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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뉴스

퍼즐형 인간이 될 것인가, 레고형 인간이 될 것인가?

박은경 박은경의파워독서 원장이 말하는 ‘독서를 하는 이유’



《‘책 읽기’의 중요성은 두 말하면 입이 아프다. 고입·대입에서 ‘독서활동’이 면접의 단골 소재로 등장하기 때문만은 아니다. 시대가 독서를 가리키고 있다. 4차 산업혁명시대가 요구하는 창의 융·복합 인재는 독서를 빼놓고 말할 수 없다. 세계를 바라보는 관점, 깊이 있는 해석과 통찰, 그리고 다양한 분야를 아우르는 종합적 사고는 독서를 통해서만 가능하기 때문이다. 교육현장도 이에 공감한다. 실제로 올해부터 도입되는 2015 개정 교육과정에서는 ‘한 학기 한 권 읽기’ 등이 주요 정책으로 등장했다. 

하지만 우리나라 학생들의 독서실태는 정반대의 행보를 걷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최근 문화체육관광부가 발표한 ‘국민독서실태조사’에 따르면 고교생은 연간 평균 8.8권, 중학생은 18.5권의 책을 읽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 달에 겨우 1~2권의 책을 읽는 셈이다. 이는 ‘책을 읽어야 한다’고는 말하지만 ‘책을 왜 읽어야하고, 어떻게 읽고, 읽으면 무엇을 얻을 수 있는지’는 설명해주지 않는 상황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이에 본 기획에서는 박은경 파워독서 원장의 도움을 받아 △독서를 왜 해야 하는지 △좋은 책이란 무엇인지 △책은 어떻게 읽어야하는지를 살펴본다. 가장 먼저 ‘독서를 해야 하는 이유’에 대해 들어봤다.》


○ 진부한 질문에 의미를 두는 이유 

내가 아끼는 책 중에 안드레아 케르베이커의 ‘책의 자서전’은 ‘어느 베스트셀러의 기이한 운명’이라는 부제를 달고 있다. 부제가 말해주듯 책이 주인공이다. 책꽂이에 꽂혀 있는 책의 입장에서 인간을 바라보는 이야기이다. 책이 주인공이라니 꽤 신선하다. 만일 이 책의 주인공처럼 책들이 생각하는 존재라면 책을 읽지 않는 인간을 바라보며 어떤 생각을 할까. 그동안 많은 사람들이 책을 읽어야 하는 이유와 좋은 책을 고르는 법, 혹은 독서법에 관한 이야기를 해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 사람들의 독서량은 점점 줄어들고 있다. 책을 읽지 않으면 안 되는 다양한 이유와 설득력 있는 논리도 독서하는 사람들의 수를 늘리지 못하는 것을 보면 독서법에 관한 책조차도 이미 독서를 즐기는 사람들이 읽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의문이 든다. 
  
누군가 나에게 “책을 읽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라고 묻는다면 뭐라고 말할까 고민스럽다.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훌륭한 답변을 했기 때문에 그들의 대답을 뛰어넘을 자신이 없다. 그래도 이 원초적 질문에 답해보며 책이 우리에게 무엇을 주고 있는지 생각해 보는 일은 의미 있는 일이다. 왜냐하면 책은 인간이 인간일 수 있도록 도와주고 있음을 믿어 의심치 않기 때문이다.  


○ 타임머신을 타고 스승을 만나러 가는 통로 

책을 읽어야 하는 첫 번째 이유는 책은 ‘생각’을 갖게 하기 때문이다. 더불어 자신의 신념을 바탕으로 ‘용기’를 내야 함을 가르쳐 준다. ‘유토피아’의 저자 토머스모어는 헨리8세의 서슬 퍼런 위협에도 굴하지 않고 ‘자신의 수염은 죄가 없으니 조심해서 자르라’며 기꺼이 자신의 목을 내놓는다. 1516년에 발표된 ‘유토피아’는 당시 유럽과 영국 사회의 부정과 부패를 비판하고 이상사회를 제시함으로써 지금까지도 많은 사람들에게 현실을 부정하며 이상세계를 꿈꾸는 사람의 전형을 가르쳐 주고 있다. 500년 전 사람을 책을 통해 만난다는 것은 그야말로 행운이 아닌가. 

그런가 하면 조선최고의 베스트셀러였던 박지원의 ‘열하일기’는 또 어떠한가. 박지원은 자신이 양반이면서 양반을 고발하는 내부고발자의 역할을 함으로써 찬사와 비난을 동시에 받은 인물이다. 특히 ‘허생전’을 통해 청나라에게 수모를 당한 치욕을 씻기 위해 북벌론을 주장하는 당시의 권력자들의 정책이 얼마나 현실성이 없는 탁상공론에 그친 것이었는지를 신랄히 비판한다. 그리고 상업을 가장 천대하던 조선의 국책을 알면서도 양반이 적극적으로 상업을 주도하고 도둑의 무리가 신분의 차별이 없는 이상세계를 건설한다는 이야기를 썼다. 하여 박지원은 ‘깨어있는 왕’ 정조에게 반성문을 쓰고 ‘열하일기’는 오랫동안 금서로 낙인찍히고 만다. 하지만 누군가는 그의 용기를 읽고 군주가 다스리지 않고 민초가 주인이 되는 새로운 세상을 꿈꿔 오늘에 이르지 않았을까. 그러니 책은 시공을 초월한 훌륭한 스승이다.


