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에 배웠던 거 올해도 또 하나요?” – 창업교육 현장에서 느낀 회의와 자기혁신 탐구

2014년, 우연한 기회로 창업교육에 발을 들였다. 그렇게 맺은 인연은 ‘창업에 입문하다’라는 창업캠프로 이어졌고, 캠프는 어느덧 지역사회에서 꽤나 이름을 알리며 나름의 팬덤까지 얻었다. 그날도 캠프를 앞두고 수업자료를 하나씩 점검하고 있었다. 매년 잊지 않고 찾아오는 열성 팬 학생이 슬라이드 일부를 들여다보았다. 작년에 보았던 수업자료가 떠올랐는지, 학생이 툭 질문을 건넸다.“선생님, 작년에 배웠던 거 올해도 또 하나요?”
순간 머리가 띵했다. 어쩌면 학생은 작년에 배운 내용을 아직 기억하고 있으니 칭찬 한마디를 듣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말 앞에서 나는 지난 몇 년간의 수업을 돌아보게 됐다. 창업 생태계는 빠르게 변하고 있는데, 나는 해마다 비슷한 자료를 펼쳐놓고 학생들을 가르쳐 온 것이다. 그런 나 자신이 민망했다. 그리고 눈앞의 학생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안 그래도 최근 초·중·고등학교 교사부터 학생, 학부모까지 다양한 이들을 만나며 각종 특강과 수업자료를 개발하던 터였다. 그 과정에서 마음 한편에 자꾸만 질문이 고개를 들었다. ‘내가 하고 있는 창업교육이 맞는 것인가?’, ‘제대로 검증받을 기회가 있었던가?’ 바쁘게 수업을 준비하면서도 그 물음 앞에서는 선뜻 답을 내놓지 못했다. 스스로에 대한 확신과 믿음이 조금씩 옅어져 가던 시기였다.
‘매너리즘이 또 찾아온 걸까?’, ‘이제는 후배 교사들에게 기회의 장을 열어줘야 할까?’여러 생각이 머릿속을 스쳤다. 그러는 사이 내면 깊숙이 숨어 있던 수업 발표 공포증까지 다시 고개를 들었다. 자신감은 바닥으로 고꾸라졌다. 한번은 학생들 앞에서 공황장애 같은 증상이 나타나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약 1분간 침묵했다. 교사로 살아온 지 20년이 넘었는데도 가슴이 두근거리고 목소리가 떨렸다. 학생들 앞에서만큼은 그런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말을 잇지 못한 채 서 있던 그 순간의 당혹감과 부끄러움은 지금도 잊히지 않는다.
방법을 찾아야 했다. 그래서 잠시 멈춰, 내가 걸어온 길을 돌아봤다. 지난 10여 년간 창업교육에 남긴 발자취를, 그리고 그 안에 담아온 나의 가치관을.◇ 10여 년의 발자취를 돌아보다…"왜 창업교육을 하는가?"학생들에게 기업가정신이나 창업 하면 어떤 단어가 떠오르는지 물으면, 대부분 기업명이나 기업인의 이름을 먼저 꺼낸다. 그럴 때마다 나는 창업교육이 학생들 각자의 삶과 어떻게 맞닿을 수 있는지를 이야기해 왔다. 기업가정신과 창업을 배우는 목적에는 실제 창업을 준비하는 것도 있다. 하지만 내가 줄곧 전하고 싶었던 것은 ‘자기혁신’이었다. 기업가들이 보여주는 사고방식과 행동양식을 자연스럽게 익히면서 학생들 스스로 자신의 삶을 주도적으로 그려 나갈 수 있다는 믿음이었다. 현대 경영학의 창시자 피터 드러커가 이야기한 ‘습관적 기업가’라는 개념처럼 기업가의 혁신성과 창의성, 위험을 감수하는 태도를 학생들도 배우고 익힐 수 있다면 어떨까. 그렇게 익힌 역량이 수업을 넘어 일상의 선택과 행동에 스며들고, 마침내 자기 삶을 이끄는 힘이 되지 않을까. 지난 10여 년간 내가 창업교육을 이어온 데에는 그 믿음이 자리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이 다소 철학적인 생각을 나이도, 배움의 깊이도 다른 학생들에게 어떻게 전할 수 있을까. 