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미술산책] 불멸의 화가, 빈센트 반 고흐

-예민한 감수성의 아웃사이더 '빈센트 반 고흐' 
-‘자화상’ 그리며 인물의 본질과 내면을 탐구하다 
-도시를 떠나 정착한 아를, 그리고 ‘해바라기’ 
-푸른 밤하늘, ‘별’ 보며 꿈을 꾸다 

*별이 빛나는 밤에(1889년, 캔버스에 유채, 74 x 92 cm, 뉴욕 현대미술관)

전 세계가 사랑하는 화가 빈센트 반 고흐. 강렬한 색감, 두껍게 발린 물감의 표현, 사실주의적이면서도 독창적인 관점을 가졌던 그는 고집스러운 예술관과 성격으로 인해 세상과 융화되지 못했던 사람이다. 이 때문에 권총 자살로 스스로 생을 마감하기 직전까지 누구에게도 인정받지 못하고 평생을 곤궁하게 살았다. 

그러나 정신질환으로 인해 ‘미치광이’라는 비난에까지 시달리던 그는 사실 매우 여린 감수성의 소유자였다. 또한 그는 내면에서 끓어오르는 강렬한 감정을 표현하기 위해서 끊임없이 연구했고, 그의 실험적인 색채와 표현법은 현대 미술사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게 된다. 짧지만 불꽃 같은 삶을 살다 간 천재 화가, 빈센트 반 고흐의 작품을 감상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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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기 인상주의란? 


인상주의는 19세기 후반 프랑스에서 일어난 근대 미술의 한 경향으로, 사물의 고유색을 부정하고 태양 광선에 의해 시시각각으로 변해 보이는 대상의 순간적인 색채를 포착해서 밝은 그림을 그렸다는 특징이 있다. 

후기 인상주의(Post Impressionism)는 특정한 예술운동이나 단일한 경향을 가리키는 말은 아니다. 대략 1890년에서 1905년 사이 나타난 신인상주의, 상징주의, 야수주의까지 포괄하는 ‘인상주의 이후의 흐름’을 의미한다. 

후기 인상주의 화가 대부분이 인상주의의 영향을 받은 것은 사실이지만 그들은 점차 인상주의에서 발전해 개성 있는 화풍을 펼쳐 나갔고 20세기 회화 발전의 씨앗이 됐다. 대표적으로 폴 세잔, 빈센트 반 고흐, 폴 고갱, 조르주 쇠라, 앙리 마티스 등이 이에 해당한다. 



예민한 감수성의 아웃사이더 '빈센트 반 고흐' 


*자화상(1889년, 캔버스에 유채, 55 x 65 cm, 오르세 미술관)

1853년 네덜란드 남부에서 태어난 빈센트 반 고흐(Vincent Van Gogh, 1853~1890)는 독일 개혁 교회 목사의 아들로 6남매 가운데 장남으로 태어났다. 그의 원래 꿈은 할아버지와 아버지를 따라 성직자가 되는 것이었다. 하지만 번번이 신학대학 입학에 낙방하고, 교회에서도 그의 기질과 성격적 문제를 들어 전도사로 받아주지 않았다. 

실망한 고흐는 중학교를 졸업하고 삼촌이 운영하는 화랑에서 판화를 복제해 판매하는 일을 하기로 한다. 그러나 처음에는 모범적이고 성실한 청년으로 인정받았으나, 계속되는 손님과의 갈등과 종교에 대한 미련이 남아 화랑 일을 소홀히 하는 바람에 결국 해고당했다. 

방황은 계속됐다. 하지만 고흐는 포기하지 않았다. 테오의 조언으로 정식 화가가 되길 결심한 것이다. 그의 나이 27세, 그는 인생을, 아니 세상을 바꿀 화가로서 첫 발돋움하게 된다. 그의 작품은 현재까지 가장 비싼 그림들 사이에 포함돼 있다. 강렬한 그의 그림은 야수파, 초기 추상화, 표현주의 등 현대미술에 큰 영향을 미친다. 

