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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시 뉴스

[에듀팡 전시정보] 같고도 다른 두 작가 하인두·하태임, “그래서 우리는 아빠와 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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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가셨을 당시에는 정작 깊이 애도를 할 여유도, 하는 방법도 몰랐던 것 같다. 그러나 그리움이란 살면서 더욱더 커지는 법이더라.” 이번 전시가 기획된 배경에는 아버지를 향한 애정과 그리움, 경애심이 있다. 가족전은 가졌어도 지금껏 아버지와 단둘이 함께한 부녀전은 없었기에 그 의미가 남다르다고 했다.
 

하인두(1930-1989)와 하태임(49) 두 작가의 부녀전(父女展) ‘잊다, 잇다, 있다’는 그러한 배경에서 기획됐다. 이번 전시는 복합문화예술공간 ‘아트조선스페이스(ART CHOSUN SPACE, 중구 세종대로21길 30 조선일보 별관 1층)’ 개관 기념 특별전으로, 하인두·하태임 부녀가 작품을 한자리에 선보이는 최초의 자리다.
 

 
아울러, 독자적인 화풍을 구축하고 한국적인 추상미술을 선도하며 한국 근현대미술사에 유의미한 영향을 끼쳤으나, 한창 작업에 매진할 나이에 작고한 탓에 비교적 조명 받지 못한 하인두의 작업세계에 대한 관심을 환기하고자 이번 전시가 마련됐다.
 

전시 타이틀 ‘잊다, 잇다, 있다’의 세 동음이의어는 각각 과거(잊다)와 현재(잇다) 그리고 미래(있다)를 의미한다. 과거의 유산과 기억이 현재의 작업 행위와 전시 기획을 통해 한데 엮여 미래의 창발(創發)을 도모하려는 의도를 담고 있다.
 

 
한국 전통과 불교 사상을 기조로 한 비정형 추상화의 선구자 하인두(1930~1989)는 한국 1세대 추상화가로서, 보수적이었던 한국 화단에 ‘색면 추상’이라는 새로운 동향을 불러온 주요한 인물이다. 1954년 서울대 미대 회화과를 졸업한 뒤, 유럽에서 유입된 앵포르멜의 영향을 받아 김창열, 박서보 등과 추상 표현주의 화풍을 개척했다.
 

그의 작업 기저에는 언제나 전통에 기반한 한국적 미감을 향한 애정이 자리하고 있었기에, 이후부터는 당대 주류를 벗어나 자신만의 독자적인 길을 모색한다. 그 실마리는 전통과 불교 정신을 바탕으로 한 한국적인 공간추상 회화였다. 이후 그는 형이상학적이며 불교적인 관념을 오방색과 기하학적 패턴을 통해 캔버스 위에 구현하는 데 평생을 쏟았다. 말년의 긴 투병 중에도 창작열을 불태우며 수작으로 평가받는 ‘혼불’ 시리즈를 남겼다.
 

 
국내 미술시장에서 연일 상종가를 치고 있는 하태임 작가는 하인두 화백의 장녀다. 양친(하인두·류민자 화백)의 영향으로 미술이 일상인 환경에서 성장한 딸 태임이 그림을 하게 된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행보였다. 그러나 정작 그는 부모의 이름이 주는 무게와 굴레에서 벗어나고자 무던히 애를 썼다고 했다. ‘누구의 딸’이란 수식은 오롯이 자신만의 작업으로 존재하거나 자주(自主)하는 것을 방해하는 것처럼 느껴지던 때도 있었다고 했다. 
 

양날의 검과 같은 꼬리표를 떼어내고자 하태임은 독자적인 조형언어를 구축하는 데 집중했고, 그 노력의 결과로 완성한 컬러밴드 연작 ‘통로(Un Passage)’는 동시대 미술애호가에게 가장 사랑받는 작품 중 하나로 꼽히게 됐다. 매끄럽게 바탕색을 칠한 캔버스 위에 아크릴 물감으로 곡면의 색띠를 여러 번 덧칠해 표현한 작품으로, 컬러에 따른 작가의 메시지와 감상이 담겨 있으며, 화폭을 채운 곡면의 색띠는 리듬감과 운율감을 선사한다. 하태임에게 컬러밴드는 보는 이와 교감하고 소통하는 통로인 셈이다. 한마디 말로는 똑떨어지기 힘든 복잡미묘한 감정과 감상을 서로 다른 컬러밴드의 중첩을 통해 드러냄으로써 보는 이에게 쉽고 친근하게 다가간 것이 컬렉터들의 폭발적인 수요를 불러일으켰다.
 

