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책

자사고‧외고 폐지 소식에 ‘비평준 일반고’로 몰려드는 학부모들

입학설명회 하루 만에 매진, 전입학 신청자 2배 늘어
명문대 진학률 높은 학교로 학업우수자 ‘대이동’ 조짐
교육 전문가 “치열한 내신 경쟁 예상…진학 신중히 결정해야”

         정부의 '자사고•외국어고 폐지' 움직임에 자사고와 비슷하다고 알려진 일부 인기 있는 비평준 지역 일반고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조선일보 DB


정부의 ‘자사고•외국어고•국제고 폐지’ 움직임에 고교 입학을 앞둔 학부모들의 관심이 ‘비평준화지역 일반고’(이하 비평준고)로 빠르게 옮아가고 있다. 일부에선 ‘도로 자사고 현상’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도로 자사고’란 말엔 자사고를 포함한 외고, 국제고 등이 우수인재를 ‘입도선매’해 사실상 대학입시반으로 운영해왔다는 비판적 시선이 녹아있다. 즉 자사고‧외고 등이 일반고로 전환되면, 중학교 내신성적 위주로 학생을 선발하는 비평준고(전국 640곳)로 ‘쏠림현상’이 일어날 거란 예측이다. 이런 우려는 최근 명문대 진학률이 높은 일부 ‘인기 있는’ 비평준고에서 실제로 일어나고 있다. 

김상곤 부총리가 지난 6월 28일 인사청문회에서 “자사고‧외고‧국제고는 여러 문제를 일으키기 때문에 국가교육 차원에서 폐지 문제를 제대로 검토해야 한다”고 언급한 당일, 경기 파주의 한 비평준고엔 중학생 학부모들의 문의전화가 빗발쳤다. 이 고교의 입학담당 교사는 “거기가 ‘자사고냐, 일반고냐?’라는 문의전화가 상당히 많이 걸려왔다”며 “이맘때 ‘학교 유형’을 물어오는 전화는 지난해까지 한 건도 없었다”며 놀라워했다. 그는 “자사고와 외고 등의 폐지 혹은 일반고 전환 문제가 공론화되면서 학부모들이 문의를 많이 한 것 같다”며 “지금 분위기대로라면 올해 우리 학교의 입학 커트라인(합격점수)이 올라갈 것 같다”고 조심스레 예측했다.

지난해 스무 명가량 서울대 합격생을 배출한 충남의 한 비평준고는 입학설명회 예약자들이 밀려들어 즐거운 비명을 질렀다. 이 학교는 지난달 중순경 2018학년도 입학설명회를 열었는데, 이때까지 만해도 2주간 모집해 예약자 300명을 겨우 채웠다. 이런 상황을 의식해 8월 중순 예정된 입학설명회 예약자를 한 달여 일찍 공지했는데, 이번엔 하루 만에 300명의 예약이 마감됐다. 이는 이 학교가 전기에 학생을 모집했던 수년 전의 상황과 비슷한 수준이다. 이 학교의 교감은 “입학설명회 참가신청 관련 문의전화가 말 그대로 ‘폭주’했다”며 “(자사고•외고 폐지로 인해) 분위기가 달라지고 있는 걸 피부로 느낀다”고 말했다. 

이는 김 부총리 발언 직후부터 보름 여간 정책의 향방을 예의주시하던 학부모들이 방학에 돌입한 이달 말부터 비평준고 진학을 적극적으로 검토하기 시작했다는 분석이 가능하다. 비평준고로 관심을 돌린 학부모들은 특화된 교육프로그램, 심화과정 등 자율적인 학사 운영과 중학교 내신성적이 우수한 학생들이 기숙사에 모여 공부하는 것을 이점으로 꼽았다. 

중학생 자녀를 둔 이수미(가명•40•서울 동대문구)씨는 “2년 뒤엔 아이를 고등학교에 보내야 하는데 그 사이 자사고‧외고가 폐지되면 그나마 ‘공부하는 분위기’가 조성된 비평준고라도 보내야 할 것”이라고 털어놨다. 이어 “최소한 면학 분위기가 잡혀 있는 고교에 보내야 대학 입시에서 이른바 수도권 ‘상위권 대학’에 지원할 수 있지 않겠느냐”고 덧붙였다.

