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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뉴스

[서민수 경찰관의 요즘 자녀學] 가족의 식사 한 끼는 얼마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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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 묵자.”

10년 전, ‘가족의 식탁’이라는 상징적 이미지를 만들어 내며 우리 사회에 “가족의 대화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졌던 유명 개그프로그램 ‘대화가 필요해’ 코너의 명대사입니다. 개그맨 김대희(아버지 역), 장동민(아들 역)과 개그우먼 신봉선(엄마 역)이 출연하여 소소한 가족의 ‘밥상 대화’를 재미있게 보여줬던 코너였죠. 이 코너는 액체로 변해가는 우리 사회에 증발하던 가족의 가치를 다시 붙잡고, 단단한 희망을 기대하는 모두의 신념을 담고 있었습니다. 사람들이 공감해주지 않았다면 코너는 일찌감치 종영했겠지만, 이 코너는 개그프로그램으로는 드물게 높은 시청률을 기록했고, 2년이라는 꽤 긴 시간 살아남은 장수 코너였습니다.

돌이켜 보면, 당시 ‘대화가 필요해’는 성공할 수밖에 없는 시대적 상황과 스토리 구조를 담고 있습니다. 2008년 국제금융위기의 여파로 부모의 일자리가 위태로워지면서 소비물가는 치솟고, 마음의 여유마저 상실된 상황에서 온 가족이 행복하게 식사를 한다는 것은 쉽지 않았을 겁니다. 그런 면에서 ‘대화가 필요해’는 사람들의 관심과 호기심을 끌 만했죠. 특히, 사춘기를 겪고 있는 아들의 일상을 식탁이라는 의례적인 공간에서 웃음으로 묘사한 것은 당시 부모에게 위로와 자녀교육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을 수 있는 기회였습니다. 당시 ‘대화가 필요해’라는 유행어가 얼마나 인기가 많았던지 저도 방송의 인기를 빌려 식탁에서 아이들을 향해 “밥 묵자”를 흉내 내곤 했습니다. 그 덕분에 아이들의 학교생활을 식탁에서 들을 수 있었고, 묻지도 않았던 시시콜콜한 이야기까지 들을 수 있었지요.

그렇게 ‘대화가 필요해’라는 코너가 끝나고 약 10년이 지났습니다만 여전히 우리 사회는 온 가족이 함께하는 한 끼를 그리워하고 있습니다. 어쩌면 코로나를 맞아 모두가 사회적 거리 두기에 동참하면서 겉보기에는 온 가족이 함께하는 식사가 늘어난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부모가 직장을 잃거나 업무시간이 변경되어 실질적으로 가족이 나누는 대화의 분량은 줄었습니다. 또 코로나라 하더라도 가족 모두 직장과 학교, 학원이라는 서로 다른 공간에서 시간을 보내느라 여전히 만나지 못하고 있죠. 마치 나란히 그어져 있는 직선 두 개와 닮은꼴입니다. 자녀가 초등학생이면 그나마 다행이지만 자녀가 중학생 이상이라면 사실상 온전한 ‘가족의 식탁’은 쉽지 않습니다.

“가족의 식사 한 끼 가격은 얼마 정도 될까요?”

