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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학력저하, 더 이상 감추지 말아야 한다  

보통학력 미만 학생 증가 추세 바뀌지 않아


[에듀인뉴스] 기초학력 미달 학생은 중학교와 고등학교에서 국어, 영어, 수학을 제대로 따라가지 못하는 학생으로 기초적인 의사소통능력을 갖췄다고 보기 어려운 학생이다.


한국 교육에서 ‘기초학력의 정의’, ‘측정기준’, ‘측정과정’에 대해 다양한 의견이 있지만 지난 11월 29일 교육부가 발표한 2019학년도 국가수준학업성취도 평가 결과는 암울했다.


기초학력 미달 학생이나 기초학력 미달과 기초학력 수준을 합친 보통학력 미만 학생들이 많아졌는데 학력 저하의 심각성은 전년에 비해 크게 개선되지 않는 상황을 보여준다. 2017년, 측정방식을 표집으로 전환한 이후에 2018년에는 국어, 수학, 영어에서 기초학력 미달 학생(100점 만점에 20점 미만자)이 크게 증가했고 학력 저하가 두드러졌는데 2019년에도 그 추세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영어 교과에서 기초학력 미달 비율이 유의미하게 줄었지만 국어와 수학에서는 전년도와 큰 차이가 없었다. 특히 중학교 수학은 전수조사였던 ’08년을 제외하고는 기초학력 미달 비율이 가장 높았으며 고등학교에서도 보통학력 미만은 여전히 늘어난다. 

  


<표1> ‘03~’19 국가수준 학업성취도 평가 기초학력 미달 비율(%) 
※ 1. ’15∼’19년 고교급 결과분석에 특수목적고 제외/ 2. 통계적 유의도는 95% 신뢰구간(표본의 통계치±1.96*표준오차)을 활용함


교육부는 국가수준 학업성취도평가에서 기초학력 미달과 보통학력 이상으로 나눠 분석했지만 기초학력 미달의 윗 구간인 ‘기초학력(20∼50점)’에 속한 학생들도 적절한 성취수준에 이르렀다고 볼 수 없다. 즉 기초학력 수준의 학생들도 각 교과의 핵심개념을 이해하고 그 지식을 적절하게 활용할 수 있다고 보기 어렵다.


학교교육이 제도교육으로 그 취지를 살리고 학생 스스로 삶에 닥친 문제를 해결하거나 타자와 원활하게 소통하려면 최소한 국어, 영어, 수학 각 교과에서 100점 중에 50점을 초과하는 ‘보통학력 이상’ 수준에 이르도록 해야 한다.   



(표2) ‘17년, ’18년, ’19년 지역 규모별, 학교 급별 성취기준 추이
(표2) ‘17년, ’18년, ’19년 지역 규모별, 학교 급별 성취기준 추이 


교육부와 언론은 기초학력 미달만 고려하여 2018년에 비해 국어와 수학은 비슷한 수준이고 영어는 뚜렷하게 감소했다고 말하지만 교실수업에서 체감하는 또는 실질적인 학력수준은 악화되었다.


<표2>에서 보듯이 중학교와 고등학교의 국어, 영어, 수학에서 중학교 국어를 제외하고는 교과의 핵심개념을 부분적으로만 이해하는 기초학력 수준, 부분적으로도 이해하지 못하는 기초학력 미달 학생이 여전히 늘어나는 추세를 벗어나지 못한다.


특히 고등학교는 대도시나 읍면을 가리지 않고 ’18년에 비해 국어, 수학에서 보통학력 미만 학생의 경우에 국어는 4.9% 와 3.9%, 수학은 5.2%와 3.3%, 영어는 대도시에서 3.6%로 크게 늘어났으며 읍면의 경우에만 1.2%가 감소했지만 이는 오차 범위 내에 있는 수치였다. 다시 말하면 고등학교에서 국어, 영어, 수학의 학력저하는 추세적으로 늘어나며 중학교에서도 주목할만한 개선이 이루어지지 않았다.  
    


고교학점제 정상적으로 시행하기 어려워
 
정부는 2025년 고교학점제를 전면 도입하겠다고 했다. 교육부는 고교학점에 이수기준을 확정하여 발표하지 않았지만 지난 28일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이 주최한 ‘2019 연구 성과 발표회’는 의미 있는 기준을 제시했다.


