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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듀팡 매거진] 아이들은 왜 ‘딥페이크’에 무감각할까요

[서민수 경찰관의 요즘 자녀學] 아이들은 왜 ‘딥페이크’에 무감각할까요

 

5년 전, 한 여중생으로부터 다급한 문자 한 통을 받았습니다. 최소한 안부 인사부터 물을 아이인데 다짜고짜 통화 가능 여부부터 묻기에 이상하다 싶었죠. 그래서 제가 먼저 아이에게 전화를 걸었더니 아이는 초조한 말투로 자신의 사진이 성 착취물 이미지와 합성되어 인터넷에 떠돌고 있다고 하더군요. 아이가 보내 준 이미지 주소를 클릭하자마자 눈살이 찌푸려졌습니다. 더구나 유포된 이미지에는 아이의 이름과 소속학교는 물론 좋아하는 연예인과 취미까지 적혀 있었습니다. 이미지의 용도는 성 착취물 사이트를 홍보하는 일명 ‘불법 디지털 전단지’였죠. 그러니까 5년 전만 하더라도 이러한 ‘딥페이크(불법 합성물)’는 우리 사회에서 상당히 보기 드문 사례였고, 사회적으로 이슈거리도 되지 못했던 게 사실입니다.

하지만 이제는 상황이 달라졌습니다. 아이들에게 ‘딥페이크’는 사이버 폭력과 더불어 디지털 성범죄의 현주소가 되어버렸습니다. 더구나 아이들의 디지털 기술력과 학습력을 생각하면 딥페이크 기술은 계속해서 편리성을 업그레이드하며 진화하고 있고, 아이들은 이러한 것을 누리며 학습하고 있습니다. 지난달에는 경찰청에서 ‘딥페이크’를 제작하고 유포한 사범을 검거한 현황을 발표했습니다. ‘20년 12월부터 ‘21년 4월까지 불과 5개월 만에 94명을 검거하고 그중 10명이 구속됐죠. 놀랍게도 검거된 범인 중에는 10대 청소년이 65명으로 다른 연령대에 비해 현저히 많았습니다. 특히, 10대 청소년 중에는 다수가 14세 미만의 촉법소년으로 밝혀져 소년보호처분으로 소년법원에 송치되기도 했죠. 경찰청은 사이버 성폭력 척결을 위해 오는 10월 말까지 집중단속을 이어간다고 하니 앞으로 더 얼마나 많은 아이가 딥페이크로 인해 처벌을 받을지 고민이 이만저만 아닙니다.

딥페이크의 변천 과정을 보면, 시작은 ‘아헤가오’라는 아이들의 디지털 장난 문화에서 비롯됐습니다. 그러니까 유명 연예인의 얼굴 이미지를 가지고 스마트폰 사진 편집기를 이용해 ‘아~’와 ‘헤~’하는 입 모양을 만들어 우스꽝스럽게 이미지를 변질시키는 아이들의 삐뚤어진 디지털 문화였죠. 하지만 사실 ‘아헤가오’의 본 의미는 일본의 성인 만화와 비디오물에서 강간당하는 여성의 얼굴을 비하하는 이름에서 유래되었고, 국내에 유입되면서 본래의 의미를 생략한 채 아이들의 장난 문화로 자리 잡았습니다. 이후 ‘아헤가오’는 학급 친구의 사진을 합성하여 장난치는 ‘지인 합성’으로 이어졌고, 결국 ‘지인 능욕’이라는 성적 수치심을 주는 사진합성 놀이로 발전했습니다. ‘딥페이크’가 아이들 사이에서 장난으로 시작되다 보니 지금까지 심각한 범죄로 인식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니까 소라넷과 웹하드 카르텔이 있었기 때문에 N번방 사건이 등장한 것처럼 딥페이크 또한, 우리 사회에 뜬금없이 등장한 성범죄는 아니라는 뜻입니다.

무엇보다 딥페이크가 손쉽게 성범죄로 이어질 수 있었던 이유는, 아이들이 즐기는 소셜미디어의 허점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소셜미디어와 메신저로 소통하는 게 일상이 된 아이들 사이에서 아이들이 모르는 사람과 친구를 맺는 건 흔한 일입니다. 어쩌면 오프라인 공간에서는 상상조차 못 하는 일이죠. 특히, 아이들에게 수많은 친구는 일종의 계급과 같아서 그만큼 친구가 많다면 다른 아이들이 자신을 능력자 내지는 ‘인싸(인사이더)’로 인정해주는 잘못된 문화가 숨겨져 있습니다. 부모님이 주목해야 할 건, 바로 아이들 사이에서 친구가 되면 ‘친구’라는 이유만으로 아이의 사진을 내려받을 수 있고, 개인정보인 프로필을 볼 수 있으며 심지어 아이가 누구와 무슨 대화를 나눴는지 모든 내용을 쉽게 공유할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렇게 되면 범죄자들이 아이의 사진과 영상을 구하는 건 그리 어렵지 않겠죠. 그러니 앞선 사례에서 피해를 당했던 아이의 딥페이크 이미지에 개인정보와 취미까지 적혀 있었던 것은 그리 놀랄 만한 일도 아니지요.

