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험

조선의 숨결이 살아있다! #궁스타그램

알면 알수록 더욱 아름다운 경복궁 이야기



몇 해 전부터 SNS에서 10대, 20대 젊은 층을 중심으로 한복을 입고 사진을 찍는 ‘한복 체험’이 유행하고 있다. 지금은 한국을 방문하는 외국 관광객들 사이에서도 한국의 전통과 문화를 몸소 체험할 수 있어 큰 인기를 끌고 있다.

이 체험의 배경으로 등장하는 대표적인 장소가 바로 ‘궁’이다. 화려하고 웅장한 건축물은 선이 고운 한복과 어우러져 예쁜 모습을 담고, 소중한 추억을 만들기에 제격인 장소다. 그러나 궁은 단순히 ‘예쁜 공간’이 아니다. 궁의 웅장하고 아름다운 모습 속에는 그 당시를 살아갔던 우리 선조들의 생활뿐만 아니라 그들의 생각과 감성까지도 고스란히 담겨 있다.

이번에 소개할 궁은 ‘경복궁’으로, 경복궁을 중심으로 조선 궁궐의 모습과 특징을 살펴보려고 한다. 수능이 끝나고 만약 한복체험을 계획하고 있다면 이 글을 꼼꼼히 읽은 뒤 궁궐 여행을 떠나보자. 단순한 ‘예쁨’을 넘어 감동을 자아내는 궁의 ‘가치’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경복궁의 정전, 근정전







광화문을 들어서면 가장 먼저 보이는 웅장하고 거대한 건물이 바로 ‘근정전(勤政殿)’이다.

왕이 문무백관을 참석시켜 왕의 즉위식, 신년하례식, 외국사신의 영접, 왕세자 즉위식 등 국가 공식 행사나 굵직한 행사들을 주로 행하던 곳이었다.

이중으로 된 월대에는 십이지신을 상징하는 동물상이 배열돼 있고, 월대로 오르는 층계에는 봉황이 구름사이로 나는 형상이 조각돼 있다.

근정전 내부에는 왕이 앉는 보좌 뒤에 일월오악도를 볼 수 있는데, 근정전 내부 천장을 살펴보면 중앙에 용이 여의주를 가운데 두고 오색구름 사이에 있는 보개천장을 볼 수 있다.

용은 하늘로 오르는 능력을 지닌 모든 짐승의 으뜸으로, ‘임금’을 상징한다고 할 수 있다.

근정전 마당이 울퉁불퉁한 이유는?
근정전에 들어서면 품계석이 나란히 서 있는 마당을 거닐 수 있다. 그런데 이 마당에 사용된 바닥 돌들은 반듯하게 깎이지 않은 울퉁불퉁한 모습이다. 건축 기술이 부족해서 그런 것이라는 오해도 하지만 천만의 말씀이다.



이 마당에 깔린 돌들을 ‘박석’이라고 하는데, 박석은 울퉁불퉁한 표면 덕에 비가 올 때 빗물이 고이지 않고 타고 내려간다.

또한 거친 면 때문에 걷기 어려워 자연스럽게 걸음이 조심스러워지고, 고개가 숙여지게 된다. 따라서 박석은 신하들이 궁궐에서 더욱 조심스러운 품행을 가질 수 있도록 해 왕의 위엄을 높이는 방법이었다고 할 수 있다.

왕의 집무실, 사정전



사정전은 ‘선정을 생각하다’라는 뜻으로 정도전이 작명하였으며, 창건 당시인 태조 4년에 지어졌다.

사정전은 왕이 평소에 거처하면서 정사를 보살피고, 정무를 수행하던 편전으로 공식적인 집무실이라고 할 수 있다. 이곳에서는 매일 아침 업무보고나 회의, 국정 세미나, 경연 등이 행해졌다.

사정전에 숨어있는 천자문



사정전을 둘러보면 재미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사정전에 들어서면 마당을 둘러싸고 있는 여러 개의 문을 볼 수 있는데, 바로 궁중의 물건을 보관하던 ‘창고’다.

창고마다 문 옆에 창고 이름을 표시한 명패가 있었는데, 천자고, 지자고, 현자고, 황자고 등 순서는 천(天), 지(地), 현(玄),황(黃), 바로 천자문 순서인 것이다.

이곳이 궁중의 창고로 사용됐다는 것 이외에는 아직 알려진 바가 없지만, 천자문을 활용해 체계적으로 궁의 물건들을 관리했던 당대 모습을 떠올려볼 수 있다.

왕과 왕비의 침소, 강녕전과 교태전







강녕전은 왕의 침소, 교태전은 왕비의 침소로 사용된 공간이다.

