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과

수학 교육, 복종 잘하는 아둔한 다수 만들기 위해 존재하나

수포자, 산업혁명 이후 자본과 교육이 결탁해 낳은 희생양



“고등학교 1학년 아들이 기말고사가 다가와 수학책을 붙잡고 있어서 호기심에 수학책을 들여다봤다. 시험 범위에 로그가 들어 있기에 ‘로그가 뭐더라?’ 곰곰 기억을 다시 살려보려 했다. 끝내 기억이 나지 않았다. 픽 웃음이 났다. 어른이 돼서는 개념조차도 기억해내지 못하는 지식을 고등학교 때 왜 배웠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우연치 않게 유튜브에서 보게 된 민중의소리 이완배 기자의 우리 수학 교육에 대한 묵직한 일침이었다. 시사평론가 김용민 씨가 진행하는 팟캐스트 방송 ‘김용민 브리핑’에 출연한 이완배 기자는 교육과 자본주의 경제 시스템이 어떻게 긴밀하게 조응하고 상호작용하며 현재의 지독한 입시 체제를 공고히 해 왔는지를 날카롭게 해부했다. 

이 기자는 우리나라에 현대 교육이 도입된 이래 수포자가 매해 비슷한 수준으로 양산되고 있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는 것을 증명하고 있다. <에듀진>은 2차 산업혁명을 지나오며 현대 자본주의 사회를 공고히 해온 테일러 시스템이 어떻게 한국 교육을 왜곡해 왔는지를 짚어보기 위해 이완배 기자의 발언 내용을 편집해 싣는다. 

이번 기사가 독자에 따라 불쾌하게 받아들일 여지도 충분히 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최근 이슈가 되는 고교학점제, 대입 수능 2회 실시, 수능 전과목 절대평가제 등을 근본에서부터 다시 생각하게 되는 기회가 되 줄 것을 기대한다. 편집자 주 


시사평론가 김용민 씨는 "나는 수포자였다"라는 고백으로 포문을 열었다. 수학 공부를 하다 보니 이 공부가 10년, 20년 후에 내게 무슨 영향을 미칠까 생각했더니 답이 나왔다고 한다. 그래서 수학을 포기했다. 그리고 포기의 책임은 스스로 짊어지기로 했다. 

김용민 씨는 ‘수학 학습이 내 인생에 어떤 도움이 될까’라는 이성적인 판단의 결과 수학을 포기한 것은 훌륭한(?) 발상이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막상 사회에 나와 보니 큰 후회가 됐단다. 우리 사회에는 학력차별의 벽이 높기에 우리 사회를 제대로 가늠하지 못하고 질렀던 측면이 있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실제로 수학은 현재 대입에서도 가장 중요한 과목이다. 지금은 국어보다 수학이 더 변별력이 있다고 한다. 그런데 학생들이 공부하는 결과를 보면 지금도 매우 큰 비중으로 학생들이 수학을 포기하고 있다. 수포자가 끊임없이 양산된다. 내가 속한 학력고사 세대에서도 수포자는 많았다. 그로부터 30년이 지났는데 여전히 수포자가 많다는 것. 이는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우리 때는 학원 금지 조치로 학원이 없었지만 요즘은 골목마다 사설 학원이 판을 친다. 그런데도 예나 지금이나 수포자 비율은 비슷하다. 극단적으로 말하면 수학이 우리 아이들에게 미치는 영향이 너무 큰데, 이른 나이부터 수포자가 되어 ‘2류, 3류’라는 딱지를 붙이고 살게 된다. 

우리 학생들은 수학을 포기해 2류, 3류 학벌을 얻고 사회에 나가 2류, 3류 딱지를 붙이게 된 계기를 정확히 기억하고 있을까. 아마 대부분 기억하지 못할 것이다. 단지 수학이 어려워서 포기했다든지, 내 인생에 도움이 안 돼서 포기했다든지 이렇게 얘기한다. 자기 인생과 청춘이 걸린 문제인데도. 

