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숨결이 쓸고 지나간 화면(畫面)엔 붓결이 발아하듯 돋아난다

[인터뷰] 김근태
“내 그림엔 내가 없어… 숨결만 있을 뿐”
붓질로 구현한 무아(無我), 붓결로써 드러나
조선일보미술관 기획전 ‘2020 Art Chosun on Stage’
개인전 ‘숨,결’ 2월 13일 개막

 
붓을 움직인 것은 작가지만 정작 그림 안에 작가는 없다. 종일 하늘을 날았지만 날아다닌 흔적이 없는 새처럼. “모든 작업과정은 궁극적으로 제 흔적과 체취는 완전히 지워내는 대신 있는 그대로의 물성을 살려 화면 그 자체만을 남기기 위함입니다.” 김근태(67)의 회화에는 비움의 세계를 통해 근원을 건드리고 무아(無我)와 근 정신의 경지가 담겨있다. 붓질을 수없이 거듭하며 자신을 비워내고 나아가 화면도 비워낸다. 회화라는 매체를 통해 비물질적인 정신세계를 물질화한다. 새하얗거나 시커멓기만 한, 그래서 자칫 단조롭고 공허할 수 있는 김근태의 화면이 가득 참으로 전복되는 순간이다. “설니홍조(雪泥鴻爪)라고 하잖습니까. 눈 위에 기러기가 잠시 앉았다가 날아간다 한들 눈이 녹으면 발자국은 영영 사라져버리는 것에 지나지 않아요. 수천, 수만 번 붓질했지만 제 그림에 남은 건 아무것도 없는 것과 같죠.” 그의 지나온 시간의 궤적과 숨결의 자취가 붓결로써 첩첩 쌓인다.
 




 
가만히 있어도 저절로 쉬어지는 게 숨이다. 숨은 가장 의도적이면서도 의도적이지 않은 생명의 행위이자 흔적이다. 지구가 알아서 자전하듯이 호흡의 이치 또한 같다. 반면, 붓결은 인공(人工)의 결과물이다. 의지와는 무관한 숨과는 반대개념인 셈이다. 김근태는 이 두 상반된 개념의 충돌 지점을 더듬어 탐색하고 있다. 서로 다른 둘의 접점을 찾아가는 여정은 지금도 현재진행형이다. 탐색 도구는 재료다. 재료의 물성이 본디 지닌 순수성을 최대한 헤치지 않고 화면에 있는 그대로 구현해내는 것이 김근태가 지향하는 바다. “저는 화가이기에 붓을 통해 이 숨이란 것을 화면에 가시화시킬 뿐입니다.”
 
몇 겹이고 포개진 두터운 덧칠로 화면이 일면 거칠기도 하지만 가까이 다가서면 세필이 하나하나 훑고 지나간 듯 섬세하다. 붓질로 닦이고 닦인 이 무수히 많은 길은 보는 이에게는 끝없는 읽을거리와 볼거리다. 미세한 붓 길 사이사이마다 열린 결말이다. 김근태의 그림은 창의적 사고의 영토를 허락한다. 그는 예전만 하더라도 작업 중 잡념이 들 때면 의식적으로 이를 떨쳐내려고 했다. 그러나 요즘은 다르다. 작업하다 보면 별생각이 머릿속에 비집고 들어오지만 이젠 의식하는 대로 흘러가도록 놔둔다. 그리고 이를 붓에 싣는다. 그러면 붓이 살아 움직인다. 의식은 곧 생명이다. 숨이 담긴 붓은 화면을 횡단하며 그 숨결의 흔적을 켜켜이 새긴다. 스스로 살아 있음을 증명하는 숨을 더할 때 붓질이 일어나고 그것의 흔적이 캔버스에 고스란히 드러난다.
 
끝없는 중첩의 시간을 관통한 캔버스 표면에는 작가의 흔적이 오롯이 결로 새겨지는데, 들숨과 날숨을 참고 또 뱉어내길 거듭하다 보면 때로는 그 결 위에 흠과 찢김이 발아하듯 돋아난다. 이 역시 생긴 그대로 내버려 둔다. 상흔을 굳이 덮어두지 않는 이유는 우리네 삶도 이와 별반 다르지 않기 때문일 테다.
 



 
조선일보미술관 기획 ‘2020 Art Chosun on Stage’ 김근태 개인전 <숨,결>이 2월 13일 개막한다. 시그니처인 블랙과 화이트 작업을 비롯해 지난해 홍콩 화이트스톤갤러리에서 열린 전시에서 큰 호응을 받은 돌가루 작업을 함께 선보인다. 김근태는 지난 2년간 독일, 일본, 베트남, 홍콩을 오가며 활발히 전시를 이어왔다. 특히 지난해 12월 베트남국립미술관에서 열린 ‘한국-베트남 현대미술교류’전(展)을 통해 박서보, 이우환을 잇는 차세대 단색화 화가로 소개됐다. 3년 만에 마련되는 이번 전시에서 절제와 인내의 시간을 붓질이라는 행위로 모두 밀어내며 완성되는 김근태의 작업세계를 만날 수 있다. 오프닝은 2월 13일 오후 4시이며, 전시는 휴관일 없이 2월 23일까지 10:00~18:00 운영된다. (02)724-7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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