○ 퍼즐형 인간이 해 낼 수 없는 것 

책을 읽어야 하는 두 번째 이유는 앞으로 우리가 살아가야 할 세상은 더 이상 ‘퍼즐형 인간’을 원치 않고 있기 때문이다. 후지하라 가즈히로의 ‘책을 읽는 사람만이 손에 넣는 것’을 보면 20세기에서 21세기로 넘어가며 ‘퍼즐형 사고’에서 ‘레고형 사고’로 전환되었다고 설명하고 있다. 퍼즐 조각은 하나하나 이미 정해진 자리가 있기 때문에 조각을 잘 못 놓으면 퍼즐을 완성할 수 없다. 퍼즐형인간은 처음에 설정된 정답밖에 만들 수 없다. 그리고 완성된 그림을 바꾸기는 더 더욱 어렵다.  

그러면 이 시대와 미래가 요구하는 인간상은 무엇인가. 그것은 ‘레고형 인간’이다. 레고는 만드는 사람이 원하는 대로 집을 만들 수도 있고 식물, 거미, 자동차나 로봇, 우주정거장을 만들 수도 있다. 정답이 없기 때문에 모두 각자 원하는 대로 만들면 될 뿐이다. 퍼즐과 레고로 시대의 변화를 설명한 후지하라 가즈히로의 설명에 박수를 보내고 싶었다. 그리고 우리의 교육현실을 돌아보며 마음이 개운치 않았다. 아직도 시대의 변화를 눈치 채지 못하고 상상력이나 창의력이 갑자기 하늘에서 떨어지는 것쯤으로 아는 사람들이 있다. 상상력과 창의력은 다양한 지식과 ‘왜?’라는 건강한 질문에서 시작되기 때문이다. 


○ 따뜻한 세상을 만들고 싶다면 

마지막으로 책을 읽어야 하는 세 번째 이유는 책이 ‘소통하는 능력’과 ‘공감하는 능력’을 키워 주기 때문이다. 소통을 하기 위해서는 ‘나’의 입장만을 생각하지 말고 상대의 입장에 대해 역지사지로 살펴보는 마음이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나’와 ‘나’가 만나 ‘우리’가 되기 어렵다. 백설 공주나 ‘운영전’의 운영, 조세희의 ‘난장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의 난장이는 실존인물이 아니다. 그렇지만 우리는 백설 공주가 계모에게 미움 받지 않기를 죽음의 늪에서 깨어나 방긋 웃기를 간절히 바라고, 운영과 김 진사의 사랑이 이루어지기를 간절히 바라고, 그들의 사랑을 막고 죽음에 이르게 한 신분제도에 분노하고, 집이 헐릴 거라는 계고장을 받은 난장이의 가족을 걱정하고, 팔아버린 입주권을 되찾기 위해 검정 승용차를 타고 온 사내에게 자신의 바쳤으나 아버지가 죽었다는 비보를 듣는 영희를 보며 눈물을 흘리기도 한다. 

백설공주와 운영과 김진사, 그리고 영희와 난장이였던 영희의 아버지 ‘윤 불이’는 가상의 인물임과 동시에 이 세상 어딘가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기도 하다. 4지선다 혹은 5지선다의 문제집만을 풀며 지문 속에서 감동의 눈물을 흘리는 아이가 있을 리 만무하다. 더욱이 4지선다 혹은 5지선다는 고3까지만 유효하다. 아니 그마저도 과정중심의 교육제도로 변화되고 있어서 점점 더 실효성이 떨어지고 있다.  


○ 다시 책에게 말을 걸다 

몇 년 전 종이책은 서서히 사라질 거라고 예견한 사람들이 있었다. 그러나 전자책과 종이 책은 건강하게 공존하고 있다. 어쩌면 인터넷으로 더 많은 선택의 폭이 열렸기 때문에 종이 책이 살아남은 것일지도 모른다. 어느 한쪽이 도태되거나 독식하지 않고 다양함을 잃지 않는 것 그것이 건강한 사회가 아닐까 싶다. 그것은 비단 책의 형식만을 말하는 게 아니라 인종, 국적, 성별, 나이, 경제력과 학력을 뛰어넘어 모두가 행복할 권리를 인정하고 누릴 수 있는 세상. 그런 세상을 꿈꾸는 것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 나라 유토피아일지도 모르겠다. 

 며칠 전, 대형서점과 인터넷서점에서 열댓 권의 책을 샀다. 욕심을 부린 탓에 아직 3분의 1밖에 읽지 못했다. 그래서 책꽂이에 그대로 얌전히 꽂힌 채 주인의 게으름을 못마땅해 하며 기다리는 책들의 따가운 눈길이 느껴져 자꾸만 책꽂이에 눈이 간다. 안드레아 케르베이커가 쓴 《책의 자서전》에 등장하는 책들처럼 책꽂이 앞을 왔다갔다 나를 보며 ‘그러게 왜 욕심을 부렸냐’고 책망하고 있는지, ‘그래도 읽고 싶어 하는 의욕이 있어 다행’이라고 위로해 줄지 새로 산 책들에게 말을 걸어볼 참이다.  

 
▶박은경 박은경의파워독서 원장 


▶에듀동아 김지연 기자 jiyeon01@donga.com 

위 기사의 법적인 책임과 권한은 에듀동아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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