*1885년 4월, 고흐가 그의 첫 걸작인 감자 먹는 사람들에 대해 동생 테오에게 쓴 편지

그러나 녹록지 않은 세상 속 그는 지독한 가난과 고독에 맞서 싸우며 예술혼을 불태웠다. 고흐는 자신을 평생 뒷바라지한 가족이자 동생, 둘도 없는 친구인 테오 반 고흐(Theo van Gogh)를 깊게 의지했다. 

37세에 요절한 그의 극적이고 고통스러운 삶의 모습, 자신이 완성한 작품의 의도 등은 그가 세상을 뜨기 전까지 테오에게 보낸 670여 통의 편지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자화상’ 그리며 인물의 본질과 내면을 탐구하다 


*귀에 붕대를 한 자화상(1889년, 캔버스에 유채, 45 x 51 cm, 개인 소장) 

고흐만큼 자기 자신을 그린 자화상을 많이 남긴 화가도 없다. 그는 항상 무뚝뚝한 얼굴로 거울을 보면서 자신의 얼굴을 그렸다. 그렇게 남긴 자화상의 개수만 무려 43점에 달한다. 

그가 이렇게 많은 자화상을 남긴 이유는 인물의 본질과 내면을 표현하는 인물화를 그리며 그림 실력을 늘리려고 했기 때문이다. 고흐는 자신의 여동생에게 보낸 편지에 ‘나는 사진가가 포착한 사진 속 내 모습보다 더 심도 있는 나의 초상을 탐구하는 중이다’라고 적었다. 

강렬한 색과 보색대비를 자유자재로 구사하기 위해 그는 자화상을 그리며 연습했다. 물론 모델을 구하는 데 어려움이 있던 것도 하나의 이유다. 

자화상 속의 고흐는 각양각색의 모습을 하고 있다. 대부분 단정한 차림을 하고 있지만 머리는 밀짚모자나 페도라, 군밤모자를 쓰거나 아예 머리카락이 없을 때도 있다. 때로는 수염을 덥수룩하게 기르고 파이프를 물기도 하고, 수염 없이 말끔하게 앉아 있거나 심지어 귀가 잘린 모습을 남기기도 했다. 


도시를 떠나 정착한 아를, 그리고 ‘해바라기’ 

*해바라기 (1888년, 캔버스에 유채, 73 x 95 cm, 반 고흐 미술관)

고흐의 생애 중 가장 행복했던 시기는 프랑스 남부 아를(Arles) 지역으로 이주했을 때이다. 1888년 파리라는 대도시 생활에 염증을 느낀 그는 심신의 안정을 되찾기 위해 보다 밝고 따사로운 태양빛과 다채로운 풍경을 갈구했다. 이주한 뒤부터 죽기 전까지 약 2년 반 정도, 고흐는 이곳에서 약 300여 점의 작품을 쏟아냈다. 

고흐는 친구 고갱(Paul Gauguin, 1848~1903)과 함께 살기로 한 작업실 ‘노란 집(아를 라마르탱 광장 2번지)’을 꾸미기 위해 해바라기를 잔뜩 그리기로 한다. 고흐가 그린 해바라기는 다른 화가들이 그린 것과 다르게 물감을 두껍게 칠해 꽃의 입체감이 느껴진다는 특징이 있다. 

정보 플러스+ | 아를의 두 예술가, 고흐와 고갱 

*폴 고갱, 해바라기를 그리는 반 고흐(1888년, 유화, 91 x 73 cm, 반 고흐 미술관)

고흐와 고갱은 모두 늦은 나이에 그림을 시작했을 뿐만 아니라, 아틀리에에 들어가 정식으로 그림을 배운 적이 없다. 또한 대도시와 자본주의 문명을 혐오했기 때문에 비슷한 성향을 가진 이들은 금세 친구이자 동료가 되었다. 

그러나 아를의 작업실에서 함께 일하면서 둘의 우정에는 조금씩 금이 가기 시작했다. 가장 큰 이유는 작품에 대한 접근 방식이 달라서였다. 

고흐는 사실주의적인 것을 좋아했기에 풍경 등을 보이는 대로 즉석에서 그렸으며 역동적인 색채와 선명한 붓 자국을 남겼다. 그러나 고갱은 수없이 스케치를 하고 상당한 시간을 들여 그림을 그렸다. 단조로운 색채를 주로 사용했으며 때로는 물감을 캔버스에 문질러 붓 자국을 없애 버리기도 했다. 