최근 딥페이크 기술이 몰라보게 진화하고 있습니다. 근래에 수많은 남성을 대상으로 성 착취 영상물을 제작하여 유포한 혐의로 체포된 한 남성은 자신을 여자로 속이기 위해 성 착취물 속 영상을 가져와 음성변조 앱으로 입 모양과 음성이 일치하게 만들어 피해 남성들을 속였다는 게 드러났죠. 결코, 남자일 리가 없다던 피해 남성들은 이 사실을 알고 망연자실했습니다. 다시 말해, 딥페이크의 현 구간은 단순히 사진과 영상을 도용하여 합성하는 데 그치지 않고 통화를 유도하여 음성을 저장한 후 딥페이크에 적용하는 세밀한 기술까지 선보이고 있다는 뜻입니다. 아시다시피 이러한 음성변조는 이미 코로나 전부터 ‘가짜뉴스’로 여러 차례 등장하기도 했죠. 영상 속 인물을 조작하고 속이는 이 기술은 블록버스터 영화에서나 볼 수 있는 신기한 기술이었습니다. 대표적으로 1994년 개봉한 미국 영화 ‘포레스트 검프’에서 주인공을 맡았던 톰 행크스는 영화에서 역사 속 인물들과 함께 등장하는 장면을 보여주죠. 어쩌면 역사 속 인물을 가져다 톰 행크스의 얼굴을 합성하여 만든 대표적인 딥페이크 영화라고도 할 수 있죠. 이 덕분에 영화감독을 맡은 로버트 저메키스는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특수효과상’을 수상하기도 했습니다.

이제 대안을 찾아보죠. 일단, 부모가 주목할 건, 디지털 성범죄가 가지는 특징 중 하나인 ‘협업’입니다. 성 착취물이 사이버 도박과 결합하여 해당 사이트의 홍보 ‘전단지’ 역할을 해 아이들을 끌어들이는 것처럼 ‘딥페이크’ 역시 최근 유행하는 ‘알페스, 빙의글’과 결합하여 글에 들어가는 이미지와 ‘짤(짧은 영상)’에 사용되지 않을지 걱정입니다. 특히, 성 착취를 위해 아이들을 협박하는 용도로 사용될 것은 너무 뻔하죠. 부모는 “아이가 스스로 자신이 아닌 걸 아는 데 어떻게 협박에 넘어가요?”라고 말할 수 있지만, 아이들은 자신의 얼굴이 유포되는 것만으로도 위축된다는 걸 알아야 합니다. 다시 말해, 오늘부터 부모님은 아이가 무심코 만드는 ‘딥페이크’ 제작물에 관해 관심을 가져야 하고, 혹시라도 발견하게 되면 엄격한 태도로 제동을 걸어야 합니다. 부모는 아이가 컴퓨터와 스마트폰으로 뭘 하는지 알 수 없으니 최소한 아이에게 ‘딥페이크’의 위험성을 함께 공유하고 알려야 한다는 걸 잊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또, 아이들에게 ‘친구추가’를 신중하게 해달라는 부탁도 더해주세요. 아이들에게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 것 중 하나가 바로 소셜미디어에서의 ‘친구추가’입니다. 이전 칼럼에서도 여러 차례 언급했지만, 이번에도 다시 한번 강조해야겠습니다. 디지털 성범죄는 잘못된 ‘친구추가’에서 시작한다는 걸 말이죠. 또, 인터넷 공간에서 상대의 이미지나 영상은 매우 중요한 타인의 인격이자 재산이라는 것도 빼놓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이를 함부로 다루면 위험한 일이 일어날 수 있다는 것도 꼭 말해주시고요. 생각보다 아이들은 타인의 개인정보와 이미지를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 경향이 있습니다. 최근 들어 아이들 사이에서 단돈 몇천 원에 인터넷 계정을 거래하고, 남의 계정을 도용해 사용하다 적발되는 경우도 늘고 있습니다. 이처럼 타인의 계정을 도용하고 거래하는 행위는 단순히 개인 사용에만 그치는 게 아니라 디지털 성범죄에 이용되어 위험한 피해가 초래될 수 있다는 사실도 반드시 알려주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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