노은희 평가원 선임 연구위원은 ‘고교학점제에서 교과이수는 무엇을 기준으로 하나’를 주제로 발표했는데 학업성취율의 이수와 미이수를 가르는 최소 학업성취수준을 ‘40% 이상∼60% 미만’으로 제시했다. 그 근거를 ‘교육과정의 교과목 성취기준’, ‘교과목에서 기대하는 최소한의 능력 정도’, ‘현행 성취평가제 E 수준범위 이내’로 삼았다.


이 기준을 ’19년 국가수준 학업성취도평가에 적용하면 아무리 못해도 고등학생 중에 국어는 32%, 수학은 39%, 영어는 25%가 학점을 이수하지 못해 고교 졸업에 어려움을 겪게 된다. 즉 그 학년도에 선택했던 국어, 영어, 수학 과목을 이수하지 못하고 다음 학기에 재수강하거나 대체 가능한 다른 과목을 선택하여 이수해야 한다. 즉 평균적으로 10명중에 3.2명의 학생이 선택한 과목을 이수하지 못하는데 고교학점제를 제대로 시행할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더구나 한국의 교육문화에서 고교 교육이 기본교육인데 학점을 이수하지 못해 졸업할 수 없다면 학부모를 비롯한 사회적 반발을 교육계가 감당할 수 있을까도 의문스럽다. 다시 말하면 초·중·고 교육에서 추세적으로 증가하고 있는 학력저하 현상을 해결하지 않고는 학생의 적성과 진로에 맞추는 혁신교육을 하겠다는 고교학점제의 취지는 살리기 어렵고, 심지어 학생이 적성이나 진로보다는 학점이수에 집중하여 이수하기 용이한 과목을 선택하는 왜곡 현상도 드물지 않게 발생하리라 본다. 


그런데도 교육청 일각이나 교사들 일부는 학력저하를 깊게 우려하지 않거나 국가수준 학업성취도평가가 학력 개념을 획일화한다고 그 결과를 받아들이지 않는다. 구체적으로 “국가수준 학업성취도평가는 교과의 지적능력만 측정하는 왜곡된 평가이지 학생의 정의적 특성이나 신체적 능력을 고려하지 않는다.” 또한 “지난 6년간 국가수준 학업성취도고사에서 부외로 측정한 학생의 행복도 설문조사에서는 중고생의 행복도가 증가했기 때문에 국어, 영어, 수학에서 기본학력의 미달 학생이 다소 늘어났어도 크게 문제라고 할 수 없다”고 말한다.


중학생과 고등학생의 행복도 '높음' 비율은 각각 64.4%와 64.7%였는데 이는 같은 문항으로 조사가 시작된 2013년의 결과(중 43.6%, 고 40.4%)에 견줘 중학생이 20.8%, 고등학생이 24.3% 증가한 수치다. 또한 행복도 ‘높음’ 비율은 2013년 이후 대체로 해마다 상승하는 추세를 보였다. 2년씩으로 끊어서 살펴보면 중학생은 2013년 43.6%, 2015년 56.2%, 2017년 65.5%, 2019년 64.4%였다. 2018년엔 62.7%로 떨어졌지만 올해 다시 상승으로 돌아섰다. 고교생은 2013년 40.4%, 2015년 49.2%, 2017년 56.4%, 2019년엔 64.7%였다.  



’13~’19년 학교생활 행복도 ‘높음’ 비율(%)
(표3) ’13~’19년 학교생활 행복도 ‘높음’ 비율(%)


이처럼 행복도가 증가했지만 그 사실이 학력저하의 문제를 해결하지는 못한다.


국가수준 학업성취도평가 결과에 대해 해석하는 사람에 따라 학력저하를 감수하고서라도 학생들의 행복이 더욱 바람직하다는 가치판단은 할 수 있지만 이는 한국교육에서 학생의 학력과 행복을 대립하는 측면으로 이해하게 만드는 착각을 불러일으킬 수 있으며, 무엇보다도 초중고 교육에 나타난 학력저하의 심각성을 가릴 위험성이 크다.


더구나 학생의 ‘학교생활 행복도’를 구체적으로 드러내는 ‘성취수준별 학교생활만족도’의 ‘학교생활 행복도’, ‘심리적응도’, ‘교육환경 만족도’에서 학력수준이 높은 학생일수록 학교생활만족도가 높았다.     



