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고등

[이럴 땐 어떡하죠②] 밤늦게 집에 들어오는 자녀

전문가들 “처벌과 훈계보단 부모 입장에서 걱정 토로해야”



얌전히 말 잘 듣던 아이가 어느 날 갑자기 ‘헐크’로 돌변한다. 내뱉는 말마다 놀라게 하기 일쑤다. 자녀를 키우면서 맞닥뜨리게 되는 황당하면서도 난감한 상황에 점점 더 많은 부모가 속을 끓이고 있다. 이에 조선에듀는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에게 많은 부모가 고민하고 있을 상황에 대한 조언을 바탕으로 올바른 교육법을 제안한다. 두 번째로 한밤이 돼서야 집에 들어오는 경우를 살펴본다. 

#윤이나(가명‧45)씨는 점점 늦어지는 고1 아들의 귀가 시간 탓에 밤잠을 못 이룬다. 아들은 학교가 끝나면 친구들과 어울려 놀다 자정에나 집에 들어오기 일쑤다. 게다가 다음날 늦게까지 자느라 늘 지각이다. 어디서 뭘 하고 다니는지 걱정되는 마음에 매도 들어보고 말로 타일러도 봤지만, 문을 쾅 닫고 제 방으로 들어가버리는 통에 대화할 기회조차 좀처럼 만들어지지 않는다. 이젠 그저 귀가 시간이 더 늦어지지 않거나 나쁜 일에 휩쓸리지 않기를 바랄 뿐, 부모로서 무력감만 든다. 

중‧고교생 자녀가 특별한 일정 없이 자정을 전후로 귀가하는 사례는 흔하진 않은 일이다. 다만 이런 상황이 갑자기 잦아진다면 부모는 당황한 나머지 언성부터 높이기 마련. 그럴수록 아이는 부모에게 마음의 문을 닫고, 일상의 가벼운 대화조차 끊어버리는 상황이 왕왕 있다. 이럴 때 부모는 ‘우리 아이가 지금 사춘기인가?’ ‘내(부모)가 아이에게 서운한 행동을 했던가?’ ‘요즘 나쁜(?) 친구들과 어울리나?’ 등 오만가지 불안한 상상 속에 갇힌다. 급기야 윤씨처럼 부모로서 마치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만 같은 무력감에 빠져들 수도 있다.

그렇다면 아이들은 왜 늦은 시간까지 집에 들어오지 않는 걸까. 청소년‧교육 전문가들은 이 대목에서부터 부모들이 첫 단추를 잘못 끼운다고 지적한다. 부모의 입장에서 자녀가 ‘왜’ 늦는지에 먼저 집중하게 되면, 그 이유를 제거하는 데 매몰돼 버린다는 것이다. 예컨대 늦게 들어온 아이에게 부모는 현관에서부터 “왜 늦었어!” “어디서 뭐하고 다니다 이제 들어와!” 같은 공격적인 질문을 쏟아붓게 된다. 자녀가 “죄송합니다. 다음부터 안 늦을게요” 정도의 대답을 하면 부모는 일단 상황이 마무리됐다고 여긴다. 하지만 이럴 경우 아이에게 공격성과 반항심만 자극하는 결과를 낳게 될 우려가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정작 늦은 귀가의 핵심인 ‘사연’은 논의되지 못한 채, 부모와 자식 간 마음의 벽만 공고해진다는 것이다.

부모의 행동이 자녀에게 미치는 영향을 연구해온 전효정 동아대 아동학과 교수는 “자녀가 밤늦게 귀가하는 원인은 다양하겠지만, 부모가 자신을 믿고 이해해 준다고 느낄 수 있도록 대하는 게 핵심”이라며 “이땐 처벌이나 훈계보단 행동의 원인을 파악할 수 있도록 자녀와 대화 채널을 막지 않는 게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부모와 대화를 이어가는 방법에 대해 전 교수는 “밤늦게까지 들어오지 않아서 엄마(또는 아빠)가 걱정돼 잠도 자지 못하고 힘들었다는 식으로, 오히려 부모 입장에서 어려움을 말해야 아이가 스스로 문제를 털어놓을 수 있는 여건을 만들 수 있다”고 덧붙였다. 

전 교수가 처벌과 훈계보단 ‘대화의 채널’을 유지하는 데 초점을 맞추라고 한 배경엔 청소년기의 발달심리가 깔려 있다. 전 교수가 말한 바로는, 청소년기는 부모에서 또래로 애착의 전이가 일어나는 시기라서 심리적 외로움이 큰 편이다. 또래와 많은 시간을 보내면서 현재와 미래에 대한 고민을 나눠 친밀감이 극대화된다. 다른 한편, 안전 기저(Secure Base)는 여전히 부모에게 남아 있다. 결국엔 부모가 있는 집으로 돌아가려는 ‘귀소본능’이 살아 있다는 점을 유념해야 한다. 

