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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운동하던 100년 전, 4년제 대학은 없고 전문대는 있었다?

[3·1 운동 100주년] 1919년 당시 국내 학교 현황


100년 전, 3·1 운동의 주역 중 하나는 학생들이었다.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아는 유관순 열사를 비롯해 전국 곳곳의 학생들이 들고일어나 일제에 맞서 항거하고 민족의 독립을 외쳤다. 그런데 일제강점기이던 100년 전 당시, 이 학생들은 과연 어디서 공부를 했을까?
 


영화 ‘항거:유관순 이야기’ 스틸 이미지 

 

3·1 운동이 일어난 1919년 우리나라에는 현재 4년제 대학에 해당하는 대학교는 없었다. 28일 종로학원하늘교육이 1919년 국내 학교 현황을 조사한 자료에 따르면, 당시 최고 학력은 현 전문대학에 해당하는 전문학교로, 이 또한 6곳에 불과했다. 관립으로 △경성법학전문학교 △경성의학전문학교 △경성공업전문학교 △수원농림전문학교 등 4곳이 있었고 사립은 △연희전문학교 △세브란스연합의학전문학교 등 2곳이었다. 1919년 당시 전문학교 학생 수는 585명이었다.
 

 

현 고등학교에 해당하는 고등보통학교, 여자고등보통학교는 모두 18곳(관립 7곳·사립 11곳)이었다. 1919년 기준 고등보통학교와 여자고등보통학교에 재학한 학생 수는 모두 3841명으로, 그중 조선인은 1689명에 그쳤다.

현 초등학교에 해당하는 보통학교는 517곳이었고, 1919년 당시 재학 아동 수는 8만 9288명이었다. 오종운 종로학원하늘교육 평가이사는 “당시 취학 연령 아동 수가 228만 950명으로 추정되는 것에 비하면 3.9%에 불과한 수준”이라며 “반면 당시 국내에 거주한 일본인을 대상으로 한 소학교(현 초등학교) 취학률은 91.4%로 추정돼 우리나라 학생과 23배 정도 차이가 난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그렇다면 현 대학의 모습은 언제 갖춰지게 됐을까.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4년제 정규 대학의 형태로 개교한 것은 서울대학교의 전신인 경성제국대학이다. 1924년 개교와 함께 예과가 개설됐고 1926년 법문학부와 의학부가 개설됐다.

이후 연희전문학교가 연세대학교로, 보성전문학교가 고려대학교로 바뀌는 등 오늘날의 대학 형태가 자리 잡게 됐다.
 

▶에듀동아 최유란 기자 cy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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