표4&gt; ‘19년 성취수준별 학교생활 행복도 비율(%)
(표4) ‘19년 성취수준별 학교생활 행복도 비율(%)


국가수준학업성취도 평가를 ‘지적 평가’로 보는 비판을 받아들여 정의적 측면을 보여주는 <표5>의 ‘교과기반 정의적 특성’을 분석해도 학력저하의 심각성은 달라지지 않는다.


학력수준이 높을수록 학습의지를 보여주는 ‘자기관리역량’이나 자신감, 흥미를 드러내는 ‘감성적 역량’이 나, 사회적 속성을 가치로 드러내는 ‘사회적 관계역량’이 높다. 다시 말하면 학생들의 ‘지적역량’, ‘자기관리역량’, ‘감성적 역량’, ‘사회적 관계 역량’은 밀접한 관련이 있으며 국어, 영어, 수학의 학력수준과 비례한다.


또 교육의 본질이 내적이든 외적이든 보수든 진보든 “학생의 학력을 일정한 성취수준에 이르게 해야 한다”는 점을 시사한다고 볼 수 있다.


물론 학생의 주관적 행복도가 늘어나는 현상은 당연하게 바람직하다. 박백범 교육부 차관이 “학생의 행복도가 꾸준하게 높아지고 있는 현상은 긍정적이며, 모든 학생들이 배움의 과정에서 소외되지 않고 행복한 학교생활을 할 수 있도록 맞춤형 학습지원을 적극적으로 추진할 예정”이라고 밝힌 것도 긍정적이다.


그러나 행복도는 개인의 주관적 지표로 학생마다 그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이 다양하기 때문에 행복도 조사결과만으로 교육적 맥락을 해석하는 것은 충분하지 않다. 지적 학력에서 보통학력 이상의 학생 비중이 추세적으로 늘어나고 그와 동시에 정의적 특성에 따른 학생의 의지나 흥미가 늘어날 경우에 학생 개인의 고유한 직관적 느낌인 행복도의 증가는 비교 지표로 유의미하다.


개인의 행복은 주관적이지만 사회적 가치인 부나 지위, 권력의 소유 정도와 무관하지 않고 국어, 영어, 수학의 학력수준이 사회적 희소가치의 소유에 크게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따라서 단지 국가수준 학업성취도를 행복도만을 기준으로 평가하려는 태도는 타당성이 부족하다. 



(표5) ‘19년 성취수준별 교과기반 정의적 특성 비율(%)  
(표5) ‘19년 성취수준별 교과기반 정의적 특성 비율(%)  



교사가 바라보는 학력저하의 원인
 
국가수준 학업성취도에서 보여주듯이 한국의 중학교와 고등학교에서 추세적인 학력저하가 나타나는 까닭은 무엇인가? 교육부나 교육청은 학력저하 논란이 있을 때마다, 국민이 기초학력 미달 학생이 증가하는 것에 대해 심각하게 걱정할 때마다 기초학력 미달 학생에 대해 특정한 맞춤형 대책을 제시했고 그에 맞춰 상당한 재정과 인력을 투입했지만 그 성과는 변변치 않았다. 기존의 기초학력 대책은 문제의 원인을 송곳처럼 분석하지 못했거나 그에 맞는 적절한 대안이 아니었거나 지엽적으로 접근했을 가능성이 매우 크다.


  
첫째, 교육청은 외부 목소리에 귀를 닫아
 
교육전문가마다 교사들마다 그 원인에 접근하면 이견이 있을 수 있지만 ‘지난 수 년 동안 지역에서 교육정책을 실질적으로 수립하고 끌고 가는 상당수의 교육청이 학습과학의 원리를 무시하고 특정한 교수학습법에 집착한 현상’을 주요 원인으로 꼽는데는 이견이 있을 수 없다.


또 외부에서 특정한 교수학습법에 매몰될 경우 필연적으로 학력저하가 발생할 수 있다고 우려하면 오히려 경쟁과 서열화를 부추긴다는 이분법적 논리인 선악의 구도로 재단하고 타자의 목소리에 대해 경청하려고 하지 않고, 교육청의 방향을 따르는 쪽으로만 재정과 인사에서 혜택을 주었기 때문이라고 본다. 


