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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뉴스

대담해지는 소년범죄에…‘소년법 엄벌화’ 논란

‘어리단 이유로 면죄부 안돼’ VS ‘미성년 보호할 의무 있다’ 의견 팽팽히 맞서
전문가들 “가해자와 피해자, 법은 누구의 편에 서야할까"…‘상반된 해법’ 나와


지난 6일 오전, 경기도 고양시 롯데백화점(일산점)이 발칵 뒤집혔다. 고객의 소리함에서 ‘2017년 7월 6일 테러를 할 것이다’라는 쪽지가 발견됐기 때문이다. 쪽지를 발견한 백화점 직원은 즉시 경찰에 신고했고, 특공대가 출동했다. 현장에 있던 직원과 고객 100여명은 영문도 모른 채 건물 밖으로 긴급대피했다. 백화점 일대는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됐다. 경찰특공대 30명과 탐지견이 백화점을 샅샅이 뒤졌다. 다행히 폭발물은 발견되지 않았다. 폐쇄회로 영상(CCTV)을 추적해보니 용의자는 초등 4학년생 A군(11세, 남). 이튿날 부모와 함께 경찰조사를 받은 A군은 “장난으로 그랬다. 일이 이렇게 커질지 몰랐다”고 진술했다. 한 초등학생의 장난 글로 인해 백화점이 2시간 이상 문을 닫고, 100여명의 직원과 고객이 혼비백산 됐지만 ‘만14세 이하’인 A군은 어떠한 처벌도 받지 않고 귀가했다. 

일부 청소년들의 강도, 강간, 폭행 등 일탈사건이 연일 보도되는 가운데 급기야 백화점을 테러하겠다는 초등학생까지 등장했다. 하지만 10대 청소년들의 여타 중범죄에 비하면 이번 초등학생의 장난 글은 가볍게 넘길만한 수준이다. 최근까지도 10대 청소년들의 잔혹한 범죄는 끊이지 않았다. 지난달 17일 창원에서 10대 청소년들(16~17세)은 상점주인인 70대 노인에게 맥주병을 휘둘러 상해를 입히고 140만원 상당의 금목걸이를 갈취했다. 같은 달 창원, 김해 인근에서 또 다른 10대 청소년 3명은 인형뽑기방에 설치된 지폐교환기를 부수고 현금을 훔쳐 달아나다 붙잡혔다. 지난해에는 15세 여중생들이 학교 후배를 폭행하고 조건만남을 강요하고 나서 대가로 받은 돈을 강탈하기도 했다. 

이에 ‘소년법(법률 제13524호)’ 개정 논란이 재점화되고 있다. 19세 미만인 자에게 적용하는 소년법은 “형사처분에 관한 특별조치를 함으로써 소년이 건전하게 성장하도록 돕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어 같은 범죄임에도 성인보다 상대적으로 가벼운 처벌을 받게 된다. 이 때문에 청소년들이 소년법으로 비교적 경미한 처벌을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악용하는 사례도 나왔다. 

지난 3월 벌어진 인천 초등학생 살해사건의 공범인 박아무개 양(18, 살인방조 혐의 등 구속기소) 변호인의 법정진술이 대표적이다. 이 변호인은 “피고인의 미성년자 신분이 유지되는 올해 12월 전까지 재판(3심)이 종결돼야 한다”고 말했다. 1998년 12월생으로 현재 만18세인 박양은 법원의 최종 판결이 올해 안에 이뤄지면 ‘소년법(19세 미만)’을 적용받는다. 이에 네티즌들은 “피해자와 유족이 당한 아픔은 무시한 채 소년법 감경효과만을 노린 꼼수”라며 소년법 엄벌화를 넘어 ‘무용론’까지 주장하고 있다. 

성인범죄를 모방하는 등 날로 흉악해지는 소년범죄가 언론을 통해 알려지면서 소년법을 적용하는 ‘연령 기준’을 하향조정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소년법이 의도적인 흉악범죄에 일종의 면죄부를 부여하면서 피해자의 인권과 명예회복이 지나치게 경시된다는 것이다. 최근 하태경 바른정당 의원은 자신의 SNS에 “최근 벌어진 여중생 집단 성폭행이라는 중범죄에 대해 가해자들에게 약한 형을 선고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법관의 잘못이 아니라 소년법 때문”이라며 “점점 흉포화되는 청소년 범죄에 적극적으로 대처하기 위해 소년법상 보호대상인 소년의 연령을 현행 19세 미만에서 18세 미만으로 낮출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반면 소년법을 청소년에 대한 보호·예방·재발방지(재사회화)에 초점을 두고 해석하는 측에선 기존의 소년법 취지를 잘 이행하는 것만으로도 ‘단죄효과’를 충분히 살릴 수 있을뿐더러, 법 기준을 강화해서 범죄를 예방하려는 정책은 실증적 근거가 부족하다고 맞서고 있다. 

이처럼 소년법 엄벌화에 관해 상반된 의견이 팽팽히 대립하는 배경엔 소년범죄를 바라보는 관점과 소년법에 대한 해석의 차이가 있다. 우선 소년법을 한층 더 엄벌화 하는 방향으로 개정해야 한다는 쪽에선 소년법이 죄질에 비해 너무 가벼운 처벌을 내리고 있다는 인상을 받는다. 쟁점은 ‘소년법 특례조항’ 제59·60·65조다. 

