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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뉴스

이웃나라 여성들의 삶을 엿볼 수 있는 책 BEST 4

안녕하세요. 책식주의입니다.

몇 차례 여성들을 주제로 책을 소개하다 보니, 문득 '다른 나라 여성들은 어떻게 살고 있을까?' 하는 호기심이 생겼습니다. 자유와 평등의 나라 프랑스 여성부터 인도의 가장 낮은 신분 계급인 불가촉천민 여성, 우리나라 여성의 삶까지. 오늘은 '이웃나라 여성들의 삶을 보여주는 책' 4권을 준비했습니다.

1. 파리의 여자들 (장미란)


‘파리지엔느’하면 어떤 이미지가 떠오르시나요? 저는 가장 먼저, 당당하고 세련된 도시 여성의 이미지가 떠오르는데요, 프랑스혁명과 여성운동 등 일련의 역사적 사건을 거치며 남녀평등에 대한 인식이 우리나라에 비해 훨씬 선진적일 것이라는 생각도 들고요.

그런데 수많은 현대 프랑스 여성들이 우울증에 시달리고 있다고 해요. (파리의 여자들이 세계에서 항우울제를 가장 많이 복용한다는!!) 특이한 점은 이 우울증이 성적 억압이나 제도적 제약에서 발생된 게 아니라는 것입니다. 일, 가정, 사랑 모두를 만족하지 못했을 때 오는 좌절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해요. 누구에게나 기회는 동등하게 주어지니, 나 또한 모든 것을 성공적으로 해내야 한다는 압박감에서 비롯된 것이죠. 
 
1980년대 프랑스에서 유학 생활을 하며 여성, 프랑스, 심리학이라는 세 가지 주제에 관심을 갖게 된 장미란 작가는, 자신들이 만난 프랑스 여성들의 이야기를 담은 『파리의 여자들』을 집필했습니다. ‘여성성’이라는 프레임에 갇혀 있던 한국 여성과, 양성평등을 외치며 주체적인 삶을 살아가는 프랑스 여성은 어떤 점이 다른가에 주목하여 30년 동안 프랑스 여성들을 만나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지속적이고 깊게, 그들의 내면을 들여다보기 위해서요.  


책 속에 등장하는 다섯 명의 주인공은 이민자, 귀족, 중년 여성 등 다양한 모습의 ‘파리의 여자’들입니다. 그들의 삶은 우리가 기대한 것만큼 화려하거나 아름답진 않습니다. 세 번이나 남자에게 버림받은 뒤 홀로 살아갈 방법을 찾아야 하는 라시다, 사라질 위기에 처한 프랑스 귀족의 명목을 유지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테레즈, 고통스러웠던 가족들과의 관계를 극복하고 안정된 생활을 찾아가는 마농 등. 그들에게도 나름대로의 상처와 고통이 존재합니다. 그러나 이들은 강인하게 시련을 극복하고자 노력합니다.
  
지리적, 문화적으로 다른 환경에 있지만, 파리의 여자들이 가진 저마다의 사연과 아픔을 극복해나가는 모습을 보며 한국에서 여성으로 살고 있는 내 삶과 비교하기도 하고 공감하기도 했습니다. 프랑스 여성의 ‘진짜’ 삶이 궁금한 분들은 한 번쯤 읽어보시길 바랍니다.



누구라도 한 사람을 진정으로 이해하려고 들면 그 사람의 슬픔을 느낄 수 있다. 
그런데 사람들은 그 슬픔을 서로 외면해버리려고 한다. 
남의 슬픔이든 자신의 슬픔이든 슬쩍 묻어두고 사는 편이 훨씬 쉽기 때문이다.
 
2. 세 갈래 길 (래티샤 콜롱바니)




두 번째로 소개해드릴 책은 래티샤 콜롱바니의 『세 갈래 길』입니다. 17개국에 판권이 팔릴 정도로 뜨거운 관심을 받은 소설인데요, 영화감독이었던 저자의 경력 덕분인지 책을 다 읽고 나서 마치 영화 한 편을 본 듯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인도의 최하위 신분 계층인 불가촉천민으로 태어나 맨손으로 사람들의 똥을 치우며 평생을 살아가야 하는 스미타, 시칠리아에서 3대째 이어온 가업을 이어가려는 줄리아, 캐나다의 잘 나가는 로펌에서 변호사로 성공한 사라. 각기 다른 나라에 살고 있는 세 여인은 전혀 무관한 삶을 사는 것처럼 보입니다. 한 시대에 사는 것이 맞을까 싶을 정도로 너무도 상이한 모습이죠.

그러나 소설의 중반부를 넘어가면서부터 그들의 삶이 묘하게 닮아있다는 걸 알 수 있는데요, 세 명 모두 사회가 정한 제도 안에서 자유롭지 못한 삶을 살고 있기 때문이죠. 이대로 살다간 스미타의 딸도 자신처럼 똥을 치우며 살아야 하고, 줄리아는 위태로운 아버지의 사업을 살리기 위해 사랑하지 않는 남자와 결혼해야 합니다. 사라는 암에 걸렸다는 이유로 힘들게 일궈온 커리어를 포기해야 했고요. 허구의 소설이지만 현실과 비교해도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지금도 많은 이들이 차별과 억압을 인식조차 하지 못하거나, 알면서도 순응하는 삶을 택하고 있으니까요. 

