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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교에서 ‘원하는 수업 골라듣기’가 가능할까?

2019년부터 서울 일반고에 적용되는 ‘개방형 선택 교육과정’ 미리보기 -도봉고



서울시교육청은 최근 ‘2기 개방-연합형 종합캠퍼스 교육과정’ 추진 계획을 발표하면서 “2019년부터 서울 지역의 모든 일반고에 개방형 선택 교육과정을 운영한다”고 밝혔다. 개방형 선택 교육과정은 학생이 수강할 과목을 자유롭게 선택하는 시스템을 말한다. 학생 개개인의 교육과정을 편성하는 주체가 학교가 아닌 학생 자신인 것. 

교육계는 서울시교육청의 이러한 결정에 주목하고 있다. 최근 교육부도 2022년 고교학점제 도입을 목표로 “‘학점제 도입에 필요한 교육과정과 학교 운영 방안’을 연구하는 정책연구학교 60교를 선정해 3년간 운영하겠다”고 밝혔기 때문에 개방형 선택 교육과정이 궁극적으로 모든 고교생이 자신의 적성과 진로에 따라 원하는 과목을 골라 수업을 듣는 ‘고교학점제’ 도입의 발판이 될 것으로 보는 것이다. 

실제로 개방형 선택 교육과정은 특정 교과군 내에서만 학생 선택권을 보장하는 부분 개방형 모델은 물론 교과군에 대한 제약 없이 자신이 원하는 과목을 자유롭게 골라 듣는 전면 개방형 모델까지를 포괄한다. 

일각에서는 이번 조치가 전 교과에 걸쳐 학생 선택권을 전면 개방하는 단계까지 나아가긴 어려울 것이라 보기도 한다. 전면 개방형 모델을 실현하기에는 교원 수급 문제를 비롯해 해결해야 하는 문제가 한둘이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난 2010년부터 ‘전면 개방형 교육과정’을 운영해 온 도봉고의 사례는 ‘고교학점제’가 그리 먼 일이 아니라는 점을 보여준다. 고교학점제의 초기 모델로도 볼 수 있는 도봉고의 교육과정 편성 및 운영 방침을 토대로 고교학점제가 실현된 고교의 모습을 미리 들여다봤다. 

○ 필수 이수단위만 충족하면 어떤 과목 수강하든 OK

전면 개방형 교육과정을 운영 중인 도봉고지만 1학년들의 생활은 사실상 다른 학교와 차이가 없다. 과목 선택권 없이 학교 지정 교과목만 수강할 수 있으며 학교가 정해준 시간표대로 수업을 듣는다. 국가교육과정이 정한 교과군(영역)별 필수 이수단위를 모두 이수해야 하기 때문. 대신 교과별 필수 이수단위의 대부분을 이수한 후부터는 자신이 원하는 과목을 선택해 들을 수 있다. 그 시기가 바로 2학년부터다. 

<표> 2017학년도 도봉고 입학생의 선택과목 개설 현황


<표>는 실제 2017학년도 도봉고 입학생들이 선택할 수 있는 학년별 선택과목 개설 현황이다. 1학년을 거치며 필수 이수단위를 모두 이수한 국어, 수학, 영어, 사회 교과군은 과목 선택에 아무런 제약이 없다. 한 교과군에서 여러 과목을 선택해도 되고 심지어 아예 선택하지 않아도 된다. 학교는 대학 진학을 고려하는 학생들을 위해 수능 출제범위에 포함되는 과목을 안내만 할 뿐이다. 선택은 학생의 몫이다. 

1학년 때 필수 이수단위를 모두 이수하지 못한 과학, 예술, 생활‧교양의 경우 고교 과정 내에 남아 있는 필수 이수단위를 모두 이수해야 하므로 2, 3학년 과목 선택 시에 해당 교과군에서 ‘반드시 1개 이상 선택’하도록 조건이 붙는다. 하지만 그 조건을 제외하면 어떤 과목이든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다. 

선용규 도봉고 교무부장은 “만약 수능을 볼 생각이 전혀 없다면 극단적으로는 2, 3학년 때 국어 교과군의 과목을 아예 선택하지 않을 수도 있다”면서 “대학을 인문계열로 진학하려는 학생이라도 자신의 관심사에 따라 과학 교과나 수학 교과를 여러 개 선택 수강할 수 있는 것이 이 시스템”이라고 말했다. 



○ 한 학년에 개설된 교과목만 22개… 10명 이하 신청 과목도 적극 개설

도봉고가 채택한 전면 개방형 교육과정의 가장 큰 특징은 학생의 과목 선택권을 최대한으로 보장한다는 점이다. <표>에 나타난 과목은 학생들의 수요 조사를 위한 ‘가상의 선택지’가 아니라 실제 모두 교육과정으로 개설되어 있는 과목들이다. 