 
이번 전시에는 두 작가의 회화 40여 점이 내걸리며, 특히 하태임 작가가 하인두 화백을 그리며 오마주한 신작 <Un Passage No. 211062> <Un Passage No. 211014>가 최초로 공개된다. 전시는 20일 오후 3시 VIP 오프닝을 시작으로, 2월 19일까지 열린다. 월~토 10:00~18:00 운영되며 일요일과 공휴일은 휴관한다.
 

전시를 앞두고 경기도 양평에 위치한 작업실에서 하태임 작가와 모친 류민자 화백을 만났다. 류 화백은 하 작가의 아틀리에 지근거리에서 작업하며 때론 엄마와 딸로, 또 선후배작가로서 서로 영향을 주고받고 있다. 이날도 두 사람은 티격태격하다가도 하인두 화백의 이야기에는 눈시울이 붉어졌다.
 

 
─부친 하인두 화백과 단둘이 부녀전을 갖는 것은 최초다. 전시 개막을 앞두고 만감이 교차할 듯싶다.
 

하태임(이하 하): 돌아가신 지 너무도 오래된, 희미한 기억 속의 아버지다. 한때는 아빠를 부정하는 마음도 있었다. 오롯이 내 작업만으로 평가받고 인정받고 싶었다. 그러나 결국에는 아빠 이야기 없이 나를 논할 수는 없는 것이더라. 아버지의 딸이란 사실은 나를 이루는 일부인 셈이다.
 

그렇다고 나의 그림이나 이번 전시가 아버지의 미완의 작업세계를 완결 짓는 데 목적이 있는 것은 아니다. 다만 전시를 준비하며 ‘하태임다움’에 관해 다시 생각해보게 됐고, 아빠와 나 사이에 분명히 차별되는 지점을 돌아볼 수 있었다. 아빠가 얼마나 자유롭고 광대한 정신세계를 추구했는지 새삼스레 깨달음과 동시에 나는 아직 멀어도 한참 멀었다고 반성하기도 했다. 
 

류민자(이하 류): 올해 딸 나이가 남편 떠나기 10년 전 나이와 꼭 같다. 남편이 못한 걸 딸이 대신 하는구나 싶다. 돌아가신 양반이 사무치게 떠오르면서도 딸이 이렇게 당신과 전시를 한다는 것에 얼마나 대견해할지 감개무량하다. 좀 더 오래 사셨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이번 전시에서는 아버지를 향한 마음을 담아 완성한 오마주 회화 <Un Passage No. 211062> <Un Passage No. 211014>를 선보인다. 작업하는 데 상당히 고심이 많았던 거로 안다. 어떠한 마음으로 작업했으며, 이를 어떻게 화면에 선보이고자 했나. 
 

하: 그림이 잘 풀리지 않아 너무 힘들어 도망가고 싶기도 했다. 그림 구도 자체부터 아빠와 나의 것이 전혀 다르다. 이를테면, 내 그림에선 색띠가 십자로 교차하지 않는데, 아빠 그림에는 수직으로 엇갈리거나 대칭되는 모양이 많더라. 이부터도 내 그림에 어떻게 해석해 접목해야 할지 고민이 많았다. 또한, 아빠는 불교적 관념세계나 우주관과 같은 광활한 개념을 논했다면, 나는 그 전체 중 일부에 주목해 화면에 옮기고자 했다. 흡사 창문을 통해 우주를 바라보듯 말이다. 아빠의 광대한 예술세계와 철학은 완전히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내 나름의 언어로써 화면에 펼쳐내려고 해봤다. 이번 오마주 작업을 통해 아빠의 그림 세계를 한층 더 깊게 이해하는 계기였다.
 

류: 그러게. 완성된 것은 나도 지금 처음 보는데 제법 근사하게 했네. 그래도 앞으로 갈 길이 멀었다.
 

