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를 위한 중2 사용 설명서 21화 : 친구가 많아도 걱정, 친구가 없어도 걱정인 부모들
많은 부모님들을 만나보니 자녀의 친구관계에 관한 생각이 보통 둘 중 하나다. 친구가 너무 많아서 걱정, 혹은 친구가 없어서 걱정이다. 일단 친구가 많은 걸 걱정하는 부모들은 안심해도 된다. 친구가 많다는 건 소통능력이 뛰어나다는 것인데 소통능력이란 앞으로의 사회에서 생존을 위해 필수적인 조건이기 때문이다. 그럼 왜 부모님들은 자녀가 친구가 많으면 걱정하는 걸까? 이유는 간단하다. 그 많은 친구들 관리하느라 공부할 시간이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런데 맞는 말도 아니다. 아이들의 말을 들어보면 자신들이 ‘친구와 지내느라 공부할 시간이 없는 건 맞는데 친구가 없다고 시간이 나면 공부를 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알아줬으면 한다’고 말했다. 아이들이 부모님들에게 전달해 달라고 한 말을 들어보면 만일 친구가 없더라도 그 시간에 공부를 하지는 않는다는 것, 그 시간에 나쁜 짓 하지 않고 친구와 노는 걸 다행으로 여겨달라고 했다. 한편 어떤 부모님들은 친구는 많은데 단짝 친구가 없다며 걱정하기도 한다. 실제 요즘 아이들은 단짝 친구가 없는 경우가 많다. 단짝은 사전적으로 ‘서로 뜻이 맞거나 매우 친하여 늘 함께 어울리는 사이. 또는 그러한 친구’를 의미한다. 여기서 핵심은 ‘늘 함께 어울리는’이라는 표현이다. 과거 학창시절을 떠올려보자. 단짝과 무엇을 했었는가? 청소당번도 아닌데 청소당번인 단짝을 한 시간씩 기다리고, 기껏해야 교문에서 몇 백 미터를 같이 걸어와서 헤어졌던 경험이 누구에게나 있다. 단짝이란 그런거다. 중요하든 중요하지 않든 늘, 항상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경험이 쌓여서 추억이 되고 그런 추억을 공유하며 낄낄거리는 게 단짝들이 하는 일이다. 예전엔 이런 행위가 가능했다. 하교 후에 저녁 시간 전까지만 집에 들어가면 부모들이 웬만하면 걱정을 하지 않았다. 걱정을 해도 연락을 할 방법이 없으니 믿고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우리는 부모의 믿음 속에서 자유시간을 가지고 단짝을 만들과 그들과 시간을 함께 했다. 그런데 요즘 아이들에게는 이럴 시간이 없다. 하교 후에 친구와 시간을 보내기 위해선 부모의 허락이 필요하다. 아무 말 없이 30분 이상 귀가를 하지 않으면 ‘너 어딨어? 왜 안와? 뭐해?’ 바로 휴대폰을 통한 감시와 취조가 시작된다. 그렇지 않더라도 요즘 아이들은 학교가 끝나자마자 각자 다른 학원으로 향한다. 아니면 일단 집에 가서 학원 숙제를 하고 가야 한다. 이러니 아이들이 단짝 친구를 사귈 시간이 있을까? 쓸데없이 같이 어정대며 거닐어야만 이루어지는 게 단짝인데 말이다. 우리 아이가 덜 외롭게, 더 기쁘게 정체성을 형성하도록 도와주는 친구들이 있다는 사실은 기뻐할 일이다. 우리가 자녀보다 더 오래 살아서 오직 나만의 자녀로 살게 할 자신이 있다면 모를까, 그렇지 않다면 청소년들에게 친구를 허하라. 그들에게 친구와 헛되이 시간을 낭비할 시간을 허락하라. 이것이 그들을 행복하게 살게 하기 위해 성인들이 할 수 있는 가장 쉽고 좋은 방법이다. 문제는 친구가 없는 아이들이다. 친구관계를 잘 맺느냐 아니냐의 핵심은 소통능력과 맞장구치는 능력이다. 그런데 이 부분에 문제가 있는 아이들을 살펴보면 공감을 많이 받아보지 못했다는 특징이 있다. 소통능력과 공감능력 가정에서 비롯된다. 일반적으로 공감능력이 덜어지는 아이들은 엄마의 공감능력이 떨어지는 경우가 많다. 학부모 모임에서 기분을 상하게 하는 말을 많이 하며 튀는 엄마들을 보고 그 아이를 살펴보면 역시 아이도 그렇다. 그 엄마를 잘 아는데 소통도 공감도 잘 하고 아무 문제도 없다면 무엇이 문제일까? 짐작하듯이 아빠의 문제일 가능성이 크다. 어떤 엄마, 아빠가 이렇게 될까? 아이에게 병이나 지능 등 특별한 문제가 있는 경우가 아니라면 크게 두 가지 유형으로 나눠볼 수 있다. 첫째, 부부 사이가 좋지 않을 때, 둘째, 부모가 너무 잘 나가는 부모일 때 그렇다. 부부 사이가 좋은 부부는 상대가 ‘나 오늘 힘들었어’라고 말할 때 ‘그래? 요즘 자주 힘드네’ 정도는 받아준다. 사이가 좋지 않는 부부의 경우는 어떨까? 같은 발언에 대해 무시하고 대답을 하지 않거나 ‘당신만 힘들어? 나도 힘들고 다 사는 게 힘든거지 엄살은...’하며 퉁명스럽게 무시하는 발언을 하는 경향이 있다. 상대의 말에 대해 인정하고 받아주는 것이 아니라, 무시와 비판으로 일삼는다. 그런 부모의 대화를 듣고 자란 아이가 소통능력이 뛰어날 수 없다. 부부가 이런 소통을 하면서 자녀와 공감적인 소통을 할리도 없다. 이런 가정의 아이들이 소통능력이 떨어지는 것은 당연하다. 모든 사람은 자신을 기준으로 타인을 이해하는 폭이 형성된다. 실패의 경험이 없고 승승상구하는 부모의 삶의 기준 역시 자기자신이다. 늘 5등 이내에 들었던 부모가 15등 하는 아이를 이해할 수 있을까? 그 아이를 인정할 수 있을까? 그러다보니 이들은 자녀보다 성과가 좋은 자신들의 삶의 방식을 자녀들에게 강요한다. 그들의 요구를 수용하기보다 자신의 요구와 방식을 일방적으로 받아들이길 원한다. 결국 이런 가정의 소통은 일방적이고 권위적이며 수직적이다. 과정은 역시나 공감의 부재이고 이는 자녀의 원만하지 못한 친구관계로 귀결된다. 자녀들이 친구관계가 원만하지 못하다면, 친구를 사귀는데 어려움이 있다면 아이를 의심하기 전에 우선 부모의 사이를 점검해야 한다. 자녀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일단은 동의하고 수긍하고 공감해주자. 조언은 그 다음에 해도 늦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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