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 진입 전, 부모의 학습 관리가 한계를 맞는다

20년 넘게 입시 현장에 있으면서 잘하던 아이가 무너지는 모습을 심심치 않게 목격한다. 보통 그런 성적 폭락은 두 번에 걸쳐 온다. 초등학교 때 잘한다는 말을 듣던 아이가 중학교에서 한 번 흔들리고, 중학교 때 상위권이던 아이가 고등학교에서 다시 무너진다. 두 경우 모두 아이의 지능이나 성실함과는 상관이 없다. 또한 부모가 아무리 애를 써도 대신 막아 줄 수 없다.
초등학교 공부는 부모가 챙길 수 있는 양이라서, 숙제를 확인하고 진도를 정해 주고 학원 시간을 맞춰 주면 아이는 따라온다. 부모가 이끄는 대로 성실하게 따라온 아이들이 보통 ‘잘한다’는 말을 듣게 되고, 부모도 이 방식이 맞다고 믿는다. 사실 초등학교까지는 이 방식이 통하기도 한다.중학교에 올라가면 내용이 한 단계 어려워지고 공부해야 할 분량이 한 번에 많아진다. 또한 아이는 처음으로 점수가 적힌 성적표를 받는다. 부모가 하나하나 챙길 수 있는 양을 공부가 처음 넘어서는 것도 이때이고, 냉정한 평가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것도 이때다. 하필 같은 시기에 아이는 부모 말을 예전처럼 듣지 않는다. ‘성실하다’고 믿었던 아이가 부모의 믿음을 저버리기 시작한다. 부모의 손에 이끌려 공부를 해오던 아이는 여기서 한 번 흔들린다.그래도 이 첫 번째 흔들림은 부모와 학원이 나서면 어느 정도 수습된다. 중학교 시험은 그나마 두세 주 전에 바짝 외우면 풀리는 문제가 많아서, 부모가 계획표를 다시 짜 주고 학원에서 핵심을 정리해 주고 강제로 앉혀서 공부시키면 성적은 조금씩 오르기 시작한다. 부모와 아이 모두 이대로면 된다고 다시 믿는다. 하지만 부모와 학원이 대신 해 준 공부가 통하는 것은 딱 여기까지다.
중학교 성적은 절대평가라서 90점만 넘으면 보통 A를 받는다. 종로학원이 2025년 5월 학교알리미 공시 자료를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전국 중학교의 국어·영어·수학·사회·과학 A등급 비율은 평균 28.2%다. 30명인 반이라면 여덟아홉 명이 A를 받는다.반면 고등학교 내신은 5등급 상대평가라서 1등급은 등수로 상위 10%까지다. 같은 아이들을 고등학교 방식으로 줄 세우면 1등급은 세 명뿐이고, 나머지는 첫 시험에서 2등급이나 3등급을 받는다. A가 40%인 반이라면 열두 명 중 아홉 명, 70%가 넘는다. 베일에 감춰져 있던 아이들의 실력이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순간이다.사실 진짜 문제는 그다음이다. 이 차이를 극복하기 위해 아이들은 나름 열심히 공부한다. 실제로 다음 시험에서 다시 올라오는 아이가 있고 학기마다 더 밀리는 아이가 있다. 하지만 둘의 차이를 만드는 것은 중학교 때까지 통했던 ‘성실함’이 아니라, ‘공부를 스스로 끌고 가는 힘’이다.고등학교 시험은 외운 것을 확인하기보다 이해한 개념을 처음 보는 문제에 적용하게 한다. 게다가 과목과 공부할 범위가 늘어나고 수행평가와 모의고사가 쉬지 않고 이어진다. 이 양 앞에서 필요한 것은 무엇을 어떤 순서로 어떻게 공부하고 무엇을 뒤로 미룰지 스스로 정하는 힘이다.수행평가 마감과 단어 시험이 같은 주에 겹치고 다음 주에 모의고사가 잡혀 있으면, 어디에 먼저 시간을 쓸지는 아이 말고 정할 사람이 없다. 챙겨야 할 양이 이미 부모 손을 넘어섰고 어느 단원에서 막히는지는 아이 머릿속에만 있어서, 중학교에서 부모와 학원이 메워 주던 빈틈을 고등학교에서는 누구도 대신 메워 주지 못한다.