간단한 사안을 두고도 번번이 대립을 했던 둘은 결국 동거한지 2달 만에 멀어졌고, 그 후 고흐가 죽기 전까지 편지를 주고받긴 했지만 다시는 얼굴을 보지 않았다. 



푸른 밤하늘, ‘별’ 보며 꿈을 꾸다 


*아를의 별이 빛나는 밤(1888년, 캔버스에 유채, 73 x 92 cm, 오르세 미술관) 

“별을 바라보는 것은 언제나 나를 꿈꾸게 한다” 
아를에 머물던 고흐는 편지에 ‘별을 그리기 위해 밖으로 나갈 것’이라고 적을 정도로 별을 사랑했다. 더불어 ‘캄캄한 어둠이지만 그조차도 색을 가지고 있는’ 밤의 풍경을 화폭에 담기 위해 노력했다. 

아를 주변을 흐르는 론(Rhone)강 위로 빛을 내는 별들이 총총 박혀있다. 그리고 밤하늘의 색은 검정이 아니라 푸른색으로 칠해졌다. 이로 인해 고요한 밤 시간대임에도 불구하고 작품 내 분위기는 활기가 넘쳐 보인다. 

*밤의 카페 테라스(1888년, 캔버스에 유채, 66 x 81 cm, 크뢸러뮐러 미술관) 

이 작품 또한 고흐가 매우 기쁜 마음으로 그린 작품이다. 그가 여동생에게 보낸 편지에는 “푸른 밤, 카페 테라스의 커다란 가스등이 불을 밝히고 있어. 그 위로는 별이 빛나는 파란 하늘이 보여. … 검은색을 전혀 사용하지 않고 아름다운 파란색과 보라색, 초록색만을 이용해 그렸어. 밤을 배경으로 빛나는 광장은 밝은 노란색으로 그렸단다. 특히 이 밤하늘에 별을 찍어 넣는 순간이 정말 즐거웠어.” 라고 쓰여있다. 

지금은 노란색으로 칠해져 있지만 사실 당시 카페의 차양과 벽면은 노란색이 아니었다. 모두가 어둠을 볼 때 그 속에서 빛과 색채를 느끼고 해석해 그림을 그렸던 고흐다. 

*별이 빛나는 밤에(1889년, 캔버스에 유채, 74 x 92 cm, 뉴욕 현대미술관) 

<별이 빛나는 밤에>는 고흐가 고갱과 다투고 자신의 귀를 자른 뒤 생 레미(Saint Remy) 정신병원에 있을 때 그린 작품으로 고흐의 대표작 중 하나다. 풍경을 직접 보고 그렸던 다른 작품들과는 달리 이 작품은 자신이 봤던 밤하늘을 떠올리며 그렸다. 보색인 진한 남색과 노란색을 사용해 밤하늘과 별과 달을 더욱 생생하게 그려내고 있다. 

한편, 고흐는 죽기 전까지 자신이 보고 느끼는 것을 타인도 함께 느낄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랐다. 그러나 지금은 전 세계가 그의 작품을 높이 평가하고 있으나, 그는 살아생전 사람들에게 끝내 인정받지 못했다. 
 

*아를의 붉은 포도밭, 1888 [사진 출처=wikipedia]

실제로 그가 그린 유화 1,500여 점 가운데 팔렸던 작품은 <아를의 붉은 포도밭> 단 하나였다. <데이지와 양귀비를 담은 꽃병>도 있긴 하지만, 이건 그의 주치의이자 친구인 폴 가셰의 여동생에게 약값 대신 지불하다시피 한 것이다. 

불꽃같은 삶을 살다 37세의 나이로 짧은 생을 마감한 천재 화가 빈센트 반 고흐. 비록 가난을 벗삼아 평생을 고독하게 보냈지만, 그는 자신이 남긴 수많은 명작들로 하여금 현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가슴 속에 불멸로 남아 영원히 살아 숨 쉴 것이다. 

*사진 출처=wikipedia 

■ <나침반> 4월호 해당 페이지 안내 

*에듀진 기사 URL: http://www.edujin.co.kr/news/articleView.html?idxno=32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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