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세계적인 작곡가 윤이상, 한국인만 모르는 이유?

한국 음악 기법을 서양 음악에 적용한 천재 작곡가



라흐마니노프, 모차르트, 베토벤, 바흐, 쇼팽, 차이코프스키 등 서양에는 세계적으로 명성이 대단한 작곡가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동양의 음악은 서양과는 완전히 달라서, 동양인들이 서양 음악을 배워 위대한 작곡가가 되기엔 힘들다고 볼 수 있죠.

그런데 사실 동양에도 위에서 열거한 작곡가들 못지않은 대단한 세계적 작곡가가 있답니다. 그것도 바로 한국 출신의 작곡가가 말이에요. 그는 바로 한국음악 기법을 서양 음악에 적용해 새로운 음악 세계를 연 윤이상(1917.9.17.~1995.11.3)입니다. 들으면 들을수록 가슴 저리고 또 묘하게 우리를 빠져들게 만드는 작곡가 윤이상에 대해 알아보도록 해요!

음악을 향한 열정, 가난도 막을 수 없었다!
윤이상은 1917년 9월 17일 경상남도 산청에서 태어나 통영에서 자랐어요. 그는 어려서부터 교회에 나가 또래의 꼬마들에게 찬송가를 가르칠 정도로 노래도 잘하고, 음악가로서의 소질을 보였습니다.

하지만 그는 음악적 재능을 채 펼치지도 못하고 포기해야 했어요.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서울에 가서 음악공부를 하려고 했지만 가난 때문에 하지 못했거든요. 게다가 나중에는 집안 살림을 도와야 해서 중학교 2학년 때 학교를 중퇴한 후 큰 매형이 운영하던 포목점에서 일해야 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음악을 향한 꿈을 버릴 수 없었어요. 그리고 독학으로 틈틈이 작곡 공부를 하기 시작했죠. 결국 18세 때 동요곡집 <목동의 노래>를 출판하게 됩니다. 당시 유명했던 작곡가 홍난파는 윤이상을 보고 ‘장래가 촉망되는 인물’이라고 격찬했다고 해요.

윤이상은 이때부터 본격적인 음악공부를 해야겠다고 마음먹고, 일본으로 유학가기로 결심합니다. 그리고 일본에서 3년 동안 일을 하면서 학비를 마련해 정식으로 작곡과, 첼로 공부를 했습니다.

‘내 나이가 어때서?’ 나이에 상관없이 꿈 좇던 윤이상

윤이상은 일본에서 유학한 후 한국으로 돌아와 중고등학교 및 대학생들을 가르치는 음악교사가 되었어요. 그렇지만 그는 학생들에게 열정적으로 음악을 가르치면서도 작품 활동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윤이상은 38세가 되던 해인 1955년에는 제 3회 서울시 문화상의 음악부문에서 수상을 했고, 같은 해에 작곡집 <달무리>를 출판하면서 작곡가의 길을 걷고자 유학을 결심합니다. 그리고 그는 1959년 ‘일곱 악기를 위한 음악’이 세상에 공개되면서 유럽 현대음악계의 주목을 받기 시작합니다.

서양 악기에서 국악이 들리는 것 같아!
윤이상이 작곡한 음악의 특징은 연주자들이 곡을 표현하기가 매우 까다롭다고 말 할 정도로 난해하다는 것인데요. 그 이유는 서양의 악기를 마치 한국의 전통악기를 연주하듯이 연주하기 때문이에요. 가야금이나 거문고를 타듯, 현악기의 줄을 짚고 흔들고 튕기고, 대금의 맑은 소리를 가늘게 떠는 플루트로 재현하죠. 피리를 연주하는 것 같이 오보에를 연주하기도 합니다.

또한 윤이상은 현악기를 통해 우리 국악 특유의 ‘꺾임’을 표현하기도 하는데요. 높은음에서 낮은음으로, 낮은음에서 높은음으로 갑자기 확 미끄러지듯이 연주하는 방식을 이용하죠. 그런데 이런 연주기법은 특히 서양 연주자들이 매우 낯설어 한다고 해요.

그들은 한음 한음을 정확하게 짚어나가며 연주하는 게 익숙했는데, 마치 각각의 음이 하나가 된 것처럼 연주해야 했으니까요. 바로 이런 점 때문에 눈을 감고 그의 음악을 들으면 국악을 듣는 듯한 느낌이 들기도 하는 거구요. 

윤이상은 <유동의 꿈>, <나비의 미망인>, <요정의 사랑>, <심청> 등 네 편의 오페라를 비롯해 <바라>, <무악>, <예악>, <광주여 영원히> 등 20여 편의 관현악곡, 40여 편의 실내악곡, 교성곡 그리고 동요까지 무려 150여 편의 작품을 남겼어요.

뛰어난 재능 온전히 평가받지 못한 ‘상처 입은 용’
윤이상은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몇 안 되는 현대 작곡가 중 한 사람이에요. 한국음악의 연주기법을 서양 악기에 녹여내는 방식으로, 서양 문명 속에 동양 사상을 자연스레 융합한 시도는 ‘세계 음악사에 새로운 장을 열었다’라는 평가를 받고 있기도 하죠.

그러나 해외에서 이토록 융숭한 대접을 해 주는 반면, 정작 고국인 한국에서는 윤이상의 존재조차 모르고 있는 경우가 허다해요. 그 이유는 그가 과거 1967년 간첩 혐의를 받아 잠시 감옥살이를 한 적이 있어, 얼마 전까지만 해도 문화계 블랙리스트에 이름이 올라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해당 사건은 지난 2006년 정부가 과대 포장한 사건이었다고 규정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이 사건으로 인해 독일로 귀화했고, 지금은 이미 50년이라는 세월이 흘러버려 사람들의 머릿속에서 그에 대한 기억은 거의 지워지게 됐습니다.

그는 자신을 날지 못하는 ‘상처 입은 용’이라고 칭했지만, 언젠간 자신의 작품들이 날개가 되어 한국 땅을 훨훨 날 수 있는 날이 오지 않을까요?

우리 ‘국악’을 작곡하는 외국인 작곡가도 있을까?

국악은 우리나라 전통 음악이니까 한국 사람만 작곡한다고 생각하는 친구들이 많을 거예요. 하지만 1960년대 루 해리슨(Lou Silver Harrison)이 국악기를 응용해 작곡을 한 것을 시작으로 외국 작곡가들도 하나 둘 우리 국악을 작곡하기 시작했어요.

국악을 작곡하는 외국 작곡가들은 한국 전통악기만의 고유 음색이나, 서양 음악에서 쉽게 들을 수 없는 소리 같은 것들에 매료 돼 호기심으로 작곡을 시도하는 ‘국악 초보자’들이기는 하지만, 최근에는 외국 작곡가의 국악곡만 모은 기획공연도 등장하는 등 우리 국악에 대한 관심이 조금씩 해외에서도 높아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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