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학년도 대입개편 공론화 논의가 한창 진행 중인 가운데 중3 학생, 학부모를 또 다른 변화 속으로 밀어 넣을 교육부의 ‘개편 시안’이 또 하나 발표됐다. 국가교육회의가 여러 대입 공론화 주제 중에서 ‘기술적, 전문적 성격이 높은 사항’이라며 교육부가 결정하라고 넘긴 수능 과목구조 개편 시안이 발표된 것.
교육부가 발표한 시안에 따르면, 국어와 수학 모두 ‘공통 과목 + 필수선택 1과목’ 구조로 쪼개 출제하고, 대신 수학은 지금의 ‘가/나’형과 같은 계열 구분 없이 통합 출제한다. 또 탐구영역도 계열 구분 없이 모든 수험생이 사회탐구 1과목, 과학탐구 1과목을 선택해 응시한다.
물론 이 안은 수능 과목 구조 개편을 위한 토론회 자리에서 하나의 ‘안’ 형태로 발표되어 향후 대학, 전문가, 고교 교원 및 관련 기관의 의견조사 등을 추가로 거쳐야 한다. 그러나 당초 교육부가 국가교육회의로 이송한 3개 안을 정책연구진이 추가 검토해 내놓은 단일안이어서 상당한 무게감이 실려 있다.
○ 수능 과목 구조 및 출제범위 시안의 핵심 ‘학생 과목선택권 강화’
이번 ‘2022 수능 과목구조 및 출제범위(안)’을 내놓기에 앞서 교육부가 전제 사항으로 검토한 것은 △지금보다 시험 준비 부담이 가중되지 않을 것 △2015 개정 교육과정의 취지를 살릴 것 △수능 전형의 운영 가능성을 고려할 것 △타 교육정책과의 연계성, 크게 이 네 가지다.
특히 개편 시안을 담은 발제를 보면, 2015 개정 교육과정이 폭넓게 보장하는 학생의 과목선택권을 실현하기 위해 수능 출제범위에 포함되는 과목 수를 최소화하기 위해 고심한 흔적이 보인다. 현행 교육과정 편제상 필수 교과를 제외하고, 학생이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는 국․수․영 선택과목에 배당된 이수단위는 이과 기준으로 2과목(10단위), 문과 기준으로 3과목(15단위)에 불과하다. 그런데 수능 출제범위에 포함되는 과목이 너무 많아질 경우 어쩔 수없이 수능 대비를 위한 과목 중심으로 교과 편성이 이뤄지게 돼, 학생의 실질적인 과목선택권에 제약이 생기게 된다.
결국 학생이 수능에 대한 부담을 덜고 최대한 자신이 원하는 과목을 자유롭게 이수할 수 있는 고교 환경을 조성하려면, 수능 출제 범위에 포함되는 과목 수를 최소화해야 한다는 것이 정책연구진의 판단이었던 것이다. 국어, 수학 과목 모두에 ‘공통 과목 + 필수선택 1과목’ 구조를 택하는 이번 시안이 나온 배경이다.
○ 매 수능마다 반복되는 탐구 선택과목 간 유·불리 문제… 국어, 수학은 “더할 것”
단순하게 보면, 수능 공통 출제범위에서 빠진 과목들까지 모두 이수할 필요 없이 학생들은 자신이 수능을 볼 과목만 선택해 이수하면 되기 때문에 그만큼 과목 선택권을 폭넓게 보장받을 수 있다. 그러나 일제고사 방식으로 ‘줄 세우기’하는 현 수능 구조를 바꾸지 않은 채 학생 선택권만 강화하는 것은 당초 취지를 달성하기 어렵다. 선택과목 간 유·불리를 완벽하게 해소할 수 없기 때문이다.