나날이 넓은 사회와 인간의 다양한 삶을 접하면서 정체성을 형성하는 청소년기인 점을 감안해 부모는 언제나 따뜻하게 품어줘야 한다는 게 교육전문가들의 중론이다. 학생들의 고충을 상담해온 이수영 서울 삼각산고 교사는 “평소 부모가 알코올 중독, 가정 폭력 외에도 아이를 학업이나 생활규범 등으로 심하게 억압하면 밤새 거리를 배회하는 일이 발생할 수 있다”며 “집은 언제든 편안하게 쉴 수 있고, 부모나 가족으로부터 위로를 받을 수 있는 공간이라는 인식을 강하게 느끼게 해주는 게 문제를 해결하는 가장 빠른 길”이라고 조언했다. 이 교사는 “자녀의 늦은 귀가로 인한 문제가 고쳐지지 않고 반복되면, 오히려 부모부터 자녀를 대하는 화법이나 교육방법을 전문가에게 배울 필요도 있다”고 귀띔했다. 

흔히 부모는 자녀가 학교 공부 혹은 맡은 과제에 매진해주길 바란다. 그에 따라 생활지침도 정하곤 한다. 하지만 대체로 부모가 일방적으로 정해놓은 일정이거나, (자녀와 협의를 했다고 해도) 청소년기에 접어든 자녀의 마음속을 들여다보지 않은 채 무조건 강요되는 ‘기울어진 협상’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인성‧토론교육 전문가 도승이 성균관대 교육학과 교수는 “청소년기의 자아 정체성은 혼자서 발달시키는 게 아니다. 가족 외에 다른 사람의 시선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끊임없이 확인하고, 그 안에서 자신이 어떻게 보이는지, 장단점은 뭔지, ‘나’는 누구인지 등을 살피려 한다는 걸 부모들이 알아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 때문에 오로지 부모와 맺은 약속만으로 자녀의 행동을 판단해 훈육하려 들면 벗어나려 한다는 거다. 

도 교수는 “자녀의 행동을 교정하려 들기보다 부모에 대한 ‘신뢰’를 쌓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부모가 일단 신뢰를 얻어야 비로소 양방향 대화가 가능하단 말이다. 부모가 바라는 것을 전달함과 동시에 자녀에게 ‘어른으로서 책임감’을 부여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도 교수는 청소년기 자녀와 원활한 의사소통을 위해 ‘나 전달법(I Message)’을 제안했다. 상대방을 비판할 목적이 아닌, 있는 그대로의 사실을 담담한 어조로 전달하는 것이다. 도 교수는 정옥분 고려대 명예교수의 저서 ‘청년심리학’(학지사)을 추천했다. 이 책에는 늦게 귀가하는 자녀에게 적용할 수 있는 ‘나 전달법’을 제시한다. 가령 밤늦게 집에 온 자녀와 맞닥뜨리면 부모가 이런 순서로 말해보는 거다. 

“네가 약속한 시간에 집에 오지 않으면…”(상대방의 행동에 대한 비판이 아닌 묘사) 
“네가 어디 있는지 나는 알 수 없고…”(나에게 미치는 영향) 
“그래서 걱정이 된다.”(나의 기분) 
“만약 늦을 것 같으면 집에 전화를 해줬으면 좋겠다.”(상대가 해주길 바라는 사항) 

얼핏 간단해 보이지만, 늦게 들어온 자녀와 대면한 상황에선 좀처럼 쉽지 않다. 자녀를 기다리며 불안했던 마음과 고조된 감정을 누르면서, 마치 남의 일을 대하는 것처럼 마음을 먹어야 하기 때문이다. 도 교수는 “현장에서 부모는 ‘우리 아이는 지금 타인의 시선에 존재하는 자신을 확인하려는 마음이 강한 시기여서 내(부모)가 자녀의 세계를 깨뜨릴 게 아니라면 차분히 대화를 이어가는 방법 외엔 할 수 있는 게 없다’는 점을 끝없이 되뇌라”고 조언했다.

‘나 전달법’은 부모에게만 해당되는 건 아니다. 밤늦게 귀가하는 자녀도 얼마든지 부모에게 시도할 수 있다. 단, ‘상대방’의 자리에 부모가 아닌 자녀 자신을 대입시켜보자. 예컨대 친구들과 어울리다 귀가 시간이 늦었을 경우 우선 부모에게 자신(자녀)의 행동을 있는 그대로 전달하는 것이다. 

“오늘 친구들과 대인 관계(혹은 연애, 공부, 진로, 미래 등)에 관한 얘길 했어요. 각자 걱정이 많았는지 이 얘기 저 얘기하다 보니 집에 들어갈 시간을 놓쳤어요.”(비판이 아닌 묘사) “늦은 시간까지 부모님은 제가 어디에서 뭘 하는지 알 수 없어서 걱정하셨을 것 같아요.”(부모에게 미치는 영향) “그래서 죄송해요. 다음부턴 늦지 않도록 노력해 볼게요.”(부모의 기분) “만약 늦을 것 같으면 전화나 문자로 연락드릴게요. 그땐 다그치지 말아주세요.”(자녀가 바라는 사항) 

물론 부모와 자녀가 이런 수준의 이성적인 의사소통이 가능하다면, 자녀가 매번 밤늦게 귀가하거나 그로 인해 부모가 속을 끓일 일도 없을 거라고 생각할지 모른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부모와 자녀도 각기 다른 인격체로, 철저히 ‘관계’ 속에 놓여 있기에 불통(不通)의 상황을 정면 돌파하는 것만이 가장 현명한 지름길이라고 입을 모은다. 도 교수는 “갈등의 골이 깊은 부모와 자녀 관계일수록 존중과 배려의 끈이 헐거워져 있다”며 “이 끈을 다시 이으려면 애정 어린 소통과 존중에서부터 풀어가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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