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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듀팡 미술뉴스] 문풍지가 뱉어내는 창 너머 달빛처럼… 서승원의 ‘동시성’

 
“형태와 색채와 공간, 이 세 요소가 등가(等價)로서 하나의 평면 위에 동시에 어울린다는 뜻이죠. 이 모든 게 함께 어우러지는 감성적 예술세계라고나 할까요. 이를 통해 보이는 혹은 보이지 않는 세계를 아울러 드러내고자 하는 겁니다.”
 

 
한국적 정서와 호흡하며 현대미술을 자기화하는 데 몰두해온 서승원 화백은 50여 년간 ‘동시성(Simultaneity)’ 개념을 탐구하고 시각화하는 동시에 한국인의 정신문화에 뿌리를 둔 현대 회화를 화폭 위에 구현해왔다. 그의 만년 화두인 ‘동시성’은 육안으로 보이는 세계와 보이지 않는 피안(彼岸)의 세계를 작가라는 매개체를 통해 동일하고 균등한 시공간 속에 발현하는 것을 뜻한다.
 

서승원은 어린 시절 문풍지가 뱉어내는 은은한 달빛의 기억과 오방색 등을 바탕으로 한국의 전통적인 요소를 화면에 녹여낸다. 그중에서도 달빛이 창호지를 적시며 스며 나오듯 한번 정제되고 탈색된 색은 서승원에게 있어 동시성의 정체성을 이루는 바탕이자 평생 골몰할 수 있게 한 동인(動因)이었다.
 

 
집안에 놓여 있던 소박한 백자 항아리, 책가도, 햇볕을 은근한 빛으로 투과시키는 문창살과 창호지, 빨랫감을 희게 하는 다듬이 방망이질 등과 같이 서승원의 화면에서는 그의 유년시절 기억 속에 남아 있는 한옥 공간의 색과 형태, 비어있음과 그 정서가 끊임없이 걸러지고 개별의 경계가 허물어져, 이 모든 요소가 오묘하면서도 감각적으로 함께 존재한다.
 

보일 듯하지만 결국 뚜렷이 보이지 않는 그 풍경에서 영감을 얻은 작가는 ‘보이지 않는 것을 보이게 하는’ 동시성 시리즈를 지금껏 고수해오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우리 전통미학과 정신을 세련된 현대적 감성으로 표현한 그의 투명한 예술 세계는 한국 현대 미술 역사에서 독창적 한 축을 담당하는 동시에 세계인이 직관적으로 공감할 수 있는 보편성을 지닌다.

 

 
한국 기하 추상의 선구자이자 단색화 미학을 대표하는 서승원의 개인전 ‘서승원: 동시성-무한계’가 10월 9일까지 PKM갤러리에서 열린다. 1960년대 후반의 초기 작업부터 올해 작업한 최신작까지 아우르는 이번 전시에서는 회화, 드로잉, 판화 등 다양한 장르에서 엄선된 서 화백의 작품 37점과 미공개 아카이브 자료가 새롭게 공개된다.
 

이번 전시는 ‘동시성’은 물론, 서 화백이 거쳐 온 주요한 변화의 순간들을 되짚고자 기획됐다. 중성적인 컬러의 명료한 네모꼴 형태가 여백의 공간에서 미동하는 1960~1970년대 기하추상에서부터 형을 완전히 해체하고 맑은 채색으로 무념과 침묵의 정신성을 지향하는 근작에 이르기까지 부단한 변주를 통해 구축된 서승원의 미술 역사를 압축적으로 조명한다.
 

더불어, 그간 부수적으로 다뤄져 온 드로잉과 판화 작업들에 전격 주목함으로써, 그의 작업 스펙트럼을 보다 다면적으로 펼쳐 보인다. 
 

 
서승원은 1960년대 이른바 국전(대한민국미술전람회) 스타일의 사실주의나 비정형 추상회화운동 앵포르멜 등 국내 화단의 주류를 거스르며 독자적 경향을 모색했다. 1963년에는 뜻이 맞는 홍대 회화과 동기 최명영, 이승조 등과 뭉쳐 기하추상회화 그룹 ‘오리진’을 창설, 새로움을 갈구하는 청년작가답게 진취적인 활동을 이어갔다. 당시 그는 사각형, 삼각형, 색띠 등 순수조형을 바탕으로 한 기하추상에 몰두하는데, 특히 빨강, 노랑, 파랑 등 근작과는 사뭇 다른 강렬한 색감의 오방색을 사용하기도 했다. 

 

 
또한, 1967년 한국현대판화가협회, 1969년 한국아방가르드협회를 결성한 주역이자 1975년 동경화랑에서 열린 ‘다섯 개의 흰색’전(展) 참가 작가로서 한국의 전위 미술을 개진하는 데 앞장섰다. 그의 작품은 국립현대미술관, 삼성미술관 리움, 런던 대영미술관, 아부다비 구겐하임, 미에현립미술관, 시모노세키 미술관 등에 소장돼 있다.
 

  • C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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