학습과학과 뇌과학은 사실적 지식이 사고와 문제해결에서 중요하다고 보며 그에 그치지 않고 사실적 지식을 비롯한 절차적 지식의 이해와 전이를 강조한다. 구성주의적 학습이론에서도 기존의 지식이나 경험에 근거해 새로운 지식을 구성하여 이해한다고 본다(Cobb,1994).


그렇기 때문에 학습자가 지식을 불완전하게 이해하거나 그의 사고가 잘못된 신념과 개념으로 이미 채워졌을 경우에 교사가 학생의 학력을 세밀하게 파악하지 않고 교수학습을 이어가면 학력 향상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지구의 모양을 공 모양보다는 팬케이크 모양으로 여긴다(Vosniadou& Brewer, 1989)”든지 “물고기는 물고기다(Lionni, 1970)”에서 보듯이 학생들은 새로운 지식에 직면하더라도 그의 경험과 일치하는 지식만을 수용하여, 기존에 고수했던 신념을 강화하려는 경향이 크다.


교사가 강의식이든 활동식이든 교수학습을 하기 전에 학생들의 선 개념이 미흡하거나 오류인 경우에는 어떤 교수학습 방식을 하든지 학생의 학습이해력을 향상시키기 어려우며 전이가 이루어져도 불완전하고 오 개념이 확장되어 누적될 가능성이 크다. 중3과 고2가 치룬 국가수준 학업성취도평가가 보여주는 학력저하 현상은 중학교와 고등학교의 문제라고만 할 수 없다.


다수 학생들이 초등학교나 중학교 때에 교육과정으로 정한 각 교과 단원의 핵심개념을 이해하지 못해 일정한 성취수준에 이르지 못한 상태에서 상위학교로 진학하기 때문이라고 봐야 한다. 학생들이 언어적이든 수리적이든 이전의 학교에서 성취해야 하는 교과개념을 분명하게 이해하지 못하는데도 상위학교에 진학하게 되면 누적된 학습량은 선 개념의 오류를 키울 뿐이지 긍정적인 교수학습이 이루어질 수 없다.   


구성주의 학습과 관련해 교수법에 대한 오해도 있었다. 지금은 이전에 비해 그러한 경향이 줄어들기는 했지만 지난 몇 년 동안 교육청은 혁신수업을 말하면서 “교사가 학생에게 어떤 것도 직접 말해줘서는 안되며 학생 스스로가 모둠의 구성원과 토론을 통해 스스로 지식을 구성하도록 해야 한다”는 학습법을 권장했다.


혁신학교에서는 적극적으로 그 학습법을 실행하였고 교육청은 ‘교육과 학교의 미래’라고 찬양하여 평가했다. 즉 학생이 개별적으로 학교의 안과 밖에서 갖는 고유한 경험만을 강조하여 교사가 어떻게 가르치든 상관없이 모든 지식이 사전지식을 바탕으로만 구성된다고만 강조했고 교사 연수에서도 그 경향은 찬미되었다.


그런 까닭에 교사의 강의식 수업은 부차적이고. 주입식 또는 암기식의 낡은 방식이라고 폄하되었다. 더구나 교육청이나 혁신교육의 제창자들은 학생의 선 개념만을 강조했지 선 개념의 오류를 치료하기 위해 학생의 선 개념이 어떤 상태인지를 정밀하게 파악하기 위한 과학적이고 합리적인 기초학력진단평가 등에 대해선 서열화 일제고사라고 한 면만 보면서 외면했지 적극적으로 고민하지 않았다.


나아가 선 개념을 파악했어도 그 문제를 시정할 수 있는 대안으로 교사의 강의식 교수법이 유효함에도 불구하고 이를 부정적으로 여겼고, 교사연수 등을 통해 적극적으로 다양한 교수법을 제시하기보다는 여전히 ‘활동형 수업방식’을 ‘선(善)’이라고 일반화하고 정책의 중심에 두었다.


결국 학생들은 중학교나 고교 교실수업에서 배운 내용을 잠깐 기억하다가 얼마 지나지 않아 상실해버리고 다시 이전의 선 개념 상태로 돌아가는 경우가 많았다. 물론 교사가 제공하는 지식으로 학생의 사고와 지식을 채워야 한다는 ‘빈 그릇 모델’을 수용하라는 뜻이 아니다. 