그런데 수학을 못했다는 이유로 2류, 3류의 계급장 딱지가 붙는데 왜 그렇게 됐는지 아무도 기억하지 못한다면 이것은 너무 이상하다. 그래서 이런 질문을 던져야 한다. “정말로 우리 수학교육이 아이들로 하여금 수학문제를 잘 풀도록 만들기 위해서 존재하는 것일까”라고. 수많은 학생들이 이유도 기억하지 못한 채 수포자가 되는 시스템이 엄연한데, 과연 우리 수학 교육이 학생들에게 정말로 수학을 잘 가르치기 위해 기능하느냐는 질문이 이제는 필요하다. 

50년 된 ‘수학의 정석’이 여전히 21세기 한국 수학 교육을 좌지우지
이런 생각을 하게 된 이유는 30년 동안 우리 수학은 변한 것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수학의 정석이 아직도 베스트셀러라는 사실에 깜짝 놀랐다. 30년 전 내가 공부했던 순서만 바뀌었지 내용은 정말로 하나도 안 달라졌다. 어떻게 이럴 수 있나? 

영어만 해도 우리 때 학생들이 봤던 ‘성문종합영어’ 같은 책은 거의 사라졌다. 하다못해 국어교육에서 맹위를 떨쳤던 서한샘 선생 책도 이제는 사라졌다. 그런데 수학의 정석은 홍성대 씨가 1966년 출간한 이래 51년 동안 1들 자리를 굳건히 지키고 있다. 여전히 수학 교육의 주류를 맡고 있다. 믿을 수가 없는 일이다. 50년 동안 그 책 하나를 중심으로 한국 수학 교육의 틀이 그대로 유지돼 왔다는 사실이. 그래서 묻지 않을 수 없다. 

우린 도대체 무엇을 했을까. 사교육에 그렇게 막대한 돈을 쏟아 붓고서도 그동안 우리 수학 교육이 조금도 나아지지 않은 게 무엇 때문인가. 결국 경제학적으로 가장 비효율적인 투자가 바로 수학 교육이었던 것이다. 우리 국민들이 생산하는 부가가치 중에 상당수가 사교육시장, 특히 수학 교육시장에 쏟아지고 있는데, 이러고서도 나아지는 게 없다면 처음부터 다시 생각해 봐야 한다. 

예컨대 이런 질문이 필요하다. 수학 시간에 선생님에게 배우는 것만으로 수학 시험 문제를 풀 수 있는가? 절대 불가능하다. 왜냐? 기본 개념만 가르치기에도 시간이 턱없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이처럼 수업에서는 ‘설렁서렁’ 가르침을 받는데, 정작 시험문제는 엄청나게 어렵게 나온다. 배운 적이 없는데 도대체 어떻게 풀라는 것일까? 여기서 의문이 생긴다. 수학 교육은 왜 어려운 문제를 푸는 능력을 알아보려는 걸까. 

현대는 똑똑한 소수가 아둔한 다수를 지배하는 시스템
2차 산업혁명 초기인 19세기 후반과 20세기 초반, 산업에 기계가 도입된 시기와 수학교육은 밀접한 관계가 있다. 19세기 후반 미국의 경제학자 프레드릭 테일러는 혁신적인 노동관리 시스템을 만든다. 바로 ‘스톱워치 시스템’이다. 이를 통해 자본가들은 노동자의 생산량을 최대치로 끌어올릴 수 있었다. 

방법은 간단하다. 관리자들이 노동자들 옆에서 시간을 잰다. “일 시작하세요. 30초 지났습니다. 이제 쉬세요. 자 휴식시간 끝났습니다. 이제 일어나세요.” 이렇게 분초 단위로 시간을 관리했더니 노동자의 생산성이 5배나 좋아졌다. 

노동자들을 분초 단위로 관리한다? 한번 상상해 보자. 이 테일러 시스템에 편입된 노동자들은 생각할 필요가 없다. 그냥 관리자가 지시하는 대로 분초 단위로 앉으라면 앉고 일어서라면 일어서기만 하면 된다. 극단적으로 말하면 자본가 입장에서는 이런 일을 하는 노동자들은 아둔할수록 유리하다. 그래야 관리자가 편하게 부릴 수 있다. 