그 힘은 고등학교에 가서 연습할 수 없다. 스스로 순서를 정하는 힘은 설명을 들어서 생기지 않고, 계획을 세우고 어그러지고 다시 세우는 일을 여러 번 되풀이해야 몸에 밴다. 처음 몇 번은 순서를 잘못 정해 한 과목을 놓치기도 하는데, 그 시행착오가 곧 연습이다. 모든 성장은 실패에서 출발한다.고등학교 성적은 1학년 1학기 첫 시험부터 기록되고, 한 번 기록된 성적은 대학 입시까지 따라간다. 한 번도 주도적으로 시험 계획을 세워 보지 못한 아이는 연습과 실전을 같은 시험에서 한꺼번에 치른다. 고등학교에서의 시행착오는 성장의 발판이기도 하지만, 입시의 재료가 되어 결과를 좌지우지한다. 따라서 이 시행착오의 시간이 길어질수록 목표와는 멀어질 수밖에 없다.중학교에서는 순서를 잘못 정해 점수가 떨어져도 다음 시험에서 고쳐 보면 된다. 시험은 학기마다 돌아오고, 그때마다 계획을 다시 세워 볼 기회도 함께 온다. 성적이 대학 입시에 반영되지도 않는다. 그래서 중학교까지가 아이가 마음껏 틀려 봐도 되는 마지막 시기다. 공부 전략은 뒤늦게 바꿀 수 있어도 공부하는 태도는 하루아침에 바꾸기 어렵다.
부모는 대신 해 주던 일을 멈추고 아이에게 맡긴다.이 시기 부모의 개입은 대신 해 주는 쪽이 아니라 아이가 스스로 하게 만드는 쪽으로 가야 한다. 계획을 대신 짜 주고, 분량을 대신 정해 주고, 모르는 문제를 대신 찾아 주던 일은 멈춰야 한다. 안 좋은 결과가 불 보듯 뻔히 예상되더라도 스스로 계획하고, 학원을 선택해보면서 실패의 경험도 직접 해볼 수 있는 기회를 지금 가져야 한다.학군지와 거리가 먼 지방 도시에서 입시를 거의 모르던 필자의 부모가 준 기준은 딱 하나였다. “학교 숙제는 먼저 끝내라. 그것만 끝내면 나머지 시간은 네 마음대로 해도 좋다.” 나가 놀려면 무엇부터 할지 스스로 정해야 했고, 순서를 정하는 버릇은 그때 들었다.고등학교 입학 당시 성적은 반에서 중위권으로 내세울 것이 없었다. 하지만 수능을 치는 그날까지 성적은 ‘꾸준히’ 조금씩 나아졌고, 결국 좋은 결과를 만들어 냈다. 오를 수 있는 힘은 어쩌면 초등학교와 중학교 때 스스로 공부를 찾아서 했던 그 시간에 만들어졌을 것이다. 스스로 공부를 찾아서 하던 습관이 몸에 배어 있었고, 점수는 그 습관을 따라 올라왔다.
오르는 아이는 중학교에서 여러 번 틀려 본 아이이다.고등학교에서 성적을 끌어올린 아이들 가운데에는 중학교 성적이 평범했던 아이도 많다. 이 아이들의 공통점은 중학교 때 자기 손으로 계획을 세워 보고, 틀려 보고, 고쳐 본 횟수가 많았다는 것이다. 그래서 고등학교의 늘어난 양 앞에서도 무엇부터 할지 먼저 정하고 시작하며, 첫 시험에서 밀려도 다음 시험에서 방법을 고쳐 올라간다.중학교 3년의 시험이 통째로 연습 기회다. 부모가 따져 볼 것은 하나, 지금 아이 대신 해 주고 있는 일이 고등학교에 가서도 대신 해 줄 수 있는 일인가 하는 것이다. 그럴 수 없는 일이라면 지금 아이 손에 넘길 때다.
제휴 매체를 참고해 편집·재작성한 기사입니다. 사실 확인을 거쳤으나 원문과 표현이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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