 
둘째, 지식 기억과 인출의 메커니즘 고려하지 않아
 
학력정책이 학습과학 측면에서 학생의 자발적 학습만 강조했지 학습한 내용을 기억하는 메커니즘을 부정했다. 학생이 학교교육과정에서 교수학습으로 같은 경험을 했는데도 학습기억에서 오 개념에 빠져있거나 학습 정도에 차이가 나는 까닭은 궁극적으로는 ‘장기기억에 저장된 정보의 양과 질적 차이’의 탓인데 교육정책이 특정한 교사나 교육청 관료의 개인적 경험이나 독단적 신념에 근거하여 추진되었기에 학력저하 문제는 심각해졌다고 본다.


다시 말하면 학력이 낮은 학생은 장기기억에 저장된 정보의 양이 적고 그 질이 낮으며 기억된 정보의 양이 많을수록 그 질이 좋을수록 문제해결력이 뛰어나고 성취수준이 높다는 과학적이고 합리적인 근거를 크게 염두에 두지 않았다.


기억은 보통 단기기억이 아닌 장기기억을 뜻하는데 ‘서술기억’과 ‘비서술기억’이 있다. 서술기억은 ‘사실적 지식’에 관한 기억이며 비서술기억은 ‘절차적 지식’에 대한 기억이다. 세칭 ‘역량’이라 불리는 기억은 비서술기억이다. 기억의 조직에는 측두엽 안쪽에 있는 해마가 주도적인 역할을 하는데 이것이 단기기억을 장기기억으로 바꾼다.


교수학습에서 이루어진 외부적인 정보를 차곡차곡 분류하여 이미 저장된 과거의 기억과 연결해 정교하게 만든 후에 대뇌 피질에 각인시킨다. 따라서 해마가 손상되면 과거기억을 연상할 수 있지만 새로운 정보를 기억하지 못한다. 뇌에 정보를 저장하고 기억한다고 하니 저장 공간이 있지 않을까 추측할 수 있지만 없다. 해마가 정보를 가공하여 대뇌피질에 새겨 넣을 때에 시냅스가 발화되고 연결이 이루어지는데 그 때 기억이 만들어진다. 즉 외부적 정보는 수많은 시냅스들이 동시에 발화하고 연결되면서 저장되고 기억되며 학생들이 학습하는 지식과 인식도 이러한 과정을 거친다.


뇌는 공리주의자이다. 죤 스튜어트 밀(John Stuart Mill)처럼 쾌락의 질을 따지는 질적 공리주의자이기보다는 제레미 벤담(Jeremy Bentham)류의 양적 공리주의자이다. “쾌락에 반응하며 고통에 움츠려든다” 즉 쾌락의 유무만을 따지지 쾌락의 근원에 따른 질적 차이를 고려하지 않고 단지 쾌락의 근원을 기억했다가 반복적으로 반응한다.


이런 까닭에 학습과정은 의지적이든 무의지적이든 쾌락이라는 윤활유가 적극적으로 충전되어야만 활성화된다. 그 점에서 교육과정과 교수학습에서 학생의 흥미와 적극적 자발성을 앞세우는 ‘학생주도의 교수학습과정’은 긍정적이며 학습내용을 분절화해서 평가하는 ‘과정중심평가’ 즉 ‘형성평가’를 강조하는 까닭도 이해할 수 있다. 즉 뇌가 더 빠르고 자주 쾌락을 느끼게 하려는 학습디자인이다.


또 뇌는 외부의 정보를 사진이나 동영상처럼 생생하게 저장하지 않는다. 이는 너무 많은 에너지와 노력이 소모되고 필요하기 때문이다. 즉 뇌는 정보의 처리와 기억에서 항상 최소한의 에너지를 쓰기 위해 대략적으로 의미 있다고 판단한 정보만 선택하며 학생은 그의 개인적 경험이나 가치관, 이해수준, 판단능력 등의 맥락에 따라 어떤 정보가 그에게 유리한가를 판단하고 추론하기 때문에 학습된 지식의 종류와 기억의 정도는 학생마다 다르다. 학생의 감정도 학습기억에 크게 영향을 미친다.


