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마스터 인문학] 6·25 전쟁, 아직 끝나지 않은 '장마'

-'장마' 작품 읽기
-어린아이의 시선으로 본 ‘장마’
-두 할머니의 갈등을 해결한 ‘구렁이’

*사진 출처=클립아트코리아

1950년 6월 25일 시작된 전쟁은 약 3년간 지속돼 한반도를 휩쓸었다. 찬 공기와 더운 공기가 맞부딪치며 내리는 장마처럼 이념 갈등으로 한반도는 반 토막이 났다. 길고 길었던 장마는 우리에게 큰 상처를 안겼다. 어린 나이에 총을 들고 전장에 나가야 했던 군인들, 소중한 이를 잃고 눈물 훔치며 가슴에 묻어두었던 사람들이 그곳에 있었다. 

그 중에서도 가족에게 쏟아진 장마는 서로의 가슴에 지울수 없는 상처를 남겼다. 이념의 차이로 인해 하루아침에 철천지원수가 되어 버린 그들. 오랫동안 장대비를 온몸으로 맞으며 버텨온 한 가족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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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윤흥길
[사진 출처=wikipedia]

정보 플러스+ 윤흥길 (1942년~) 
1970~80년대를 대표하는 소설가로, 1968년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단편 <회색 면류관의 계절>로 등단했다. 1973년 발표한 <장마>로 문단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으며, 1970년대 후반엔 산업화 과정에서 드러나는 노동 계급의 소외와 갈등을 다룬 작품을 발표했다. 주요 작품으로 <아홉 켤레의 구두로남은 사내>, <에미> 등이 있다. 

<장마> 작품 읽기 

“주룩주룩 쏟아지는 비가 온 세상을 물걸레처럼 질펀히 적시고 있었다.” 
외할머니는 작은 이모와 함께 서울 집을 떠나 지방에 있는 친할머니 집으로 피란 왔다. 느닷없이 들이닥쳤으나, 친할머니는 살갑게 맞아주었다. 

외할머니의 아들인 외삼촌은 국군에 입대했고, 친할머니의 아들인 삼촌이 빨치산이 된 묘한 상황에도 기꺼이 식구로 맞이해준 것이다. 그리하여 한집에 두 할머니와 나, 그리고 가족들이 함께 살게 됐다. 

지루한 장마가 계속되던 어느 날, 외할머니는 꿈을 꿨다며 아침부터 한바탕 소란을 피웠다. 외할아버지가 죽을 때 엄지손가락이 빠지는 꿈을 꾸었는데, 이번에는 일곱 개 밖에 남지 않은 할머니의 이빨 중 실하게 붙어있던 이빨 하나를 무쇠로 만든 족집게가 빼가는 꿈을 꾸었다는 것이다.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 무심한 가족들에게 외할머니는 불길한 예감이 든다고 우기며, 외삼촌의 안위를 걱정했다. 

그날 밤, 외할머니에게 정말로 편지가 도착했다. 국군 소위로 전쟁에 나갔던 아들이 전사했다는 통지였다. 하나뿐인 아들을 전쟁으로 인해 잃게 된 외할머니는 말실수를 하고 만다. 

그날 오후도 장대 같은 벼락불이 건지산 날망으로 푹푹 꽂히는 험한 날씨였는데, 마루 끝에 서서 그 광경을 지켜보던 외할머니가 별안간 무서운 저주의 말을 퍼붓기 시작한 것이다. 

“더 쏟아져라! 어서 한 번 더 쏟아져서 바웃새에 숨은 뿔갱이 마자 다 씰어 가그라! 한 번 더, 한 번 더, 옳지! 하늘님 고오맙습니다!” 

소리를 듣고 식구들이 마루로 몰려들었으나 모두들 어리둥절해서 외할머니를 말리는 사람이 없었다. 벼락에 맞아 죽어 넘어지는 하나하나의 모습이 눈에 선히 보인다는 듯이 외할머니는 더욱 기가 나서 빨치산이 득실거린다는 건지산에 대고 자꾸 저주를 쏟았다. 

“저 늙다리 예펜네가 뒤질라고 환장을 혔댜?” 그러자 안방 문이 우당탕 열리면서 악의를 그득 담은 할머니의 얼굴이 불쑥 나타났다. 