그 실마리는 한 초등학교 창업캠프에서 찾았다. 한 선생님이 ‘컵밥 만들기’를 주제로 수업을 진행하고 있었다. 출발점은 아이들의 일상에 있는 ‘편식’이었다. 학생들은 편식의 문제를 함께 나누고 공감하며, 무엇을 해결해야 할지 짚어 나갔다. 이어 친구들이 좋아하는 식재료와 그 안에 담긴 영양분을 조사하고, 이를 바탕으로 컵밥을 디자인했다. 완성한 아이디어를 발표하고 서로 나누는 것까지가 하나의 과정이었다. 그 모습을 지켜보며 창업교육이 학생들의 삶에 자연스럽게 스며드는 길을 조금은 알 것 같았다. 친구의 식습관에 관심을 기울이고, 그 친구를 위한 한 끼를 고민하는 일. 창업교육은 아이들에게 익숙한 일상 속에서도 시작될 수 있었다. 기업가들이 세상의 문제를 발견하고 이를 해결할 제품과 서비스를 내놓듯 아이들도 자신이 살아가는 세상에서 문제를 발견할 수 있다. 초등학생에게 그 세상은 친구들과 어울리는 일상일 수도, 부모님이나 선생님과 맺는 관계일 수도 있다. 그 안에서 마주하는 크고 작은 문제들이 창업교육의 출발점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중·고등학교에서는 학생자치 활동에서 그 가능성을 보았다. 자치(自治)는 ‘스스로 다스린다’는 뜻이다. 학교생활에서 느끼는 불편함을 학생 자신의 눈으로 바라보고, 함께 해결할 방법을 찾고, 직접 바꿔 나가는 과정. 그 안에는 기업가적 역량을 자연스럽게 익힐 기회가 담겨 있었다. 자신이 생활하는 학교를 스스로 바꿔 보는 경험은 자기 삶을 주도적으로 이끌어 가는 배움과도 맞닿아 있었다. ◇ 가치와 쓸모를 삶으로 가져오는 자기혁신의 ‘나도 기업가’학생들에게 경영학자들이 말하는 기업가정신의 다양한 정의와 사례를 가르칠 때마다 어딘가 채워지지 않는 느낌이 들었다. 세계 창업의 메카로 불리는 실리콘밸리, 그리고 스티브 잡스나 일론 머스크의 이야기를 꺼내도 학생들의 동경과 부러움은 잠시 머물다 지나갔다. 그들의 이야기가 학생들 마음에 깊이 닿아 교육적 변화로 이어지는 데에는 한계가 있었다. 이번에는 시선을 국내로 돌려보았다. 목화씨를 들여온 인물로 익숙한 문익점의 이야기였다. 당시 면직산업이 새로운 성장동력으로서 지녔던 가치와 장인어른으로부터 3대에 걸쳐 이어진 협동경영을 들려주었다. 산업혁명 과정의 여러 사례도 함께 살펴보았다. 하지만 여전히 그 부족함은 가시지 않았다. 그러던 중 조금 다른 반응을 만났다. 국내 1세대 기업가인 아산 정주영 현대 창업자의 이야기를 꺼냈을 때였다. 1970년대 초, 정주영 회장은 영국 금융기관을 찾아가 500원짜리 지폐 한 장을 내밀었다. 지폐 속 거북선을 보여주며 "한국도 세계 최고의 배를 만들 수 있다"는 비전을 전했고, 결국 4,300만 달러의 차관을 확보했다는 이야기였다. 이 일화를 들려주면 학생들도 조금은 다르게 받아들이는 듯했다. 우리 산업에 대한 자부심이 느껴져서였을까. 불가능에 가까운 상황에서 배를 만들겠다고 나선 이들의 도전정신이, 그제야 학생들에게도 조금은 와닿는 듯했다. 하지만 내가 바라던 것은 이해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는 일이었다. 어떻게 하면 학생들이 기업가정신을 자신의 삶에 가져와 직접 실천해 볼 수 있을까.그러자 질문은 기업가정신 그 자체로 향했다. 기업가정신은 꼭 기업 안에서만 발휘되어야 할까. 반드시 재화를 만들어 내는 일을 전제로 해야 할까. 그 질문을 품고 더 다양한 삶의 이야기로
제휴 매체를 참고해 편집·재작성한 기사입니다. 사실 확인을 거쳤으나 원문과 표현이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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