새로운 정보는 해마로 보내져 임시적으로 보관되었다가 강하게 자극하거나 반복하는 정보를 골라내어 대뇌피질로 새겨 넣는데 그 과정에 감정의 중추인 변연계의 측두엽 내측에 있는 편도체가 개입한다. 편도체는 해마에서 정리한 정보에 대해 긍정적이거나 부정적인 감정을 실어 대뇌피질로 전달하는데 불쾌하거나 해로운 정보를 기억하라고 하면 의도적으로 망각하거나 왜곡한다.


국가수준 학업성취도평가 분석에서 학생의 자신감, 흥미, 학습의욕, 가치를 보여주는 ‘정의적 특성’을 학생의 학습효과에 영향을 끼치는 주요 변수라고 추정할 수 있는 까닭이 뇌의 쾌락적 성질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셋째, 인간의 고유성은 좌뇌 전두엽에 있는데 단순지식교육과 지식교육을 착각해
 
그러나 편도체의 쾌나 불쾌라는 감정적 측면만을 강조하고 교수학습을 이해하면 학력저하는 더욱 심화될 수 있다. 인간의 고유성은 고등사고력에 있고 지식이 좌뇌와 밀접한 관련이 있고 기능 저하가 학력저하의 주범인데 그 원인을 덮을 수 있기 때문이다. 즉 교사가 학교에서 고등사고력을 키우는 지식기반의 교수학습법을 경시하면서 공감능력의 확장에만 치우치면 단기적 쾌락과 자기만족에 빠질 수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전두엽으로 대표되는 좌뇌가 발달하지 않으면 외부의 정보를 받아들이는 눈, 귀 등 감각기관에 이상이 없고 공간지각능력을 담당하는 우뇌에 이상이 없어도 학력저하는 필연적이다.


지금 초중고의 교재로 활용하는 다수의 교과서는 주로 언어문자로 된 텍스트인데 책을 읽을 경우에 글자(정보)는 시각의 뇌인 우뇌에 속하는 후두엽의 시각피질에서 활성화되어 언어의 뇌인 좌측 측두엽으로 이동하여 청각적인 정보, 즉 언어적인 형태로 바뀌고 다시 전두엽으로 이동하여야만 이해할 수 있다.


즉 우뇌가 발달했어도 좌뇌의 기능이 약하면 고등사고력의 중추인 전두엽으로 외부의 정보를 보내지 못하기 때문에 교사가 아무리 열정적으로 수업을 하고 학생의 감각기관이 외부 정보를 수용해도 학생은 그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다.


특히 좌뇌가 미숙하면 ‘분석’, ‘추리’, ‘평가’, ‘종합’, ‘창의력’ 등 고등사고력은 성장하기 어렵다. 그런데 지난 수년 동안 그리고 지금도 일부 교육청이나 교사들은 학생들이 그동안 ‘단순 암기 지식교육’에만 강제 당했으며 경쟁과 서열화의 굴레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말하면서 의도적으로 교육과정에서 지식을 경시했다. 


그러나 전두엽은 단순 지식을 싫어한다. 언제나 새로운 지식을 좋아하며 새로운 지식을 해결하는 과정에서 도파민이 분비되고 쾌락을 느껴 더욱 더 학습에 매진하게 한다. 즉 ‘지식교육’을 반대하는 것과 ‘단순 지식형 교육’을 반대하는 것이 확연하게 다른데도 시류에 추종하거나 개인적 경험을 일반화하여 학생들의 학력저하를 깊게 고찰하지 않았다.


교육청이 교사에게 지식전수를 기피하게 할 것이 아니라 좌뇌를 개발시키는 다양한 교수학습법을 개발하고 교수학습에 적용시켰어야 했는데 교수법을 교사주도의 강의식과 학생중심의 활동형으로 이분법한 후에 선악의 개념으로 적용해왔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학생이 지식을 수용할 때에 장기기억에 저장된 지식의 양과 그 질이 좋을수록 뇌는 새로운 정보를 처리하는데 드는 에너지 소모를 줄이기 때문에 학생이 지식을 수용하는 과정에서 상대적으로 과부하가 걸리지 않게 됨으로써 작업 기업(단기기억)의 공간이 늘어나고 늘어난 작업 기억은 모든 뇌의 영역에 영향을 미쳐 경험과 감정과 추리까지도 통합하는 실질적으로 지식, 정의, 기능을 통합하는 ‘참된 통합적 교수학습’이 이루어지며, 비판적이고 창의적인 인재를 기를 수 있게 된다.