먼저 강녕전을 살펴보면 좌·우에 벽을 쳐 9개씩 총 18개의 작은 방을 만들 수 있는 구조로 돼 있다.

이렇게 많은 방을 만들었던 이유는 왕이 침소에 들 때, 자객 침입의 위험을 막기 위함으로 왕이 어떤 방에서 잠을 자는지는 그 직속 내관만이 알 수 있었다고 한다.

교태전은 왕비의 침소로 왕 이외에는 남성이 절대 들어갈 수 없는 금남의 구역이었다.

교태전 전각의 뒤뜰에는 ‘아미산’이라는 작은 언덕으로 이어지는데, 이곳에는 보물로 지정된 문화재인 ‘아미산 굴뚝’이 있다.

주황색 벽돌을 차곡차곡 쌓아올려 만든 이 육각기둥 굴뚝 벽면에는 장수와 상서로움을 상징하는 학, 소나무, 매화, 사슴과 같은 그림을 새겨 넣었다.

강녕전과 교태전은 모든 문을 열면 일직선으로 통로가 이어지도록 일직선으로 만들어졌는데, 교태전 뒤뜰 아미산을 타고 내려온 바람이 교태전을 통과해 강녕전까지 잘 불어 통풍이 잘되도록 했다.



비운의 역사를 간직한 건청궁





교태전을 나와 북쪽 후원에 있는 커다란 연못, 향원지를 따라 걷다 보면 다소 이전에 본 궁 건축물과는 다른 느낌의 건물을 만날 수 있다. 마치 궁보다는 사대부의 저택처럼 보이는 이 건물은 다른 궁처럼 오방색도 사용되지 않고 오롯이 나무와 한지, 그리고 기와의 색깔만 볼 수 있다.

이곳은 고종이 휴식을 취할 목적으로 지은 이궁이다. 고종은 건청궁을 건립한 후 명성황후와 함께 이곳에 머물렀는데, 번잡한 궁 생활에서 벗어나 한적한 시간을 보내고자 했던 고종의 바람과 달리, 이곳은 구한말 정치적 혼란의 중심이 되는 장소였고 특히 명성황후가 일본인들에 의해 살해된 역사적 아픔을 지닌 장소이기도 하다.

청나라 건축양식이 고스란히, 집옥재



건청궁을 지나가면 경복궁 내에서 가장 특이한 건물을 볼 수 있다. 바로 ‘집옥재’로, 양 옆에는 팔우정, 협길당 건물이 연결돼 있어 밖에서 보면 세 개의 건물이 연결되어있는 모습이다. 집옥재와 팔우정은 청나라의 양식으로 지어진 건물인데 특히 유리창이 사용돼 당시로써는 최신식 건물이었다고 볼 수 있다. 1891년 지어진 집옥재는 고종 황제가 책을 읽던 서재로 알려져 있지만 이밖에도 외국사신의 접견실로도 사용됐던 건물이다.

경복궁에서 가장 아름다운, 경회루







경복궁 하면 근정전 다음으로 가장 많이 떠올리는 공간이 바로 경회루이다. 이곳은 왕이 개최하는 연회가 열렸던 공간으로, 사신을 접대하거나 국가적으로 큰 행사가 있을 때 연회를 베풀며 왕이 자신의 집으로 손님을 초대한다는 의미가 담긴 공간이었다.

특히 사각형의 넓은 연못을 파고 인공 섬을 조성한 것이 특징인데, 경회루를 출입하는 문은 모두 다섯 개로, 임금만이 출입할 수 있는 자시문과 왕자와 왕족이 사용하는 함홍문, 신하와 시중이 드나드는 이견문, 잔치음식을 나르는 만시문, 하향정과 연결되는 필관문이 있다.

또한 경회루는 경복궁내 건축물 중 가장 많은 ‘잡상’이 있는 것으로도 유명한데, 잡상은 <서유기>의 대당사부(삼장법사), 손오공, 저팔계 등 등장인물을 형상화해 기와지붕을 장식하는 토우로, 액운과 화재를 막는다는 미신적인 의미가 담겨 있다.

근정전에는 7개의 잡상이 설치된 것에 비해 경회루에는 11개씩 설치돼 있다. 이에 대한 설명으로는 청나라 사신들이 잡상 수가 적으면 자신들을 홀대하는 것으로 여겼기 때문이라는 말도 있고, 이곳이 술을 먹고 연회를 벌이는 곳인 만큼 악귀와 액운을 경계해야 했기 때문이라는 이야기도 있다.

한편 잡상은 우리 말로 ‘어처구니’라고 하며, ‘어처구니가 없다’는 말은 잡상을 올리지 않고 지붕을 올렸을 때 난감한 상황에서 비유됐다는 설이 있다.

*사진 출처=클립아트코리아, 김해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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