이를 들은 친할머니는 “오널 중으로 내쫓아야 된다” 말하며 노발대발한다. 전쟁통에 죽은 아들 때문에 한이 맺혀 외할머니가 내뱉은 말은 친할머니에게 자기 아들더러 죽으라는 뜻과 같다. 전쟁이란 그런 것이다. 외삼촌이 살려면 친삼촌이 죽어야 하는 기막힌 상황을 만들어낸다. 


“세상이 온통 물바다요 수렁 속이었다” 


하늘에 구멍이 난 것처럼 비가 쏟아졌지만, 그럼에도 전쟁은 계속됐다. 빗소리가 천지를 울리는 와중에도 총성이 오갔다. 새벽에 읍내를 다녀온 이웃 사람이 전하길, 먼저 공격한 빨치산 쪽이 되레 공격을 당해, 경찰서 뒤뜰에 빨치산 시체가 널려있다고 한다. 

이때 읍내행을 준비하던 아버지를 막아선 것은 할머니였다. 점쟁이가 말하길 ‘아무 날 아무 시’만 되면, 삼촌이 할머니 앞에 버젓이 나타날 것이라고 하늘이 전했다는 것이다. 할머니가 신탁처럼 받든 그 점쟁이의 말처럼, 아버지는 정말 빈손으로 왔다. 결국 식구들은 ‘아무 날 아무 시’란 주문을 나직이 외우며 삼촌의 무사귀환을 빌었다. 

‘아무 날 아무 시’가 다가오자 가족들은 분주해졌다. 마을을 연결하는 징검다리가 잠길 정도로 비가 쏟아졌다. 할머니는 친삼촌이 집에 오지 못할까봐 걱정했고, 가족들은 가망이 없다고 고개를 저었다. 그러나 누구 하나 ‘소용없다’며 친할머니 앞에서 입을 떼는 사람은 없었다. 

할머니는 ‘아무 날’ 전날 밤부터 부산을 떨었다. 삼촌이 돌아올 때 저 멀리서도 ‘우리 집이구나’ 알 수 있도록 호롱불을 환히 밝혔다. 새벽부터 가족들을 깨워 경사를 준비시킨 할머니는 방안에 앉아 건지산을 바라보았다. ‘아무 시’가 됐지만 삼촌은 오지 않았다. 

그런데 실의에 빠진 할머니 앞에 나타난 것은 난데없는 구렁이 한 마리였다. 아이들의 돌팔매질을 피해 집안으로 기어 들어온 것이다. 구렁이를 본 친할머니는 별안간 졸도해버리고 집안은 온통 쑥대밭이 됐다. 

이때 갑자기 외할머니가 나서 아이들과 외부인을 쫓아버리고 감나무에 올라간 구렁이에게 말을 걸기 시작한다. “에구 이 사람아, 집안 일이 못 잊어서 이렇게 먼 질을 찾어 왔능가?” 구렁이가 반응이 없자, 울밖에 있던 아낙네가 구렁이를 쫓으려면 여자의 머리카락을 태워야 한다고 전한다. 

외할머니는 누워있는 할머니의 머리카락을 얻어서 불씨가 담긴 그릇에 넣었다. 단백질을 태우는 노린내가 진동하자, 꼼짝 않던 구렁이가 땅바닥으로 내려와서는 외할머니에게로 간다. 구렁이는 누런 비늘 가죽을 번뜩이며 마당을 가로질러 대밭으로 사라졌다. 

이후 정신을 차린 친할머니는 가족들에게 외할머니가 구렁이를 대접했다는 것을 전해 듣고 눈물을 흘렸다. 

“야한티서 이애기는 다 들었소. 내가 당혀야 헐 일을 사분이 대신 맡었구랴. 그 험헌 일을 다 치르노라고 얼매나 수고시렀으꼬.” 

“인자는 다 지나간 일이닝게 그런 말씀 고만두시고 어서어서 맘이나 잘 추시리기라우.” 

“고맙소, 참말로 고맙구랴.” 

할머니가 손을 내밀었다. 외할머니가 그 손을 잡았다. 손을 맞잡은 채 두 할머니는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그날 저녁 할머니는 또 까무러쳤다. 다 타버린 촛불이 스러지듯, 친할머니는 그렇게 눈을 감았다. 임종의 자리에서 할머니와 나는 손을 잡고 서로를 용서했다. 

“정말 지루한 장마였다.” 