그렇게 할 때만이 학생의 자기주도적인 학습이 강화될 수 있지, 활동중심의 경험적 학습에 치우치면 전두엽이 미숙하고 측두엽이 활성화되지 못하기에 그 경험은 성장할 수 없다. 게다가 장기기억에 저장된 지식이 왜곡되는 측면도 고려하지 않았다. 외부의 정보는 뇌의 특정 영역에 물질적으로 저장되지 않기 때문에 아무리 실증적으로 탐구해도 어떤 기억을 찾지는 못한다.


누구든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상황에서 저장된 정보인 기억을 불러들이게 되는데 그 때 서로 발화되었던 관련된 시냅스들을 다시 연결해야만 적절한 지식을 연상할 수 있기 때문에 그 과정에서 오류가 생길 수 있다. 만약 지식을 인출하는데 뇌의 가소성으로 시냅스가 재 배선되어 기억할 때와 다른 시냅스들이 결합되어 있으면 기억 간의 충돌로 저장할 때의 지식을 완전하게 떠올리기 어려우며 기존의 시냅스들이 제거된 경우라면 아예 저장된 지식을 끌어낼 수도 없다.


그렇기 때문에 초등학교나 중학교에서 지식에 대한 이해가 제대로 되었다고 하더라도 상위학교에서 학습이 그 이전의 기억과 다르거나 오 개념을 반복적으로 학습한다면 교육과정에서 기대하는 일정한 성취수준에 이르게 하는 학습효과는 기대하기 어려우며, 학생의 역량은 길러지지 않고 오히려 퇴행할 수 있다.


이처럼 오랫동안 학생중심의 교육이라는 미명하에 가장 기본적인 학습 원리마저 도외시했고 어느 면에서는 지식을 획일화하며, 근거 없이 재단하여 부정하는 교육과정이 비판적 성찰 없이 진행되었다. 기본개념도 부족한 학생들에게 전이의 꽃인 ‘융합수업’을 일반화하며, 그 형식이 마치 모범적 패턴인 것처럼 교육청은 전시적으로 추구했다. 그러니 학력저하는 당연한 결과였다.    
 


학력저하의 대안
 
학력저하의 문제를 벗어나려면 기초학력에 대한 특정한 맞춤형 대책을 찾으려고 하지 않아야 한다. 그동안의 비합리적인 교육정책을 성찰해야 하며 특히 교육청에서 교수학습에 대한 사고의 대전환이 이루어져 그 물결이 학교로 흘러들어 가도록 해야 한다.


교사의 효과적 교수법에 박차를 가하는 교육정책을 중심에 두어 교사가 단원의 주제와 관련해 학생이 이미 가진 선 개념이 무엇인지를 이끌어내고 선 개념이 호기심을 느끼도록 도전적 경험을 제공하고 이를 바탕으로 새로운 내용을 장기 기억에 효과적으로 저장하여 이해할 수 있도록 인적·물적 기반과 이론을 뒷받침해야 한다.


교수학습에서 그 차시를 ‘활동중심형’이나 ‘교과내 통합’이나 ‘교과간 통합’으로 구성하는 방식으로는 학생의 선 개념을 알 수 없고 선 개념의 오류를 해결하기 어렵다는 점을 인지하여 탐구라는 측면에서 학생의 역량을 개발하려고 해야 한다.


즉 교사가 학생의 사실적 지식에 대한 심층적 지식기반을 바탕으로 학생 스스로가 개념적으로 패턴적 틀을 사용해 사실과 아이디어의 관계를 이해할 수 있도록 가르치도록 유도해야 한다.


학생이 교사를 통하든, 그렇지 않든 ‘자기주도학습’을 하기 위해서는 교사가 교수학습과정에서 학생에게 어떻게 지식을 인출하고 적용을 촉진할 수 있는가와 관련된 패턴 관계, 불일치의 방식을 가르칠 수 있도록 교육정책의 대전환을 깊게 고민해야 한다. 지금처럼 학력을 기초학력과 그 이외의 학력으로 구분하고 마치 기초학력 문제만 해결하면 충분하다는 방식으로는 한국교육에서 점차 확산되고 있는 학력저하 현상을 막을 수 없다. 


박제원 전주 완산고 교사
박제원 전주 완산고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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