송현섭 도봉고 교감은 “일반적인 고등학교의 학년별 개설 과목이 8~10과목 정도인데 반해 도봉고는 2, 3학년 각각 22~23개 과목이 개설돼 있다”면서 “학생의 과목 선택권을 최대한 보장하기 위해 선택자가 10명 이하인 소인수과목도 적극적으로 개설해 주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올해 초 교육과정 편성을 확정할 당시 선택자수가 8명에 불과했던 중국어Ⅱ, 물리Ⅱ의 경우도 폐강 없이 모두 편성됐다. 

사실 적은 수의 학생이 신청하는 과목(소인수과목)에 대한 편성 문제는 고교학점제 도입 논의 때마다 빠지지 않고 제기되는 지적이다. 특히 학생 입장에서는 이들 소인수과목에 대한 내신 산출이 가장 문제가 된다. 현 석차9등급제에서는 학급 인원이 13명 이상인 경우부터 1등급(전체 인원의 4%)이 산출되는데, 13명 미만의 경우 1등급이 한 명도 나올 수 없기 때문에 성적표에도 절대평가에 따른 성취도(A~E)만 표기된다. 이 경우 해당 성적은 내신을 반영하는 대입 전형에서 활용되지 않는다. 

이 문제의 해답은 고교 내신을 모두 절대평가화하는 것이다. 송 교감 역시 이에 동의하지만, 지금 상황에서도 전공적합성이나 진로에 대한 확고한 의지와 노력 등을 중요하게 보는 학생부종합전형이 확대되면서 소인수과목을 선택한 학생들에게 기회가 되고 있다고 판단한다. 송 교감은 “학교 차원에서 직접 서울대 등에 문의를 해 봐도 ‘숫자로 산출되는 등급보다 학생이 어떤 과목을 선택해 어떤 것을 배웠는지가 더 중요하다’는 답변을 받는다”면서 “일부 불리함을 감수하고서라도 소인수과목을 이수한 학생의 동기, 해당 과목에서의 성취 수준 등이 학생부종합전형에서는 유의미하게 평가되는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 1학년 때부터 진지한 진로 고민 시작… 도입 전 교직원간 합의 필수 

이처럼 학생들의 과목 선택권은 폭넓게 보장되지만 그렇다고 아무렇게나 선택하도록 두진 않는다. 수강과목을 선택하는 과정은 거의 한 학기 내내 이어진다. 보통 2학기가 시작될 때 다음 학년에 들을 수업에 대한 ‘선택과목 안내서’가 배부되는데, 선택과목 안내서에는 개설 과목들의 구체적인 목차 및 수능 출제범위 포함 여부는 물론 대학 진학 계열에 따른 권장 과목 예시까지 안내돼 있다. 학교가 배워야 할 과목을 정해주진 않는 대신 학생 스스로 자신의 진로, 대학 진학에 필요한 과목들을 가려낼 수 있도록 충분한 정보를 제공하는 것.

특히 중요한 것은 ‘진로 상담’이다. 권순이 도봉고 진로진학상담교사는 다수의 진로 관련 서적을 집필할 만큼 진로상담분야의 베테랑 교사다. 권 교사는 수강신청을 해야 하는 1, 2학년 모두를 개별 상담한다. 학생들이 원하는 진로에 맞춰 꼭 배워야 하는 과목들을 선택할 수 있도록 도와주기 위해서다. 권 교사는 “선택과목을 결정하는 과정에서 대학 진학과 진로까지 연계된 상담이 이뤄진다”면서 “고3이 된 후 성적에 맞춰 진학 학과를 결정하는 경우도 많은데 우리 학교의 경우 학생 본인이 직접 배울 과목을 선택하기 때문에 1학년 때부터 자신의 진로에 대해 진지하고 깊이 있게 고민할 기회를 갖는다”고 말했다. 

진로진학교사 뿐만이 아니다. 실제로 전면형 개방 교육과정을 운영하기 위해서는 많은 교사들의 희생이 필요하다. 송 교감은 “교사 입장에서는 가르쳐야 할 교과목이 늘어나는 것은 기본이고 시험 관리, 학생 및 교사 시간표 구성, 교실 배정 등 행정적으로도 업무 부담이 느는 것이 사실”이라면서 “개방형 선택 교육과정은 몇 사람의 주도로 밀어붙일 수 있는 것이 아니며, 반드시 사전에 새로운 교육과정을 도입하는 것에 대한 교직원간 합의가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에듀동아 김수진 기자 genie87@donga.com 
위 기사의 법적인 책임과 권한은 에듀동아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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