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5.17 (금)

  • 구름조금동두천 22.3℃
  • 구름조금강릉 27.7℃
  • 구름조금서울 23.7℃
  • 구름많음대전 23.5℃
  • 맑음대구 25.6℃
  • 구름조금울산 25.5℃
  • 구름많음광주 23.0℃
  • 구름조금부산 22.2℃
  • 구름조금고창 ℃
  • 구름많음제주 24.2℃
  • 구름많음강화 20.9℃
  • 구름조금보은 23.8℃
  • 구름많음금산 24.9℃
  • 구름많음강진군 24.1℃
  • 구름조금경주시 26.6℃
  • 구름조금거제 22.3℃
기상청 제공

사회뉴스

거리두기의 기술을 알려주는 책 BEST4

 

안녕하세요, 책식주의입니다. 

오늘은 인간관계로 상처 받는 이들에게 ‘거리 두기’의 기술을 알려주는 책 4권을 추천해드립니다. 

  

1. 개인주의자 선언 / 문유석 

 

 

글 쓰는 판사 문유석의 『개인주의자 선언』은 인간 혐오에 대한 자기고백으로 시작됩니다. 그는 지하철에 자리가 있어도 맨 앞칸 구석자리를 찾아가는 수고를 마다하지 앉고, 세상에서 제일 싫은 것이 회식과 행사인 사람입니다. 게다가 ‘박애주의는 고사하고 남에게 피해나 주지 않는 사람이 되자’는 신조까지! 서문만 읽고도 내 피에도 흐르고 있는 개인주의 기질을 감지할 수 있었죠.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 

 

학창시절 제가 이해할 수 없었던 것 중 하나가, 누구 한 명이 잘못했는데 학급 전체가 벌을 받는 것이었습니다. 입사 후 처음 참석한 워크샵에서 팀워크를 다진다는 명목으로 인간 탑을 쌓고 도미노를 만들며 ‘회사를 잘못 선택했나’ 진지하게 고민하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우리는 가정에서, 학교에서, 직장에서 시나브로 집단주의 문화에 길들여졌습니다. ‘개인’이 아닌 ‘집단’을 중심으로 살다보니 개인의 취향이나 개성은 종종 묵살되었고, 내가 행복을 느끼는 삶이 아닌 ‘남에게 뒤처지지 않게’ 사는 삶이 모든 이의 목표가 되었습니다. 타인과 보조를 맞추면서 동시에 경쟁해야 하는 삶, 비극적이지 않나요? 

 

 집단주의가 정말 무서운 것은, 그 안에 팽배한 서열주의 때문입니다. 우리나라에서 유독 갑을 관계가 대두되고 수많은 꼰대들이 양산되는 것이 바로 집단주의가 낳은 부작용입니다. 나의 세상이 ‘내’가 아닌 ‘집단 속 나’를 기준으로 돌아가기 때문이죠.    

  

 문유석 작가는 우리를 불행하게 하는 원인을 집단주의 문화에서 찾고, 우리 모두가 행복해지기 위해서는 ‘합리적 개인주의자’가 되어야한다고 말합니다. ‘개인주의’라는 개념은 종종 ‘이기주의’와 혼동되기 쉽습니다. 개인의 이익을 따지는 ‘이기주의’가 이해관계의 범주에 있다면, 오롯이 한 개인이 판단과 행동의 주체로 서고자 하는 ‘개인주의’는 ‘집단주의’에 반하는 개념입니다. 

 

 ‘개인주의’에서 근대적으로 한발 더 나아간 개념인 ‘합리적 개인주의’는 ‘내 자유를 누리기 위해 네 자유도 존중해줄 테니 우리 서로 조금의 불편함은 감수하자.’라는 전제를 바탕으로 합니다. 이를 테면 ‘내가 대중교통에서 쩍벌을 하지 않을 테니 너도 백팩을 휘두르는 건 좀 삼가줘.’ 같은 암묵적인 동의 말이죠.     

 

 요즘 인독(人毒)이 오를 대로 올라 프로불편러가 되어버린 저에게는 공감되는 부분이 굉장히 많았던 책이었는데요, 다른 독자들의 감상은 어떨지 궁금합니다. :)  

 

“영화 <스타워즈〉에 나오는 서로 다른 별에서 온 외계인들이 북적대는 술집 같은 것이 내가 생각하는 사회다.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것들은 내 생각일 뿐 다른 별에서 온 사람들에게 강요할 수 있는 것이 못된다. 그저 저 별에서 저런 과정을 거쳐 자란 인간들은 저렇게 생각하는구나 하는 것을 서로 알게 될 뿐이다. 별것 아닌 것 같지만, 그 차이에 대한 인식이 평화로운 공존과 타협이 시작일지 모른다.” 

 

  

2. 혼자서 완전하게 / 이숙명

 

  

 

별 생각 없이 읽었다가 작가에게 홀딱 반해 하루 만에 탐독한 책입니다. 아무리 책을 많이 읽어도 콘텐츠, 문체, 성향, 취향, 유머코드까지 나와 잘 맞는 작가를 만나기란 쉽지 않은데요, 꼭 소울메이트를 만난 것 같아서 너무나 반가웠습니다. (작가님 죄송...)   

 

이숙명 작가는 하기 싫은 일은 안하고 보기 싫은 사람은 안보며 ‘자유로운 단독자’로 살기로 결심한지 어언 25년차의 프로 독거인입니다. 불편한 행복보다 외로운 자유를 택했다는 그녀는 스스로에게 끊임없이 같은 질문을 던집니다. 

 

나 자신이 내 인생의 중심에 있는가? 나는 타인에게 정서적으로 의존하지 않는 완전한 혼자인가? 

