 은영이

 

1981년 5월 첫날, ‘복사꽃 피는 곳은 어디나 고향 같다’란 시구를 떠올리며 부임한 곳은 의성군 금성초등학교였다. 콘크리트 벽, 아스팔트의 거리와는 전혀 다른 농촌의 봄 풍경은 새내기 선생님을 설레게 했다. ‘일학년 일반’ 교실, 마흔여덟 명의 아이들이 옹기종기 모여 앉아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초롱초롱한 눈망울은 그저 귀엽고, 재잘거리던 소리는 아름다운 선율의 합창이었다. 
 

은영이는 키가 작음에도 일학년 일반 대표 릴레이 선수였고 똑똑했다. 세월이 흘러 은영이가 5학년이 되던 해, 웅변 지도를 담당했다. 처음 맡은 업무라 5월 대회의 출전을 앞두고 걱정이 태산 같았다. 우선 은영이를 연습시켜 대회에 내보내기로 정하고 웅변 책 몇 권을 읽어가며 원고 한 편을 완성했다. 독학으로 제스처, 높낮이 등을 익혔다. ‘궁즉통(窮則通)이라더니….’ 완성된 원고로 학교에서 가르치면 복습은 집에서 아버지가 시켜주셨다. 한 가지를 가르쳐 주면 열 가지를 아는 제자가 고마울 따름이었다. 
 

‘세계의 기둥이 되자’란 연제로 첫 번째 웅변대회에 참가하는, 긴장한 은영이의 초롱초롱한 눈망울은 지금도 생생하다. 그 대회를 발판으로 경상북도 대회까지 출전해 졸업 때까지 많은 상을 받았다. 제자를 잘 만난 덕분에 나는 더 바빠졌고 웅변 지도 잘하는 선생님으로 불렸다.

 

제자 몸보신용 민어를 내온 스승

 

남편에게는 잊지 못할 은사가 계신다. 선생님은 제자의 어려웠던 가정 형편을 알고 앞길을 열어 주셨다. 그는 입학금이 없어서 대학 진학을 포기하려 했으나 은사님의 도움으로 무난히 대학을 갔다. 남편은 1980년에 경상도에 와서 근무했다. 영호남 지역감정이 최고로 나쁠 때라 주위에서 하필 전라도 사람하고 혼인하느냐고 말렸지만, 누구도 우리의 고집을 꺾을 수는 없었다. 
 

남편은 선거철만 되면 들먹이는 지역감정도 극복하고 세월의 더께만큼 어려움 속에서도 꿋꿋하게 교장 승진을 했다. 어려움 속에서도 남편의 인생길에는 항상 스승님이 등불이 돼 주었다. 세월이 흘러 남편 투병 중에 우리 내외는 스승님 계시는 남원에서 이승에서의 마지막 만남을 가졌다. 그때 스승님이 구해오신 허벅지만 한 제자 몸보신용 민어와 “훌륭한 제자를 두어서 자랑스럽네” 하신 말씀도 결코 잊을 수가 없다. 나는 지금도 좋은 일이 있거나 걱정되는 일이 생겨도 팔순이 넘은 스승님께 연락드린다. 남편은 생전에 ‘사도 장학회’를 만들어 스승님께 받은 은혜를 사회에 환원하고자 했다.
 

강산이 네 번이나 변했다. 나의 교직 사십 년, 마무리하자니 만감이 교차한다. 나는 제자를, 남편은 스승을 잘 만났다. 살면서 떨쳐 낼 수 없는 복된 관계 맺음이다. 지금은 “스승의 도가 땅에 떨어졌다”고들 한다. 하지만 많은 사람이 우리 내외처럼 사제 간의 아름다운 인연을 간직하면 더 밝은 사회가 될 수 있으리라 확신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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