 
─생전 아버지가 유난히 예뻐했다고 들었다. 무뚝뚝한 아빠를 웃게 하는 재롱쟁이는 둘째 딸이었으며, 파리 유학길도 아빠의 몫까지 다해 훌륭한 작가가 돼야 한다는 일념으로 오른 것이었다.
 

류: 태임이가 고등학교 졸업하기도 전 파리 유학길에 나섰다. 당시 두 달밖에 못산다는 양반이 3년을 살다 가셨다. 긴 투병 중에 많이 힘들었을 텐데, 오히려 그때 딸과 교감을 많이 한 모양이었다. 태임이 유학은 남편이 혼자 결정한 일이었다. 갑자기 파리로 유학 가겠다는 소리에 얼마나 놀랐는지. 하나밖에 없는 딸아이를 먼 타국에 보내려니 결심이 서지 않았다. 그러나 남편과 딸 모두 의지가 확고했다. 그렇게 아빠의 뜻을 이어받아 딸은 1990년 남편 1주기 회고전이 열린 다음 날 파리로 떠났다.
 

삼 남매 중 아빠 사랑을 가장 많이 받은 아이였다. 어릴 때부터 무언가를 뚝딱 만들어내고, 그림 하나를 그려도 손끝이 야무졌다. 남편은 이를 일찍이 눈여겨봤던 것 같다. 딸을 유별나게 귀여워했는데, 내가 태임이를 낳고 병원에 입원해있는 동안 본인이 직접 먹이고 재워서 그런지 더욱 정이 간다고 했었다. 그런 딸의 역할이 우리 집에서 아주 요긴했다. 남편이 좀 언짢아 있을라치면 그런 아빠를 웃게 만들고 식탁에 마주 앉아 아빠가 이것저것 고루 잡수도록 돕는 것도 태임이었다. 그이는 칭찬을 잘 하지 않는 성격이었는데도 딸한테만큼은 늘 다정다감한 독려의 말을 건넸다. 
 

 
하: 아빠가 나를 가장 예뻐했다는 건 엄마한테만 들은 얘기다. 기억이 조작된 것은 아닌가 생각해본다.(웃음) 아빠는 내 얘기를 곧잘 들어주셨다. 쉽고 편하고 언제라도 열려있는 존재였다. 중학교 때 플롯을 배웠는데, 그런 날 보며 입버릇처럼 플롯을 하고 있을 게 아니라 그림을 해야 한다며 말씀하시곤 했던 기억이다. 평소 프랑스 미술에 대한 동경심이 깊던 아빠였기에, 그림을 배울 거면 당연히 파리로 가야 할 것으로 생각하셨던 것 같다.
 

 
─‘하인두 딸’이란 타이틀은 때론 이점으로 혹은 굴레로서도 작용했을 거라 짐작되는데.
 

하: 때론 억울하기도 했다. 애써 노력해 얻은 귀한 기회가 폄하되는 것 같았다. 아빠 20주기 때, 가족전(展)을 가졌는데, 역량 있는 작품을 선보이기 위해 온 힘을 쏟았다. 그러나 그때도 아버지에 대한 언급 없이는 내 작업 하나만으로 평가받지 못한 것 같아 뿔이 나기도 했다. 누구의 딸이 아닌, 작가 하태임 그 자체로 객관적이고 정당하게 인정을 받고 싶었다. 그러나 내가 좋든 싫든 ‘하인두 딸’이란 타이틀은 피할 수 없는 거더라. 아빠가 돌아가신 지 30년이 넘은 지금, 너무도 일찍 떠난 아버지의 삶이 가엽다는 마음이 더 크다. 나와 더불어 아빠의 작업세계도 함께 조망되는 기회가 마련되길 바란다. 
 

류: 얼마 전까지만 해도, 엄마, 아빠의 그늘이 싫다며 나와 같이 다니는 것을 피할 정도였다. 그러나 요즘은 많이 누그러졌더라. 부모를 이해하는 법을 배운 것 같다.
 

 
─‘Un Passage’ 연작은 작품 속 색띠 컬러의 변주를 통해 지속적으로 진화해 왔다. 이번 전시 출품작에서 주목한 색감과 모양이 있다면.
 