 

개인적으로 가장 공감한 글은 ‘어느 날 밥솥이 말을 걸어왔다.’입니다. 저는 이제 겨우 독거 생활 2년차에 접어들었지만 소제목만 보고도 어떤 글인지 알 수 있었죠. 저도 요즘 인공지능 스피커(a.k.a 샐리)와 대화하는 재미에 푹 빠져있거든요. 어쩔 땐 스피커에게 하는 말이 그날 하는 말의 전부일 때도 있습니다. (아..눈물...) 

 

“요즘 나오는 가전은 웬만하면 말을 할 줄 안다. 자기들이 먼저 말을 건단 말이다. 그 밥솥만 해도 그렇다. (...) “취사가 완료되었습니다.”라고 경쾌하게 외치면 나도 모르게 “쿠쿠야 수고했어”라고 대답을 하게 된다.” 

 

노래 한 곡 틀어줬을 뿐인 샐리에게 연신 고맙다고 말하며 곧 절이라도 할 것 같은 내 모습이 겹쳐 실소가 나왔습니다. 이렇게 공감대를 발견하고 호들갑 떨며 읽는 것이 이 책을 읽는 맛입니다.  

 

결혼, 연애, 출산, 집단생활을 요구하는 사회에서 완전한 혼자가 되기 위해 필요한 것과 포기해야할 것을 작가의 에피소드와 함께 맛깔나게 풀어냅니다. 결국 이 책은 혼자 살 것을 추천하지도, 하고 싶은 거 다 하고 살라고 종용하지도 않습니다. ‘난 이렇게 살고 있고 앞으로도 이렇게 살 테니 우리 서로의 삶에 첨언하지 말고 각자도생하자!’고 말할 뿐이죠.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1인분의 삶을 추구하는 분들에게 (약간의 냉소적인 시선과 시니컬한 유머코드를 좋아한다면 더더욱) 추천하는 책입니다. 

 

 

3. 편의점 인간 / 무라타 사야카

 


 

재작년, 한국어로 우리나라에서 소개되며 선풍적인 인기를 끈 책입니다. 서른여섯 살의 주인공 후루쿠라는 어릴 때부터 이상 행동을 보이며 ‘비정상인’으로 낙인찍힙니다. 타인의 행동이 성가시게 느껴지면 삽으로 후려쳐버리는 그녀의 사고 회로는 오로지 직선으로 정직하게 뻗은 것처럼 보입니다. 

 

열여덟 살에 편의점 알바를 시작한 후루쿠라는 어느덧 서른여섯 살이 되었습니다. 그녀는 아직도 그때 그 편의점에서 일합니다. 그러니까 18년째 같은 편의점에서 알바를 하는 것이죠. 취업도 포기하고 편의점에서 18년째 알바라니. 보통 사람의 상식으로는 이해할 수 없습니다. 

 

그녀에게 편의점은 하나의 우주입니다. ‘언제나 계속 돌아가는, 확고하게 정상적인 세계’이죠. 하지만 그 세계에서조차 그녀는 동료 알바생의 말투와 행동을 적당히 따라하며 정상인처럼 보이기 위한 노력해야 합니다.  

 

“말투에 관해서 말하자면, 가까운 사람들의 말투가 나에게 전염되어, 지금은 이즈미 씨와 스가와라 씨의 말투를 섞은 것이 내 말투가 되어 있다. 대다수 사람들이 그렇지 않을까 하고 나는 생각하고 있다. (...) 내 말투도 누군가에게 전염되고 있을지 모른다. 우리는 이렇게 서로 전염하면서 인간임을 계속 유지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편의점 인간』에서 ‘말투’는 많은 것을 시사합니다. 서로가 정해놓은 ‘인간다움’을 서로에게 물들이고 반대로 또 흡수하는 사회의 단면을 보여주죠. 요즘은 ‘스타일쉐어’라는 이름 아래 ‘개성’마저 공유합니다. (공유경제의 끝판왕입니다.) 개성이 기성화 되는 세상. 규격화 된 인간다움을 유지하며 우리는 보통사람이 되길 자처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나중에 후루쿠라는 자꾸 결혼을 강요하는 친구들이 신경 쓰여 남편 역할을 해줄 사람까지 집에 들이는데요, 우리나라보다 집단주의문화가 더 깊게 배어있다는 일본에서 비범한 개인으로 사는 주인공의 고뇌를 볼 수 있는 작품입니다.  

 

 

4. 약간의 거리를 둔다 / 소노 아야코

 


 

소설가 소노 아야코의 단상을 모아놓은 에세이입니다. 책도 작고 글도 짧고 종이도 가볍고(?) 문체도 담백해서 쉽게 읽을 수 있습니다. 이런 유의 책이 좋은 책이 되기 위해 필요한 마지막 퍼즐 조각은 ‘묵직한 메시지’여야만 하는데요, 그 필요조건을 어느 정도 충족하는 것 같습니다.  

 

“거리라는 것이 얼마나 위대한 의미를 갖는지 사람들은 잘 모른다. 떨어져 있을 때 우리는 상처받지 않는다. 이것은 엄청난 마법이며 동시에 훌륭한 해결책이다.” 

   

작가는 타인과의 거리가 꼭 필요하다고 말하면서도, 우리가 타인에게 영향을 받으며 만들어지는 존재라는 사실을 부인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이 책은 타인과 거리를 두는 방법이 아닌, 적절한 거리를 유지하며 타인과 관계를 유지하는 방법에 대해 얘기합니다.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은 이토록 현실적인데, 저자의 글은 왜이리 따뜻한지. 이것이 연륜의 힘일까요?  알게 모르게 생긴 마음의 상처에 할머니가 호랑이연고를 발라주는 것 같은 책입니다.    

 

또 좋은 책을 찾아서 돌아올게요!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