소년법 제59조(사형 및 무기형의 완화)에 따르면 “죄를 범할 당시 18세 미만인 소년에 대해 사형 또는 무기형(無期刑)으로 처할 경우에는 15년의 유기징역으로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10대 청소년이 최고형인 무기형을 받게 되면 이를 15년의 유기징역으로 감경한다는 말이다. 다시 말해 소년법의 최고 중형은 사실상 ‘유기징역 15년’이다. 또 동법 제60조(부정기형) 1항은 2년 이상의 유기형에 해당하는 중대한 죄를 저질러도 최대 10년(유기징역)을 초과하지 못하도록 한다. 

설령 중형을 선고받는다고 해도 ‘조기 출소’할 수 있는 길도 열려 있다. 동법 제59조 4항은 “소년범의 행형(行刑) 성적이 양호하고 교정의 목적을 달성했다고 인정되는 경우에는 담당 검찰청 검사의 지휘에 따라 그 형의 집행을 종료시킬 수 있다”고 규정한다. 실제로 ‘가석방’ 규정 제65조의 경우 “징역 또는 금고를 선고받은 소년에 대하여는 ▲무기형 5년 ▲15년 유기형 3년 ▲부정기형 ‘단기의 3분의 1’ 등의 기간이 지나면 가석방을 허가할 수 있다”고 나와 있다. 부정기형(不定期刑)이란 형의 기간을 확정하지 않고 선고하는 자유형으로, 만 19세 미만의 소년범이 2년 이상 징역에 해당하는 죄를 범한 경우 장기와 단기의 기간을 정해 형을 선고하는 것이다.

김현수 한국외대 외래교수(법학전문대학원)는 “소년법상 최고형인 무기형을 선고받은 소년범은 교도소에 입감한 날로부터 15년이 지나면 가석방 대상자가 된다. 18세에 확정재판을 받으면 33세면 출소할 수 있다는 산술적 계산이 나온다. 타인을 무참히 살해하고 사체까지 훼손한 가해자가 30대에 사회로 나올 수 있다는 건 피해자 입장에서 납득하기 어려운 일”이라고 말했다. 김 교수는 “단기형을 선고받아도 열심히 수형생활을 해서 출소를 앞당기고 나서 또 다른 범죄를 저지르는 경우도 많다”고 덧붙였다. 

소년법 엄벌화를 주장하는 쪽은 가해자에 대한 무거운 형량과 처벌로 피해자의 명예를 회복시킴과 동시에 소년범죄가 성인범죄화될 여지를 줄여나갈 수 있다고 말한다. 김 교수는 “그간 소년법은 소년을 보호하고 범죄를 예방하는 데 모든 관심을 쏟아왔다”며 “이제는 피해자의 명예회복과 2차 피해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소년법 ‘엄벌화’에 반대하는 측은 현행법으로도 소년을 엄벌할 수 있음에도 기준을 강화하는 건 자칫 ‘옥상옥(屋上屋, 같은 일을 불필요하게 반복한다는 뜻)’의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한다. 또 몇몇 극단적인 사건으로 성급하게 법 기준을 강화하면 소년을 보호하고 교정한다는 소년법의 목적이 훼손되는 등 부작용이 뒤따를 거란 전망도 무시할 수 없다. 

강경래 대구가톨릭대 교수(경찰행정학과)는 소년법이 너무 관대한 것 아니냐는 인식이 널리 퍼져 있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강 교수는 “현행 소년법에 따르면 10~19세 청소년들은 단순 가출로도 소년원에 보낼 수 있고, 집단적으로 몰려다니거나 음주를 할 경우 가정법원에 송치할 수 있다”면서도 “이런 규정은 소년법이 처벌보다는 ‘보호’에 더 무게를 두고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김은효 대한변호사협회 법제위원은 소년범죄의 근본적인 처방을 주문했다. 김 위원은 “요즘 아이들이 인터넷, SNS 등 수많은 미디어에 무방비로 노출되면서 다양한 범죄유형을 알게 모르게 인지하게 됐고, 학교와 가정에서 교육과 보호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실정”이라며 “이 같은 근본 문제는 개선하지 않은 채 소년법의 연령 기준을 내리고 형량을 높여 처벌만 강화해선 소년범죄가 절대 줄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처럼 소년법 엄벌화에 대한 찬반양론은 법조계에서도 쉽게 결론 내리지 못하는 딜레마다. 범죄를 저지른 10대 청소년을 건전하게 성장하도록 마냥 도울 수도 피해자가 평생 받게 될 상처와 고통을 외면할 수도 없는 것이다. 강 교수는 소년법 엄벌화 논란에 앞서 찬반 양측 모두 고민해볼 지점은 있다고 강조한다. 

“소년법 엄벌화를 얘기할 때 흔히 ‘우리 집 아이는 아닐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범죄에 노출되거나 범죄에 가담하는 소년 사범들은 누군가에겐 ‘우리 집 아이’죠. 가해자와 피해자 양쪽 모두 우리 가족이고, 우리 자녀일 수 있다는 생각을 한 번쯤 해봤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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