하: 이번 전시에서는 특정 색에 집중하기보단 다채로운 컬러를 보여준다. 연두색, 노란색 등을 자주 사용했고 화면에 여백을 둬 보는 이에게 여유와 편안함을 선사하고자 했다. 이 전시를 오랜 시간 준비한 만큼 여러 생각이 많았고 컬러도 다양하게 등장한다. 아빠와의 기억을 떠올리며 작업한 영향인지, 아빠가 가장 즐겨 사용한 색인 파란색도 화면 곳곳에서 보인다.
 

 
─하인두의 작업은 평면회화이나 그 필치에서 생동적이며 역동적인 기운이 느껴진다. 하태임의 작업에서도 같은 맥락이 읽힌다. 자유롭게 유영하는 듯한 곡선의 컬러밴드가 온화하면서도 힘 있게 다가온다. 하인두와 하태임의 조형적인 접점 혹은 차이점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하: 화려한 색감 덕분에 겉으론 아빠 그림과 일견 비슷해 보이지만, 작업을 풀어내는 방식은 서로 다르다. 나는 아빠에 비해 소심하고 조심스럽게 색을 층층이 올리며 시간을 쏟는 반면, 아버지는 내면의 에너지를 빠르고 과감하고 대범하게 표출한다고나 할까. 형의 구애나 제한 없이 거침없는 붓터치가 강약을 조절하며 힘차게 뻗어가는 느낌이라면, 내 그림은 정제돼 있으면서 색으로써 응축된 형태를 표현하는 식이다.
 

류: 생전 남편이 그림 그릴 때 보면 기운생동처럼 거침없이 한 번에 내지르는 모습에 나 역시 작가로서 참으로 부러웠던 기억이다. 딸아이는 계획적이고 시간을 차곡차곡 쌓아 정제된 컬러밴드를 완성하지만, 남편은 즉흥적이고 또 한 번 그려내면 두 번 다시 덧칠하지 않았다. 손에 잡히는 대로 종이나 카탈로그 뒷장에라도 그 자리에서 그려내는 예술적 즉흥성을 보여줬었다. 딸아이는 그와는 완전 반대고.
 

 
─하인두는 불교적인 관념과 정신세계의 풍요로움을 강렬한 컬러 대비로써 표현하고자 했다. 이러한 점에서 아버지와 자주 비교되지 않던가.
 

하: 내 눈엔 전혀 다르게 보인다. 파리에서 오래 공부했지만 나는 유화 특유의 텁텁함이 싫었다. 혹자는 ‘깊은 맛’이라고 부르는 밀랍화(化)된 듯한 고정된 느낌이 내겐 부자연스러웠던 것 같다. 내 화면은 투명하고 가볍고 밝은 느낌이라면, 아빠의 작품에서는 오방색과 오일 특유의 독특한 감성과 깊이감이 있다. 그 영향을 받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아빠로부터 보고 배운 것을 필터링해 나만의 스타일을 이루고자 했다.
 

 
─이번 전시 출품작 중 하인두 화백의 ‘자화상’(1954)에서 하태임 작가의 눈매와 얼굴이 겹쳐 보이는 듯하다. 팔레트를 들고 캔버스 앞에 선 모습이 영락없다. 아버지가 지금의 딸을 본다면 어떤 말씀을 하실까.
 

하: 뭐라고 하실는지 나도 무척 궁금하다. 실제로도 아빠 닮았다는 소리 많이 듣는다. 다행히 나는 머리숱이 많다. 아빠가 머리숱이 많이 없어서 그걸 참 아쉬워하셨는데.(웃음). 꼭 이루지 못한 첫사랑처럼 아빠가 깊이 각인돼 늘 아쉽고 그립고 그렇다. 이제야 떠올려보니, 아버지는 참으로 순수하고 아이 같은 분이었다. 내가 이제 아버지 나이로 접어들어 보니, 그게 전혀 쉽지 않은 일임을 절감한다. 세속적이지 않고 마냥 천진난만했던 아빠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류: 우리 태임이 장하다고, 참으로 잘 컸다고 하시지 않겠나.
 

 
 

  • C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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