하지만 소설 속 세 주인공은 쉽게 포기하지 않습니다. 스티마는 죽음을 각오하고 딸과 함께 바들라루프를 떠나기로 결심합니다. 줄리아는 가업을 지키기 위해 인도에서 머리카락을 수입해오기로  하죠. 사라도 암을 이겨내고 새 출발을 하겠다는 다짐을 합니다. 


그들은 삶은 달라질 수 있을까요?
인도에서 매년 살해당하는 여자의 숫자가 200만 명이라고 했다. 
그 숫자를 듣고 스미타는 두려움으로 몸을 부르르 떨었다.
 한 해 200만, 이들의 죽음에 모두가 무관심했다. 온 세상이 이들의 죽음을 방관했다. 
세상은 여자들을 버렸다.
3. 싸울 때마다 투명해진다 (은유)



‘결혼 후 낯선 세계가 열렸다’고 말하는 저자는, 결혼 후 처음으로 여성성과 마주하게 됐다고 합니다. 외동딸로 귀하게 자란 그녀가 가부장적인 결혼 제도 안으로 들어오면서부터, 단지 자신이 '여자이기 때문에' 불합리한 위치에 서게 된다는 것을 알게된 것이죠.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집안일에 솔선하는 아내가 되어야 했고, 시댁에 가면 자연스럽게 앞치마를 두르고 부엌으로 향했습니다. 두 아이를 낳고 나서는 삼인분의 삶을 살아야 했죠.

이전에는 당연하게 받아들였던 것들이 시종일관 그녀를 울컥하게 만듭니다. 하지만 누굴 향해서 울분을 토해내야 하는지, 그 울분은 어떻게 표현해야 하는 것인지 알 수 없었습니다. 내가 무엇에 분노하고 있는가, 무엇을 원하는가에 대한 질문을 던지는 것으로 그녀의 싸움은 시작되었습니다. 그녀는 질문을 던짐으로써 ‘당연시 여겨지는 것들’을 다른 시각으로 바라보기로 합니다.

저자는, ‘여자니까’, ‘엄마니까’라는 명분으로 주어지는 역할에 대해, 어떻게 해야 여성이 남성과 동등한 인격체로 살아갈 수 있는지에 대해 끊임없이 질문합니다. 결혼이라는 틀 안에서 모종의 불합리함을 느낀 분들이라면, ‘질문을 던지는 것’만으로도 유의미한 결과를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산다는 것은 물음을 발명하는 일이지 묻고 답하고 한평생 그러다가 가는 거야. 
물음이 멈출 때 투쟁도 끝나겠지.
 4. 여자들은 자꾸 같은 질문을 받는다 (리베카 솔닛)



 설명을 가장해 남성이 여성들을 훈계하는 행위를 ‘맨스플레인'으로 정의하며 신조어로 만든 리베카 솔닛은 후속작 『여자들은 자꾸 같은 질문을 받는다』에서 더욱 날카롭고 통찰력 있게 페미니즘을 이야기합니다. 전반적으로 미국 사회를 배경으로 한 이야기이지만 우리나라의 시류와도 부합하여 공감되는 부분이 많았는데요.
 
특히 미투(#Metoo), 위드유(#Withyou) 운동이나 여성혐오 살인, 데이트 폭력 등 요즘 화두가 되고 있는 주제들에 대해 깊이 생각해볼 수 있었습니다. 많은 여성이 용기 내어 자신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는 가운데, ‘피해 여성이 꽃뱀'이다’, ‘여자가 행실을 똑바로 하지 못했으니 그런 것 아니냐’ 등의 씁쓸한 이야기도 들려옵니다. 강남역 화장실 살인사건 당시에도 피해 여성이 범죄 대상이 된 이유를 굳이 만들어 내는 사람들도 있었고요.


학대자는 종종 피학대자에게 침묵을 요구하는 특권, 보호가
상호적이지 않게 이루어지는 특권을 누린다.
제3자들은 종종 피해자를 가해자의 경력과 가정을 망치려고 작정한 사람처럼
묘사함으로써 그런 상황을 강제한다.
폭행범이 스스로 그런 선택을 한 게 아니라는 듯이.

저자는 이것들이 모두 남성중심적인 사회에서 비롯된 현상이라고 지적합니다. 여태까지는 오히려 피해자가 더 의심받고 배척되었으며, 침묵하기를 강요받았죠. 하지만 여성들이 더 이상 침묵을 거부하며 페미니즘은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불쾌함과 불편함을 당당하게 이야기 하기 시작하자, 이를 지지하고 응원해주는 사람들도 생겨나게 되었죠. 이런 흐름에 수많은 남성들도 함께 동참하기 시작했고요.  솔닛은 페미니즘이 여성들의 문제만은 아니라고 말합니다. 남성들도 침묵을 강요 받는 피해자가 될 수도 있습니다. 

다양한 삶을 인정하는 것, 침묵에서 벗어나 서로의 이야기를 진심으로 들어주는 것, 이것이 진정한 페미니즘 아닐까요? 모두가 침묵하지 않고 ‘예스가 예스다’라고 말할 수 있는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다음에도 좋은 북큐레이션으로 찾아올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