반면에 테일러 시스템에서 중요한 것은 관리자다. 초시계를 들고 있는 관리자는 일하기, 쉬기, 심지어는 화장실 가는 시간까지 설계를 해야 한다. 따라서 그 설계에 따라 움직이는 수많은 노동자에 비해 압도적으로 똑똑해야 한다. 

이처럼 테일러 시스템은 아주 똑똑한 소수의 사람과 아주 아둔해 시키는 대로만 따라 하는 다수가 병존함으로써 유지되는 시스템이다. 이를 조금 어려운 말로 ‘개념과 수행의 분리’라고 말한다. 개념을 짜는 똑똑한 소수는 따로 있고, 그 개념을 따라 일을 하는 아둔한 다수의 대중이 따로 분리돼 있는 것이다. 이 두 가지가 정확히 분리돼야 테일러 시스템은 효율성을 발휘한다. 

수학교육에도 테일러 시스템이 작용한다 
그렇다면 교육은 20세기를 지배한 테일러 시스템을 어떤 방식으로 받아들였을까. 바로 지배하는 똑똑한 일부 소수와, 복종하는 아둔한 다수를 생산하는 방식을 가져왔다. 쉽게 말하면 수학을 못 푸는 수포자를 양산해내는 것은 현대 수학교육의 오류가 아니다. 내가 보기에 오히려 그것은 오히려 현대 수학교육의 목적이다. 

우리의 수학 교육은 50년 이상 지켜봐온 대로 수포자들에게 수학을 잘 풀도록 친절하게 인도한 적이 한 번도 없다. 50년 동안 한 번도 학생들에게 수학을 제대로 푸는 방법을 가르쳐주지 않았는데, 어떻게 그 교육이 아이들의 수학 능력을 뛰어나게 만들려는 목적을 가지고 있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테일러 시스템이 근대와 현대사회를 지배한 이후에 수학교육의 최대 목적은 첫째, 개념을 잡는 똑똑한 소수를 선별해 내는 것이 됐다. 애초에 수학문제를 제대로 푸는 사람은 아주 소수에 불과하니까 로그를 풀고 코시-슈바르츠 부등식을 암기하는 자들에게 특별히 자본주의가 인정하는 소수의 관리자의 지위가 부여된다. 

둘째 목적은 보통 사람이라면 도저히 풀지 못할 문제를 낸 다음 학생들이 수학을 포기하도록 만들고, 포기한 학생들에게 복종을 가르치는 것이다. “너희는 수학을 못해. 머리가 나빠. 그러니까 너희들은 앞으로 복종하고 살아. 테일러 시스템에 편입돼서 관리자가 앉으라면 앉고 일어서세요 하면 일어서고 군소리하지 말고 따라해.” 이 같은 복종심을 학교에서 수십 년간 가르치고 있다. 이것이 현재의 대한민국 수학 교육의 현주소다. 

50%가 소외된 교육에 미래는 없다
제가 매우 존경하는 홍기빈 글로벌정치경제연구소장의 최근 칼럼이 정말 마음에 와 닿았다. 

“교육정책을 입안하고 논의하는 이들은 거의 예외 없이 우등생 출신이다. 그러니 이 하위 몇 십%의 학생들이 현재의 학교 교육에서 받게 되는 절망과 모욕감을 잘 이해하지 못하는 듯하다. 영어 포기, 수학 포기 나아가 여러 과목을 포기한 학생에게 하루에 여덟 시간을, 그것도 매일같이 의자에 묶어놓고 하나도 이해 못할 내용을 일방적으로 퍼붓는 것이 과연 교육인가. 나는 이것이 체계적, 조직적인 모욕의 훈육이라고 생각한다. 한마디로 ‘군소리 말고 조용히들 엎드려 있어라’라는 말이다.” 

바로 이것이다. 자본주의는 수포자를 양산하며 개념과 수행을 마음대로 조작하고 싶은 것이다. 그래서 수학 시간은 “너희 한마디도 못 알아들었지. 내가 가르쳐줄게.”가 아니라 “너희들 한마디도 못 알아들었지. 그러니까 8시간 동안 닥치고 앉아 있어.”가 된다. 

