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작품가 들썩’ 김근태 3년 만에 개인전 개막

독일, 일본, 홍콩, 베트남 등 국제 미술계에 ‘눈도장’
‘차세대 단색화 주자’로 소개되며 세계 컬렉터들 관심
23일까지 서울 광화문 조선일보미술관
 
“단순한 덜하기를 통해 단순화된 순수함을 추구한 것이 아닌, 김근태는 매력 있는 조력자인 매체의 물성을 개입시켜 상호 대화하며 배우고 발견한 어떤 것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다. 이는 명확해 보이는 언어 체계로 촘촘히 꾸며진 듯한 체계 너머에 존재하는, 의미의 확정에 덜 매달리는, 어떤 인간의 경험 그 자체다.” 미술 저술가 케이트림 아트플랫폼아시아 대표는 김근태의 이번 출품작을 이렇게 평했다. 
 



 
조선일보미술관 기획 ‘2020 Art Chosun on Stage’ 김근태 개인전 <숨,결>이 13일 개막했다. 국내에서 3년 만에 마련된 개인전으로, 작가의 시그니처인 블랙과 화이트 작업을 비롯해 지난해 홍콩 화이트스톤갤러리에서 열린 전시에서 큰 호응을 받은 돌가루 작업을 함께 내걸었다. 이를 통해 절제와 인내의 시간을 붓질이라는 행위로 모두 밀어내며 완성돼 가는 작업세계를 보여주고자 한다.
 
오랜만에 열린 개인전인 만큼 이날 오프닝에는 신양섭, 김호득, 김근중, 김택상, 함명수, 최정윤, 이경미, 김덕한, 허수영 등 동료 선후배 작가들이 김근태의 신작을 보기 위해 참석했다. 이외에도 국내 갤러리 관계자들이 오프닝에 자리해 작품 구매에 관심을 보였다. 그도 그럴 것이, 김근태는 지난 2년간 독일, 일본, 베트남, 홍콩을 오가며 활발히 전시를 이어오며 국제 미술계에 꾸준히 소개되며 작품가가 들썩이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지난해 12월 베트남국립미술관에서 열린 ‘한국-베트남 현대미술교류’전(展)을 통해 박서보, 이우환을 잇는 단색화 차세대 주자로 일컬어지며 세계 컬렉터들에게 다시 한번 눈도장을 찍은 바 있다.
 



 
김근태는 중앙대 회화과 졸업 후 20대에 군부통치 격변기를 경험하며 모더니즘과 민중미술 간의 갈등과 충돌을 빚은 1980년대 초반 작가로서의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했다. 김근태는 그의 동시대 조류였던 극사실주의나 민중미술에는 전혀 관심을 보이지 않았고 이와는 독립적으로 이때부터 그의 성정(性情)과 관심이 이끄는 개인적인 영역에 주목했다. 시각적 즉각성이 떨어지는 추상적이고 막연한 그림이었지만 작가는 자신이 택한 길을 꾸준히 모색했고 결국 작업은 오늘날 상당한 존재감을 획득하는 데 이르렀다.
 
그의 회화에는 비움의 세계를 통해 근원을 건드리고 무아(無我)와 근 정신의 경지가 담겨있다. 붓질을 수없이 거듭하며 자신을 비워내고 나아가 화면도 비워내며, 회화라는 매체를 통해 비물질적인 정신세계를 물질화하는 데 몰두한다. 새하얗거나 시커멓기만 한, 그래서 자칫 단조롭고 공허할 수 있는 김근태의 화면이 가득 참으로 전복되는 순간이다. 재료의 물성이 본디 지닌 순수성을 최대한 헤치지 않고 화면에 있는 그대로 구현해내는 것이 그가 지향하는 바다. 
 


몇 겹이고 포개진 두터운 덧칠로 화면이 일면 거칠기도 하지만 가까이 다가서면 세필이 하나하나 훑고 지나간 듯 섬세하다. 붓질로 닦이고 닦인 이 무수히 많은 길은 보는 이에게는 끝없는 읽을거리와 볼거리다. 그는 예전만 하더라도 작업 중 잡념이 들 때면 의식적으로 이를 떨쳐내려고 했다. 그러나 요즘은 다르다. 작업하다 보면 별생각이 머릿속에 비집고 들어오지만 이젠 의식하는 대로 흘러가도록 놔둔다. 그리고 이를 붓에 싣는다. 그러면 붓이 살아 움직인다. 의식은 곧 생명이다. 숨이 담긴 붓은 화면을 횡단하며 그 숨결의 흔적을 켜켜이 새긴다. 스스로 살아 있음을 증명하는 숨을 더할 때 붓질이 일어나고 그것의 흔적이 캔버스에 고스란히 드러난다.
 
“설니홍조(雪泥鴻爪)라고 하잖습니까. 눈 위에 기러기가 잠시 앉았다가 날아간다 한들 눈이 녹으면 발자국은 영영 사라져버리는 것에 지나지 않아요. 수천, 수만 번 붓질했지만 제 그림에 남은 건 아무것도 없는 것과 같죠.” 그의 지나온 시간의 궤적과 숨결의 자취가 붓결로써 첩첩 쌓인다. 이번 전시는 휴관일 없이 23일까지 10:00~18:00 운영된다. (02)724-7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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