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이 원하는 E-GUT 24화 : 나로서기
1952년에 쓰여진 헤밍웨이 소설 <노인과 바다>의 주인공 산티아고는 남의 눈치를 살피지 않는 사람이다. 84일 동안 한 마리 고기도 잡지 못했다고 놀려대는 주변의 시선에도 불구하고, 85일 째 다시 바다로 나간 노인은 대어를 낚지만 돌아오는 길에 상어를 만나 사투를 벌인다. 잡은 것을 상어에게 넘겨주면 고생 없이 항구로 돌아올 수 있었는데 굳이 사투를 벌인 이유가 무엇일까? 무슨 수를 쓰더라도 잡은 대어를 남들에게 보여주려는 목적에서가 아니라 고기잡이 자체에 집중한 것이다. 1921년 《개벽》지에 발표된 현진건의 <술 권하는 사회>에서는 산티아고와 정반대 속성을 가진 인물이 등장한다. 결혼을 하자마자 일본으로 유학간 남편, 그리고 남편을 기다리는 부인은 나로서기(나로서 홀로서기)와는 거리가 먼 사람들이다. 부인은 남편만 돌아오면 잘 살 수 있다는 타인 의존 증에 걸린 사람이고, 유학을 마치고 돌아와 술독에 빠진 남편은 자신이 마시고 싶어서가 아니라 “이 땅이 술 마시게 한다”라는 남의 탓을 하는 사람이다. 자신의 삶을 스스로 결정할 수 없는, 즉 개인의 자유를 포기한 사람이다. 우리는 아직도 현진건이 본 <술 권하는 사회>에 살고 있다. 친구나 친척들이 들어보지 못한 대학에 다녀서 체면이 안 선다 라는 말이 무엇을 뜻할까. 주변 사람들이 나의 취향이나 성향에 관해 얼마나 아는지, 그 대학의 이름도 못 들어 본 사람이 지닌 무지(無知)의 깊이와 넓이가 어느 정도인지를 가름하기 전에 남들이 알아주지 않는다는 걱정부터 앞세운다.최근, 여성 직장인 5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한 경제인 연합회의 자료에 따르면 50%가 상사, 동료들의 눈치 때문에 육아휴직 혹은 유연 근무제를 제대로 사용하지 않았다. 또한, 남녀 직장인 500명을 대상으로 연차 사용 실태를 조사한 취업 포탈사이트에 따르면 62%가 “연차 휴가를 쓰지 못할 것 같다”라고 응답했다. 일에 밀려서 쉴 수 없다가 첫째, 상사와 동료의 눈치 때문에 쉴 수 없다가 두 번째 이유다. 다같이 식사하는 끝 무렵, 불 판 위에 고기 한 점이 남으면 재미있는 일이 벌어진다. 누가 집어야 하나. 하나같이 망설이며 서로 가져가라고 권유한다. 마지막 한 점을 선뜻 해치우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을 집는 순간, ‘나’라는 개인이 노출되고 얌체 같은 인간으로 낙인 찍히지 않을까 라는 타인지향적 생각이다. 우리 사회는 남의 주목과 감시를 받고 있는 눈치 권하는 사회다. 나로서기에 필요한 것은 배를 뒤집을 듯이 달려드는 파도, 대어를 갉아 먹은 상어, 놀려대는 주변의 시선에 아랑곳 하지 않고 외로운 싸움을 하는 산티아고의 신념을 지닌 개인이다. 대니얼 홍의 더 많은 컬럼을 확인하세요.http://www.haniedu.com/column/hong.d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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