“반항하지 말고, 똑똑한 사람들이 만들어가는 세상에 순순히 지배를 당해. 너희가 지금 배워야 할 것은 쭈그리고 앉아서 네가 얼마나 무식한 사람인지를 반성하고 복종하는 거야.” 이걸 우리교육이 가르치고 있는 것이다. 애초에 풀지 못하는 문제, 가르치지도 않을 문제를 던져놓고 학생들을 모욕하고 있다. 이 비열한 교육을 이제는 멈춰야 한다. 

쉬운 수학으로 수학 교육의 패러다임을 바꿔야
우리 아이는 수학을 잘하지 못한다. 하지만 “우리 아들이 수학을 못 풀지 인간성이 모자라냐? 아빠가 보기에 넌 최고야.”라고 늘 격려를 해준다. 왜 그렇게 하느냐. 이유가 있다. 우리 아이는 어차피 학교에서 8시간 동안 10대 청소년이 받을 수 있는 최대한의 모욕을 학교에서 다 받고 오는 거다. 그래서 나는 아이에게 “너는 수학을 잘 못 풀어도 여전히 소중한 존재야.”라는 것을 인식시키기 위해서 노력을 한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세상에 이런 교육이 어디 있나. 학교에서 아이들의 자존심이 박살이 나고 집에서 그걸 회복시켜줘야 하는 교육, 이것이 무슨 교육이란 말인가. 우리나라의 이 ‘모욕 참기 교육’을 한시라도 빨리 멈추게 하기 위해서는 우리 교육을 설계하는 사람들이 정말로 모욕을 당하는 입장에 서봐야 한다. 한마디도 못 알아듣는데도 8시간 동안 학교에 앉아있을 때의 고통을 그들이 알고 나서야 교육 정책 만들기에 들어가야 한다. 

그런데 대부분 교육정책을 짜는 사람들은 다 명문대 출신이고, 행정고시를 패스한 사람들이고 박사학위를 받은 사람들이다. 그 사람들은 학창시절 진심으로 수포자의 모욕감을 경험해본 적이 없다. 그러니까 문제를 해결하기는커녕 건드리기조차 하지 못하는 것은 아닌지 하는 의문이 든다. 

테일러 시스템이 낳은 소수의 수학을 풀 줄 아는 관리자들과 다수의 모욕을 잘 견디는 노동자들의 조합이 효율적이었다고 하더라도, 물론 난 그렇게 믿고 있지 않지만, 만에 하나 그것이 21세기 자본주의 시대를 이끌어온 효율적인 시스템이었다고 해도 그 시대는 이미 종언을 고하고 있다. 지금 우리는 2차 산업혁명 시대가 아니라 4차 산업혁명 시대 초입에 들어서 있다. 

수학 좀 풀 줄 아는 소수의 엘리트들에게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맡긴다면 관리자 자리를 모두 스카이 출신이 점령할 것이다. 하지만 4차 산업혁명 시대를 살아갈 우리는, 모욕을 잘 참고 견디는 다수의 노동자를 양산해서는 안 된다. 누구나 자기의 생각을 거침없이 얘기하고 도전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춰야 한다. 그런데 우리 교육은 아직도 로그나 지수, 코시-슈바르츠 부등식을 가르치면서 이걸 모르는 학생들에게는 닥치고 무릎 꿇고 패배를 인정하라고 강요한다. 

이런 교육 방향은 우리 미래를 위한 올바른 선택이 아니라는 것을 믿는다. 교육 개혁은 교육계 주도로 이뤄져야 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 사회의 사고 구조가 바뀌어야 가능하다. 2차 산업혁명 당시의 사고방식에서 벗어나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교육정책을 교육의 승자, 수학을 거뜬히 풀어내는 소수들이 짜는 것이 아니라, 50년 동안 묵묵히 학교 교육에서 소외돼 왔던 사람들과 대화를 하면서 풀어가야 한다. 한마디로 어려운 수학은 20세기형 테일러 시스템을 공고히 하는 데 기여할 뿐이다. 이제는 다수를 우둔한 복종자로 만드는 어려운 수학에서 패배자를 만들지 않는 쉬운 수학으로 수학 교육의 패러다임을 바꿔야 할 때다. 

영상 참조: http://bit.ly/2j8DhB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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