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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이 다리가 되는 곳, 널문리

‘널문리’였던 판문점이 들려주는 분단의 역사



1592년 4월, 왜구가 조선을 침략하며 임진왜란이 벌어졌다. 무서운 기세로 조선 땅을 짓밟으며 진군하던 왜구를 피해 선조는 피난길에 올랐다. 그러나 파주를 거쳐 북쪽으로 향하던 임금은 멈춰 설 수밖에 없었다. 눈앞으로 가로막은 임진강 때문이었다. 이때 난처한 상황을 해결해 준 것은 다름 아닌 백성들이었다. 백성들은 자신의 집 대문을 뜯어낸 널빤지로 임금을 위한 다리를 놓았다. 이후 이곳은 ‘널문리’라는 지명으로 불리게 됐다.

현재 이곳은 경기도 파주시 진서면 어룡리인 동시에, 황해북도 개성특급시 판문점리라는 두 개의 주소를 가지고있다. 널문리는 한반도에서 일어났던 비극적인 전쟁의 상징이자, 평화를 향한 대화와 소통의 창구인 ‘판문점’인것이다. 그리고 지난 2018년 4월, 판문점에서 남북의 정상이 11년 만에 한 자리에 마주 앉는 역사적인 순간을 맞이했다. 6·25전쟁 이후 다사다난했던 판문점의 역사를 다시 한 번 되짚어보자.



판문점의 역사

‘널문리’가 ‘판문점’이 된 이유는?
한적한 시골마을의 콩밭에 불과했던 널문리가 ‘판문점’으로 불리게 된 것은 1952년 10월 25일, 6·25전쟁 ‘휴전회담’ 장소로 이곳이 지목된 후부터다. 38도 선에서 가장 가까웠기 때문이다. 남북과 미국, 중국까지 가세하면서 이곳의 이름은 순우리말인 널문리 대신, 한자어인 판문점(板門店)으로 바뀌었다. 공식명칭이 ‘유엔군사령부 판문점 공동경비구역’으로 선정됐기 때문이다.

이후 휴전협정을 통해 철책이 세워지고, 삼엄하게 경계를 했던 다른 군사분계선 지역과 달리, 판문점은 비교적 10여 년 동안 자유로운 모습이었다. 남북의 군사정전위원회 관계자들이 제약 없이 남북 지역을 오가기도 했고, 장병들끼리도 자유롭게 대화를 나누며 함께 사진을 찍기도 했다.
 


민족 최대의 명절 추석, 판문점에 불어 닥친 위기
판문점의 분위기를 뒤엎은 것은 다름 아닌 ‘추석’이었다. 1962년 9월 5일, 추석을 맞이한 남북한 경비병들이 화기애애한 술판을 벌인 것이 화근이었다. 사실 이런 병사들끼리의 조우는 놀랄 일이 아니었다. 이전에도 종종 병사들끼리 자리를 만드는 일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날은 달랐다. 거나하게 취한 병사들 사이에 언쟁이 벌어졌고, 급기야 언쟁은 총격전으로까지 이어졌다. 이 사건으로 북한군 3명이 사망하고, 장교 2명이 부상을 입었다. 몇몇 한국군 병사들도 상처를 입었다. 이 사건으로 남북관계는 급속도로 냉각됐다.



결국 판문점에도 그어진 ‘군사경계선’
냉각된 남북관계에 또 하나의 결정적인 사건이 터졌다. 1976년 8월 18일 일명 ‘도끼만행사건’이 벌어진 것이다. 판문점 내 미루나무 가지치기 작업을 하고 있던 UN군과 이를 중단할 것을 요구한 북한군 사이에 시비가 벌어지면서, 작업을 감독하던 미군 장교 2명을 북한군들이 도끼로 살해한 것이다.

이 사건으로 남북은 전쟁 일촉즉발의 위기까지 봉착했다. 그러나 당시 김일성 주석은 인민군 총사령관의 자격으로 “가장 빠른 방법으로 당신측(유엔군측) 총사령관에게 전해주기 바란다”면서 직접 유감의 뜻을 밝혔다. 그리고 이 사건의 후속조치로 판문점 공동경비구역 안에도 콘크리트 연석으로 군사경계선을 표시하며 마무리됐다.

2017년, 세상을 놀라게 한 ‘북한병사 귀순 사건’
 


하지만 판문점의 콘크리트 연석은 누구든지 마음만 먹으면 넘어갈 수 있는 낮은 높이라서 판문점을 통한 귀순과 망명 사건은 끊이지 않았다. 1984년 11월 23일에는 구소련인인 바실리 야코블레비치가 판문점을 통해 미국 망명을 시도한 것이다.

특히 최근에도 판문점에서 북한병사가 귀순해 온 국민의 관심이 집중됐던사건이 있었다. 2017년 북한의 육군 하전사가 판문점을 뛰어넘어 귀순하다가 이를 저지하는 북한 병사들에게 총상을 당했다.

자유의집 부근에 쓰러져 있는 그를 발견한 우리 육군은 그를 구출하는데 성공했고, 수원 아주대병원으로 긴급 이송해 중증외상 전문의 이국종 교수가 극적으로 살려내 화제를 모았다.

비로소 평화의 다리가 된 판문점
2018년 4월 27일. 판문점 평화의 집에서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만나 남북정상회담을 가졌다. 그리고 이번 회담을 통해 양 정상은 휴전상태인 6·25전쟁의 종전과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를 담은 ‘판문점 선언’을 채택했다.

전쟁 이후 언제 다시 일어날지 모르는 전쟁의 불안과 공포를 안고 살아야 했던 우리에게 ‘전쟁이 끝남’을 의미하는 ‘종전’이라는 단어의 등장은 신선한 충격과 거대한 환호를 몰고 왔다. 그리고 과연 이 평화의 의미를 가득 담은 ‘판문점 선언’이 실현될 것인지 남북뿐만 아니라 전 세계가 초유의 관심을 모으고 있다.



백성들이 임금을 위해 다리를 놓아주었던 널문리. 비록 도망가는 못난 임금일지라도 그 임금을 위해
기꺼이 자신의 집 대문을 뜯어 다리를 놓아주는 백성들이 있었기에 지금의 우리가 존재할 수 있었다.

민족의 비극을 낳은 전쟁 이후 비록 널문리는 ‘판문점’이라는 새로운 이름으로 바뀌었을 지라도, 항상 그곳에서 끊임없이 반복되는 희망과 절망, 환희와 고통을 모두 목도하며 두 동강 난 형제 사이에 다리를 놓을 수 있는 유일한 창구 역할을 해오고 있다. 앞으로 우리는 어떤 모습으로 판문점, 문으로 만들어진 다리를 건너게 될지 지켜보아야 할 것이다.

*사진 출처 : wikipedia, 국사편찬위원회, 통일부 남북회담본부,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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