현재도 탐구과목은 수험생에게 선택권이 있다. 사회탐구 9개 과목, 과학탐구 8개 과목 가운데 최대 2과목을 선택 응시할 수 있다. 그런데 2018학년도 수능에서 사회탐구 9개 과목의 표준점수 최고점은 최소 63점에서 최대 69점으로 과목에 따라 최대 6점까지 차이가 났다. 과학탐구 8개 과목의 표준점수 최고점도 67~71점으로 나타나, 과목에 따라 최대 4점까지 차이가 났다. 똑같이 만점을 받아도 어떤 과목에선 더 높은 점수를, 어떤 과목에선 더 낮은 점수를 얻게 되는 구조다. 선택과목 간 유․불리를 보정하기 위한 보완재로 각 대학이 백분위에 근거한 변환표준점수를 활용하고 있지만 이 또한 완전하진 않다. 게다가 탐구영역보다 반영비율이 훨씬 큰 국어, 수학영역에서 이와 같이 선택과목 간 유․불리가 생기면, 당락에 미치는 영향은 훨씬 커질 수밖에 없다.
선택과목 간 유․불리는 특정 과목으로의 ‘쏠림’ 현상을 불러온다. 과학탐구 선택과목 중 하나이면서 과목 난이도가 높은 것으로 알려진 물리Ⅱ 응시자는 2008학년도 1만9597명에서 2018학년도 2839명으로 급감했다. 대학 진학이 최우선 목표인 학생은 자신에게 주어진 과목 선택권을 최대한 자신에게 ‘유리’할 것으로 예상되는 과목에 행사하게 된다. 이만기 유웨이중앙교육 교육평가연구소장은 “학생에게 선택권을 다양하게 줬지만 어차피 학생들이 선택할 과목은 다 정해져 있다”면서 “입시를 생각하면, 결국 국어는 화법과작문, 수학은 확률과통계, 사회는 생활과윤리, 과학은 지구과학Ⅰ으로 몰리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 “과목선택권 주면 뭐하나? ‘득이 되는’ 과목만 공부할 텐데”
수능 과목 구조와 출제범위를 지나치게 줄였다는 지적도 나온다. 수업 시수에 여유가 생겨 겉으로는 다양한 수업을 이수하더라도, 실제 학습의 ‘질’을 따져보면, 학생들이 집중 학습하는 과목은 이전 수능 체제보다 더 적어질 수 있다는 것.
시안대로라면 사실상 사회탐구 한 과목, 과학탐구 한 과목만 공부하면서 수능 대비를 할 수 있다. 따라서 과목 선택권을 다양하게 주더라도 실제 ‘학습다운 학습’이 이뤄지는 것은 수능 출제범위에 해당하는 과목으로 좁혀질 수 있다. 국․영․수를 제외한 사회, 과학 과목은 부수 과목으로 전락할 수 있다.
전면 개방형 교육과정을 운영하는 도봉고에서 교감을 맡았던 송현섭 면목고 교장은 “새 교육과정 편제에 따르면 교과이수 기준 180단위 가운데 국․영․수 및 한국사 필수 이수단위인 90단위를 제외하면, 나머지 90단위를 사회, 과학, 교양 과목들로만 채워야 한다”면서 “사회, 과학 등의 수업 시수 비중은 이토록 큰데 그 중에서 사회, 과학 과목별로 한 과목씩, 단 두 과목만 수능에서 출제된다고 하면 수능 응시과목이 아닌 과목의 수업은 파행 운영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송 교장은 “차라리 계열을 구분해 인문계열은 사회2+과학1, 과학계열은 사회1+과학2 방식으로 선택하게 하는 것이 학생들의 학력저하나 기초소양부족 현상을 막는 길일 것”이라고 말했다.
이러한 지적은 수능의 비중이 커지면 커질수록 더 유효하다. 수능의 비중이 커지면 결국 고교는 수능 중심으로 교육과정을 꾸릴 수밖에 없고, 학생 역시 수능을 중심에 둔 학습에 집중하게 되기 때문. 송 교감은 “결국 현재 공론화 논의가 진행 중인 대입 제도 개편과 함께 엮어 생각해야 할 문제”라고 말했다.
▶에듀동아 김수진 기자 genie87@donga.com
위 기사의 법적인 책임과 권한은 에듀동아에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