이러한 학부모들의 불안심리는 비평준고로의 ‘전입학’ 신청에서도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다. 경남의 한 비평준고에는 최근 20여 명의 타교 학생들이 전입학을 신청했다. 이는 지난해 10여 명에 비해 2배가량 많은 수치다. 이 고교의 교감은 “우리 학교는 자사고는 아니지만 여타 일반고와 비교하면 학력 수준이 차이 나는 게 사실”이라며 “학부모 입장에서는 ‘내신’의 불리함을 감수하더라도 입학을 하려는 경향이 있다”고 설명했다. 자사고‧외고 폐지에 따른 비평준고의 풍선효과에 대해 이 교감도 “이전엔 전기모집에서 과학고나 자사고에서 탈락한 학생들이 지원하는 경향이 많았는데 앞으론 1차 지원이 우리 학교로 몰릴 것으로 예상한다”며 “학생들의 학력 수준이 조금이라도 높아질 것으로 예상해 자기주도적 학습에 기반을 둔 교육프로그램이나 ‘심화과목’ 등을 강화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여기에 올해 입시에서 ‘한층 치열한 경쟁’을 예상하는 이유는 또 있다. 학령인구 감소 등으로 담당 교육청으로부터 입학 정원을 줄이라는 요청을 받은 곳이 꽤 있기 때문이다. 교육부는 지난해 4월 ‘고교 맞춤형 교육 활성화 계획’을 통해 고교 학급당 학생 수를 2015년 30명에서 2022년까지 24명으로 줄여나갈 계획을 발표한 바 있다. 고교의 입학정원은 각 시‧도 교육청 권한으로 조정할 수 있다. 이 학교의 내년도 입학정원도 경남도교육청의 요청에 따라 예년보다 8명 더 줄었다. 

이처럼 학부모들의 관심이 비평준고로 옮겨가는 배경은 일반고에 대한 불신은 물론 수월성 교육에 대한 요구가 바탕으로 한다. 따라서 자사고•외고의 대안으로 그와 비슷한 비평준고가 떠오른 것이다. 비평준고는 일반고와 같은 ‘후기’ 모집이긴 하지만, ‘선지망-후추첨’을 하는 일반고와 달리 ‘학생 선발권’을 갖고 있다. 일부 지역에서 이름난 비평준고의 합격 기준은 중학교 내신 기준 석차백분율 상위 2~3% 이내로 알려졌다. 학업 상위권의 우수인재들을 대상으로 다양한 교내 활동을 제공하고 독서실과 기숙사를 오가며 비교적 ‘공부하는 분위기’가 조성돼 있다는 점도 학부모들의 관심을 사로잡는 요인이다. 

반면 교육전문가들은 고교 유형과 관계없이 학교생활의 내실을 강조하는 대입제도의 변화에 주목할 것을 권하고 있다. 학업 상위권에 속하는 학생들이 모이면 덩달아 학습력이 높아질 것이라고 기대하기 보다는 자신의 상황에 맞는 현명한 선택을 하라는 얘기다. 성기선 가톨릭대 교직과 교수는 “앞으로 비평준고는 내신 경쟁이 더 치열해질 수 있다”며 “면학 분위기만 놓고 쉽게 결정하기 보다는 장단점을 고려해 진학을 신중하게 고려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김명찬 종로학원평가연구소장은 “내신 외에 비교과영역의 경쟁력도 어느 정도 (학업)수준에 올라선 학생들에게 쏠릴 수 있다”며 “학교에서 개별 학생을 지도하는 데 한계가 있어 학생 스스로 얼마나 잘해낼 수 있을지 깊이 고민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한편 정부는 지난 20일 국정 운영 5개년 계획을 발표하면서 100대 국정과제 안에 ‘외고‧국제고‧자사고의 일반고 전환’을 포함했다. 이와 관련, 31일 현재까지 공개된 구체적인 방안은 “일반고와 입시를 동시에 실시하게 하겠다”는 게 전부다. 전•후기로 이원화했던 모집방식을 일원화하는 정책이다. 교육부 관계자는 “자사고, 외고 등이 일반고로 전환되면 일부 비평준고로 풍선효과가 일어날 예상은 하고 있지만, 현 단계에서 논의되고 있는 건 전혀 없다”며 “이와 관련해 세부적인 내용은 이르면 이번 달 출범할 국가교육회의에서 결정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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