*우리나라에는 ‘가신(집안의 여러 신, 家神)’을 섬기는 민속 신앙이 있다. 그중에서 구렁이는 ‘업신’이라 하여, 집안에 재물을 가져다주는 신으로 섬겼다. 내려오는 말에 의하면, 업신은 사람 눈에 띄는 것을 좋지 않게 여긴다고 한다. 때문에 업신이 나타나면 머리카락을 태워 빨리 눈에 보이지 않는 곳으로 들어가게 하는 풍속이 있었다. 



어린아이의 시선으로 본 ‘장마’ 


이 소설의 서술자인 ‘동만’은 과거 자신의 어린 시절을 회상하면서, 그 당시의 기억을 되짚고 있다. 어른들이야 남과 북, 자본주의와 공산주의 중 한쪽을 수호해야 하는 상황에 놓였지만, 동만 같은 어린아이는 전쟁이 무엇인지 잘 모른다. 동만에게 전쟁이란 “오삼촌이 존냐, 친삼촌이 존냐?” 대답할 수 없는 외할머니의 질문과 같다. 

그러나 총알이 어린아이라 해서 비껴가지 않듯, 동만에게도 전쟁의 무서움을 깨닫게해주는 사건이 있었다. 맥고자를 쓴 사내가 동만에게 와서 초콜릿을 준다며 친삼촌의 소식을 묻은 것이다. 동만은 고민하지만 눈앞의 초콜릿의 유혹에 못 이겨 삼촌 친구라 말하는 맥고자를 쓴 사내에게 넘어가고 만다. 그런데 알고 보니 그 사내는 형사였고, 동만의 집에 쳐들어와 아버지를 잡아간다. 

이를 안 친할머니는 동만을 “삼촌을 팔아먹은 놈”이라며 미워한다. 1주일 만에 경찰서에서 돌아온 아버지가 다리를 절룩거리자, 동만은 좌절을 맛보게 된다. 이념에 물들지 않은 어린아이도 저마다의 방식으로 전쟁을 겪고, 그 잔혹함을 깨닫게 된다. 


두 할머니의 갈등을 해결한 ‘구렁이’ 


두 할머니는 좌우 이데올로기를 대표하는 자신의 아들들 때문에 갈등을 겪게 된다. 두할머니는 이념 갈등에 대해 자세히 안다고 할 순 없다. 그러나 이 때문에 두 사람이 대립하고 반목하는 것은 6·25 전쟁 당시 민중들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준다. 

그런 그들이 화해하게 된 것은 ‘구렁이’ 덕분이었다. ‘꿈’에 의탁해 외삼촌의 안위를 점쳐보는 외할머니, 점쟁이의 말을 신탁처럼 받든 친할머니, 그 믿음에는 이성적인 이유는 없다.

그러나 구렁이가 나타나자, 외할머니가 친할머니를 도운 이유는 전쟁통에 아들을 잃은 아픔에 공감했기 때문이다. 구렁이가 정말로 친삼촌이라고 믿기보다는, 말 없이도 서로의 마음을 잇는 매개체가 된 것이다. 

아들이 선택한 이념은 달랐지만 두 할머니의 화해는 그 대립을 넘어섰다. 지루한 장마를 끝낸 것은 ‘총’이 아니었다. 서로를 이해하고 상처에 공감하는 장면은 소설을 읽는 우리에게도 화해와 치유의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런 의미에서 <장마>는 6·25 전쟁이 왜 일어났는지 그 역사를 파헤치기보다는 전쟁으로 상처 입은 공동체가 어떤 방식으로 치유될지 그 물음을 제기하는 소설이라 할 수 있다. 

윤흥길 소설 <장마>는 한국전쟁을 일으킨 남과 북의 이데올로기가 민중들의 삶을 어떻게 비극으로 몰아넣었는지 보여준다. 좌우 이념 갈등은 전쟁뿐 아니라 가족 공동체도 해체되게 만들 만큼 우리에게 큰 상처를 남겼다. 

언젠가 한반도의 장마가 멈추고, “정말 지루한 장마였다”고 말할 수 있는 날이 올까. 6·25전쟁 70주년을 맞은 지금, <장마>는 여전히 ‘휴전’이라는 불안 속에서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고민해야 할 과제를 남겨준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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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듀진 기사 URL: http://www.edujin.co.kr/news/articleView.html?idxno=331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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