이 질문에 대한 대부분의 대답은 “아주 비싸다”가 아닐까요. 가족의 식사와 관련한 연구자료를 찾아봤더니, 가족문화를 중시하는 미국의 대다수 가족도 하루 한 끼를 다 함께 식사하는 날이 일주일에 5일도 안 된다고 응답했습니다. 실제로 미국에서 가족이 함께하는 식사 빈도는 지난 20년 동안 33%가량 감소했고, 식사 시간도 평균 90분에서 12분으로 현저하게 줄었더군요. 또 OECD 기구에서 발표한 조사 결과는 매우 흥미로웠는데, 정기적으로 가족과 식사하지 않는 15세 청소년이 가족과 식사를 하는 아이보다 학교를 무단결석할 가능성이 2배 높은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특히, 유럽에서는 일주일에 2번 이상 부모님과 저녁을 먹지 않는 아이들은 비만이 될 확률이 40%가량 높다는 연구 결과도 있었죠. 심지어 미국 콜롬비아 대학 카사(CASA) 연구소에서는 가족과 함께 정기적으로 식사를 하는 10대가 그렇지 못한 아이들보다 흡연 경험률이 32%, 음주 경험률은 45%가 낮았고, 학교에서 A학점을 받는 비율이 거의 2배가량 높다고 발표하기도 했습니다. 그야말로 가족의 식사 한 끼는 우리가 상상했던 것보다 자녀에게 더 큰 영향을 미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건 통계에 불과하죠. 저는 ‘가족 식사가 통계 이상의 가치를 갖는다’는 것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온 가족이 함께하는 식사에는 미래의 불행에 대한 예방책보다 더 큰 안전장치를 가지고 있죠. 그건 바로 가족과 함께 보내는 ‘시간’입니다. 다시 말해, 위 연구의 핵심은 ‘가족 식사’가 아닌 ‘가족 시간’이라는 뜻이기도 합니다. 결국, 가족이 함께 보내는 시간은 우리가 눈으로 확인할 수 없더라도 실질적인 효과가 상당합니다. 가족 식사 자리는 가족의 역사와 소통 그리고 가족의 온전한 모습을 공유하는 유기적인 단위로서의 가족이 탄생하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아이들에게 미치는 ‘가족 식사’의 영향은 학교 안팎 현장에서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위기를 겪고 있거나 상처가 있는 아이들을 만나서 함께 밥을 먹으러 가면 아이들은 부모들이 생각하는 피자나 치킨을 선호할 것 같지만 실상은 전혀 엉뚱한 음식을 좋아합니다. 힘든 아이일수록 기름기가 가득한 인스턴트 음식보다는 감자탕이나 순대국밥을 더 선호하죠. 아이들은 생각보다 한식을 더 좋아합니다. 아이들에게 밥은 철학과 인문학을 동시에 담고 있으며, 그래서 위기를 겪는 아이일수록 ‘집밥’을 더 그리워합니다. 물론 ‘집밥’을 선호한다는 건, 어쩌면 아이들이 부모의 사랑과 애정을 그리워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더구나 중학생 아이가 순대국밥을 시켜놓고 사장님에게 태연하게 매운 고추와 양념장을 추가하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웃다가도 마음 한쪽이 먹먹해집니다. 밥이 있는 식탁은 아이들과 나누는 대화가 끝이 없을 정도로 아이의 새로운 면을 볼 수 있는 기회를 줍니다.

아이의 발달 과정을 보더라도 아이의 성장 과정은 가족과의 식사 과정을 벗어나지 않습니다. 아이가 중요한 시기로 옮겨갈수록 가족과 함께 보내는 식사 시간이 줄어드는 현상을 주목해야 하죠. 바꿔 말하면, 아이를 안전하게 양육하고 싶다면 온전한 가족이 함께 나누는 식사에 주목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특히나 아이가 어릴수록 가족의 식사 가치는 위대합니다. 또 식사 자체만으로 끝낼 것이 아니라 자녀를 포함해 가족 모두가 식사를 만들어 가는 과정은 학교와 사회에서 배울 수 없는 건전한 경험을 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죠. 그 기회로 부모는 아이의 달라진 생각과 행동을 힘들지 않게 관찰할 수 있고, 아이는 부모의 사랑과 애정을 쉽게 확인할 수 있는 완벽한 시간이 만들어집니다.

세계적인 기업가이자 투자가로 알려진 미국의 워런 버핏은 매년 그와 함께 할 수 있는 식사의 가격을 경매에 부쳐 화제입니다. 지난해에는 그와 함께하는 식삿값으로 54억 원이라는 엄청난 금액이 낙찰됐지요. 식사 한 끼를 54억 원에 살 수 있다는 것이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힘들지만, 한편으로는 식사가 가지는 상상력을 떠올리면 납득이 전혀 안 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렇다면 다시 글의 처음으로 돌아가서 저는 다시 질문하게 됩니다. 과연 우리 가족의 식사 한 끼는 얼마나 될까요. 중요한 건, 무엇보다 자녀에게는 얼굴도 본 적 없는 워런 버핏보다 부모를 마주하는 것이 더 큰 가치를 가진다는 것입니다. 결국, 부모는 자녀에게 그 어떤 사람보다 ‘위대한 공인’이라는 사실을 꼭 기억해줬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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