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존재는 서로가 서로에게 영향을 주고받으며 발생한다.”
공(空) 사상은 세상 만물에는 어떤 본질적인 것, 불변의 것은 존재하지 않으며 어느 무엇에도 실체가 없음을 깨닫게 한다. 이러한 관점의 작업 세계를 지닌 작가 3인을 조명하는 전시가 마련돼 눈길을 끈다. 김근태·김춘수·최상철 3인전 ‘공(空)_흔적으로 비추다’가 서울 성수동 트리마제 상가에 위치한 아트프로젝트 씨오(Art Project CO)에서 열리고 있다.
김근태는 자연에서 가져온 재료가 가진 고유의 물성을 져버리지 않고 재료의 물성과 기원에 대한 정의를 탐색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하여 자연의 이치를 그대로 받아들이는 작업을 이어오고 있다. 돌의 속성을 재현하기 위해 유화물감에 석분(石粉)을 접착제와 섞어 광목 캔버스와 융합해 독자적인 매체를 빚어냈는데, 불상의 거슬거슬한 질감, 분청사기의 질박한 표면과 소박한 문양을 평면에 일폭으로 옮긴 셈이다. 그의 화면은 담박한 색감만으로 궁극의 충만함과 그득함을 이룬다.
수묵의 정신을 닮은 서양 물감인 블루에 이끌려 시작한 ‘울트라 마린’ 연작에 몰두해 온 김춘수는 회화 자체의 본질에 근거한 사유적 실험을 반복과 수행이라는 행위를 통해 의식의 한계를 넘어서는 회화를 내보인다. 그의 그림은 눈이 부시도록 강렬한 푸른 에너지를 뿜어낸다. ‘울트라 마린’ 시리즈는 바다나 하늘을 연상하지만 자연을 단순히 재현한 것이 아닌, 하나의 의미로 고정할 수 없는 자연의 다채로운 형상과 빛깔을 담고 있다.
돌을 굴려 그림을 그려내는 최상철은 오로지 조약돌의 구르는 탄성을 이용함으로써 인위적인 것을 배제하고 있는 그대로의 결과를 마주하는 데 집중해왔다. 그를 두고 ‘그리지 않음으로 그림을 완성하는 작가’라고 부르는 이유다. 손이나 붓을 사용하지 않으며, 최소한의 개입만을 허용해 작가의 욕망과 색을 드러내지 않고자 한다. 그러나 이렇게 완성된 작업은 누가 봐도 최상철의 그림임을 알 수 있을 만큼 강렬하다.
이번 전시를 기획한 임은혜 아트프로젝트 씨오 디렉터는 “개개의 존재물은 각기 혼자의 빛으로 세상을 밝히는 것이 아니라, 서로 빛을 받아 다시 서로에게 반사함으로써 세상을 밝히고 무궁무진한 상호 의존의 세계를 이루어 내는 것으로, 이들 작가 3인의 작품 안에서 수행의 과정을 보듯 묵묵히 비추어 조응하길 바란다”라고 전했다. 안현정 미술평론가는 전시 서문에서 “이들 3인의 작품들을 보노라면, 사람의 손이 그려낸 것이 아닌 자연이 창조해낸 흔적 같다는 느낌이 든다”라고 설명했다. 7월 9일까지.
- C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